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르키예 리라

튀르키예 리라 (터키 리라)
Türk Lirası 튀르크 리라스tr
TCMB logo.png
화폐 정보
사용국 터키
북키프로스
비공식 사용국:
ISO TRY (TRL)
기호 ₺, TL(텔레)
보조단위
1/100 쿠루쉬 (Kuruş) [kr]
지폐 ₺5, ₺10, ₺20, ₺50, ₺100, ₺200
동전 1kr, 5kr, 10kr, 25kr, 50kr, ₺1
중앙은행 튀르키예공화국 중앙은행 (Türkiye Cumhuriyet Merkez Bankası)
환율 45원 이하/₺ (2023.11.28 기준)

영어 : Turkish Lira 터키시 리라

소개[편집 | 원본 편집]

튀르키예 리라 = 터키 리라는 튀르키예(터키)의 리라/파운드 계열 통화이다. 별칭은 로마자 약자인 "TL"을 스펠링으로 읽은 "텔레(Te-Le)"

2012년 3월에 새로 제정된 기호는, 그 이전까지 단순히 약칭으로 표기한 "TL"[2]을 온전히 대체하였다. 유니코드에는 6.2(2012년 9월)버전에서 추가되었다(U+20BA). 그런데 각을 둥글게 그어서 180도 뒤집으면 원쑤 아르메니아 드람의 기호처럼 되다보니, 처음 발표 당시에는 일부 극성파에게 극딜 당하기도 했다.

환전 및 사용[편집 | 원본 편집]

대한민국에서는 과거 외환은행 시절에 처음 터키 리라 취급을 시작했는데, 당시에도 을지로2가 본점과 공항점 정도만 받아주고, 수수료가 정말로 장난이 아니었으며, 순수한 매입량에 의지하는지라 구매도 어려워서 매우 불편하였다. 그러던 것이 2018년 2분기에 리라화 환율이 급락하면서 보유 위험이 너무 커진 것으로 판단됨에 따라 시중은행들의 손절이 연이었고, 사실상 2018년 6월부터 몇달 동안 한국 내 취급이 전면 중단되기도 했다. 이후 KEB하나은행에선 완전히 취급이 중단되었고, 이후 우리은행, 국민은행, 신한은행 만이 간신히 취급하고 있는 상태. 이마저도 본점이나 인천공항에서 구할 수 있는 게 흠이지만.

과거에는 대개 한국씨티은행에서 국제현금카드를 만들고 현지에 가서 뽑아다 썼지만, 2013년 7월 이후 튀르키예 씨티은행이 튀르키예 국내은행인 데니즈방크(Denizbank)로 인수합병되는 바람에 더 이상 이 방법을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때문에 유로화나 달러화로 중개환전하는 것이 기본인데, 이때는 은행이나 호텔보다 사설 환전소에서 환전하는 것이 여러모로 이득이다. 우선 수수료를 물지 않고, 유로, 달러화에서 튀르키예 리라로 환전할 경우 환율도 꽤 높게 쳐주는 편이다. 다만 관광지가 아닌 지역 한정이다. 이스탄불 관광지에 있는 사설환전소에서는 굉장히 환율을 짜게 쳐주고, 환전소마다 매기는 가격이 다 다르기 때문에 몇번 발품을 팔 필요가 있다.

여전히 튀르키예(중에서도 대도시, 관광지 위주)에선 달러와 유로사용이 어렵지 않은데, 다 여행자들 때문이기도 하고 기나긴 인플레 사정이기도 하다. 그런데 외환을 주역으로 사용하게 되면 기본적으로 현지화인 리라보다 확연히 비싼값을 매기므로[3] 가급적이면 리라로 지불할 것을 권장한다. 더구나 이스탄불이나 앙카라 및 유명 관광지가 아니라면 되려 환전하기 혹은 거래하기가 힘들어질 수도 있다.

현재 통용되는 지폐(E9)의 경우, 2012~2015년 기준으로는 ₺50까지 무난하게 통용이 되었지만 ₺100(당시 약 4만원 정도)는 튀르키예에선 제법 큰 돈이라 시장이나 작은 상점에서 ₺100짜리를 내면 "거슬러줄 수 없다."라고 거부하는 경우가 많았다. ₺200는 ATM에서도 취급하지 않고, 애매하게 큰 액면인 까닭에 거의 유통되지 않았었다. 당시에 ₺200짜리를 내밀면 굉장히 신기하게 쳐다보거나 위조감별기로 진지하게 돌려보기도 하였다.

한라산 06~23년도 원-리라 그래프

허나 통화가치가 크게 떨어진 2016년 이후로는 가파르게 오른 물가 때문에 ₺200 지폐도 ATM에서 흔하게 취급되도록 위엄이 떨어졌고, 따라서 시중에서도 무리없이 돌아다니게 되었다. 2009년 당시 ₺200의 가치는 약 14만원 상당이었으나, 2016년 기준으로 5만원, 2023년 기준으로는 9천원 미만 수준으로 떨어졌다보니, 이제는 도리어 ₺200짜리가 주역이 되고 저액권들이 쩌리 취급이 되어버린 역전세계가 펼쳐지고 있다.

동전 또한 2010년대 초중반까지는 ₺1가 제법 보편적으로 통용되고 25Kr, 50Kr가 보조단위로서 주로 이용되었다. 10Kr 및 5Kr는 대형마트나 패스트푸드점과 같은 업체에서나 볼 수 있을 수준이고, 1Kr는 2010년 이후로 사실상 유통되지 않았다. 대략 마트같은 곳에선 잔돈이 부족할 경우 10Kr 단위로도 버리고 25Kr(=₺¼) 단위로 맞추는 걸 볼 수 있었다. 몰론 가격표에는 1Kr단위까지 잘 활용하는데, 실제 거래시에는 올리거나 버리는 식으로 수정하는 방식. 2020년대 진입한 뒤로도 크게 달라지진 않았으나 25Kr 미만은 사실상 자취를 감춘 상태로, 과거엔 원코인으로도 물이나 빵 하나 정도는 사 먹을 수 있었던 것에 비해, 2020년대부터는 껌이나 물 하나도 못 사먹는, 진짜 푼돈으로 전락하였다.

환율 추이 : 리라를 버리고 달러를 취한다![편집 | 원본 편집]

1980년대부터 시작된 튀르키예의 인플레이션은 2005년 화폐개혁를 기점으로 차츰 잡히기 시작하여, 2010년 전후로 안정감을 찾게 되었다. 다만 튀르키예 경제성장률이 당시 기준으로 5% 이상 찍었던지라 물가상승은 잦아들지 않은 상태에서 에르도안의 이상한 경제정책과 2013년 시위 사태, 2016년 쿠테타 미수사건 등으로 인한 안정성 추락 이미지가 씌워져 2020년대로 넘어가서도 계속 나락을 향하게 된다. 2010년대 후반부에 들어서는 낙폭이 더욱 급격하게 커졌다.

당연히 그 낙폭에 맞춰 터키 물가 상승률은 반비례로 급등하였는데, 예를 들면 이스탄불의 교통 토큰인 제톤(Jeton) 1개의 가격도 2004년에는 650,000TL~1,000,000TL(₺0.65~₺1.00)였지만 2012년에는 ₺1.75~₺2 정도, 2015년 경에는 ₺3(3,000,000TL)까지 올랐다. 다만 교통카드로는 ₺1.95, 튀르키예 학생이라면 ₺0.90라는 게 함정 2017년 기준으로는 제톤 코인이 없어지고 카드로 바뀌었으며, 기본요금으로 ₺5를 받고 있다.

USDTRY20112021.png 여튼간 전성기인 2011 ~ 2012년 경 환율값은 약 680원/₺ (2₺/$ 미만)이었고, 각종 해외발 금융사태가 터진 뒤인 2016년 환율은 대략 400원/₺ 이하 정도를 가리켰는데, 그 해 말에 30% 넘게 대폭락을 했다. 이후 2018년 5월에 추가로 10% 떨어지면서, 중앙은행 차원에서도 환율방어에 나서게 되었다. 허나 방어막이 통하지 않았는지 동년도 7월말에 230원 내외를 가리키던 리라화는 미국과의 외교전쟁으로 남아공, 아르헨티나 등과 함께 터키에도 관세폭탄을 던져놓음으로 인해 국제정세적 불안감을 느낀 사람들이 리라를 버리고 달러로 돌아서면서 떡락이 예고되어, 연동율이 비교적 높던 유로까지 하락세로 끌어들였다.

그 직후로도 추가 하락하여 8.00₺/USD(약 160원/₺)선이 깨질 위기에 처하자, 발등에 불 떨어진 현지인이고 교민이고 너나 할 것 없이 달러 구하려고 리라 현찰을 쓸어모아다 환전소로 찾아가는 바람에 외환시장이 북새통을 이루었고, 미처 환율연동에 대응하지 못한 할인 행사중인 버버리라던지 명품매장 등에서는 본의 아닌 바겐세일을 열어버린 바람에 환차수익을 노린 외국인 관광객들이 레이드를 뛰었으며, 그런 혼돈의 도가니에 치안이 멀쩡하게 작동되지는 않아 크고 작은 사건사고가 연달아 터졌다. 그 와중에 에르도안은 금 모으기 운동을 제안하는 촌극도 있었다. 경제학자들은 당시 튀르키예 리라의 침몰이 태국발 경제위기의 경우와 상당히 유사하다고 진단하여, 대통령의 국민 호소가 실패하게 되면 결국 IMF구제금융을 받을 것이라는 전망을 냈었다. 그나마 다행으로 정부의 무두질이 제대로 작동했는지 당해 내에서 8리라선이 깨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5년도 채 안 되어 2020년 유행병으로 인해 에너지 자원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4]하던 튀르키예 경제는 직격탄을 먹었는데, 그럼에도 대통령인 에르도안은 대체 무슨 생각인지, (대개는 디플레이션 및 환율 하락에 대항하는 수단인)금리 인하를 꾸준히 밀어대서, 리라화 가치 하락폭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더욱 가팔라지게 된다. 이를 실시간으로 반영하지 못한 스팀, 애플, 샤넬 등의 국제적 대기업의 상품 가격 또한 환율에 맞춰 비정상적으로 급락하였고, 그걸 눈치채고 셔터 내릴 때까지의 잠깐동안 해외발 구매 행렬이 번성(?)하게 된 사태가 또다시[5] 벌어졌다. 여담으로 2020년 8월,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행은 2조 3천억원=175억리라(약 131.43원/₺) 규모의 통화스와프를 체결하여 적잖은 비판을 받았다.

이후 2021년 12월 20일에 잠깐 가치가 급반등했다가 다시 하향세로 돌아섰으며, 이후 반등하는 일 없이 꾸준한 속도로 하락하고 있다.

유로화 전환 관련[편집 | 원본 편집]

사실 튀르키예는 강남살이 좀 해보려고 자신들도 유럽에 들어가싶다 해왔고, 그 일환으로서 유로화 전환을 적극 추진하고자 안달이나 온갖 노력을 다 하고 있지만... 원년멤버인 그리스의 적극적인 디스[6]......은 과거시절 이야기고, 2002년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총리의 집권이후 외교관계 개선으로 그리스는 튀르키예의 EU가입을 지지하겠다고 선포한 상황이다. 하지만 산너머 산이라고 아직 키프로스가 남아있다

사실 이런 노력은 비단 튀르키예 뿐 아니라 유럽이라고 하기엔 좀 애매한 극동유럽과 카프카스의 국가라면 한 번쯤 시도해보고 있는 현상이다. 대표적으로 개혁을 통한 환율조작(최대한 유로화 체계에 가깝게 개편 및 개혁)과 유로화를 모방한 지폐/주화 디자인 및 규격 설정등이 있다. 정작 유로존 국가들은 아오안이지만.

현찰 시리즈[편집 | 원본 편집]

튀르키예 은행권의 시기 분류는 공식적으로는 "E(Emission)+숫자"의 형태로 표현한다. 그러니 현행권의 경우는 E9시리즈. 2012년 현재, E7까지는 사실상 사용중지, E8은 제한적 사용이 가능하고, E9가 주로 통용된다.

튀르키예 국민들의 극진한 아타튀르크 사랑 때문인지, 이 나라 돈은 거의 모두 아타튀르크를 대표 얼굴로 삼고 있으며, 무려 1923년튀르키예 공화국 건국 초기부터 시작된 유구한 전통(?)이다. 다만 1940년대에는 아타튀르크의 뒤를 이은 이스메트 이뇌뉘(2대 대통령)가 대체하고 있었는데, 당시에는 앞면 얼굴로 현직 대통령을 올리는 개념[7]에 더 가까웠기 때문이다. 아타튀르크를 그려넣는 전통은 1950년대부터 다시 아타튀르크를 메인으로 앞세우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현행권 : Emission 9 (2009)[편집 | 원본 편집]

2009년 1월 1일 부터 통용이 시작되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시리즈. 이때부터 YTL의 Y가 탈락하였다. 유적지에 중점을 두던 과거와 달리, 전반적으로 유명인사를 디자인 소재로 적극 기용하는 방향. 기호 ₺는 이 시리즈부터 사용되기 시작했다.

튀르키예 2기 리라 E9 시리즈 (Emission 9, 2009년)
TRL901.jpg TRL905.jpg TRL911.JPG
A타입 (₺5, ₺10) 니가 B타입 (₺20, ₺50) 돈을 좀 C타입 (₺100, ₺200) 벌었구나?
₺5[8] 아이든 사이을르(과학자)
태양계 및 Z-DNA구조 그림
₺20 미마르 케말렛딘(건축가)
그가 세운 가지 대학 본관
₺100 부흐리자데 무스타파 으트리(음악가)
류트와 삽화고서
TRL902(1).jpg 20 Türk Lirası reverse.jpg 100 Türk Lirası reverse.jpg
₺10 자히트 아르프
₺50 파티마 알리예 토푸즈(작가)
꽃과 서적들
₺200 유누스 엠레(시인)
영묘와 비둘기
10 Türk Lirası reverse.jpg 50 Türk Lirası reverse.jpg 200 Türk Lirası reverse.jpg
  • 위 ₺200는 구권으로 치면 200,000,000TL에 해당한다.
  • 동전은 5Kr, 10Kr, 25Kr, 50Kr, ₺1의 5종이 통용중에 있다. 과거에는 1Kr도 있었으나 본 2009년 개정으로 탈락하였다.
  • 지폐는 몰론 동전에도 앞면에 아타튀르크가 그려져 있는데, 최소액권인 5쿠루쉬는 완전한 옆모습을 하고 있다가 액면이 커질수록 아타튀르크가 점점 정면을 향해 돌아보도록 바뀜과 동시에 얼굴 표정도 점차 미묘하게 밝아진다.[9] 비정상회담(13회 방송분)의 에네스 카야가 이를 언급했었고, 덕분에 '돈이 없으면 대통령도 안 쳐다본다'라는 명언(?)을 전한 바가 있다. 아타튀르크께서는 큰 돈을 지니고 다니는 분을 좋아하십니다!
 발권은행 정책에 따라 폐기되거나 시중에서 사용이 중단되어, 국내외 환전도 할 수 없는 통화입니다.
 해당 국가 방문시 현금거래 중 받지 않도록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전환기 : Emission 7 ~ 8 (1979 ~ 2008)[편집 | 원본 편집]

7차 발행분은 대략 1995년 무렵으로 전기와 후기로 나누며, 1/1,000,000 규모의 화폐개혁을 시행하기 직전인 2004년의 환율은 약 135만 리라/USD를 기록했다. 2005년에 신 터키 리라(Yeni Türk Lirası, 8차 발행분)로 개혁하면서 ISO 4217 코드가 TRY로 바뀌었다. 이 당시에는 구권인 TL과 구분하기 위해 일부러 Yeni[10]의 Y를 붙여 YTL이라고 표기하였다.

1983년 투르구트 외잘 당시 총리(훗날 대통령)의 시장경제화 정책에 따라 터키 내 통화량이 급격하게 불어났다. 저렴한 노동력을 무기로 하는 2차 산업 투자를 통해 소득을 높이고자 하는 노력은 적절하였으나 에너지 자원이 부족하다는 약점 탓인지 무역수지가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았고, 70년대까지의 국가주의 정권이 벌여놓은 막대한 국가빚과 수렁 깊은 정계 내 부정부패가 발목을 잡았으며, 그 사이 자연재해(지진)와 불안정해진 국제정세까지 겹치는 와중에 90년대 후반부터 집권하게 된 이슬람주의 정권이 민심 확보를 위한 복지를 무턱대고 확대한 결과, 하이퍼인플레이션의 늪에 빠지고 만다. 0의 숫자가 점점 불어나자 편의상 0을 3개 혹은 6개 생략하여 표기하는 일이 빈번했으며, 인플레이션이 절정에 달한 2000년대 초반에 터키를 여행한 사람들은 최소 몇십만, 때로는 억단위의 돈을 들고다니며 유사 억만장자(?)의 기분을 누렸다는 경험담을 털기도 하였다.

다만 여타 다른 초인플레이션 사례와는 달리 장기화 되기 전에 대책을 세웠기에 그리 오래 이어지지는 않았고, 그 속에는 케말 데르비쉬 당시 경제장관의 강경한 통화정책과 민영화 & 외자 유치 전략이 유효하게 작용하여, 비록 물가는 다 오르는데 월급만 그대로라는 당연한(?) 결과가 나오는 바람에 국민들의 욕을 푸짐하게 먹었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인플레이션을 한 자릿수까지 끌어내리는 데는 성공하였다.

7차 시리즈는 2016년 정초부터, 8차 시리즈는 2020년 정초부터 유통 및 환전/교환이 모두 중단되었다.

튀르키예 1기 - 2기 리라 전환기 (E7후반(1995~2004) ↔ E8(2005~2008))
100 YTL ön.jpg 100 YTL arka.jpg 50 YTL arka.jpg
100 YTL & 50 YTL 앞면 패턴
100 YTL 이샤크 파샤 궁전
50 YTL 카파도키아
20 YTL ▼ 10 YTL ▼ 5 YTL ▼ 1 YTL ▼
20 YTL ön.jpg 10 YTL ön.jpg 5 YTL ön.jpg 1 YTL ön.jpg
20million.JPG에페소스의 셀수스 도서관 10 Million TL reverse.jpg피리 레이스의 지도[11] 5 Million TL reverse.jpg아타튀르크의 영묘 (아늣카비르) 1-II Million TL reverse.jpg아타튀르크 댐
▲ 20,000,000TL ▲ 10,000,000TL ▲ 5,000,000TL ▲ 1,000,000TL
500000 TL reverse.jpg 250000 TL reverse.jpg 100000-II lira reverse.jpg ←500,000TL 갈리폴리 전투 기념관(차낙칼레)
250,000TL 크즐 쿨레(알란야)
100,000TL 아타튀르크에게 꽃을 전달하는 아이들
튀르키예 1기 리라 E7(전기) 시리즈
앞면의 아타튀르크[12] 10TL
100TL 마흐메트 아키프 에르소이 500TL 이즈미르 시계탑 1,000TL 파티흐 술탄 메흐메트 2세와 오스만 시절 이스탄불의 전경
5,000TL(1판) 콘야의 메블라나 묘소 5,000TL(2/3판) 메블라나 루미와 그의 묘소 5,000TL(4판) 아프신-엘비스탄의 지력발전소
10,000TL 미마르 시난[13]과 셀리미예 모스크(에디르네) 20,000TL 튀르키예 중앙 은행 본관 50,000TL 튀르키예 대 국민의회 (앙카라)

동전의 최소단위는 1쿠루쉬이며, 구권 10,000TL에 해당했다. 이때 10,000TL 이하의 지폐는 아예 취급하지 않았었는데, 이미 사장되었었기 때문. 그리고 새 튀르키예 리라 도입당시에도 1쿠루쉬는 쓸일이 없어서 상점에서 물건을 살때 잔돈을 받을때면 5쿠루쉬 이하는 그냥 버렸다. 이것은 2012년 이후(E9)도 마찬가지.

현찰 시리즈 (과거)[편집 | 원본 편집]

건국 초기 (Emission 1, 1926 ~ 1936)[편집 | 원본 편집]

1926년 공화국 리라 등장 이후 파운드프랑스 프랑에 강력한 페그(고정환)를 걸었기 때문에 환율이 2.8리라/USD 정도로 일정하게 유지되어 왔다. 국어(오스만투르크어)가 아랍문자로 쓰여진 처음이자 마지막 공화국 리라이며, 뒷면에는 프랑스어[14]가 병기된 유일한 시리즈이기도 하다. 막 새로운 수도로 결정된 앙카라를 도안소재로 폭넓게 사용하였다. 1930년대 후반경에 국문표기법 변경으로 인한 신권이 발행되면서 통용이 중지되었다.

중앙은행 설립 직후 (Emission 2 ~ 4, 1937 ~ 1948)[편집 | 원본 편집]

  • 2차 : 2~4차는 굉장히 짧은 통용역사를 지니고 있다. 이유인 즉, 세계 2차 대전이 터진 탓.[15] 전쟁때는 공급이 자주 끊기는 바람에 모든권종이 한꺼번에 쓰인 적은 없고, 1937년에서 1944년까지 자주 등장했다 사라졌다 했다. 마지막으로 중지된 시기는 1952년 11월. 참고로 영국산이다.
  • 3차 : 모든 시리즈에 지금은 지겹게 볼 수 있는 아타튀르크가 빠지고 이뇌뉘가 들어간 첫 시리즈. 2차 시리즈와 혼용되어 사용된 긴급발행권의 성격을 지닌다. 1942년부터 1947년까지이며, 영국(초반), 독일, 미국산(후반)이 섞여있다. 급한대로 뽑아다 쓴 모양이다. 종류는 2.5리라부터 1,000리라까지 1, 5단위로 올라가며 7종.
  • 4차 : 2차 및 3차와 혼용되어 쓰인 시리즈인데 영국과 독일이 서로 싸우느라 나라꼴이 시망ㅋ해버리니 발주가 곤란해지자 미국에 발주를 넣어 들여온 시리즈이다. 극혼란기에만 잠깐 쓰였다. (1947년~1948년) 종류는 단 두 가지(10, 100리라)이며, 이뇌뉘가 그려져 있다.

표2

  • 500리라와 1,000리라는 아주 미묘한 차이를 보이는 두 가지 버전이 존재한다.

파운드-프랑 고정환 (Emission 5, 1951 ~ 1971)[편집 | 원본 편집]

1951년부터 등장해 일곱 종류(2.5 ~ 1,000리라)가 여러 번 변화를 거치며 32개 바리에이션을 만들고는 1971년에 숨을 거둔 나름 장수한 시리즈. 전란 후폭풍에서 벗어나고 점차 외주를 줄이며 국내산(튀르키예)으로 찍어내 예전의 영광을 되찾았다. 전성기 당시 환율은 9리라/USD 정도. 이때부터 모든 돈 앞면에 아타튀르크가 들어가기 시작했다.

준변동환 체제 (Emission 6, 1966 ~ 1983)[편집 | 원본 편집]

1966년 처음 도입되기 시작해 1983년까지 생존한 두번째 장수 시리즈. 20리라만 영국에서 만들고 나머지는 모두 튀르키예 국내산으로 전환되었다. 하지만 시장개방을 위해 점진적으로 환율을 변동제로 풀어주는 과정에서 무언가가 잘못되었는지 인플레이션에 시달리게 되었다. 말기의 환율이 100리라/USD까지 치솟았었다고 한다.

오스만 리라[편집 | 원본 편집]

  • 이 단락은 튀르키예 리라의 전신인 오스만 리라에 관한 내용입니다.

튀르키예에서 최초의 리라화는 1843년 1월 5일에 오스만 제국술탄 압듈메지트에 의해 도입되었다. 이전까지 오스만 제국의 화폐제도는 3악체(akçe)를 1파라(para), 40파라를 1쿠루쉬(kuruş)로 하는 은본위제를 실시하고 있었는데 영국의 화폐제도를 본받아 금본위제를 도입한 것. 때문에 오스만 제국의 옛 화폐를 보면 Osmanlı Lirası (오스만 리라)라고 쓰여있는 표기 옆에 프랑스어 Livre Turque 라고 표기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한편 리라 도입으로 보조화폐로 전락한 쿠루쉬도 대외적으로는 피아스트르(piastre)라고 불리고 있었으며 리라화 도입 이후에도 유럽권에서는 리브르, 피아스트르라고 불렀다.

은화[편집 | 원본 편집]

  • 악체(Akçe): 오스만 제국의 은화중 가장 작은 금액이자 가장 오랫동안 기준통화였던 통화.
  • 파라(Para): 3악체 = 1파라
  • 샤히(Şahi): (초기에는 6.5악체=1샤히, 후기에는 8악체=1샤히)
  • 디리헴(Dirhem): 아랍-이슬람제국의 화폐 단위인 디르함과 어원이 같은 말
  • 졸타(Zolta) 혹은 졸로타(Zolota): 30파라 = 1졸타
  • 쿠루쉬(Kuruş): 40파라 = 1쿠루쉬, 1687년에 최초로 도입된 화폐로 기존의 기준통화였던 악체를 대신하기 위해 발행되었다.
  • 지하디예(Cihadiye): 5쿠루쉬 = 1지하디예

금화[편집 | 원본 편집]

  • 픈득 알튼(Fındık altını)
  • 제리 마흐붑(Zer-i Mahbub): 3.5쿠루쉬 = 1제리 마흐붑
  • 아들리 알튼(Adli Altın): 12쿠루쉬 = 1아들리 알튼
  • 하이리예 알튼(Hayriye Altın): 20쿠루쉬 = 1하이리예 알튼
  • 루미 알튼(Rumî Altın): 1루미알튼= 48쿠루쉬
  • 마흐무디예 알튼(Mahmudiye Altın): 20쿠루쉬=1마흐무디예 알튼
  • 메지디예(Mecidiye): 20쿠루쉬 = 1메지디예

각주

  1. UN에 가입된 시리아(국가)를 가리키는게 아니라, 내전으로 그 '시리아'에 대항하는 반군 중에서 터키 영향의 괴뢰국 세력을 가리킨다.
  2. 화폐개혁 직후에는 YTL(Yeni Türk Lirası - 새 튀르키예 리라)
  3. 2013년 기준으로 2.58리라/EUR인데, 유로화로 계산하면 대개 2리라/EUR로 통크게 내쳐버렸다. 한화로 치면 리라당 500원 가까이 손해보는 셈인데, 가보면 알겠지만 결코 적지 않은 돈이다. 당장 500원만 있어도 꽤 큰 빵 두 개, 혹은 토마토 1킬로그램을 살 수 있다. 달러도 상황이 비슷한데 대략 1.90리라/USD 정도. 여담이지만 면세점이나 페리회사등, 유로로 가격을 매겨놓은 곳에선 역차별하기도 한다.
  4. 에너지 자원의 부족은 튀르키예 경제의 거의 유일한 약점이기도 하다.
  5. 2016년 경 베네수엘라에서도 똑같은 사례가 있었다. 그나마 튀르키예가 베네수엘라 만큼의 막장은 아니긴 해서 단체 철수 사태까지는 일어나지 않았다.
  6. 역사적인 이유로 그리스와 튀르키예는 매우 험악하다. 그리스 뿐 아니라 발칸반도의 대부분 유럽국가 및 키프로스, 아르메니아와도 사이가 좋지 않아 유로화 도입은 커녕, 유럽연합 가입후보국에 머물러있는 실정이다.
  7. 아타튀르크는 1938년에 사망하였다.
  8. 원래 밝은 갈색(아래쪽)이었으나 ₺50와 혼동하기 쉽다는 이유로 자청색(위쪽)으로 바뀌었다.
  9. 7차 및 8차에서는 옆을 보다가 앞을 보다가 다시 옆을 보는 구조이라 적용되지 않는다.
  10. 영어로 치면 New
  11. 오스만 제국의 해군 제독이자 항해사인 피리 레이스가 그린 고지도. 유럽과 아프리카 서부 및 남미 동부(브라질)까지 그려져 있지만, 이 지방들을 식민지배하려는 의도였다기보다 '그냥 자료가 있으니까 그려 넣었다' 에 가깝다.
  12. 권종별로 디자인이 약간씩 다르지만, 5만 리라까지 앞면 아타튀르크의 시선은 왼쪽을 향하고 있다. (이후 고액권은 정면을 보고 있다.)
  13. 카이세리(카파도키아의 동쪽에 있는 중간규모 도시.) 출신의 기독교도. 데브시르메 제도에 따라 예니체리로 징집되었으나, 황제 쉴레이만 1세의 눈에 들어 건축가로 전직하였다. 참고로 미마르(mimar)는 성이 아니라, 튀르키예어로 건축가라는 뜻.
  14. 프랑스어로 단위는 리브르.
  15. 1차대전 당시엔 오스만 제국이었다.
  1. 여기에 해당하는 이전 화폐는 동전도 교환대상에 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