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원

대한민국 원 (한국 원)kr
韓元 한위엔cn, 韓国ウォン 칸코쿠원jp
Korean Won = South Korean Wonen[1][2]
크기=300px
화폐 정보
사용국 대한민국 대한민국
ISO 4217 KRW
기호 (KR₩)[3]
보조단위
1/100 전(錢)[4]
지폐

₩1000, ₩5000, ₩10000, ₩50000

(기념지폐) ₩2,000
(구권) ₩1, ₩5, ₩10, ₩50, ₩100, ₩500
동전

₩10, ₩50, ₩100, ₩500

(희귀) ₩1, ₩5
발행처
중앙은행 한국은행[5] 웹사이트
인쇄처 한국조폐공사[6] 웹사이트
조폐국 한국조폐공사 웹사이트
가치
인플레이션 1.6% (2014년 7월 추정치)
환율 1,196원/$ (2020. 02. 02 기준) 1원/₩
전신 대한민국 환 [10:1] (1953~1962)
일본령 조선 엔 (1910~1945)
대한제국 원 (1902~1910)

1 개요

대한민국에서 사용하는 원(圓) 계열 통화로, 한국 원이라고도 한다.

1.1 환전 및 사용

굳이 이런 내용이 필요할까 싶긴 하다만 현 시점에서 한국 원이 한국 바깥에서 통용되는 경우는 정말로 별로 많지 않다. 유럽이나 미국 등지에서는 한인상점을 제외하면[7] 듣보잡이고,[8] 중국에서도 극히 일부에서만 취급할 정도로 많이 제한적이고, 끽해야 몽골이나 캄보디아 등의 몇몇 나라 한정으로 높게 평가하는 정도이다.

강제하든 아니든[9] 카드 사용이 제법 보편화 되어있어 현금이 없어도 일부 사례를 제외하곤 불편없이 소비활동이 가능하다. 덕택에 거금을 들고다니지 않는 습관이 정착됨에 따라 1천원권의 유통량이 크게 증가하였다.

한국 지폐는 5만원권이 약간 특별하게 취급될 뿐이고 나머지는 결제금액에 무관히 통용 가능하다. 가장 많이 사용되는 것은 1만원권과 1천원권인데, 1천원권은 자판기 등에서 특히 활약하고, 천원 단위를 거의 취급하지 않는 ATM에서는 1만원권이 활약한다. 다만 발행액수의 비중으로는 7할 이상이 5만원권으로 채워져있다.[10] 하지만 5만원권으로 거래를 하더라도, 정말 어지간한 경우 아니고서는 굳이 수취를 거절하지 않는다.

한국 동전은 10원짜리(단, 옛 10원짜리는 별개)를 제외하고 자판기 사용이 가능하고, 가게에서도 원칙적으론 갯수제한 없이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대개 수십장 단위에 달하면 민폐라 생각하는 경향이 있으니 자제하는 것이 좋다. 1천원이 그리 큰 값이 아닌 관계로 동전이 그리 쉽게 쌓이지는 않지만, 너무 많이 쌓였다면 자판기에서 최대한 써버리거나 은행에서 교환하면[11] 된다. 다만 한국에 단기 방문한 사람이라면 상대적으로 동전 관리가 까탈스러울 수 있는데, 초지일관 지폐만 남발하거나 10원짜리 등이 너무 쌓이지 않게끔 관리한다면 대개 공항에서 무난하게 뒷처리가 가능하다.

1.2 대표적인 분쟁력 측정기

한국은 1980년 2월까지 관리환율제인 통화바스켓을 유지하다가 처음으로 시장 추이로 환율을 결정시키는 시장평균환율제로 변경하였고, 1997년 12월 외환위기 직후부터 현재의 자유시장환율제로 전환하여 운영하고 있다. 역대 달러 대비값의 환율 최고기록은 1997년 12월 23일에 기록한 1960원/US$, 최저기록은 2007년 10월에 기록한 899원/US$이다.

2019년 현재까지도 한국 원화는 대표적인 약체 통화이다. 동북아시아 자체가 유로 출범 이전의 유럽에 버금가는 통화의 전쟁터이고, 그 상황에서 양 옆으로 규모로 밀어붙이는 통화전통적으로 철벽 안정의 인지도를 가진 통화가 있기 때문에 콩라인조차도 못 된다. 몰론 경제규모로 치면 강소국 취급이니 여타 인지도 떨어지는 통화들에 비하자면 영향력이 분명 있는 편인데, 그저 입지가 많이 다소 좁을 뿐이라 보면 된다.

수출실적에 열을 올리는 경제구조[12]미국 달러의 의존도가 심히 높다보니, 대(對)외환위기가 찾아오면 곧바로 영향을 받아 흔들리고 마는 약점이 치명적이다. 오죽하면 무역 시장에서는 한국 원화의 등락 추이를 보며 무역 전쟁이 얼마나 격화되었는가 측정하고 앉아있으니...

때문에 의외로 북한의 존재는 통화가치에 그다지 반영되지 않는 편인데, 이는 북한과 교류하는 나라가 거의 없다시피하고, 2010년대 이후 한국은 신용등급이 거의 최상위권에 있다보니, 어지간하면 맥없이 무너질 것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해외발 통화위기나 통화긴축 결정 때 환율이 쉽게 흔들리는 것과는 달리 북한이 무슨 짓을 벌였을때는 평상시와 크게 다르지 않은 점에서 관찰이 가능하다. 예로 2017년 11월에는 북한의 깽판과 평창올림픽 특수가 겹쳤는데, 올림픽 특수가 끝날때 까지 계속 원화 강세를 보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북한 자체의 움직임보다는, 북한이 움직임으로서 발생되는 중국 및 미국과의 관계에서 환율 움직임 영향이 나타난다.

2 현찰 시리즈 / 2기 원화 (현행권)

이하 서술하는 2기 원화의 모든 화폐는 시중에서 그대로 사용할 수 있으며, 공식적으로 한국은행 및 시중은행에서 현행권과 교환이 가능하다. 단, 전(Jeon)단위는 최소 10원 단위로[13] 맞춰서 교환만 가능하다. 또한 사용시에는 액면가 그대로로만 사용할 수 있으나, 대개는 수집가 등에게 팔 때 액면 이상으로 받을 수 있는지라 대개는 그냥 사용하는 게 더 손해이다.[14] 몰론... 보기에 좋은 것만 그런 것이니 지나치게 낡거나 손상이 심하다면 기대하지는 말고 그냥 교환하는게 낫기도 하다.

이하 분류는 사용 시대순으로 분류한 것으로, 한국은행에서는 공식적으로 권종별로 가나다순을 붙여서 분류하고 있다. 예로 현행권은 가 오만원, 바 만원, 마 오천원, 다 천원. 이 방식은 1993년에 채택한 방식으로 이전에는 갑을병정 순으로 붙였다.

2.1 동전

대한민국 2기 원화 동전 (from 한국은행 설립 70주년 기념주화)
KoreanKoinFs.jpg KoreanKoinBs.jpg
앞면 뒷면
대한민국 원화 동전 스펙 (since 1966)
₩500 ₩100 이순신 ₩50 ₩10(신형) 다보탑 ₩10(구형) 다보탑 ₩5 거북선 ₩1 무궁화
Ø(mm) 26.50
7.70g
Ø 24.00
5.42g
Ø 21.60
4.16g
Ø 18.00
1.22g
Ø 22.86
4.06g
Ø 20.40
2.95g
Ø 17.20
0.73g('68~)
Cu75+Ni25(%) Cu75+Ni25 Cu70+Zn18 + Ni12 Cu48, Al52[15] Cu65+Zn35('70~)
Cu88+Zn12(~'70)
Cu65+Zn35('70~)
Cu88+Zn12(~'70)
Al100('68~)
Cu60+Zn40(~'67)

2기 원화 동전 현행권은 모두 6종류이다. 그러나 최소거래액이 ₩10단위이기 때문에, ₩1과 ₩5는 은행간 거래용도 이외로는 사용하지 않고 있다. 한국은행은 매년 현행권 동전 6종을 모아낸 기념품(민트)을 내고 있는데[16], 대개는 그제서야 1단위 원화를 볼 수 있을 정도이며, 그것도 새로 찍어내지 않고 미리 만들어둔 동전을 우선 재활용하는 수준이다. 그래도 공식적으로 통용이 중지된 것은 아니므로, 실물을 들고 은행에 입금해달라고 한다면 실제로 입금해준다.

최초 발행은 1966년 8월 16일, 기존 환(Hwan)화를 대체하기 위한 ₩1, ₩5, ₩10의 3종이었다. 그러나 동전은 발행비용이 높았기 때문에 수요만큼의 공급을 지속하기엔 재정적 여건이 매우 후달려서 지폐와 병행하여 사용하도록 하였고, 환화 동전 또한 환화 지폐와는 달리 폐기/회수조치를 별도로 하지 않았다. 더불어 1환 및 5환에 준하는 원 단위가 존재하지 않아 긴급히 10전 및 50전 지폐를 발행하여 대체한 역사도 있다. (아래 '1차' 항목 참고)

그러다가 급격히 커지는 경제력 향상에 걸맞는 고금리 정책에 유통되는 통화량 또한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그 부작용으로 원화 가치는 쭉쭉 떨어져갔기에 차례차례 고액권이 동전으로 바뀌어갔다. ₩100주화는 1970년 11월 30일, ₩50주화는 1972년 12월 1일, ₩500주화는 1982년 6월 12일에 등장하여 차근차근 지폐를 대체하였다. 그러던 1983년 1월 15일, 대대적인 통화개혁으로 인해 지폐와 동전[17]들이 모조리 신형으로 교체되어 현재의 체계를 완성하였다.

사실 한국 경제의 규모나 물가를 따졌을 때 ₩1000 주화 발행도 충분히 논의가 가능하나, 발권은행인 한국은행이 도리어 동전을 없애려 하는 의지가 강한 관계로, 일언반구 조차 언급되지 않는다.

여담이나, 한국은행 공인으로 숫자가 있는 쪽이 뒷면이다. 이는 매년 발행하는 동전세트(민트)의 설명문구에서 확인할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 반대로 안다

2.2 현행권 : 5차 발행 (2006 ~)

2000년대 초중반 경, 가정용 프린터로 인쇄한 수준의 오천원권 및 만원권의 위조지폐가 꾸준하게 나타나면서, 너무 오랫동안 써온 구식 지폐를 슬슬 퇴장시키고[18] 최신 기술을 도입한 신권을 발행하기로 하면서 등장한 신권 시리즈이다. 유난히 위폐 비중이 크던 오천원권이 2006년에 먼저 선을 보이고, 이듬해(2007년) 정초에 나머지 두 액면을 내놓으면서 완성시켰다.

2005년 겨울 경에 새 5천원권이 언론을 통해 처음 공개되었는데, 그 때부터 실물이 나온 직후까지도 생소한 생김새와 작아진 크기, 생소하면서 어딘가 (당시 기준으로는) 나사빠진 듯한 초상화, 그리고 특히나 워드프로세서로 입력한 듯이 지나치게 간결하고도 반듯반듯한 산세리프(Sans-Serif) 폰트 타이포그라피 부분이 대차게 까이면서[19] 대중들로부터 별로 좋은 반응을 얻지 못했었다. 그러나 이런 논란은 3년도 채 못가고 사라졌다. 누군가가 분명,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했지...

이후 2009년에는 10만원권 수표를 현금처럼 남발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신 고액권인 5만원권과 10만원권을 기획하였는데, 10만원권은 각종 논란에 휩싸이며 유야무야하며 끝내는 발행이 좌절되고, 상대적으로 관심을 주지 않았던 5만원권만 얼떨결에 최고액권의 자리를 차지하며 새로 등장하였다.

5차 권종이 등장할 2006~2007년 당시에는 (짧지만) 호경기였는데다 20여년만의 디자인 개혁과 맞물려 대중매체에서 고가 수집품을 이용한 재테크 방송도 주구장창 틀어주던 시기라 잠시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수집품을 이용한 재테크 바람이 불었다. 뭔가 그럴싸해 보이고 오래되어 보이는 것이 눈에 띄면 지식포털 등에 무작정 감정부터 해달라고 징징거리는 건 기본, 심지어 판매한다는 글 올리며 설레발 친다던가, 빠른 번호가 비싸게 팔린다는 뜬소문[20]이 퍼져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한국은행 앞에 흡사 코믹마켓 개장 전 모습인 마냥[21], 전날부터 진치고 기다리는 진풍경까지 벌여졌었다. 이후 불경기가 이어지면서 확실히 가라앉았기는 했지만..., 여튼 일반인들에게 액면가치로서의 '돈'이 아닌 "화폐"라는 물건 자체에 관한 관심을 크게 키워준 시리즈다.

South Korean Won 5th Series
₩1,000 (다) / 136×68mm ₩5,000 (마) / 142×68mm ₩10,000 (바) / 148×68mm ₩50,000 (가) / 154×68mm
퇴계 이황
명륜당(성균관), 매화
율곡 이이
오죽헌 몽룡실
세종대왕
일월오봉도, 용비어천가
신사임당
묵포도도, 초충도수병 (신인선 作)
KRW1000F.png
KRW1000B.png
KRW5000F.png
KRW5000B.png
KRW10000F.png
KRW10000B.png
KRW50000F.png
KRW50000B.png
계상정거도 초충도 2점 (신사임당 작품) 혼천의, 천상열차분야지도
보현산 천문대망원경
월매도(어몽룡 作)
풍죽도 (이정 作)
  • ₩10,000권 앞면 배경에 쓰여진 용비어천가의 일부는 원본의 제 2장 가락인데, 이상하게도 마지막 행이 누락되어있다. 이에 대해서 어떤 이가 한국은행에 문의한 결과로, '용비어천가의 디자인은 용비어천가의 옛글 형태를 그대로 사용하여 훈민정음의 본뜻을 계승토록하고 끝 소절 한 줄은 생략하여 여운을 남기도록 디자인되었으며, 일월오봉도의 5봉과 연관시켜 용비어천가를 5행으로 리 디자인(Re-Design) 하였습니다.'라는 답변을 받았다고 한다.[22] 참고로 원본 제 2장 풀버전은 다음과 같다. "불휘깊은남간 바람에아니뮐쌔 곶도쿄여름하나니 샘이깊은믈은 가마래아니그츨쌔 내히이러바라래가나니"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 움직이니, 꽃 좋고 열매많이 하느니, 샘이 깊은 물은, 가뭄에 아니 그칠세, 내가 이루어져 바다에 가느니.)[23]
발행 예상 디자인 (합성)
  • 발행이 잠정 취소된 ₩100,000 권종의 규격은 5만원권 발행 결정 당시 같이 정해졌다. 162×68mm 크기의 회색이며, 앞면 도안으로 김구상해임시정부 요원 단체사진 및 무궁화가 들어가고, 뒷면에는 대동여지도 전도와 함께 울산광역시 울주군에 있는 반구대암각화가 들어갈 예정이었다. 그러나 그 뒷면에 들어갈 대동여지도(목판본)는 실측지도의 특성상 무인도인 독도를 그려넣을 이유가 없다보니 자연스레 빠져있었는데, 그 탓에 독도 영유권 문제에 긁어 부스럼을 만들 여지가 있다면서 큰 논란이 일었었고, 앞면의 김구 또한 과거 만원권의 석굴암 종교 논란과 유사하게 정치적 논란이 거세었는데다, 한국은행 마저 5만원권의 부작용도 불확실한 상황에 10만원권 발행에는 더더욱 조심스러워지면서 무기한 연기 = 실질적 발행 취소로 발표해버리고 만다.

2.3 한국 발행 구권 (1962 ~ 2007)

한국조폐공사(KOMSCO)에서 본격적으로 지폐를 찍어내기 시작한 뒤의 구권으로, 1983년 신권 발행(4차) 이전까지는 원화 시스템의 과도기라고도 볼 수 있다. 2차는 대략 선행판 정도고, 3차부터가 1970년대를 주름잡았던 통화라 보면 된다. 구권인 1차 권종도 회수하지 않고 계속적으로 시중에 유통시켰는데, 1966년부터 동전 3종(1원, 5원, 10원)을 찍어내며 당시 저액권 지폐들을 빠르게 대체하였다. 덕택에 10원권 지폐는 지금도 잔존수량이 많은 편.

이후 50원 주화(1972년 12월 1일), 100원 주화(1970년 11월 30일)가 연달아 발행되면서 저액 지폐를 차츰 밀어내어 현행의 '천원/오천원/만원' 체계를 완성시켰다. 천원짜리 동전도 슬슬 나올때가 된 것 같은데...

일단은 전량 국내생산이 맞기는 한데, 가 5천원권은 영국 데라루의 원판을 가져와다가, 가 1만원권은 일본 조폐국의 원판을 가져와다가 찍어냈었다. 그나마 같은 동양계라 그런가 가 1만원권의 세종대왕은 은근히 작화보정(...)을 받았지만, 영국에서 조각한 율곡 이이는... 그 당시에도 한소리 나왔을 정도로 OME한 모습이었다. 훗날 KBS 예능프로 「스펀지」에서 이 때의 율곡 이이 초상화를 소재로 다룬 적이 있다.

2.3.1 1983년 개정 은행권 (4차)

South Korean Won 4th Series
1,000원 (나) 5,000원 (다/라) 10,000원 (다/라/마)
KRW401.jpg
투호 & 사슴 / 퇴계 이황
도산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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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루 & / 율곡 이이
오죽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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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시계 & / 세종대왕
경회루 (경복궁)
1983년 6월 11일 발행 (나) / 151×76mm 1983년 6월 11일 발행 (다)[24]
2002년 6월 12일 발행 (라)[25] / 156×76mm
1983년 10월 8일 발행 (다)
1994년 1월 20일 발행 (라)[26]
2000년 6월 19일 발행 (마)[27] / 161×76mm
  • 초창기 발행된 1천원권[28]에서 인쇄과정 중 표면처리에 멜라민을 대신하여 사용한 아교가 뭔가 잘못되어서 미묘한 똥냄새 비슷한 냄새를 풍겼었는데, 이를 "똥돈"이라고도 부른다. 우연이겠지만 하필이면 뒷면의 무늬 일부가 노란색인 것이 특징이기도 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지금은 세월이 오래 지난지라 굳이 코를 대고 맡아봐도 냄새가 나지 않는다.
  • 초창기 발행된 5천원권의 경우엔 이후에 발행된 것에 비해 가운데 학 다리 아래로 뻗은 푸른 선의 숫자가 1개 더 많은 6줄로 찍힌 것이 있다. (통상판은 5줄이다.) 수집가들은 이를 가리켜 "청돈"이라고 구분하고 있다. 어디까지가 청돈인지는 명확하지 않으나, 대체로 바로 위 똥돈과 비슷한 시점인 기번호 「가차마」0번대 및 1번대 까지로 추정하고 있다.
  • 이 시기까지는 기번호의 판번호 중 문자 부분[29]을 한글로 표기하였다. 10개만 사용하므로 '가나다라마바사아자차'(※양성번호)까지 사용한 다음에 '거너더러머버서어저처'(※음성번호)로 넘어가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가가차 다음은 가나가, 가나나, 가나다..., 그리고 차차차 다음은 거거거, 거거너, 거거더...이다. 이걸 이용한 개드립이 조금 흥하기도 했었다. 예를 들면 '바나나' '아라라' '너어저' '머거저' 같은.
  • 이 시리즈는 김민지 괴담이 유행하던 시절의 통화이다. 참고링크

2.3.2 1962년 신 은행권 (2차 ~ 3차)

South Korean Won 2nd ~ 3rd Series
1,000원 (가, 3rd) 5,000원 (나, 3rd) 10,000원 (나, 3rd)
KRW311.jpg
퇴계 이황, 무궁화
도산서원
KRW313.jpg
율곡 이이
오죽헌
KRW315.jpg
물시계 & 용 / 세종대왕
경회루
1975년 8월 14일 발행 / 163×73mm 1977년 6월 1일 발행 / 167×77mm 1979년 6월 15일 발행 / 171×81mm
5,000원 (가) 10,000원 (가)
KRW209.jpg
율곡 이이, 봉화
한국은행 본관[30]
KRW211.jpg
세종대왕, 무궁화
근정전 (경복궁)
1972년 7월 1일 발행 / 167×77mm 1973년 6월 12일 발행 / 171×81mm
50원 (나) 100원 (다) 500원 (다)
KRW203.jpg
파고다공원팔각정[31]
봉화, 무궁화
KRW301.jpg
세종대왕
한국은행 본관
KRW303.jpg
이순신
거북선
1969년 3월 발행 / 149×64mm 1965년 8월 발행 / 156×66mm 1973년 8월 발행 / 159×69mm
10원 (나) 100원 (나) 500원 (나)
KRW201.jpg
첨성대
거북선

독립문
경회루

숭례문
거북선
1962년 9월 발행 / 140×63mm 1962년 11월 발행 / 156×66mm 1966년 8월 발행 / 165×73mm
  • 1962년 ~ 1978년 발행 (2차, 녹색칸), 1965년 ~ 1982년 발행 (3차, 갈색칸). 두 경계는 명확하게 구분 지어지지 않는다.
  • 천원/오천원/만원 세 권종은 이후 개정되어 30년 가까이 쓰인 4차 권종들과 동일 색상에 비슷한 디자인을 취하고 있어서, 그 변화를 알아채지 못한 사람들도 제법 많다. 3차 권종들을 직접 사용해본 경험이 있다면 늦어도 80년대 중반까지 10살 정도는 되었을, 2020년 기준으로 최소 40대(1970년대생)가 훌쩍 넘었어야 하지만, 4차 권종과의 외견상 유사성으로 인해 그 이하 연령대마저 "나도 써봤다"는 식의 증언을 하게 되는 것.

2.3.3 미발행권

통칭, '석굴암 1만원권'

본래 1만원권 발행계획 당시 디자인은 앞면에 석굴암의 본존불상, 뒷면에 불국사가 들어갈 예정이었다. 원판이 완성되고 시제품을 찍어내 당시 대통령인 박정희의 재가를 받고 친필서명까지 받아낸 다음 공표하였는데, 그걸 본 두 메이저 종교단체가 합심하여 반발을 나타냈다. 기독교계는 "왜 불교만 편애하냐!!"는 식으로, 불교계는 불상을 세속의 상징인 돈따위에 올릴 수 없다!!!는 식으로. 그러면 의견을 받아들여 명동교회에 성모상을 그려넣겠습니다.

결국엔 기존 계획을 폐기하고 처음부터 다시 만드느라 1년 늦게 발행되었다. 하지만 이미 주문한 용지까지 폐기할 자금의 여유따윈 없었기 때문에 그냥 인쇄했으므로, 가 만원권 왼쪽 은화에 석굴암 본존불상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이후 나 만원권이 발행될 때에서야 석굴암 불상이 완전히 사라졌다. 덧붙여, 석굴암 1만원권의 시쇄품 실물은 소공동 별관(서울 한국은행 화폐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2.4 영국 발행 구권 (1차 발행분, 1962 ~ 1969)

South Korean Won 1st Series
10전 1원 5원 10원 (가)
KRW111.jpg KRW113.jpg KRW115.jpg
50전 50원 (가) 총석정 100원 (가) 독립문 득립문 500원 (가) 숭례문
  • 크기 규격은 10전/50전권 90×50mm, 1원/5원권 94×50mm, 10원권 108×54mm, 50원/100원/500원권 156×66mm.

1962년 6월 10일 일요일,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발맞춰 "원"화의 복귀에 의의를 두어 제3차 긴급통화조치로 내놓은 권종이다. 1기의 "원"화와의 차이점은 한자를 전혀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 이 조치 이후로 기존의 환을 전면 사용하지 못하도록 했으나, 사용량이 폭주하는 것에 비해 소액권 보급에 차질이 생김에 따라(이 당시엔 원화 동전이 아직 나오지 않았다.) 예외적으로 50환과 10환 동전의 통용을 1975년 3월 21일까지 허용하였다.


기존에 쓰인 대한민국 환과의 교환비율은 10환 = 1원[32]이고, 교환기간을 10일 당일 단 하루[33], 그것도 최대 신권 500원(기존의 5,000환)으로 교환 한도를 두는 무리수를 두어서, 그렇찮아도 바뀐지 얼마 되지도 않은 시점에 기습 개혁을 일으킨다며 반발과 논란이 심했다. 이는 개혁의 목적 자체가 지하자금의 회수 및 통칭, '돈굴리기'로 늘어나는 재산을 강제로 회수하여 지속적인 통화가치하락을 막고, 회수한 자금을 국토개발자금으로 쓰겠다는 것이었다. 때문에 당연히(?) 은행에 묶여버린 '환'들은 꺼내 쓸 수가 없게 되어서 시장이 돌아가지 않는 사태[34]까지 벌어졌다. 최종목표 및 정도가 다르기는 하지만, 북한의 4차 화폐개혁때와 숨겨진 목적이 거의 일맥상통한다(...)

멀리 봤을 때 결과적으로는 좋게좋게 되었으나, 본래의 이루고자 했던 목적은 결국 실패한 것으로 간주하는데, 자금회수는 제법 되었어도[35] 인플레이션(물가) 쪽은 전혀 잡히려 하질 않았고, 그러면서도 큰 돈(한화 한정)을 쥐어봤자 좋을 게 없다는 인식이 확산되어 거꾸로 산업계가 위축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시장이 돌아가질 않으니 국민들의 불만이 커져갔고, 내정에 크게 관여하던 미국에게 통보하지 않고 일으킨 탓에 이를 빌미로 하는 관계 악화로 치닫자, 결국 GG치고 단위변경 이외 정책을 모두 포기하는 원상복귀를 공표하였기 때문이다.

비공식 별칭은 영제(英製) 시리즈. 전량을 영국의 데라루(De La Rue)사에서 인쇄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 그래서 한글폰트가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상당히 어색해 보이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디자인부터 인쇄까지 죄다 영국에서 했으니 (몰론 감수는 한국은행이 했다. 한게 이 꼴이다) 한글 문해가 어려워 100원권 도안 속 "독립문" 대신 "득립문"으로 오타를 내기도 했다.

종류는 1원부터 500원까지 6종이 발행되었는데, 1원 미만(옛 1환단위)의 소액을 처리하기 위해 10전과 50전짜리 지폐를 추가로 도입하여 모두 8종이 되었다. 하지만 전 단위 소액 지폐는 1년도 채 안 되어 사용처가 사라진 까닭에 사장되었다.[36] 때문에 옛날돈을 취급하는 회현지하상가에 가보면 이게 다발로 쌓여있다.

현재 통용되는 한국은행권 중에선 가장 비싼 값으로 수집가들에게 거래되는 시리즈이며, 그 중에서도 가장 귀하게 여겨지는 것은 총석정 50원화이다. 걸레짝도 수만원 가량은 쳐주니 집안을 샅샅이 뒤져보자

2.5 기념권

기념은행권(記念銀行券)이라고도 한다. 조폐소에서 통상적으로 쓰는 통용화폐가 아닌 것을 찍어내는 형태로는 기념메달, 기념주화, 기념지폐 등이 있는데, 그 중 '메달'과 '주화'의 차이는 액면의 표기 여부이다. 액면이 표기되어 있으면 법정통화로 사용이 가능하며, 이는 기념지폐에도 적용이 된다.

예를 들어 매년 발행하고 있는 한국은행 민트셋(mint set)은 8천원 가량에 판매되고 있지만, 그걸 사다가 뜯어내서 666원으로 사용하는 것도 가능은 하다. 최초로 발행되는 2천원권 지폐 또한 판매가(보급가)는 최저 7천원 꼴(24매 전지형)이나, 붙어있는 24장 짜리를 오려내 2천원으로 사용해도, 그냥 24장을 통째로 들고가 48,000원으로서 사용해도 법적으로는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 이는 기념주화와 지폐가 법적으로 강제유통력을 보호받는 법정통화이기 때문이다.

다만 소장하라고 만든 기념지폐가 마구잡이로 시중에 돌아다니면 그건 그것 나름대로 곤란하기 때문에, 액면보다 판매가를 더 높게 설정하여 강력한 디메리트를 줄 뿐이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 그 희소성으로 인해 가치가 역전되기도, 혹은 판매가 이하(최저 액면가)로 사장되기도 하므로, 기념권은 불환화폐와 정화의 경계에 있는 애매한 존재라고도 할 수 있다.

2.5.1 기념주화

※한국은행 발행 기념 주화 목록

한국은행 최초의 기념주화는 1970년 7월 15일에 발행된 '대한민국 반만년역사 기념주화' 6종(금화 2종, 은화 4종)이다. 이 시리즈는 가격도 가격이지만[37] 대외판매용으로 소량만 풀었기 때문에 현 시점에서도 구경하기 어렵기로 유명하다.

하지만 반대로, 5년 뒤(1975년 8월 14일) 등장한 광복 30주년 100원권 기념주화는 값싼 가격에 어마무시한 양이 풀린 관계로 지금조차 거저먹기 수준으로 구하는 것이 가능하다.

매년 신규 발행되는 주화를 포장한 유통주화세트(일명, 민트(Mint))는 원래 500원 주화가 처음 발행된 1982년[38]에 신 주화를 홍보하기 위한 증정용[39]으로 제작한 것을 시작으로, 1983년에 100원을 비롯한 모든 한국 주화가 현재 형태를 갖추면서 다시 홍보용을 제작하여 배포한 것이 시초였다. 다만 이때 당시에는 매년 발행할 것을 상정한 것이 아니어서 별도로 연도표기를 하지 않았고, 때문에 1982년 민트의 진위 여부 논란이 남아있다.

그러다 1987년에 처음으로 상업용 목적의 민트를 만들어 배포하였는데, 이때는 국내에서는 취급하지 않고 외국 한정으로만 판매되었다. 1992년부터는 1원 및 5원 주화의 유통이 사실상 중단되어서 생산하지 않게 된 까닭에, 민트에도 재고품(1991년 생산)을 넣게 됨에 따라, 일부 연도의 민트들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민트가 아니게 되었다.[40]

1994년에, 기존의 밋밋한 케이스 디자인을 숭례문이 그려진 모습으로 변경하였고, 1998년에 미색(米色)에서 남색(藍色)으로 변경, 2000년에는 한국은행 본관의 사진으로 교체하여 넣었다.[41]

2001년이 되어서야 내수용(내국인 판매용) 민트가 발매되었고, 따라서 발행량도 대폭 늘어났으며[42], 케이스 디자인도 쌍두루미로 변경되었다. 다만 내수용은 일반 미사용 주화를 넣은 것에 반해, 수출용은 세미프루프[43] 처리된 것을 넣는 등으로, 서로간의 차이가 다소 있어서 지금도 두 민트의 시세가 따로 논다(...) 그리고 2002 한일월드컵을 기념한 특별 민트가 2001년과 2002년 한정으로 일반 민트와 같이 발매되었다.[44]

2005년에 케이스 디자인이 리뉴얼되어서 이때부터는 매 해마다 디자인이 바뀌게 되었다.[45] 2015년에는 정방형 케이스에서 위로 길쭉한 직사각형 케이스로 바뀌고, 내부 또한 종이포장 방식에서 플라스틱 곽 포장 방식으로 변경되었는데, 문제는 외피에 쓰인 비닐 커버가 1mm의 틈도 주지 않고 꽉 끼게 만들어서, 빼는 것은 쉽지만 넣는게 만만찮게 힘들어져, 발행 당해 한정으로 욕을 크게 먹었다.

2018년부터는 기존에 연 1회 발행하던 것을 연 2회 발행으로 변경하여, 발행량(판매량) 자체가 배로 늘어났다. 이는 민트의 본래 취지(홍보 기념품)와는 달리 일종의 재산처럼 다루는 사람들이 생기면서, 판매 첫 날이 될 때마다 판매 사이트의 서버가 터지고, 한국은행 박물관[46] 앞으로 맛집 온 것 마냥 줄을 길게 서가며 문자 그대로 쓸어가는 바람에 빠르게 매진되는 상황에 대한 대처로 보인다. 하지만 그마저도 빠르게 매진되는 사태가 그냥 두 번 일어났을 뿐의 결과를 낳았다. 때문에 2019년에는 2018년 대비 40% 정도 생산량을 늘렸으나, 여전히 진정 효과는 보지 못했다.

2020년에는 일반 민트(장당 8천원) 말고도 한국은행 설립 7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 민트를 7만장 발행하는데, 여기에는 한국 주화 사상 처음으로 유통주화의 프루프(Proof)가 들어가며, 따라서 배포가격도 3만원으로 높게 잡혔다. 그럼에도 예약접수 첫 날 조폐공사 쇼핑몰의 서버가 연례행사처럼 터졌다(...)

2.5.2 기념지폐

KRW500.jpg

그동안 한국은행은 통화량이 쓸데없이 늘어날 것을 두려워하여 무조건 멜팅포인트보다 떨어지는 가치를 갖는 기념주화만 생산해왔지만,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의 홍보가 필요하다는 위원회의 의견을 받아들여 2017년 4분기에 처음으로 기념지폐를 발행한다고 2017년 2월 경에 발표하였다. 실물이 공개된 것은 동년도 9월 1일이다. 처음 이 사실을 알린 곳은 한국은행 공식 트위터인데, '한국 화폐의 품질적 우수성을 알릴 기회가 될 것이다'라고 밝힌 내용(※링크된 기사에서)에 대해 달린 리트윗의 반응이 썩 좋지가 않다. 특히 앞서 예시로 든 소치 동계올림픽을 기념한 러시아 루블 기념지폐의 디자인 퀄리티와 비교당하며 '너무 대충 만든 것 같다'며 대차게 까이고 있다.

배포방식은 일단 전량을 위원회에서 사들인 후 배포(판매)하는 형태인데, 2017년 9월 11일부터 29일까지 사전예약을 받았다. 판매담당은 화폐상의 풍산화동양행, 화동양행측의 대리 접수처로 전국의 시중 상업은행(11개사)이 참여하였다. 판매가는 낱장 기준으로 8,000원[47]으로 책정되었고, 동년도 12월 11일에 본격적으로 풀리기 시작했다. (단, 발행일은 11월 17일이 된다.) 덧붙여서 이 2천원권 지폐는 한국은행이 독단적으로 결정하고 발행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아무리 수요가 늘어나도 추가 발행을 할 수도, 하지도 않을 것이라 밝혔다. 이듬해인 2018년 2월 5일부터 3주간의 추가 접수를 받았는데, 이는 추가 발행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현장판매용으로 빼둔 것을 돌려가져와 예약을 받은 것이다. 다만, 예약 시작 후 온라인에선 고작 15분만에 매진, 영업이 종료된 4시 이전에 하나은행을 마지막으로 금융기관 예약분까지 모두 소진되어서 기간설정이 의미가 없게 되었다. 그리고 언제나 그러하였듯, 중고X라 혹은 수집카페 등에 웃돈 얹혀서 풀리겠지.

소치 올림픽 기념지폐 (2013)

중국과 러시아의 전례로 볼 때, 그리고 개최 시기(제23회, 2018년)를 따졌을 때 홍보에 중점을 둔 만큼 고가-소량발행(2만원권 23만 장 등) 형태로 나오진 않을 것으로 예상되었고, 실제로도 저액-대량발행(2천원권 230만 장[48][49])의 형태로 나오게 되었다. 한국은행은 이에 대해 "기념은행권이 주로 소장용 목적으로 발행되는 점을 고려하여 액면은 현용권 액면(1·5체계)과 구분되고 일반국민들이 쉽게 취득할 수 있도록 저액면(2,000원)으로 설정"이라고 설명하였다. 그러나 실제 판매가가 4배인 것은 비밀.

규격은 가로 140㎜×세로 75㎜으로 현재 쓰고있는 5천원권(142㎜*68㎜)에 비해 약간 짧고 두터운 모양새가 된다. 대략 4차 시리즈의 천원권(151×76㎜)의 감각과 비슷하다. 이것도 일부러 구분을 지어서 차별을 둔 것이라고 한다.

앞면에는 빙상연맹의 주종목인 스피드스케이팅을 주 소재로 하고 나머지 6개 연맹의 대표종목을 넣었다. 이것은 광복 이후 참가한 최초의 올림픽대회 종목[50]이라는 상징성을 고려한 것임과 동시에, 빙상종목이 금메달이 가장 많이 걸려있기 때문이라고 명확하게 밝혔다. 그러나 여기에 피겨스케이팅은 빠져있어 근래까지 화제가 되었던 김연아[51]를 일부러 보이콧하려는 목적이 있었던 것은 아니냐는 비판이 거세었었다. 한국은행은 그 대답으로 '6개 연맹 대표종목 중 피겨스케이팅이 없었다'고 답한 바가 있었고, 김연아와 관련해서도 디자이너가 직접 한은 및 조폐공사측이 설정한 '지폐 모델로는 생존 인물을 넣지 않는다'[52]의 규칙에 따른 것이라고 해명한 바가 있다.

비하인드가 어찌되었건 간에, 소장 목적으로 발행하는 만큼 디자인이 매우 중요한 요소임에도 불구하고, 일반인 사이에서 그 디자인으로 그다지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하고 있다. 실물이 나오고 난 뒤에도 그다지 호평 정도는 아닌 모양. 그저 최초라는 의미에서 말 그대로 기념삼아 실은, 재테크 삼아[53][54] 구매할 뿐이라는 것이 대다수이다.

뒷면은 김홍도의 '송하맹호도'에 나오는 호랑이와 소나무를 세로방향으로 집어넣었다. 이에 대해서도 "한국적인 요소를 넣겠다는 의지는 알겠다만, 정작 동계올림픽을 기념하는 돈인데 의미를 알 수 없는 뜬금없는 도안"이라는 의견이 있었다. 반면, 구미권 수집가의 반응 중에는 뭔가 동양적인 분위기가 있다며 나름대로의 호평을 하기도 했으며, 한국인 중에서도 앞면에 비해 뒷면이 괜찮다는 의견도 있었다. 명색이 '올림픽' 기념권인데...

실물이 배포된 이후로는 지폐 자체는 그렇다 치더라도, 그걸 보관하기 위해 제작된 첩과 보관통(24매 전지용)이, 액면가에서 더 얹어낸 값이 허무할 정도로 매우 허술하게 만들어져서 뭇매를 맞고있다.[55] 제대로 고정시키기 못해 자연구김이 발생하거나, 전지가 전용통에 들어가지를 않아 뚜껑을 꼭 닫으면 지폐 위쪽이 짓눌려버리는 사태가 발생하거나. 또한 주관 배급사인 풍산화동양행이 하청에 해당하는 시중은행보다도 배포하는데 1주일 이상을 지연시키고 있는데, 그게 선호도가 높은 일렬번호를 일일히 걸러내느라 늑장부리는 것 아니냐는 의심까지도 받고있을 정도이다. 그러나 주관사인 풍산화동양행 측은 그런 의심을 받는게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존재의의상 시중으로는 거의 유통되지 않는 까닭에, 올림픽이 끝나고 년 단위가 지나간 시점에서조차 2천원권의 존재 자체를 모르거나, 소문은 들었지만 실물을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는 사람도 많다.

2.6 트리비아

  • 5차 발행분의 경우, AA-A시리즈의 1번부터 100번까지는 한국은행 본관(서울 소공동) 화폐박물관에 다발째로 보관되어있고, 101번부터 110번까지는 1장 단위, 그리고 10000번까지는 10장 단위로 경매를 통해서 전용첩에 담아다 배포, 30000번까지는 한국은행 서울 본점에서 최대 90장 단위[56]로 배포하였다. 이후 나머지 물량은 배급을 요청한 시중은행에 랜덤으로 라 쓰고 친밀도 높은 순으로라 읽는다 풀렸다.
    • 참고로 4차 발행분까지의 일명 '빠른번호'[57] 지폐들은 당시 한국은행 및 공직 관계 고위직에 있었던 사람들에게 기념 및 선물용(...)으로 뿌렸었다. 구김이나 접힘이 전혀 없다는 전제하에 이것들은 현재 거의 수백만원대에 거래되고 있다(...) 뭔가 대단히 불합리하다고 생각된다면 아직 헬조선에 적응하지 못한거다(?)
  • 본래 한국은행 CI는 창립 이후로 무궁화[58]를 썼으나, 2010년 창립 60주년 기념으로 태극문양으로 교체하였다. 그러나 신권(5차)의 판본은 그 이전에 만든 것이기 때문에 현 시점에서도 계속 구 CI인 무궁화를 그냥 찍고 있다. (교체 직전에 등장한 5만원권에 한해서는 아예 CI를 찍지 않고 있다.) 새로운 태극문양 CI는 2017년에 발행된 평창 동계올림픽 기념지폐(2천원권)에서 처음으로 도입되었다.

2.6.1 신 고액권? or 화폐개혁?

2009년 5만원권 신권이 나올 적에 김구&대동여지도 도안이 그려진 10만원권도 같이 나오려 했으나, 모종의 이유로[59] 발행이 좌절되었다. 한국 원화의 사정상 유통량의 규모는 좋은 이유이든 나쁜 이유이든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전망이므로 언젠가는 10만원권이 나올 것임을 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 '0'을 5개나 넣은 10만원권은 아무래도 단위가 늘어난 까닭에 눈으로 단번에 읽기가 쉽지 않고, 고액 거래에서 그 불편함이 바로 드러나기 때문에, 한국은행 측은 "언젠가는 화폐개혁이 필요하다"라는 입장을 염두하고 있다.

그러나 인플레이션이 과거에 비해 그리 높게 나타나지도 않고, 경제력 자체도 성장이나 침체가 눈에 띄지 않도록 묘하게 고요한 상태라서, 괜히 찔러봤다가 사회비용 낭비로만 끝나버릴 가능성이 큰 화폐개혁을 시행할 오늘만 사는 분위기가 나오고 있지 않다. 더군다나 괜히 대책없는 화폐개혁으로 무마하려다 실패한 짐바브웨베네수엘라의 사례가 대중매체를 통해 크게 보도되면서 시민들에게 화폐개혁에 대한 부정적인 인상이 크게 박혀버렸기에, 더더욱 근시일에 화폐개혁이 진행될 가능성은 0을 향해 수렴하고 있다. 그런 상황인지라 간혹가다 화폐개혁을 논의한다는 소식이 간간히 나오기도 하는데, 일각에서는 이를 특정 정치 이슈에서 관심 돌리기 전법 수준으로 취급할 지경.

더불어 2010년대 중반부터 현금 없는 사회(캐시리스)라는 새로운 실험이 진행되고 있어, 신 고액권의 등장도 요원하다. 천원권 동전 또한 그렇찮아도 무관심에 가까웠는데, 캐시리스 실험과 비슷하면서 한국은행에서 적극 추진하려는 '동전 없는 사회(코인리스)' 실험의 등장으로 인해 아예 언급조차 되지 않고 있다.

2.6.2 조선의 이씨(李氏) 천하

어디까지나 우연의 일치에 불과하지만, 한국은행권 및 한국 원화 동전에 등장한 실존인물은 모두 이씨이거나 이씨 가문과 엮여있으며, 모두 조선 왕조 시절 출신이다. 등장 순서로 나열하면 아래와 같다.

  • 승만 : 1875년(고종[60] 12년) 출생
  • 세종대왕 (본명, 도)
  • 율곡
  • 퇴계
  • 덕곡[61] 순신 (본명, 이용구)
  • 신사임당 : 원수(李元秀)의 아내이자 율곡 이이의 어머니.
  • 이천원권 : 천원

이 기준에서 벗어난 인물도안이 '대한민국 원' 내에서는 존재하지 않고, 환권에서 소위 '모자상'이라 불리는 개갑 100환의 모자(母子)만 해당된다.

3 현찰 시리즈 / 1기 원화

시기상 1950년 8월 28일부터 1953년 3월 17일까지 사용된 것을 지칭한다. 기간을 보면 알겠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전쟁 중인 시기이다. 북한측에서 남한 경제를 교란시키기 위해 1949년 말~1950년 초에 대량으로 살포한 가짜 조선은행 100원권이 문제가 되어서 당시 대통령인 이승만이 조선 원화의 통용을 중단시키는 제1차 긴급통화조치를 내려 화폐개혁이 일어났다.

막 독립한 국가에 전쟁이 터진 통에 한가하게(?) 돈을 찍고 있었을리는 없고, 전량 미국에서 찍어낸 것을 수입하여 썼다.

4 현찰 시리즈 / 한국은행 설립 이전

시기상 1945년 8월 15일부터 1949년 혹은 1950년 8월 27일까지[62] 해당되며, 당시 은행의 명칭은 조선은행이었기 때문에 흔히 '조선은행권 원화'라고 불린다.

5 각주

  1. 회화에선 그냥 '코리안 원'이라 하지만 문서 등에선 South를 안 붙이면 북한 원과 혼동할 수 있으며, 이런 혼동을 피하고자 사전이나 카탈로그 등에서는 분단 이전의 원화(1945~1948. 1948년에 남한 정부가 수립되었기 때문.)만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하고 있다.
  2. 사족으로, E-스포츠계에선 이걸 아재개그 농담소재로 쓰기도 한다. Won이 Win의 과거형이므로...
  3. 북한 원(KP₩)과의 구분을 위한 기호이다. 하지만 국제적으로 북한 원은 티끌 수준도 통용되질 않아서 쓸 일이 사실상 없는 수준.
  4. 설정은 되어있지만 시중에서 통용이 불가하며, 전산상에서의 최종거래시 전 단위의 값을 요구하는 것도 불가하다. 거래 최소단위는 방식을 구분하지 않고 1원 단위이다.
  5. 흔히 정부기관으로 오해하지만 엄연히 한국은행 또한 공기업으로서 운영되는 은행이다. 다만, 일반 업무를 하지 않는 중앙은행의 역할을 맡을 뿐이다. 때문에 법적으로 대통령 산하 정부기관인 기획재정부(재무부)가 간섭하지 못하는데, 이는 통화운영의 공정성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다만 현재 한국은행의 총재는 대통령이 임명하고 있다. (응?)
  6. 이것 또한 오해하기 쉬운데, 한국조폐공사와 한국은행은 서로 연관이 없는 기업이다. 말하자면 인쇄소와 출판사의 차이보다도 관련이 없다. 조폐공사는 기획재정부 산하라서 정부 소속인 동시에 공기업의 형태를 띠는 특수한 기관이다.
  7. 그것도 비한국인이 운영한다면 마찬가지로 듣보잡 취급.
  8. 환전을 해주기는 한다. 그러나 대개 수수료가 어이가 나가 기가 찰 수준으로 높은 편이다. 취급 비용을 감안한다면 어쩔 수 없긴 하지만...
  9. 1990년대 중반 경에 카드사 실적을 위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신용카드를 발행해준 전적이 있고, 가맹점 한정으로 카드결제 거절 불가 법안을 도입한 것도 작용한다.
  10. 저액권과 고액권은 똑같이 1장씩을 찍어내도 수십배부터 수백배까지도 차이나기 때문에, 거의 대부분의 나라에서 발생하는 현상이긴 하다. 고액권 발행에 더욱 신중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11. 이때는 대량일 경우 한정.
  12. 2010년대 전반에는 원화 강세가 나타나려 하면 억지로라도 열심히 방어하기 바빴고, 그 표면적인 이유는 대체적으로 수출에 악영향이 갈 우려를 들었다. 때문에 미국에서 환율조작국으로 찍힐 뻔하기도 했다.
  13. 10전권과 50전권을 혼합해서 최소 10원단위가 되어야 한다. 1원 및 5원 주화로는 교환해주지 않는다.
  14. 심지어 한국은행 홈페이지에서도 '시중의 화폐상에 문의해보라'라고 직접 권유할 정도.
  15. 다른 권종들과는 달리, 순 알루미늄 동전에 구리를 도금한 형태이다.
  16. 2000년까지는 증정용 등의 목적을 둔 형식적 발행에 그쳤고, 자체 판매 목적으로서 내놓은 것은 2001년부터이다. 특히 1998년에는 외환위기로 인해 절제를 위해 그 해에 한하여 500원화 동전을 생산하지 않았는데, 그래도 수출용 민트에는 넣어야 하므로 딱 8,000개만 만들어낸 적이 있었다.
  17. 단, 500원 동전은 처음부터 이 개혁을 염두하고 제작한 것이라 바뀌지 않았다.
  18. 오천원권과 만원권의 개정판(다 오천원/다 만원/라 만원)은 이걸 방지하기 위해서 개정한 것이었는데, 기존 구권이 계속 통용 가능하기도 했고, 개정판이라봤자 얼핏 보는 것 만으론 구별하기 쉽지 않았던 까닭에 그냥 대놓고 복제해도 통했던 것이다. 이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치기 위해서라도 신권은 그 모습 자체를 완전히 바꿀 필요가 있었다.
  19. 종합하면 "돈으로서의 위엄도"가 크게 낮아졌다는 평가이며, 부루마불(=장난감 돈)에 많이 대입하였다.
  20. 명제의 사실여부만 가린다면 일단 사실이기는 하지만, 그게 일반적인 거래처럼 물건 자체에 절대적인 고부가가치를 지닌 것은 아니다. 쉽게 말해서 구매하는 사람에 따라서는 단 한 푼도 더 올려쳐주지 않을 경우도 있다는 것.
  21. 사족으로 과거의 코믹마켓에서 유명했던 방식으로, 현 시점의 코믹마켓의 규칙에서는 절대 금지하고 있고, 철저히 단속도 한다.
  22. http://kin.naver.com/qna/detail.nhn?d1id=11&dirId=110801&docId=56999632
  23. 볼드 표시되지 않은 부분이 빠진 문구.
  24. 기번호 : 가가 0000000 가
  25. 기번호 : 가가가 0000000
  26. 정면 좌측의 은화창을 미세선 패턴으로 채워넣음
  27. 좌하단 금색 돌출인쇄 적용, 부분 노출 은선(隱線) 삽입
  28. 기번호 (가가가) ~ (가차마)의 첫번째 숫자가 0번(옥천 조폐창 발행) 및 1번(경산 조폐창 발행)인 것으로 한정한다.
  29. 판번호는 문자와 함께 기번호 숫자 부분의 첫번째까지를 가리키는데, 표기할 수 있는 숫자들을 모두 다 사용하고 나면 문자를 한 자리씩 넘긴다. 첫번째 숫자는 인쇄소 번호로, 0번은 옥천, 1번은 경산 조폐창을 가리켰다. 9번은 보충권(주로 90~) 및 연결권(주로 91, 92~) 등의 기념은행권에 부여하였다.
  30. 현재는 바로 뒤쪽의 소공동 서울지사(본관)으로 이전하고 해당 건물은 별관으로 지정하여 화폐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31. 한국은행은 '파고다공원'을 도안한 것이라 소개하고 있으나, 일반적으로는 '팔각정 (팔각정 오십원)'이라 불린다.
  32. 따라서 1기 원화와의 비는 1000:1이 된다.
  33. 그것도 일요일이었기 때문에 시중은행은 신권교환 외 통상업무를 하지 않았다.
  34. 이 문제 때문에 1달이 채 되지 않아 예긍액의 8할을 봉쇄해금했다.
  35. 기대금의 5~6%를 회수했다고 한다. 국고자금원 확보 및 검은돈 회수의 대상이 되는 예금가입자 중 반 넘게가 아예 이용대상에 포함시키기 어려울 정도로 가난한 서민들이었기 때문.
  36. 단위 변화로 인한 인플레이션 부작용 때문에 1원 단위로만 거래되었다. 그 예로, 도입 바로 이듬해인 1964년의 서울 전차비가 1원 50전이었으나, 50전을 안 받으려고 일부러라도 2장씩만 팔았다는 경험담이 있다.
  37. 최고 25,000원부터 최저 1,000원권까지 총 액면가만 63,500원인데, 당시 물가로 치면 라면 약 3,200봉지 혹은 소고기 약 100kg에 해당했다. 현재 가격으로 환산하면 약 250~300만원 수준이다.
  38. 그 이전에 만든 것은 모두 비공식 민트이다.
  39. 대외 홍보 목적으로서 만든 것을 의미하며, 주로 국내외의 금융기관으로 배포됨.
  40. 1992, 1993, 1994, 1998, 1999년이 해당된다. 이후 2000년 부터는 매 해마다 10만장 가량씩 생산하게 되었다.
  41. 2000년판은 일반 발행 민트 중에선 유일하게, 새천년 기념 메달이 덤으로 들어가 있다.
  42. 대외용은 대체로 3천장 정도지만, 내수용은 몇만장 단위로 찍는다.
  43. 표면 연마 작업을 세심하게 넣어서 마치 거울처럼 가공한 것을 '프루프(Proof coinage)'라고 한다. 세미프루프는 그걸 그렇게까지 정교하지는 않게, 대충 깨끗하게 광만 낸 정도라 보면 된다.
  44. 특별 민트에는 1천원권 기념주화가 같이 들어가 있다.
  45. 단, 2015 ~ 2017년은 똑같은 무궁화 그림에 색깔만 바뀐 정도였다.
  46. 유일한 오프라인 공식 판매처이다.
  47. 다만 24매 전지를 기준으로 단가는 7,000원이 된다. 몰론 정말로 잘라버리면 액면가치는 2천원이다.
  48. 낱장 92만첩(각 8,000원), 2매 연결권 21만첩(각 15,000원), 24장 전지형 4만첩 (각 168,000원)으로 나누어졌고, 일부 선호도가 높은 일렬번호가 들어간 것은 일반 판매가 아닌 경매로 치뤄진다. 경매 결과는 0001001 이상은 평균 5만 원대에 낙찰되었고, 특히 8과 9가 들어간 번호는 중국인 참가자가 업어가느라 가격대가 높았으며, 대망의 101번은 무려 2100만원에 낙찰되었다. #외화벌이 #성공적
  49. 발행량은 46억 원으로 판매수익 예상가 172억 3천만 원(차액 126억 3천만 원)을 회수하는 형태가 되며, 그 수익은 한국조폐공사측의 제조의뢰비와 기타 유통비를 제하고 동계올림픽조직위원회가 가져가 올림픽 개최비용 충당용으로 쓴다.
  50. 1948년 제 5회 스위스 생모리츠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3명 출전
  51. 실제로 김연아는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52. 기념동전에는 이미 생존인물의 도안을 넣었기 때문.
  53. 출시 전부터 희소성이나 상품성 등을 거론하는 사람들도 있었으며, 실제로 실수령 1주차인 12월 중순부터 2배 이상으로 뛴 가격에 화폐상 및 중고나라, 수집동호회카페, 옥션/이베이 등지에 올라오기 시작했다.
  54. 또한, 실제로 신청수량제한이 없던 첫 예약때는 수천만원 어치 쓸어온 것을 자랑하듯 증명한 사람이, 보급에 중점을 둔 추가 접수 당시에는 1회 20매 제약이 걸리자 어떻게든 꼼수를 써가며 정당한 방법인 마냥 200장을 예약한 사람이 나타났을 정도이다.
  55. 여담이지만, 오탈자까지 나왔다. 첩 안쪽 하단 설명 중 "명세 (Specitictions)"의 영어 철자는 Specitication이 되어야 한다.
  56. 원래 100장 단위로 배포할 예정이었으나 이때 한은 앞에 몰려온 사람들이 워낙 많았던 탓에 (흡사, 코믹마켓 전날밤을 방불케 했었다.) 항의가 빗발치자 한도를 낮췄다.
  57. 대략 가가가 2번 ~ 100번. 1번은 박물관 소장. 1천번까지라던가 1만번까지라는 이야기도 있는데, 이게 사람마다 생각하는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정확하게 정의하기가 어렵다. 그렇지만 100번까지, 10000번까지, 그리고 그 이상 번호들의 대우는 제법 다르다.
  58. Bank of Korea (1).jpg
  59. '무기한 연기'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발행 취소나 다름없는데, 공식적으로는 끝내 아무런 이유도 밝히지 않았다.
  60. 대한제국으로 바뀌기 이전의 고종이다.
  61. 德谷. '충무공(忠武功)'은 호가 아니라 "이순신"이라는 이름을 대신해서 부르는 별칭이다.
  62. 1949년에 실질적으로 북한 원이 분리되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