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히텐슈타인 헬레르

리히텐슈타인 헬레르/크로네
Liechtenstein Heller/Krone
AHK 20 Kronen 1898 reverse.jpg Notgeld Liechtenstein.jpg
1898년 20크로네 금화 1919년 긴급발행 지폐
화폐 정보
사용국 리히텐슈타인 (폐지)
보조단위
100/1 크로네
지폐 10h, 20h, 50h
동전 1kr, 2kr, 5kr, 10kr, 20kr
중앙은행 불명
고정환율 오스트리아-헝가리 크로네 [1:1]
오스트리아 크로네 [1:1]

개요[편집 | 원본 편집]

리히텐슈타인 크로네/헬레르는 넓게는 1898년부터 1921년까지, 좁게는 1919년부터 1921년까지 리히텐슈타인에서 사용하던 크라운(크로네) 계열의 화폐이다. 리히텐슈타인이라는 국명을 붙여 독립적으로 발행된 유일한 자국통화이며, 아마도 요태까지 그려왔고, 아페로도 계속 해당 타이틀이 유지될 예정이다.

크로네 단위는 동전(주로 은화)에만, 헬레르 단위는 세계 1차대전 시기의 긴급발행권으로 발행한 지폐에만 사용되었다. 따라서 이 통화의 명칭은 리히텐슈타인 크로네가 되어아 하나, 크로네화로 발행된 전 종류가 금화/은화인지라 유통량이 절망적으로 적었으면서, 후술할 내용을 이유로 시대상 유의미하게 연결되는 화폐는 비상화폐(놋겔드) 형태의 헬레르 단위뿐이어서 항목명을 헬레르로 하였다.

상세[편집 | 원본 편집]

리히텐슈타인(노란 선 안쪽) 위성사진. 북쪽으로 오스트리아, 남쪽으로 스위스와 접한다.

1850년대 당시 독일 연방 소속이던 리히텐슈타인은 오스트리아 제국과의 무역 관련 조약을 개별적으로 맺어 오스트리아 크로네을 도입하였다.

1866년 오스트리아는 헝가리와의 조약으로 오헝제국이라는 이중제국이 되고, 동시기 독일 연방은 해체되어 리히텐슈타인은 주권을 얻었지만, 애초에 개별 조약을 맺고 있었기 때문에 오스트리아-헝가리 크로네화를 그대로 사용하였다.

다만 리히텐슈타인을 주체로 하는 통화 단위도 필요했기에, '크로네'라는 단위를 설정하여 오헝제국 크로네과 1:1 고정환으로 적용하였다.

동전 발행[편집 | 원본 편집]

크로네 단위를 갖는 동전들은 1898년 8월 26일 화폐개혁을 통해 5개 액면으로 처음 발행되었다. 비록 시장 유동성의 면에선 오스트리아에서 유입되는 물량만으로도 충분했으나, 그렇다고 리히텐슈타인에서 발생하는 자산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었고, 또한 1890년대 중후반 무렵으로 독일계에서 민족주의가 발현하려던 시대상 때문에 리히텐슈타인도 그 영향을 받아 적게나마 일정량을 찍어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1914년 7월 28일에 시작된 세계 1차 대전으로 오헝제국의 경제력이 빠르게 소모되었고, 오헝제국 크로네과 연동된 리히텐슈타인 크로네의 액면가치도 물귀신의 희생양마냥 끌려 내려가게 된다. 따라서 금/은화로 주조된 크로네 동전[1]멜팅 포인트를 곧장 넘어버려서 사실상 칭량화폐가 되어버렸고, 이듬해인 1915년에 생산이 중단되고 만다. 이때부터는 동전을 직접 사용하기보다는 녹여서 괴(塊)로 만든 다음 팔아먹는게 훨씬 비쌌으므로, 그렇게 땡처리(?)로 넘기느라 잔존수량도 급감하여 21세기가 된 현 시점에선 희귀품이 되었다.[2] 1920년 8월 28일에 후술할 크로네-프랑 전환 법안 통과로 인해 근현대 화폐로서의 유통력이 정지되었다.

놋겔드(지폐) 발행[편집 | 원본 편집]

1918년 11월 11일 세계 1차 대전에서 패배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붕괴되고, 리히텐슈타인이 접한 오스트리아 지역은 독일계 오스트리아 공화국(Deutschösterreich(도이치외스터라이히))으로 전환되었다. 독일과 마찬가지로 오스트리아도 전쟁 배상 문제로 인해 영토가 크게 뜯겨나가고 거액의 배상금을 빚지게 되면서 경제력이 급격히 쇠약해졌고, 그 영향이 사실상 단일 통화권[3]이던 리히텐슈타인에도 연쇄작용으로 들이닥쳤다. 수단을 가릴 때가 아니게 된 오스트리아는 리히텐슈타인측에도 무거운 관세 등을 부과하였고, 이를 묵인하지 않던 리히텐슈타인 의회는 1919년 8월에 오스트리아와의 관계를 일방적으로 끊고, 중립국이자 반대쪽으로 국경을 접하던 스위스와 협상하여 프랑화로 갈아탈 계획을 하게 된다.

다만 크로네에서 프랑으로 갈아타는 과정에서 교환값 설정을 어떻게 해야할 지 알아볼 필요가 있어 화폐정리를 한 번 진행해야만 했고, 때문에 1919년 12월 24일, 리히텐슈타인 내에서 신규 창출되는 비용의 지급을 위한 비상화폐(놋겔드)를 3종류(10h, 20h, 50h)씩 각 20만장 (합계 60만장) 발행하였다.

헬레르 지폐는 오스트리아 크로네 혹은 스위스 프랑과 교환되지 않았고, 완전무결히 내수용이자 독립된 단위로서만 유통되었다. 또한 지하자금화를 방지하고자 각 지폐에는 "요청지급 후 3개월 이내에 파두츠※리히텐슈타인 수도 국고로 상환되지 않으면 무효화 된다"라는 문구를 첨부하였다.

설정 자체는 크로네화의 보조단위였으나 궁극적으로 프랑화 교체를 위해 발행되었기 때문에, 100헬레르 = 1크로네 or 1프랑으로서 기능하였고, 1920년 8월 27일에 크로네와 프랑크 간 교환비를 1:1(패리티)로 적용시키는 법안을 통과시켜 이듬해인 1921년부터 기존의 리히텐슈타인 크로네는 리히텐슈타인 프랑크로서 재탄생하게 되었다. 이 시점에서 리히텐슈타인 헬레르(비상화폐)는 제 역할을 다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퇴장하게 되었다.

리히텐슈타인 프랑크[편집 | 원본 편집]

계획대로 리히텐슈타인은 스위스와 무역 협정을 새로 맺었고, 이에 따라 리히텐슈타인의 공식 통화 단위도 1922년부로 프랑크(프랑)로 교체되었다. 다만 신규 주인(?) 국가가 된 스위스의 장크트갈렌※리히텐슈타인과 직접 접하는 칸톤측에서 리히텐슈타인의 자체 화폐 발행을 못마땅해 했고, 리히텐슈타인 측도 스위스와의 규모적 차이 때문인지 자체적 발행의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하여[4], 1924년 5월 26일에 리히텐슈타인의 공식 통화가 스위스 프랑으로 변경되었다.

2019년 건국 300주년 기념 100fr 금화

그렇지만 명목상으로는 여전히 리히텐슈타인 프랑크의 개념이 살아있으며, 리히텐슈타인에서 발행하는 우표의 액면 및 기념주화의 액면은 명목상으로라도 스위스 프랑이 아닌 리히텐슈타인 프랑크로 발행되고 있는 것이다.

1924년 유통화 변경 이후에도 리히텐슈타인의 공(Fürst, 퓌르스트)들은 자기네 통치자 가문의 존재감을 어필하기 위해 가끔가다 귀금속으로 만든 기념주화(금화/은화)를 생산하곤 했는데, 스위스가 이를 암묵적으로 봐주다가 1980년 6월 19일 공식 조약을 통해, 리히텐슈타인이 자체 유통화를 발행할 수는 없으나 비유통 성격의 기념주화를 만드는 건 허용하게 되면서 간신히 살아남을 수 있었다.

각주

  1. 이건 오헝제국에서 발행한 동전도 마찬가지여서 (애당초 리히텐슈타인측에서 규격 자체를 동일하게 맞춰 찍었다.), 잔존수량이 제법 많이 남은 지폐에 비해 동전은 손에 꼽히는 희귀품이 되었다.
  2. 가장 많이 살아남은 1크로네 은화가 15,000장 정도(발행량의 25% 수준)이고, 나머지 대부분은 많아봐야 5천장 내외로 추정하고 있다.
  3. 오헝제국 붕괴 후의 오스트리아 공화국은 오헝제국 크로네화에 "독일계오스트리아(Deutschösterreich)"라는 첨쇄를 가한 뒤 그대로 사용하였는데, 그간 오헝제국 화폐를 그대로 가져다 쓰던 리히텐슈타인도 자연스레 그 독일계오스트리아 크로네 첨쇄권으로 갈아타게 되었다.
  4. 2020년대 기준으로 장크트갈렌은 인구 50만명, 리히텐슈타인은 4만명이다. 가슴이 웅장해지는 두 마을 간의 기싸움
  1. 여기에 해당하는 이전 화폐는 동전도 교환대상에 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