튀르키예 리라

튀르키예 리라 (터키 리라)
Türk Lirası 튀르크 리라스
TCMB logo.png
화폐 정보
사용국 터키
북키프로스
ISO TRY (TRL)
기호 ₺, TL(텔레)
보조단위
1/100 쿠루쉬 (Kuruş) [kr]
지폐 ₺5, ₺10, ₺20, ₺50, ₺100, ₺200
동전 1kr, 5kr, 10kr, 25kr, 50kr, ₺1
중앙은행 튀르키예공화국 중앙은행 (Türkiye Cumhuriyet Merkez Bankası)
환율 111원/₺ (2021.12.24 기준)

Turkish Lira 터키시 리라en

소개

튀르키예(터키)의 리라/파운드 계열 통화이다. 별칭은 로마자 약자인 "TL"을 그대로 읽은 "텔레(Te-Le)"

리라를 버리고 달러를 취한다!

USDTRY20112021.png 튀르키예 리라는 2010년대 후반부에 들어서 낙폭이 급격하게 커진 통화이다. 전성기인 2011 ~ 2012년 경 환율은 약 680원/₺ (2₺/$ 미만)이었고, 각종 해외발 금융사태가 터진 뒤인 2016년 환율이 대략 400원/₺ 이하 정도를 가리켰는데, 그 해 말에 30% 넘게 대폭락을 했고, 2018년 5월에 추가로 10% 떨어지면서, 중앙은행 차원에서도 환율방어에 나서게 되었다.

2018년 8월 10일에는 바로 전날 대비 17원 이상 떨어졌는데, 그 전달인 7월 26일만 해도 232원을 가리키고 있었으나 미국과의 외교전쟁으로 인해 국제정세적 불안함을 느낀 사람들이 리라를 버리고 달러로 돌아서면서 또다시 떡락이 일어났으며, 연동율이 비교적 높던 유로까지 하락세로 끌어들였을 정도였다. 그 이듬 영업일인 13일에는 추가로 10~20원 가까이 떨어져 160원/₺(약 8₺/USD)까지 깨질 위기에 처하자, 교민이고 현지인이고 너나 할 것 없이 달러 구하려 현찰을 쓸어다 환전소로 찾아가는 바람에 북새통을 이루었고, 미처 환율연동가 대응을 하지 못한 할인 행사중인 버버리라던지 명품매장 등에는 외국인 관광객이 환차익을 노린 레이드를 띄웠으며, 불안하던 치안은 더욱 악에 물드는 가운데 대통령이 금 모으기 운동을 제안할 정도로 막장가도를 걷게 되었다. 경제학자들은 이번 튀르키예 리라의 침몰이 태국발 경제위기의 경우와 상당히 유사하다고 진단, 대통령의 국민 호소가 실패하게 되면 결국 IMF구제금융을 받을 것이라는 전망을 냈었으나, 이 전망이 실제로 인용되는 일은 없었다. 결과적으로 정부의 무두질이 제대로 작용했는지, 17일 환율은 추가 폭락 이전인 190원 내외까지 도로 회복하였다. 한편 미국의 신흥국 시장에 대한 관세폭탄 견제로 인해 튀르키예 리라 뿐 아니라 남아프리카 공화국 랜드, 인도네시아 루피아, 아르헨티나 페소, 브라질 헤알에도 쇼크를 먹여 직전대비 10%가량 가치를 떨어트린 바 있다.

그러나 2020년 유행병으로 인해 에너지 자원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1]하던 튀르키예 경제는 직격탄을 먹었는데, 그럼에도 대통령인 에르도안이 대체 무슨 생각인지, (대개는 디플레이션 및 환율 하락에 대항하는 수단인)금리 인하를 꾸준히 밀어대서, 화폐가치 하락폭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더욱 가팔라지고 있다. 문제는 2020년 8월, 그렇게 문제가 많던 상황에서 한국은행이 2조 3천억원=175억리라(약 131.43원/₺) 규모의 통화스와프를 체결했다는 것.

2020년을 기점으로 가치 하락 속도가 너무 빨라지자, 이를 실시간으로 반영하지 못한 스팀, 애플, 샤넬 등의 국제적 대기업의 상품 가격 또한 환율에 맞춰 비정상적으로 급락하였고, 그걸 눈치채고 셔터 내릴 때까지의 잠깐동안 해외구매가 번성(?)하기도 하는 해프닝이 또다시[2] 벌어졌다.

2021년 12월 20일부터 화폐가치가 급반등했다가 다시 추락했다.

환전 및 사용

대한민국에서는 과거 외환은행 시절에 처음 터키 리라 취급을 시작했는데, 당시에도 을지로2가 본점과 공항점 정도만 받아주고, 수수료가 정말로 장난이 아니었으며, 순수한 매입량에 의지하는지라 구매도 어려워서 매우 불편하였다. 그러던 것이 2018년 2분기에 리라화 환율이 급락하면서 보유 위험이 너무 커진 것으로 판단됨에 따라 시중은행들의 손절이 연이었고, 사실상 2018년 6월부터 몇달 동안 한국 내 취급이 전면 중단되기도 했다. 이후 KEB하나은행에선 완전히 취급이 중단되었고, 이후 우리은행, 국민은행, 신한은행 만이 간신히 취급하고 있는 상태. 이마저도 본점이나 인천공항에서 구할 수 있는 게 흠이지만.

과거에는 대개 한국씨티은행에서 국제현금카드를 만들고 현지에 가서 뽑아다 썼지만, 2013년 7월 이후 튀르키예 씨티은행이 튀르키예 국내은행인 데니즈방크(Denizbank)로 인수합병되는 바람에 더 이상 이 방법을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때문에 유로화나 달러화로 중개환전하는 것이 기본인데, 이때는 은행이나 호텔보다 사설 환전소에서 환전하는 것이 여러모로 이득이다. 우선 수수료를 물지 않고, 유로, 달러화에서 튀르키예 리라로 환전할 경우 환율도 꽤 높게 쳐주는 편이다. 다만 관광지가 아닌 지역 한정이다. 이스탄불 관광지에 있는 사설환전소에서는 굉장히 환율을 짜게 쳐주고, 환전소마다 매기는 가격이 다 다르기 때문에 몇번 발품을 팔 필요가 있다.

여전히 튀르키예(중에서도 대도시, 관광지 위주)에선 달러와 유로사용이 어렵지 않은데, 다 여행자들 때문이기도 하고 기나긴 인플레 사정이기도 하다. 그런데 외환을 주역으로 사용하게 되면 기본적으로 현지화인 리라보다 확연히 비싼값을 매기므로[3] 가급적이면 리라로 지불할 것을 권장한다. 더구나 이스탄불이나 앙카라 및 유명 관광지가 아니라면 되려 환전하기 혹은 거래하기가 힘들어질 수도 있다.

현재 통용되는 지폐(E9)의 경우, 2012~2015년 기준으로는 ₺50까지 무난하게 통용이 되었지만 ₺100(당시 약 4만원 정도)는 튀르키예에선 제법 큰 돈이라 시장이나 작은 상점에서 ₺100짜리를 내면 "거슬러줄 수 없다."라고 거부하는 경우가 많았다. ₺200는 ATM에서도 취급하지 않고, ₺200는 액수도 큰데다가 숫자의 애매한 특수성 때문에 정말정말 드물게 사용되었었다. 만약에 ₺200짜리는 내밀면 굉장히 신기하게 쳐다보거나(...) 위조감별기로 진지하게 들여다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가치가 크게 떨어진 2016~2018년 기준으로는 가파르게 오른 물가 때문에 ₺200 지폐도 ATM에서 흔하게 취급되도록 위엄이 떨어지고, 시중에서도 무리없이 유통되고 있다. ₺200 권종의 발행 당시 가치는 약 14만원이었으나 5만원 수준으로 떨어졌으니 당연한 변화. 하물며 2021년 말 기준으론 2만원도 채 안 된다(!).

동전은 ₺1가 가장 보편적이고, 25Kr, 50Kr가 보조단위로 주로 이용된다. 10Kr, 5Kr[4]는 마트나 패스트푸드점과 같은 대형업체에서나 볼 수 있을 정도며, 때로는 그냥 버리기도 했다. 특히 마트같은 곳에선 잔돈이 부족할 경우 10Kr 단위로도 버리고 25Kr(=₺¼) 단위로 맞추는 걸 볼 수 있다. 몰론 가격표에는 1Kr단위까지 잘 활용하는데, 실제 거래시에는 올리거나 버리는 식으로 수정한다.

새로운 기호

기호는 レ에 두 줄 그어놓은 형태(대략 히라가나의 も처럼 생겼다.)가 2012년 3월에 새로 제정되었다. 그 이전에는 단순히 약칭인 TL라[5] 지정했었고, 2012년 중반 기준으로 온전한 정착이 확인되었다. 이 문자는 유니코드 6.2(2012년 9월)에 추가되었다(U+20BA).[6]

유로화 전환 관련

사실 튀르키예는 강남살이 좀 해보려고 자신들도 유럽에 들어가싶다 해왔고, 그 일환으로서 유로화 전환을 적극 추진하고자 안달이나 온갖 노력을 다 하고 있지만... 원년멤버인 그리스의 적극적인 디스[7]......은 과거시절 이야기고, 2002년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총리의 집권이후 외교관계 개선으로 그리스는 튀르키예의 EU가입을 지지하겠다고 선포한 상황이다. 하지만 산너머 산이라고 아직 키프로스가 남아있다

사실 이런 노력은 비단 튀르키예 뿐 아니라 유럽이라고 하기엔 좀 애매한 극동유럽과 카프카스의 국가라면 한 번쯤 시도해보고 있는 현상이다. 대표적으로 개혁을 통한 환율조작(최대한 유로화 체계에 가깝게 개편 및 개혁)과 유로화를 모방한 지폐/주화 디자인 및 규격 설정등이 있다. 정작 유로존 국가들은 아오안이지만.

공화국 튀르키예 리라 2기, TRY

튀르키예 은행권의 시기 분류는 공식적으로는 "E(Emission)+숫자"의 형태로 표현한다. 그러니 현행권의 경우는 E9시리즈. 2012년 현재, E7까지는 사실상 사용중지, E8은 제한적 사용이 가능하고, E9가 주로 통용된다.

튀르키예 국민들의 극진한 아타튀르크 사랑으로 인해 이 나라 돈은 모두 아타튀르크를 주 도안으로 삼고 있다. 1923년 튀르키예 공화국의 건국 초기부터 시작된 유구한 전통(?)이다.[8]

Emission 9 (현행권, 2009)

2009년 1월 1일 부터 통용이 시작되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시리즈. 이때부터 YTL의 Y가 탈락하였다. 유적지에 중점을 두던 과거와 달리, 전반적으로 유명인사를 디자인 소재로 적극 기용하는 방향. 기호 ₺는 이 시리즈부터 사용되기 시작했다.

환율은 이 시기에 들어오면서 차츰 안정을 찾아갔다. 그러나 튀르키예 경제성장률이 매년 5% 이상씩을 찍으면서 초반에 언급했듯 물가상승률은 여전히 가파른 편이고, 2013년 경 튀르키예 내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게 되면서 초창기에 비해 30%가까이 가치가 폭락한 바가 있다. 예를 들면 이스탄불의 교통 토큰인 제톤(Jeton) 1개의 가격도 2004년에는 650,000TL~1,000,000TL(₺0.65~₺1.00)였지만 2015년 경에는 ₺3(3,000,000TL)까지로 많이 올랐다. 다만 교통카드로는 ₺1.95, 튀르키예 학생이라면 ₺0.90라는 게 함정 2017년 기준으로는 제톤 코인이 없어지고 카드로 바뀌었으며, 기본요금을 ₺5로 받고 있다.

튀르키예 2기 리라 9차 시리즈 (Emission 9, 2009년)
TRL901.jpg TRL905.jpg TRL911.JPG
A타입 (₺5, ₺10) 니가 B타입 (₺20, ₺50) 돈을 좀 C타입 (₺100, ₺200) 벌었구나?
₺5[9] 아이든 사이을르(과학자)
태양계 및 Z-DNA구조 그림
₺20 미마르 케말렛딘(건축가)
그가 세운 가지 대학 본관
₺100 부흐리자데 무스타파 으트리(음악가)
류트와 삽화고서
TRL902(1).jpg
₺10 자히트 아르프
₺50 파티마 알리예 토푸즈(작가)
꽃과 서적들
₺200 유누스 엠레(시인)
영묘와 비둘기
  • 위 ₺200는 구권으로 치면 200,000,000TL에 해당한다.
  • 동전은 5Kr, 10Kr, 25Kr, 50Kr, ₺1의 5종이 통용중에 있다. 과거에는 1Kr도 있었으나 본 2009년 개정으로 탈락하였다.
  • 지폐는 몰론 동전에도 앞면에 아타튀르크가 그려져 있는데, 최소액권인 5쿠루쉬는 완전한 옆모습을 하고 있다가 액면이 커질수록 아타튀르크가 점점 정면을 향해 돌아보도록 바뀜과 동시에 얼굴 표정도 점차 미묘하게 밝아진다.[10] 비정상회담(13회 방송분)의 에네스 카야가 이를 언급했었고, 덕분에 '돈이 없으면 대통령도 안 쳐다본다'라는 명언(?)을 전한 바가 있다. 아타튀르크께서는 큰 돈을 지니고 다니는 분을 좋아하십니다!

Emission 8 (구권)

디노미 탈출을 위해 삽질에 삽질을 거듭하다 결국 2005년에 개혁한 시리즈(Yeni Türk Lirası)로, 이때부터 ISO 4217코드가 TRY로 바뀌었다. 약간의 진통은 이어졌지만 강력한 통화정책의 덕분인지 빠르게 회복되었다. 그리고 대신에 물가가 빠르게 오르고 있다. 구권과의 디노미 비율은 1(신):1,000,000(구). 20리라까지는 E7의 디자인을 이어받았고, 뒤늦게 나온 2종은 새롭게 개정된 신판이다. 이 당시에는 구권인 TL과 구분하기 위해 일부러 Yeni[11]의 Y를 붙여 YTL이라고 표기하였다. 2020년 1월 1일부터 통화로서 효력이 없어진다.

Turkiye Emission 8 (2005~2008)
모습 앞면 뒷면
1YTL 아타튀르크 댐
5YTL 아타튀르크의 영묘 (아늣카비르)
10YTL 피리 레이스의 지도[12]
20YTL 에페소스의 셀수스 도서관
50YTL 카파도키아
100YTL 이샤크 파샤 궁전

동전의 최소단위는 1쿠루쉬이며, 구권 10,000TL에 해당했다. 이때 10,000TL 이하의 지폐는 아예 취급하지 않았었는데, 이미 사장되었었기 때문. 그리고 새 튀르키예 리라 도입당시에도 1쿠루쉬는 쓸일이 없어서 상점에서 물건을 살때 잔돈을 받을때면 5쿠루쉬 이하는 그냥 버렸다. 이것은 2012년 이후(E9)도 마찬가지.

공화국 튀르키예 리라 1기, TRL

Emission 7 (1979~2004)

1979년부터 등장한 시리즈로, 인플레 혼란기에 해당한다. E7에 해당하는 시리즈는 모두 15개 종류에 36가지 바리에이션이 존재하는 참으로 방대한 규모를 가지고 있다. 최저액권과 최고액권의 격차는 무려 2,000,000배. 당연하지만 전 종류가 한꺼번에 쓰인 적은 없다.

디자인상 10만 리라(1990년 첫 발행)를 기준으로 전반과 후반을 나눈다. 최고액권인 2000만 리라는 2002년에 등장하였고, 모든 종류는 2005년 1월 1일부터 사용이 중단되었다. 개혁 직전인 2004년에는 환율이 135만 리라/USD이었다. 2016년 1월 1일부로 통화로서 효력을 잃는데, 계산하기도 귀찮고 교환하기도 귀찮은 탓에 이미 이것들은 시중에서 거의 안 받아주는 편.

워낙에 "0"이 많다보니 당시 계산할 때, 일단 0을 3개 혹은 6개 먼저 빼놓고 계산했다고 한다. 10만TL, 25만TL화는 동전으로도 발행되었다.

Turkiye 7th Emission Series High Digit
100,000TL

아타튀르크에게 꽃을 전달하는 초딩들

250,000TL

크즐 쿨레(알란야)

500,000TL

갈리폴리 전투 기념관(차낙칼레)

1,000,000TL 5,000,000TL 10,000,000TL
20,000,000TL
  • 1,000,000TL(=1YTL) ~ 20,000,000TL(=20YTL)은 신권의 뒷면과 같은 디자인/스펙이다.
Turkiye 7th Emission Series Low Digit

앞면의 아타튀르크[13]

10TL (고액판 10만리라와 동일)

100TL

마흐메트 아키프 에르소이

500TL

이즈미르 시계탑

1,000TL

파티흐 술탄 메흐메트 2세와 오스만 시절 이스탄불의 전경

5,000TL(1판)

콘야의 메블라나 묘소

5,000TL(2/3판)

메블라나 루미와 그의 묘소

5,000TL(4판)

아프신-엘비스탄의 지력발전소

10,000TL

미마르 시난[14]과 셀리미예 모스크(에디르네)

20,000TL

튀르키예 중앙 은행 본관

50,000TL

튀르키예 대 국민의회 (앙카라)

Emission 6 (1966~1983)

1966년 처음 도입되기 시작해 1983년까지 생존한 두번째 장수 시리즈. 20리라만 영국에서 만들고 나머지는 모두 튀르키예 국내산으로 전환되었다. 하지만 시장개방을 위해 점진적으로 환율을 변동제로 풀어주는 과정에서 무언가가 잘못되었는지 인플레이션에 시달리게 되었다. 말기의 환율이 100리라/USD까지 치솟았었다고 한다.

표6

Emission 5 (1951~1971)

1951년부터 등장해 일곱 종류(2.5 ~ 1,000리라)가 여러 번 변화를 거치며 32개 바리에이션을 만들고는 1971년에 숨을 거둔 나름 장수한 시리즈. 전란 후폭풍에서 벗어나고 점차 외주를 줄이며 국내산(튀르키예)으로 찍어내 예전의 영광을 되찾았다. 전성기 당시 환율은 9리라/USD 정도. 이때부터 모든 돈 앞면에 아타튀르크가 들어가기 시작했다.

Emission 4 (1947~1948)

2차 및 3차와 혼용되어 쓰인 시리즈인데 영국과 독일이 서로 싸우느라 나라꼴이 시망ㅋ해버리니 발주가 곤란해지자 미국에 발주를 넣어 들여온 시리즈이다. 극혼란기에만 잠깐 쓰였다. (1947년~1948년) 종류는 단 두 가지(10, 100리라)이며, 이뇌뉘가 그려져 있다.

Emission 3 (1942~1947)

모든 시리즈에 지금은 지겹게 볼 수 있는 아타튀르크가 빠지고 이뇌뉘가 들어간 첫 시리즈. 2차 시리즈와 혼용되어 사용된 긴급발행권의 성격을 지닌다. 1942년부터 1947년까지이며, 영국(초반), 독일, 미국산(후반)이 섞여있다. 급한대로 뽑아다 쓴 모양이다. 종류는 2.5리라부터 1,000리라까지 1, 5단위로 올라가며 7종.

Emission 2 (1937~1944)

2~4차는 굉장히 짧은 통용역사를 지니고 있다. 이유인 즉, 세계 2차 대전이 터진 탓.[15] 전쟁때는 공급이 자주 끊기는 바람에 모든권종이 한꺼번에 쓰인 적은 없고, 1937년에서 1944년까지 자주 등장했다 사라졌다 했다. 마지막으로 중지된 시기는 1952년 11월. 참고로 영국산이다.

표2

  • 500리라와 1,000리라는 아주 미묘한 차이를 보이는 두 가지 버전이 존재한다.

Emission 1 (1926~1936)

1926년 공화국 리라 등장 이후 파운드프랑스 프랑에 강력한 페그(고정환)를 걸었기 때문에 환율이 2.8리라/USD 정도로 일정하게 유지되어 왔다. 국어(오스만투르크어)가 아랍문자로 쓰여진 처음이자 마지막 공화국 리라이며, 뒷면에는 프랑스어[16]가 병기된 유일한 시리즈이기도 하다. 막 새로운 수도로 결정된 앙카라를 도안소재로 폭넓게 사용하였다. 1930년대 후반경에 국문표기법 변경으로 인한 신권이 발행되면서 통용이 중지되었다.

표1

트리비아

오스만 리라

  • 이 단락은 튀르키예 리라의 전신인 오스만 리라에 관한 내용입니다.

튀르키예에서 최초의 리라화는 1843년 1월 5일에 오스만 제국술탄 압듈메지트에 의해 도입되었다. 이전까지 오스만 제국의 화폐제도는 3악체(akçe)를 1파라(para), 40파라를 1쿠루쉬(kuruş)로 하는 은본위제를 실시하고 있었는데 영국의 화폐제도를 본받아 금본위제를 도입한 것. 때문에 오스만 제국의 옛 화폐를 보면 Osmanlı Lirası (오스만 리라)라고 쓰여있는 표기 옆에 프랑스어 Livre Turque 라고 표기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한편 리라 도입으로 보조화폐로 전락한 쿠루쉬도 대외적으로는 피아스트르(piastre)라고 불리고 있었으며 리라화 도입 이후에도 유럽권에서는 리브르, 피아스트르라고 불렀다.

은화

  • 악체(Akçe): 오스만 제국의 은화중 가장 작은 금액이자 가장 오랫동안 기준통화였던 통화.
  • 파라(Para): 3악체 = 1파라
  • 샤히(Şahi): (초기에는 6.5악체=1샤히, 후기에는 8악체=1샤히)
  • 디리헴(Dirhem): 아랍-이슬람제국의 화폐 단위인 디르함과 어원이 같은 말
  • 졸타(Zolta) 혹은 졸로타(Zolota): 30파라 = 1졸타
  • 쿠루쉬(Kuruş): 40파라 = 1쿠루쉬, 1687년에 최초로 도입된 화폐로 기존의 기준통화였던 악체를 대신하기 위해 발행되었다.
  • 지하디예(Cihadiye): 5쿠루쉬 = 1지하디예

금화

  • 픈득 알튼(Fındık altını)
  • 제리 마흐붑(Zer-i Mahbub): 3.5쿠루쉬 = 1제리 마흐붑
  • 아들리 알튼(Adli Altın): 12쿠루쉬 = 1아들리 알튼
  • 하이리예 알튼(Hayriye Altın): 20쿠루쉬 = 1하이리예 알튼
  • 루미 알튼(Rumî Altın): 1루미알튼= 48쿠루쉬
  • 마흐무디예 알튼(Mahmudiye Altın): 20쿠루쉬=1마흐무디예 알튼
  • 메지디예(Mecidiye): 20쿠루쉬 = 1메지디예

각주

  1. 에너지 자원의 부족은 튀르키예 경제의 거의 유일한 약점이기도 하다.
  2. 2016년 경 베네수엘라에서도 똑같은 사례가 있었다. 그나마 튀르키예가 베네수엘라 만큼의 막장은 아니긴 해서, 단체 철수 사태까지는 일어나지 않겠지만...
  3. 2013년 기준으로 2.58리라/EUR인데, 유로화로 계산하면 대개 2리라/EUR로 통크게 내쳐버렸다. 한화로 치면 리라당 500원 가까이 손해보는 셈인데, 가보면 알겠지만 결코 적지 않은 돈이다. 당장 500원만 있어도 꽤 큰 빵 두 개, 혹은 토마토 1킬로그램을 살 수 있다. 달러도 상황이 비슷한데 대략 1.90리라/USD 정도. 여담이지만 면세점이나 페리회사등, 유로로 가격을 매겨놓은 곳에선 역차별하기도 한다.
  4. 2020년 기준으로 5쿠루쉬 또한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5. 화폐개혁 직후에는 YTL(Yeni Türk Lirası - 새 튀르키예 리라)
  6. 그런데 이걸 둥글게 해서 뒤집은 것(즉, "も"를 정확히 180도 돌린것)이 원쑤 아르메니아 드람의 기호다보니, 일부에게 까이기도 한다고.
  7. 역사적인 이유로 그리스와 튀르키예는 매우 험악하다. 그리스 뿐 아니라 발칸반도의 대부분 유럽국가 및 키프로스, 아르메니아와도 사이가 좋지 않아 유로화 도입은 커녕, 유럽연합 가입후보국에 머물러있는 실정이다.
  8. 간혹 2대 대통령인 이뇌뉘가 메인을 차지한 경우도 있었다.
  9. 원래 밝은 갈색이었으나 ₺50와 혼동하기 쉽다는 이유로 자청색으로 바뀌었다.
  10. 7차 및 8차에서는 옆을 보다가 앞을 보다가 다시 옆을 보는 구조이라 적용되지 않는다.
  11. 영어로 치면 New
  12. 오스만 제국의 해군 제독이자 항해사인 피리 레이스가 그린 고지도. 유럽과 아프리카 서부 및 남미 동부(브라질)까지 그려져 있지만, 이 지방들을 식민지배하려는 의도였다기보다 '그냥 자료가 있으니까 그려 넣었다' 에 가깝다.
  13. 권종별로 디자인이 약간씩 다르다.
  14. 카이세리(카파도키아의 동쪽에 있는 중간규모 도시.) 출신의 기독교도. 데브시르메 제도에 따라 예니체리로 징집되었으나, 황제 쉴레이만 1세의 눈에 들어 건축가로 전직하였다. 참고로 미마르(mimar)는 성이 아니라, 튀르키예어로 건축가라는 뜻.
  15. 1차대전 당시엔 오스만 제국이었다.
  16. 프랑스어로 단위는 리브르.
  1. 여기에 해당하는 이전 화폐는 동전도 교환대상에 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