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그리스공화국
Ελληνική Δημοκρατία
Flag of Greece.svg
국기(그리스의 국기)
Coat of arms of Greece.svg
국장
공용어 그리스어
수도 아테네
표어 Ελευθερία ή Θάνατος
자유냐 죽음이냐
국가 자유의 찬가
인구 정보
인구 10,992,589명 (80위)
인구 밀도 84명/km² (88위)
지리 정보
넓이 131,957km² (96위)
접경국 알바니아 알바니아, 북마케도니아 북마케도니아, 불가리아 불가리아, 터키 터키
정부 정보
정부 형태 의원 내각제
대통령 프로코피스 파블로풀로스
총리 알렉시스 치프라스
경제 정보
유통 화폐 유로 (◀그리스 드라크마)
기타
국가 도메인 .gr
국제전화번호 +30


1 개요[편집]

남유럽 지중해 북부의 동쪽 끝, 발칸 반도 남단에 자리한 나라.

관광 산업과 해운업이 발전한 나라이지만 2000년대 말부터 경제 위기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2 지리[편집]

발칸반도 본토지역과 그 끝자락 서부에 코린트 운하를 사이로 펠로폰네소스 반도가 있고, 그보다 서쪽에 이오니아 해상의 이오니아 제도가 있다. 반대편으로 아테네 동쪽에 에게해가 있고, 그 내부에 수많은 섬들이 산재해 있다. 그리스 최남단에는 크레타섬이 자리하며, 아테네에서 크레타 사이에 산재한 섬을 키클라데스 제도라 부른다. 동부 끝자락, 터키 바로 코앞에 도데카니소스 제도(도데카니사 제도)가 있다.

아드리아해를 사이로 아펜니노 산맥과 대척점으로 협곡을 이룬 디나르알프스 산맥이 끝나는 지역이며, 때문에 동쪽은 상대적으로 완만하여 서고동저 및 북고남저의 지형을 보인다. 이 산맥의 영향과 위치적 이유로 그리스의 서부와 중부 산악지대, 그리고 동부의 날씨가 판이하게 다르다. 서부는 전형적인 지중해성 기후, 동부는 해양성 온대기후고, 산악지대는 더울땐 미치게 덥고 추울땐 미치게 추운 고산기후가 나타난다. 세 지역 모두 여름이 건기, 겨울이 우기이다.

2.1 행정구역[편집]

그리스는 총 13개 페리페리에스(州)와 51개 노모스(縣), 예하로 325개 데모스 및 에노티타(市)로 이루어져 있다. 일반적으로 부르는 지명은 주로 데모스. 이와는 별개로 비공식으로 전통적인 10개 지역(트라키, 마케도니아, 테살리아, 이피로스, 스테레아엘라다, 아티키, 펠로폰네소스, 에게, 이오니아, 크리티)으로 구분하기도 하며, 공식적으로 쓰는 주 구분법보다 이쪽이 훨씬 더 일상적이다.

그리스의 대표적인 도시는 다음과 같다.

3 역사[편집]

고대 그리스는 예로부터 화려한 문명을 이루었다가 로마 제국에 정복당한 뒤 로마제국이 아예 현재의 그리스와 가까운 비잔티움(현 이스탄불)으로 수도를 옮겨 새 로마(콘스탄티노폴리스가 제국의 수도로 건설될 때의 공식 명칭은 노바 로마였다.)로 명명하면서 다시금 화려한 문명을 꽃피웠다. 그러나 오스만 제국의 강점을 받아 다시금 암흑기에 놓였다가 19세기 초 독립운동을 유럽의 열강들이 지원하면서 1821년에 독립하고 점차 영토를 확장하여 현재의 영역을 완성하였다.

사실 그리스라는 국가가 등장한 것은 19세기에 들어서이다. 그 이전에는 그리스라는 국가라는 명칭은 없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고대 그리스는 국가라기보다는 문화권에 가까웠으며, 각 폴리스마다 정체성이 달랐다. 물론 이들이 다 같은 그리스인 헬레네스라 우대감도 있었고 올림픽도 열었지만, 이는 현대에서 올림픽 열고 '우리는 같은 인간'이라고 말해도 국가끼리는 분쟁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러므로 고대 그리스를 하나의 국가라 보기는 어렵다. 헬레니즘 제국 시기와 로마 제국 시절에는 하나의 국가로 통합되었기는 했지만 헬레니즘 제국 시절에는 마케도니아가 그리스의 영향을 지대하게 받았기는 했지만 정작 그리스에서는 마케도니아를 그리스와 다른 정체성을 가진나라라고 까였으며, 로마 제국 시절에는 로마가 그리스의 영향을 많이 받기는 했어도 당시 중심지가 그리스는 아니었다. 또한 비잔틴 제국도 자신들을 로마인으로 생각했지 그리스인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물론 언어나 여러 제도가 그리스화된 것은 사실이지만 비잔틴 제국 시민들은 자신들이 로마 제국의 후예라 생각했었다. 그러므로 진정한 그리스인의 국가는 1821년 독립을 통해 최초로 등장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물론 그리스인들에게 이렇게 말하면 최소한 한 소리 들을 각오는 해야한다.[1]

4 경제[편집]

4.1 구제금융 신청[편집]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글로벌 경기가 위축되어 각국에서는 경제회복 정책들이 실행되었다. 그리스의 경제는 본디 수출품 중 대다수를 농산물이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실상은 서유럽 관광객들이 주수입원이었다. 그러던 와중에 2009년 총선에서 청년실업 문제와 고물가 등의 문제가 중첩되어 있었고, 2008년 그리스 반정부 시위로 인한 여론악화로 신민주주의당에서 범그리스 사회주의 운동으로 정권이 교체되었던 참이라 감사를 벌였는데 감사를 벌이고 나서 그야말로 헬게이트가 열렸다. 그 동안 정부에서 재정적자 규모를 일부러 은폐했다는 것. 덕택에 부채규모는 엄청난 속도로 불어나게 되었고 피치는 그리스의 국가 신용등급을 A-에서 BBB+로 강등하여 시장에서는 이를 '유럽발 리먼 사태'로 예의주시하게 되었다. 그리스는 EUIMF에게 '디폴트 위험이 없다'고 일축하였다.

2010년 4월 13일 유럽연합(EU)에게 구제금융을 신청하면서 그리스의 디폴트 위험은 그리스 뿐만 아니라 남유럽 전체로 번져가며 PIIGS(포르투갈, 이탈리아, 아일랜드, 그리스, 스페인)로 불리우며 유럽의 골치거리로 불리우게 되었다. 2010년 5월 EU와 IMF는 3년간 1100억 유로를 긴급지원하였으며 그리스의 강도 높은 구제금융을 요구하였다. 하지만 그동안 지속되었던 높은 실업률과 청년계층의 무기력증에는 회복이 되기 힘들었고 2011년 2월에는 공공과 민간부문에서 총파업으로 사태는 막장으로 치닫았다. 1년후 그리스 정부는 EU/IMF에 추가 요청을 하였고 그리스의 EU 탈퇴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EU정상회의에서는 EFSF(유럽재정안정기금)의 가용자금규모를 2500억 유로에서 4400억 유로로 늘렸다. 늘어난 기금은 그리스의 구제금융 지원과 함께 시장에서 채권매입에 사용되기로 결정되었다. 이는 시장에 그리스 채권에 대한 낮은 가치를 일부 매입함으로써 안정을 도모하기 위함이었다.

그리스의 강도 높은 경제개혁에 불만은 지속되고, 2012년 제1야당이 되었던 시리자 급진좌파 연합은 2015년 총선에서 승리하였다. 치프라스 총리는 트로이카(EU, ECB, IMF)에 대하여 부채탕감을 지속적으로 요구하는 반면, 트로이카가 제시한 개혁안은 거부하며 벼랑 끝 정책을 고수하였다. 이에 EU 내부에서는 그리스의 EU에서 퇴출을 고려하기 시작했다.

2015년 6월 27일, EU와 그리스와의 경제견해가 다른 것으로 나타났고 그리스 내부에서는 이 문제를 국민투표에 부쳐 탈퇴 여부 및 향후 방향을 결정하기로 하였다.

5 각주

  1. 이 말은 약간 달리 표현하자면, 한국의 역사에 삼국시대는 포함되지 않고 고려 왕조나 통일 신라(발해 제외)가 한국의 시작이라는 발언과 같은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