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실링

오스트리아 실링
Österreichischer Schilling 외스터라이히셔 실링de
OesterreichischeNationalbank.png
(유로화 전환 이후의 로고. 첫글자 Ö(=oe)를 €처럼 표현하였다.)
화폐 정보
사용국 오스트리아
ISO ATS
기호 S (Ös)
보조단위
1/100 그로셴(Groschen)
지폐 S 20, S 50, S 100, S 500, S 1000, S 5000
동전 1gr, 2gr, 5gr, 10gr, 50gr, S 1, S 5, S 10, S 20, S 50
중앙은행 오스트리아 국립은행 (Oesterreichische Nationalbank)
인쇄처 OEBSlogo.png 오스트리아 조폐공사 (OeBS)[1]
조폐국 오스트리아 조폐국 (Münze Österreich)
환율 (2019.. 기준)
고정환율 Ös 13.7603/€ (1999~)
이전 화폐
이후 화폐
제국마르크 [1 : 1] (1인당 150실링까지)[2]

영어 : Austrian Shilling 오스트리언 실링

개요[편집 | 원본 편집]

오스트리아의 파운드(실링) 계통 통화이다. 본 문서는 1945년 독일제국 패망 이후부터 유로화 전환 직전인 2001년까지 유통된 2기 실링화에 대해서 다룬다.

환전 및 사용[편집 | 원본 편집]

오스트리아 실링은 유로 전환 이후에도 중앙은행을 통해 별도의 기한 및 제한 없는 유로화 교환을 받아주고 있다. 단, 가장 마지막으로 발행한 종류로 한정하고 있어, 한 단계 이상의 구권은 전량 교환이 불가하다.

과거에는 외환은행에서 취급하는 통화였지만 주요 수준까지는 아니어서, 독일이나 프랑스에 비해 상대적으로 수수료가 높았다. 오스트리아로 가는 직항편이 사실상 없어서, 경유지에 따라 독일 마르크, 영국 파운드, 미국 달러를 통한 이중 환전을 하기도 하였다. 특히 오스트리아와 독일은 경제적으로 매우 밀접한 관계여서 수요가 많았다고 하며, 평균 환율은 대략 7실링/도이치마르크 정도라 전해진다.

실링화가 유통되던 시기의 오스트리아 물가는 체감상 독일보다는 저렴했다. 그런 가운데 1988년에 발행된 신 최고액권 5,000실링화(약 700마르크)는 시중에서 쓰일 일이 없었고, 실질적 최고액권이던 1,000실링화(약 140마르크)도 일단은 꽤 큰 돈 취급을 하였다. 일상에서는 저액권 3종(20, 50, 100실링화) 위주로 통용되었고, 동전은 대개 10그로셴 단위로 유통되었다. (특히 1그로셴은 매우 희귀하였다.)

환율 추이[편집 | 원본 편집]

1945년 첫 발행 당시, 기존의 통화(독일제국 마르크)는 사실상 모두 무효로 만든 뒤 모든 국민에게 1인당 150실링씩 일괄적으로 배부했고, 1947년 11월에 다시 한 번 신 실링화 법안을 공표하여 그동안 뿌려준 150실링 가지고 얼마나 열심히 벌었나를 테스트하듯 150실링까지는 1/1로, 그 초과값은 1/3비율로 다시 신권으로 강탈교환하여 통화를 재정비하였다. 그렇게 1950년에 26실링/USD로 환율이 정립되었다.

하지만 1976년 7월, 미국이 브레튼 우즈 체제을 포기하면서 오스트리아 실링도 직격탄을 맞아 기둥째 흔들릴 위험에 처했고, 도로 독일 마르크에 의지하게 되었다.

현찰 시리즈 (2기)[편집 | 원본 편집]

최종판 (가제)[편집 | 원본 편집]

1997년부터 유통을 시작한 시리즈이다. 그런데 1998년 곧장 유로화 전환 결정으로 인해 계획이 크게 틀어져, 처음 선보인 두 권종(S500, S1000)을 제외하고는 모두 미발행으로 종결되었다. 중앙은행은 미발행 권종에 대해 거의 언급하고 있지 않으나, 간혹가다 화폐박람회 등을 통하여 예정하고 있었던 시제품을 공개하고 있어, 그 존재 자체를 지우지는 않았다.

오스트리아 실링 시리즈 - 최종판
S. 20 (미발행) 구스타프 클림트 S. 50 (미발행) 아이다 파이퍼[3] S. 100 (미발행) 프란츠 슈베르트
베토벤 프리즈 (Beethoven Frieze)
S. 500 로자 마이레더 S. 1,000 칼 란트슈타이너 S. 5,000 (미발행) 마리 폰 에브너 에셴바흐
ATS209.jpg

유통판 (가제)[편집 | 원본 편집]

오스트리아 실링 시리즈
S. 20 모리츠 미카엘 다핑거 S. 50 지그문트 프로이트 S. 100 오이겐 폰 바베르크
ATS103.jpg ATS105.jpg
알베르티나 조세피넘 (의학교) 국립과학대 아카데미
S. 500 오토 바그너 S. 1,000 에르빈 슈뢰딩거 S. 5,000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4]
ATS107.jpg ATS109.jpg ATS111.jpg
우체국 저축은행 대학교 국립음악극장
  • 위 권종 중 500실링1,000실링 두 권종은 유로화 교환이 불가능하다.

구판 (가제)[편집 | 원본 편집]

오스트리아 실링 시리즈 - 70년대 구권
S. 20 칼 리터 폰 게가[5] S. 50 페르디난트 라이문트 S. 100 앙겔리카 카우프만 S. 1,000 베르타 폰 주트너
젬머링 철도[6] - 칼테 린네 고가교 부르크극장 (빈) 브레겐처발트 하우스[7] 레오폴츠크론 성 & 호엔잘츠부르크 성[8]
오스트리아 실링 시리즈 - 60년대 구권
S. 20 카를 아우어 폰 벨스바흐 S. 50 리하르트 베트슈타인 S. 100 요한 스트라우스
마리아 레인 (지폴례) 순례자성당 마우테른도르프 성 (잘츠부르크) 쇤부른 궁전
S. 500 조세프 레셀 S. 1,000 빅토르 카플란
최초의 프로펠러선 "시베타" 입스-페르센베우그 수력발전소[9]
  • 당시 1,000실링 권종은 얇은 테두리를 유지하여 150 * 75mm 크기로 발행되었으나, 통화가치[10]에 비해 크기가 너무 작다는 불만이 많아 11주(약 4개월)만에 여백을 키워서 큰 사이즈(160 * 84mm)로 재발행하게 되었다.

1기 실링[편집 | 원본 편집]

위 2기 실링과는 별개의 통화로, 1918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깨지고 난 후인 1924년 12월 20일 제정된 실링통화법안(Schillingrechnungsgesetz)에 의해 기존 오스트리아 헝가리 크로네를 대체하는 통화로서 등장했다. 교환비는 10,000크로네 = 1실링. 하지만 1938년 독일제국의 강제병합으로 인해 2제국마르크 = 3실링의 비율로 강제전환당하며 막을 내렸다.

각주

  1. Oesterreichische Banknoten- und Sicherheitsdruck GmbH, 오스트리아 국립은행 산하의 기관.
  2. 제국마르크의 괴멸적인 폭락으로 인해 통화 자체가 바닷물처럼 넘쳐나다보니 정부측에서 아예 계산을 포기하고 한 사람당 150실링씩 뿌렸다고 표현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3. 오스트리아의 여행작가. '80일간의 세계일주 (쥘 베른 작)'의 모티프를 제공한 것으로 유명하다.
  4. 배경은 호엔잘츠부르크 성을 상징으로 하는 잘츠부르크 시내의 모식도이며, 그 잘츠부르크는 모차르트의 고향이기도 하다. 현대의 잘츠부르크가 모차르트 하나 만으로 상당한 관광수익을 올리고 있지만, 정작 모차르트는 잘츠부르크를 노잼 도시 취급하며 극혐하였고, 언제든지 기회만 되면 빈이나 파리로 떠나고 싶어했다는 야사가 있다.
  5. 이탈리아 출신으로, 후술할 젬머링 철도를 설계한 공적을 갖고 있다. 앞면 옆쪽에 그려진 교각은 크라우젤 클라우스 고가교.
  6. Semmeringbahn, 제머링 철도라고도 한다. 1848년 착공, 1854년 개통. 이탈리아 트리에스테에서 오스트리아 그라츠~빈 방면으로 향하는 철도 중에서, 그라츠 이후 뮈르추쉴라크부터 젬머링 및 젬머링 고개를 넘어, 브라이텐슈타인, 레이어바흐, 글로그니츠 구간을 이어주는 구간을 가리킨다. 칼 게가가 설계한 유럽 최초의 산악철도이다.
  7. Bregenzerwälderhaus, 브레겐츠 지방 전통 양식의 목제주택. 흔히 알프스 산장(山莊) 하면 떠올리는 그 양식.
  8. 실제로 호수 밖에서 레오폴츠크론 건물 쪽을 바라보면 뒤쪽에 호엔잘츠부르크가 병풍으로 깔아주게 된다.
  9. 카플란 터빈이 장착된 최초의 수력발전소. 니더외스터라이히 주의 입스와 페르센베우그 사이를 흐르는 강 위에 건축.
  10. 환율값으로 약 38.5달러(USD) 상당으로, 맥도날드 치즈버거를 약 200개 가까이 사먹을 수 있는 큰 돈이었다.
  1. 여기에 해당하는 이전 화폐는 동전도 교환대상에 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