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엔

일본 엔
日本円
Nippon Ginko.jpg
화폐 정보
사용국 일본
비공식 사용국:
ISO JPY[1]
기호 ¥, 円[2]
보조단위
1/100 센(銭)[3]
지폐

¥1000, ¥2000, ¥5000, ¥10000

(구권) ¥1, ¥5, ¥10, ¥50, ¥100, ¥500
동전 ¥1, ¥5, ¥10, ¥50, ¥100, ¥500
중앙은행 일본은행 (日本銀行, Bank of Japan)
인쇄처 National Printing Bureau logo.svg (일본)국립인쇄국[4]
조폐국 조폐국(造幣局, Japan Mint)[5]
환율 9.5 ~ 11.5원/¥ (2020~2022년, 평균 10.5원)
이전 화폐
미군정 엔 (~1946/1958)

日本円(にほんえん), Nihon/Nippon Yen 니혼엔/닛폰엔jp[6]
日本元(日元) 르번위엔/르위엔[7]cn, Japanese Yen 제패니즈 옌en

개요[편집 | 원본 편집]

일본 엔(日本円) 은 일본은행(지폐)과 일본 정부(동전)가 발행하여 일본에서 쓰이는 통화이다. 오타쿠기축통화 환율은 헤이세이기 이후부터 대개 평균 10원/¥선(최저값 7~9.5원, 최고값 14~12원 정도)에서 움직이고, 따라서 엔화 가격에서 0을 하나 더 붙이면 대략적인 원화 가격으로 보면 된다. 은행에서는 계산 편의를 위해 환율을 KRW/100JPY 단위로 고시하며, 대부분의 국가에서 이런 식의 고시를 한다.

전신인 일본제국 엔이 1941년 태평양 전쟁으로 인한 군표의 무분별한 발행 등으로 하이퍼인플레이션이 발생해 기능정지, (직전환율은 4.35엔/USD 정도) 그리고 1945년 패전 이후 GHQ에 의해 강제로 갈아엎어진 것으로 1949년부터 정상화 되어 설정된 환율은 360엔/USD이었다.[8] 통화가 신설된 후로 가치가 크게 올라간 매우 희귀한 케이스. (몰론 강제로 끌어올려진 것에서 기인한 것이지만.) 이런 특성 때문에 일본제국 엔과 일본국 엔의 교환비는 확실하지 않고, 따라서 두 통화를 별개로 구분하지 않기도 한다. 단, 본 항목에서는 별개의 항목으로 서술한다.

이라는 명칭은 둥글다는 뜻의 圓(ゑん)[9]일본어 발음이다. 본래 발음은 [wen]이었다만 음의 변화과정에서 [jen]으로 바뀌었고, 이를 들은 외국인이 yen이라 받아적으면서 현재에 이른다. 참고로, 현대 일본어에선 무조건 [en]으로 발음하도록 고등학교 고문(古文)시간에 교육하고 있다.

대략적인 환율은 1엔=10원.

환전 및 사용[편집 | 원본 편집]

상당히 밀접하다고 할 수 있는 한국과 일본의 관계만큼이나 한국에서 엔화의 환전은 매우 간편하다. 수요가 상당히 많은 편이라 시중은행에선 1인자인 미국 달러 다음으로, 유로와 거의 동급으로 챙기는 통화이며, 고로 경쟁이 심해서 수수료 혜택도 최대까지 끌어올려 부여하는 편이다. 일본 내에서도 사용을 꺼려하는 2천엔권[10]을 제외한 세 권종(1천, 5천, 1만)을 대개 구비해두고 있고, 재고가 있다면 2천엔권도 얼마든지 교환이 가능하다.[11] 특히 일반적으로 외화동전은 환율가 미만으로 거래가 이뤄지는데 엔화 동전의 최고액(¥500)이 꽤 큰 값이기 때문에 아는 사람들 사이에선 최대한 쓸어가려는 경향이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최대한 수수료를 깎아서 환전하는 것이 가장 이득이다. 사설환전소와 수수료를 70%이상 감면한 시중은행은 서로 거의 호각에 준하는 환율을 보이니 수십만엔 이상 거액을 환전하는 것이 아닌 이상은 가격에 너무 얽매일 필요까진 없다. 한국인에게 있어 일본 여행 난이도는 거의 최하급이라 여행객 숫자 또한 상당히 많기에, 남은 엔화의 개인거래도 활발하니 이걸 활용하는 것도 좋다.

반대로 일본에서는 한국 원화를 기타 통화로 분류하기 때문에 바꾸기가 녹록치 않은 편이다.[12]가뜩이나 높은 인건비로 인한 수수료도 만만찮은데, 환율도 대개 시망으로 치는 경우가 많다.[13] (이렇게 합쳐진 수수료만 거의 원금의 10%대에 달한다.) 따라서 그냥 현금카드로 인출하는 것이 훨씬 더 이득인데, 기존에 통용되던 한국씨티은행 국제현금카드 인출 방법이 일본 시티은행의 미츠이스미토모은행(SMBC) 합병으로 인해 2017년 10월부터 무효가되어 안타깝지만, 저렴하게 인출하는 것도 점점 어려워질 전망이다.[14] 여튼 가능하다면 한국에서 환전업무를 모두 끝내고 오는 것이 훨씬 좋다. 오죽하면 일본인들조차 한국 여행할 때 엔화를 그냥 들고 와서 한국의 환전소를 찾아다니며 환전할 지경.

지폐를 1만엔처럼 큰 단위로 들고 다니면 불편하지 않을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일본 물가가 그 정도로 싼 편도 아니고[15], 여행객에 대한 친절로 무장한 직원들의 오모테나시 파워로 거스름돈은 꼬박꼬박 잘 건네주기 때문이다. 예외가 있다면 간단한 음식을 파는 노점상이나 자판기를 이용해야 하는 상황[16]이거나, 지하철 및 버스에 탈 때(=동전교환기 이용시) 및 코믹마켓에 참가할 의향이 있는 경우[17] 정도.

위 내용을 간단히 정리하자면 환전시 총 금액에서 1만엔은 1천엔권으로(=10장), 5천엔권은 적당히, 나머지는 1만엔권으로 들고가면 적절하다.

아오... 이놈의 동전들!![편집 | 원본 편집]

일본에 놀러간다면 동전지갑은 꼭 챙겨가자. (몰론 현지에서 구매해도 상관없다.) 단기여행으로 왔다면[18] 동전은 생기는 족족 바로 써버리는 것이 권장되기 때문이다. 일본은 거래 상당수가 세금별도(税別, 제-베츠. 원가의 10%이다. 주류를 제외한 식료품은 경감세율이 적용되어 2019년 9월 이전처럼 8%로 유지된다.)라서 동전이 발생하기 쉬운 구조이다. 때문에 한국에서처럼 습관적으로 지폐를 계속 깨기만 하면 막판에 동전주머니가 심히 두둑해지는 결과를 맛보기 쉽다. 더불어 일본은 법률상 동일권종 20장 초과분은 인수를 거부할 수 있고, 푼돈인 1엔과 5엔짜리는 자판기도 먹지 않기 때문에 쌓이게 되면 처치가 상당히 곤란해진다.

아래 동전 사용에 관한 유용한 팁을 몇가지 서술해둔다.

  • 현금을 낼 때 물건값은 지폐, 세금은 동전으로 처리한다고 생각해두자. 예를 들어 756엔(원가 700엔 + 세금 56엔)이라면 1000엔짜리로 700엔을 계산하고 세금 56엔은 어떻게 조합하든 동전을 맞춰서 내보자. (적어도 5엔 동전은 나오지 않게끔.) 동전 찾느라 시간을 질질 끄는 것이 걱정될 수도 있겠지만, 일본인들도 평소에 자주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차분하게 행동하면 된다. 속심까지는 몰라도 겉으로는 절대 욕 안 한다. 독일에서 1센트, 5센트 동전을 처분해 본 사람이라면 익숙할 것이다...
    • 만일 5엔짜리가 많이 쌓였다면 20장인 100엔까지는 커버가 가능하니 100엔 미만은 모조리 5엔짜리로 처리한다 생각하고 써버리자. 예로 756엔이라면 5엔 12장(60엔)을 내버리자. 동전 세는걸 점원이 귀찮아할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일본에서 점원이 그런 서비스 태도를 보인다면 곧 망할 가게나 다름없다. 過労死의 주범 중 하나...일지도?
    • 정말 귀찮은건 1엔짜리인데, 이게 쌓였다면 최대 20엔까지는 커버가 가능하긴 하다만 이건 역시나 20진법으로 계산하기 많이 귀찮다. 따라서 끝자리 1엔 단위를 처리하는 용도라 생각하는게 좋다.[19] 예를 들어 756엔이라면 1000엔 지폐를 내든 100엔 동전 8개를 쓰든 상관없이 나머지 6엔을 모두 1엔 6장으로 써버리는 것.
  • 만일 동전을 20장 넘게 지불하는 경우, 캐셔에게 양해를 구하는 말을 더하자. 대략 “코마카이데스가...”(細かいですが…)라고 하면서 건네면 된다. 단, 캐셔가 거절하면 받아들여야 한다.
  • 신사 새전함에 무더기 투척으로 써버리는 방법도 있긴 하다. ▶농담이 아니고 일본인들이 실제로 유용하게 써먹는 방법이기도 하다.
  • 10엔 단위로 모아다가 우마이봉을 시리즈별로 사먹어보자. ▶우마이봉은 한국에서 개당 300원 선에 팔리고 있지만 현지에선 개당 10엔이다. 가끔 가다가 세일하면 9엔에 파는 경우도 있다.
  • 여행 막판에는 신용카드나 페이(Pay) 같은 전자결제를 최대한 활용하는 것도 좋다. 경제 규모에 안 맞게 카드 안 받기로 유명한 일본이지만, 2020년 도쿄 올림픽이후로 카드 인프라를 확충하려고는 했는데 지금도 미미한 편이다.
    • 아니면 IC카드 등에 충전을 때려박아서 쓰자. 가장 흔한 교통 카드같은 경우, 편의점에서 충전(챠지)해달라 하면 된다. 아니면 포켓체인지 라는 키오스크를 이용하면 5엔,1엔 단위 충전도 가능하다.

만일 출국날까지 동전을 다 쓰지 못했다면 아래 두 가지 방법 중 하나를 이용해보자.

  • 공항 면세점에서 모조리 써버린다. 공항에 있는 가게들은 외국인들이 동전을 곤란해하는 것을 대부분 이해하고 있어서 동전이 한 가득이어도 크게 불평하지 않는다. 모자란 값은 카드로 처리. 선박편인 경우엔 유류할증 및 항구이용세 지불시에 쏟아부으면 되는데, 이때는 카드 지불이 불가능하니 주의.
  • 미국 달러로 바꿔버린다. 일본 입장에선 일본 동전은 엄연히 자기네 돈이기 때문에 딱히 걸릴 것이 없고, 환전업무 만큼은 동전교환으로 인한 수수료를 걸고 넘어지지 않는다. 더군다나 달러는 일본에서도 수요가 많아서 합리적인 거래가 가능하며, 100엔~120엔 단위로 처리할 수 있어서 잔돈도 거의 남지 않는다. 다만 환전수수료가 한국과 마찬가지인 관계로 약간의 손해는 감수해야 한다. 그래도 한국에 와서 반값에 넘겨버리는 것 보다는 훨씬 나을 것이다.
  • 몇몇 국제공항에는 동전 소진을 위한 가챠와 상품권 교환기가 비치되어 있다. 상품권 교환기에서는 애플 아이튠즈 카드, 아마존 기프트 카드, 교통카드 충전 등을 할 수 있다.

정 못 쓰고 한국에 들고 들어와 버렸다면 일본에 가는 지인에게 증정하거나, 다음 여행 때까지 놔두거나,엄청난 손해를 보고 원화로 환전하거나, 필요로 하는 사람과 교환하는 방법밖에 없다. 일본에 자주 가는 경우가 아니라면 어느 쪽도 처분하는 입장에서는 썩 편리한 것이 아니니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

전통의 철옹성 통화 (환율추이)[편집 | 원본 편집]

세계적으로 안전한 통화로서 유명한데 대개 미국 달러유로가 약세에 빠지면 엔화의 수요가 급증한다. 그러나 이런 인식과는 달리 일본 내부에서는 심심하면 되풀이되는 디플레이션엔다카(円高) 현상으로 고생하고 있으며, 1989년 버블경제의 후유증으로 엄청난 국가부채를 떠안고 있어[20] 언제 모라토리엄 선언을 할까 위태로운 통화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엔화 수요가 폭발하는 것은 나름 세계를 좌지우지하는 경제대국(G8)의 통화라 완전히 망할 것이라는 생각을 그다지 하지 않으며, 달러나 유로 등과는 달리 내수가 강한 특성 및 대외 영향력 없이 자체적으로 양적 조절이 가능한 점에서 변동 예측이 쉽고, 동시에 그 수량이 충분히 많기 때문이라 분석한다.

근래 변화를 살펴보면, 2015년 말까지 10원/엔 내외로 움직이다 서서히 도로 엔다카 현상이 일어나더니, 이를 보다못한 쿠로다 총재가 2016년 1월 마지막 주에 기어코 부인하던 마이너스 금리를 단박에 결정한 이후로 딱 4일 동안(주말 포함)은 다시 9원대(121엔/USD)로 폭락하는 매직을 선보였다. 그러나 1영업일이 지나자마자 도로아미타불(...) 동년 1월(118엔/USD)보다 더 큰 값으로 엔다카를 실현하면서 115엔을 저지하겠다는 야망도 온데간데 없이 사실상 포기하면 편해모드. 3월 중에 105엔까지 떨어지더니, 다시 110엔으로 소폭 상승했다가 도로 떨어지는 등 줄타기를 하는 사이, 지구 반대편에서 브렉시트가 현실화 되자 안전자산을 보유하려는 투자가들이 엔화로 모여들면서 또다시 초강세(엔다카)의 재앙이 펼쳐지고 있다. 아베와 쿠로다는 이제 아라카와 강이 따뜻한지 수온을 잴 때가 온 것 같다.

2016년 11월 8일(미국 시각),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의 득표율이 기존 예상과는 달리 승승장구하자 미국은 이미 끝난 줄 알고 동아시아 증시가 패닉에 빠졌었다. 도널드는 특히나 한국과 일본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이 강한 후보이기에 이 두 나라의 증시가 가장 큰 피해를 보았는데, 그럼에도 엔화 자체의 환율은 3%나 강화되는 전혀 신기하지도 않은(?) 이변를 보였다. (덧붙여, 동시기의 한국 원화는 2% 이상 떨어졌다. 즉, 엔-원 환율은 5%이상 벌어졌다. 그리고 한국의 오덕들이 미쳐가고 있다.) 하지만 한 달이 채 되기 전에 미국측이 금리 인상 카드를 꺼내면서 상황은 역전, 반대로 달러에 대한 투자기대심리를 부추겨 상대적으로 정적인 엔화의 인기가 식어 도로 떨어지게 되었다. 2016년 11월 말 현재 환율은 10.5~7원/엔 정도이다.

2017년에는 아베 신조가 재선에 성공하면서 양적 완화 기대감이 높아져서인지 엔화 가치가 떨어지고 있다. 게다가 급격한 원화 가치 절상으로 11월 초의 연초 대비 엔화 가치는 똥값 수준을 기록했고, 4월 중순에 (작년 11월 만큼은 아니었지만) 다시 고점을 찍었다(...)가 튕겨져 내려왔다. 그럴때마다 아베와 쿠로다는 온갖 머리를 싸매며 있는 듯 없는 듯한 달러와의 기싸움을 벌였고, 이에 휩쓸려 만든 파도가 10월까지 이어지다 다시 11월 경부터 미국의 금리 하락 소식으로 인해 엔화가치도 하락, 이듬해 2018년 1월 2일에 최저점인 940원대를 찍고 다시 반등하여 동년도 2월에는 1000원대를 가리키고 있다. 겨울 쇼군과만 친한 엔화값의 냉각력 다만 원화와의 비교에서 볼 때 그렇게 보이는 것이고, 달러화와 비교할 경우엔 10년 전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당시의 70~80엔/USD 대비 계속 100엔/USD를 상회하면서 대체적으로 엔다카 현상이 완화되어 있다고 보고 있다. 파동은 치지만, 나름 노력은 통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북한이 끼어들면 사정이 달라진다. 북한이 성나서 동해로 미사일 뻥뻥 쏴주면 전쟁 위협에 겁먹고 외국인이 빠져나가기 때문에 엔저 현상이 일시적으로 나타난다. 우스갯소리로 일본 총리가 북한에 미사일을 주문한다는 말도 있다. 하지만 이것도 옛말이 될 것이,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이후로 빠르게 남북 화해 무드가 진행되어, 미사일 구매(?)가 어려워졌다.

2019년 7월 말 한국 경제제재를 구현함에 따라 한-일 무역충돌이 일어났는데, 그 직후 하루이틀 만에(8월 1일 ~ 3일) 원화는 5% 가까이 떨어진 반면, 엔화는 그리 큰 영향을 받지 않고 미-중 무역충돌에 힘입어 109엔/USD에서 106엔/USD까지 조용히(?)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2020년대의 이변[편집 | 원본 편집]

2020년 1월 경, 코로나19의 발발로 중국이 초토화되자 달러 사재기가 일어나서 상대적으로 엔화가 살짝 떨어지기는 했는데, 3월 경에는 미국과 유럽에서 더 크게 번지는 바람에 달러가 물러가고 엔화의 인기가 폭주하였다. (110엔/$(1~2월)→103엔/$(3월)) 그러나 올림픽 연기+수익 하락이 사실상 확정되었고, 그동안 숨겨왔던 확진자가 급증하여 점점 부정적으로 돌아서기 시작하였다.

2021년에는 병원균의 변이가 계속적으로 발생하자 일본 정부 차원에서 아예 강력한 쇄국정책을 펴버렸고, 유학생 급감 및 인력 관리에 차질을 입은 수많은 외국 기업들이 견디지 못하고 일시적 사업 중단을 하는 등으로 엔화 수요가 급감하자 도로 110엔대로 돌아가는, 확실하게 떨어진 지표를 보이게 된다. 문제는 그 사이 일본이 전염병 우려로 얼어붙은 내수 시장의 안정화를 위해 내부적으로 돈을 엄청나게 풀었고, 따라서 해외로 진출한 일본기업들도 외화의 엔화 환전에 소극적으로 변했다는 점이다.

2022년 2월의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으로 다시금 엔화가 안전자산으로서 기능할 것이라 예상했으나, 이미 앞서 엔화의 인기 하락, 지나친 양적 완화가 맞물려 오히려 더 가파르게 하락하였다. 3월 말엽에 다시 120엔대를 넘김에 따라, 1998년(태국발 외환위기), 2007년, 2015년(아베노믹스) 이후로 다시 엔저시대가 돌아오게 되었다. 2022년 10월 20일에는 잠깐이지만 엔달러 환율이 150엔을 뚫었는데, 이는 헤이세이 버블의 절정이던 1990년에 처음 찍었던 이래로 32년만인지라 진지하게 엔화 위기론이 거론되기도 했다. 이와 같은 결과의 원인은 일본은행과 미연방준비은행의 기준금리 차이로 인해 각 통화의 수요가 극단적으로 벌어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사실상 정론으로 통한다. 이 때문에 원화 대비로도 엔화의 약세가 더욱 두드러지며, 졸지에 원-엔 환율이 2015년 원화 강세 수준으로 떨어졌다.

2023년 3월에 미국 실리콘밸리 은행 파산이 기폭제가 되어 달러 약화의 반작용으로 엔달러가 130엔 아래로 떨어지나 싶었으나, 장기 디플레이션의 후폭풍으로 인해 일본 경제도 예전만큼의 명성을 회복하지는 못하던 까닭에 한 달 사이에 130엔 후반대로 올라와 줄다리기에 들어갔다. 하지만 일본은행은 정책 변화를 계속 주저하였고, 그런 모습에 해외 자본계가 실망했는지 대략 1년 뒤인 2023년 10월 25일에 다시 150엔을 넘기게 된다. 이와 같은 장기간 엔저 현상은 일본 내 수입품 물가 상승을 초래하여, 원가 때문에 일본 내 오렌지주스 공급이 중단되는 초유의 사태가 나타나기에 이른다.[21]

자비없는 송금 수수료[편집 | 원본 편집]

일본 엔은 해외발 송금 혹은 해외로의 송금이 매우 비싼 것으로 유명하다. 사실 방법 자체로는 그리 어렵지 않지만, 수취 수수료나 송금 수수료가 무시무시하기 때문에 그렇다. 해외발 수취를 기준으로 할 때 대부분의 일본 소재 은행에서 취급수수료로만 1500엔을 가져가고, 엔화 취급(환전) 수수료로 최저 2500엔을 잡아놓고 있다. 즉, 4000엔 미만으로 송금하면 경우에 따라서는 본전은 커녕, 되려 은행에게 수수료 헌납을 해야한다는 뜻.

그나마 한국의 시중은행은 일본의 시중은행과 업무협약을 맺은 곳이 많아서 그나마 수월한 편이지, 그 외 국가에서 중계은행을 놓고 송금하면 그 수수료로 2~3만원 가량 부담금이 생겨서 더더욱 답이 없다.

때문에 일본으로 송금할 일이 있다면, 정말 어지간한 경우가 아닌 이상은 SWIFT 송금을 멀리하고, 페이팔이나 스크릴, 혹은 ○○페이 등의 전자화폐를 이용한 송금을 하는 것이 여러모로 심신에 좋을 것이다. 문제는, 받는 쪽에서 그걸 또 받아줄까가 문제지만...

현찰 시리즈[편집 | 원본 편집]

일본은행권의 시기별 구분은 한자 표현상 '알파벳+호권 (~号券(ごうけん))' 이고 가타가나로는 알파벳+시리즈(Series, シリーズ)의 표현을 사용한다. 즉, 현행권은 E호권 혹은 E시리즈. (E号券=Eシリーズ)

지폐는 1946년(쇼와 21년) 이후로 발행한 권종, 동전은 1948년(쇼와 23년) 이후 발행한 권종이면 모두 유통(사용)이 가능하다. 단, 액면가가 1엔 미만인 경우에만 사용할 수 없다.

동전[편집 | 원본 편집]

¥1, ¥5, ¥10

¥1, ¥5, ¥10, ¥50, ¥100, ¥500의 6종 구성이며 ¥1까지도 골고루 사용된다. 다만 ¥1가 쓰이는 건 나중에 붙이는 소비세 문화로 인해 단위가 정확히 0으로 떨어지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쓰게 되는 것일 뿐이기에 실제로는 골칫거리 취급이다. 자판기도 ¥1, ¥5 동전은 먹지 않다보니 일본에서 살다보면 자연스레 ¥1 & ¥5 동전이 순식간에 불어나게 되어 처치 곤란한 지경에 빠지기도 한다. 은행(ATM 포함)에 먹이면 해결되긴 하나, 평일 9시~18시 제약이 있기에 정말로 날 잡아서 갈 정도로 애물단지.

은행창구에서 동전→지폐 교환시 수수료를 떼므로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경우도 있다. 예로 1엔짜리 200개를 가져가는 바람에 수수료가 324엔[22] 나와서 되려 돈을 더 줘야하는 상황이 된다든가(...) 자동화기기를 이용하거나 그냥 통째로 입금처리 하거나, 아니면 수수료 면제범위인 20개~100개 단위로 나눠가며 바꿔야 한다.

그렇다면 한꺼번에 사용하면 되지 않나 싶어도 그게 불가능한게, 한국과 달리 일본 법률에선 상거래시 한번에 동전을 20개 이상 처분하지 못하게 했기 때문이다[23]. 간단히 말해 1엔짜리 동전을 사용시엔 암묵적인 동의가 없다면 20엔까지만 결제를 받아들일 수 있다는 뜻이다. 즉, 월급을 동전으로 지급하거나 계산할 때 동전으로 지급하면서 떙깡부리는 짓이 법률적으로 불가능하다.

변천사[편집 | 원본 편집]

1948년 이후 발행분에 한하여 기재. 보다 이전에 발행된 동전에 대해서는 일본제국 엔 항목을 참조.

  • ¥1 : 20mm * 1g 알루미늄화. 쇼와 30년(초판, 1955)
    • 단 한 번도 소재와 도안이 변경되지 않고 지금까지 이어졌다. 한국의 신 10원처럼 작고 가벼워서 막 다루다간 자칫 잃어버리기 쉽다. 도안은 어린 나뭇가지.
    • 사실은 1948년도에 발행된 황동화 1엔 동전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는 구 일본제국 당시의 체계를 계승하는 차원에서 발행한 것이라 현대 엔화체계에서는 카운트되지 않고, 1954년으로 넘어가기 직전에 발효된 소액전 정리법에 의해 걸러져서 통용이 중지되었다.
  • ¥5 : 22mm * 3.75g 도넛형 황동화. 쇼와 23년(초판, 1948), 쇼와 24년(2판, 1949), 쇼와 34년(3판, 1959)
    • 초판은 구멍이 없었다가 바로 다음 해부터 구멍이 생겼다. 쇼와 34년 이후부터 五円의 글자체가 지금의 고딕체로 바뀌었다. 2판 5엔화는 극히 드문 확률로 시중에서 볼 수 있으나, 구멍이 없는 초판은 딱 1회만 발행되어서 시중에선 볼 수 없을 정도로 귀한 편이다. 도안은 논 위에 심어진 고개숙인 벼 한 포기.
    • 아라비아 숫자나 로마자가 전혀 쓰여있지 않은게 특징. 일본어로 발음이 ご縁(인연)과 동일하여 이쪽 관련 네타로서 자주 이용된다.
  • ¥10 : 23.5mm * 4.5g 적동화. 쇼와 26년(초판, 1951), 쇼와 34년(2판, 1959년)
    • 구리의 비율이 95%에 달하여 사실상 동화(구리화)나 다름없다. 그래서인지 원래 모습은 짙은 적색이지만, 세월이 조금만 지나도 구리구리한 갈색으로 변색된 채로 많이 돌아다닌다. 도안은 교토부 우지시에 있는 뵤도인(平等院)의 호오도(鳳凰堂).
    • 도안 자체는 변경점이 없지만 테두리가 톱니무늬에서 민무늬로 바뀌었다. 그렇지만 출현율이 극도로 낮은 다른 동전들 구권에 비해 나름 괜찮은 확률로 톱니무늬 10엔이 유통되기도 하는데, 이런 초판 10엔화를 기자주(ギザ十)라고 부른다. 자판기가 허용하는 최소액권이다.
  • ¥50 : 21mm * 4g 도넛형 백동화. 쇼와 30년(초판, 1955), 쇼와 34년(2판, 1959), 쇼와 42년(3판, 1967)
    • 5엔처럼 초판에는 구멍이 없었다가 2판부터 구멍이 생겼다. 도안은 국화(菊)인데 초판에는 옆모습의 만국화, 2판은 윗모습 만국화, 3판(현재)는 소국화로 바뀌었다.
    • 나름 활용가치가 있는 가격대에 비해 크기가 매우 작고, 보조용 이외로는 잘 쓰이지 않아 조우율이 낮다. 더불어 인지도도 가장 낮은 편.
  • ¥100 : 22.6mm * 4.8g 백동화. 쇼와 32년(초판, 1957), 쇼와 34년(2판, 1959), 쇼와 42년(3판, 1967)
    • 초판과 2판은 은화(순도 60%), 3판은 백동화이다. 동전 자체의 가격 때문에 초판과 2판은 사실상 시중에 돌아다니지 않는다. 도안은 초판은 봉황, 2판은 벼 한 포기, 3판은 벚꽃 3송이다.
    • 가치면에서 가장 대중적으로 쓰이는 동전이며 대표적인 일본 동전의 얼굴마담이지만 대부분의 거래에서 소비세가 별도인 관계로 이 동전 1개만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의외로 없다. 게임센터(=게센, 오락실)에서 쓰이는 1코인의 단위이기도 하다.
  • ¥500 : 26.5mm * 7g 니켈황동화[24]. 쇼와 57년(초판, 1982), 헤이세이 12년(2판, 2000), 레이와 3년(3판, 2021년)
    • 초판은 백동화였는데, 스펙이 한국의 500원 동전과 같아서 자판기가 구별을 못하는 문제가 발생하자 일본은행이 한국은행과 담판을 벌인다. 하지만 500엔이 한 발 늦게 발행되기 시작한 것으로 밝혀져[25] 일본 측에서 개정판을 발행하게 되었다. 도안은 오동나무. 2021년 신주화에서는 1유로 주화처럼 황동띠가 들어간다.
    • 전 세계에 통용되는 주화들 중 가치면에서 최상위권에 속하는 동전이다. (이것보다 가치가 높은 것은 스위스 5프랑 동전 뿐이다.) 게임센터를 제외하여 일상적으로 흔히 '원코인'이라 불리는 것은 바로 이걸 가리킨다. 일본인들이 동전지갑을 필수품으로 들고다니게 만든 원인 중 하나.
Japan Mint Sets 2019 002.jpg Japan Mint Sets 2019 001.jpg
앞면 뒷면 (헤이세이 31년 (2019년 4월까지) 민트)

예정 : 레이와 시대 신권 (F호, 2024 ~ )[편집 | 원본 편집]

2019년(헤이세이 31년)[26] 4월 9일 오전, 도쿄 카스미가세키 청사에서 신권(F호권) 계획을 발표하였고, 계획대로라면 2024년(레이와 6년) 7월 3일에 발행이 예정되어 있다. 2천엔권은 수요가 없다는 이유로 E호권에 이어 이번에도 신규 발행은 하지 않기로 했다.

1만엔권 모델로 시부사와 에이이치가 선정되면서, 헤이세이 시절 고액권의 상징이던 후쿠자와 유키치(a.k.a. '유키치상(諭吉さん)')의 이미지를 넘겨줄 예정이다. 1천엔권 과학자 모델에선 노구치를 대신하여 키타사토 시바사부로가, 5천엔권 문인(文人) 모델에선 히구치를 대신하여 츠다 우메코가 들어가는데, 적어도 일본사 시간에 졸지만 않았다면 시부사와가 일본인에게 있어서는 이름 정도는 들어봤을 유명인인데 반해, 키타사토 및 츠다는 대중적인 인지도가 많이 낮은 편이었다. 때문에 두 인물의 고향마을 및 대학(도쿄의과대학, 츠다주쿠여자대학)에서는 유명해짐에 따라 뭔가 덕을 좀 볼 수 있겠다며 환영 플랜카드를 내걸기도 하였다.

일본 엔 F호(6차) 시리즈 (2024년판)
¥1,000 기타자토 시바사부로 ¥5,000 츠다 우메코[27] ¥10,000 시부사와 에이이치
1000 yen obverse scheduled to be issued 2024 front.jpg1000 yen obverse scheduled to be issued 2024 back.jpg 5000 yen obverse scheduled to be issued 2024 front.jpg5000 yen obverse scheduled to be issued 2024 back.jpg 10000 yen obverse scheduled to be issued 2024 front.jpg10000 yen obverse scheduled to be issued 2024 back.jpg
우키요에 「가나가와의 큰 파도 등꽃 그림 도쿄역 (마루노우치 방면)

현행권 : 헤이세이 시대 발행분[편집 | 원본 편집]

80년대 중후반 엔달러 환율 (버블 경제 절정기)

1984년(쇼와 59년) 11월 1일, D호권 신 시리즈가 기존의 지폐들을 통째로 교체하였으며, 이후 무려 20년 가까이 발행 및 유통되었다. 이때 그동안 쇼와 시대 고액권의 상징인 쇼토쿠 태자는, 후쿠자와 유키치에게 그 역할을 넘겨주게 된다.

당시 일본은 저렴한 엔화가치(240~260엔/$)와 이를 악물고 발달시킨 2차 산업의 연계 플레이를 통해 저렴한 값으로 양질의 제품을 잔뜩 수출시켜 외화를 벌어들이는, 그야말로 전례없는 황금기를 누리고 있었다. 반면 기존 공업의 강자였던 미국은 일본과 유럽(특히 독일)의 덤핑 공세를 받아 스태그플레이션 직전의 단계까지 몰렸었고, 때문에 1985년 9월 22일의 플라자 합의를 결의시켜 달러 평가 하락을 용인[28]하게 되어, 그 반작용으로 엔화 가치가 최종적으로 50% 이상 올라가게 된다.

실은 도중에 1987년 2월의 루브르 합의[29]를 통해 진정시키려 했으나 별 효과는 없었다. 난데없는 엔화 가치의 급상승(엔다카)은 문자 그대로 가치가 폭등하는 돈이 되었다는 의미로, 일본인들의 외화 보유를 감소시키고 외국인의 엔화 요구가 크게 증가함에 따라 일본 국내로선 남아도는 외화를 어딘가 내보내야만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엔다카로 수출이 매우 지지부진해지자 경제정책이 내수 기반으로 돌아가게 되었고, 환율 때문에 일본 돈을 와장창 찍어내어 인플레이션이 일어나는 시나리오를 방지하고자 기준 금리도 대폭 낮추어※50%(2.5%p) 감소 수요를 낮추려 하였다.

그렇지만 그게 의도와는 정반대로 효과가 일어나, 금리인하 → 대출금리인하로 이어지는 바람에 기업 규모의 대출이 폭증하게 되었다. 그렇찮아도 일본 내에선 80년대 초중반 호황으로 부동산 투기가 만연하였기에 일본 국내외 부동산에 대출자금이 몰려 특히 국내 부동산의 시세가 폭주하였고, 시중은행 차원에서도 남아도는 외화로 해외투자 및 차관[30]을 해주거나 해외 부동산을 쓸어버리는 등으로 펑펑 써대기 시작하였다.

그러던 1990년(헤이세이 2년) 정월정일을 기점으로 줄곧 매입으로 쌓이기만 하던 주식/부동산 등이 매물로 대거 풀렸고, 지속되는 수출부진[31] 및 외화유출이 부담되던 정부도 부동산 대출 규제를 동년도 3월에 시행시켜 부동산 거품을 꺼트리기 시작했다. 이를 기점으로 일본은 소위 '잃어버린 10년 (헤이세이 불황, 디플레이션)'이 시작되었는데, 그 절정은 간접적으로 받은 1997년 말 태국발 외환위기로 인해 마이너스 경제가 된 때이다. 신규 대출도 없고 해외 투자처를 긁어도 한 푼 못 건지는 상황이 되자 적잖은 시중은행이 도산하였고, 부동산으로 재력을 유지하던 상류층 및 기업들도 대거 몰락하여 실업자도 대량으로 발생한 탓에 진심으로 돈 쓰기 무서운 상황이 되자, 일본 경제에 돈이 돌지 않는 빙하기가 닥친다. 그게 디플레이션을 더욱 가속시켰으며, 엔다카 현상[32]을 더욱 장기화시키고 동산(動産)을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양극화가 심화되는 악순환이 이어져, 잃어버린 10년이 20년, 30년 등으로 장기화시키는 원인이 되었다.

니혼 엔 - 헤이세이 시리즈 (D/E, 1984 ~ 2004 ~ 2024)
¥1,000 (千円) ¥5,000 (五千円) ¥10,000 (壱万円)[33]
E호권
(H16~R5)
Yen51.jpgSeries E 1K Yen bank of Japan note - back.jpg JPY503.jpg5000 Yenes (2004) (Reverso).jpg Yen53.jpg10000 Yenes (Reverso).jpg
노구치 히데요 (野口英世)
후지산[34]벚꽃
히구치 이치요 (樋口一葉)
오가타 고린作 제비붓꽃그림[35]
후쿠자와 유키치 (福沢諭吉)
뵤도인(평등원)봉황당의 봉황
D호권
(S59~H15)
1000 yen Natsume Soseki.jpgSeries D 1K Yen Bank of Japan note - back.jpg Yen43.jpgSeries D 5K Yen bank of japan note - back.jpg Series D 10K Yen Bank of Japan note - front.jpgSeries D 10K Yen Bank of Japan note - back.jpg
나쓰메 소세키 (夏目漱石)
두루미 두 마리
니토베 이나조 (新渡戸稲造[36]) & 태평양
후지산소나무
후쿠자와 유키치
(장끼까투리)
¥2,000
(D호권)
Yen42.jpg 2000 Yen Murasaki Shikibu.jpg 슈레이몬 (守礼門)
--
무라사키 시키부 (紫式部)
겐지모노가타리 에마키 삽화/글[37][38][39]
  • 2000년 7월 19일에는 새천년(밀레니엄)을 기념하는 것과 동시에 G8 정상회담 개최를 기념하여, 오부치 케이조(小淵惠三)의 제안으로 은근히 일본 내에서 소외된 지역이던 오키나와를 소재로 하는 2천엔권이 발행되었다. 하지만 결국엔 (본토 한정으로) 이 지폐 자체가 소외된다...
  • 2000년까지는 대장성인쇄국(大蔵省印刷局)에서 발행하였으나, 2001년 1월에 재무성인쇄국으로 명칭을 변경하고, 2003년 4월에 국립인쇄국으로 다시 인쇄소의 명칭을 변경하였다. 단, 2000엔권은 해당사항이 없다.
  • 2003년에는 차세대 신권(E호권)을 준비하느라 추가 인쇄를 일시적으로 멈췄고, 2004년(헤이세이 16년)에 메인 인물을 교체하고 보안요소가 강화된 E호권이 본격적으로 등장하여 세대교체를 알렸다. 다만 후쿠자와 유키치는 그대로 1만엔권의 모델을 유지하였다.
  • E호권에 들어가는 인물로는 서로 이름이 비슷한 노구치 히데요(野口英世)와 히구치 이치요(樋口一葉)가 올랐는데... 둘 다 유명세를 타면서 운명이 갈려버린 것이 특이점이다. D호권에서 개화기 유명 문인(文人)인 나츠메 소세키(夏目漱石)를 대신해 등장한 노구치는 천하의 개쌍놈으로 재평가 되면서 시원하게 욕바가지를 먹었는데, 공기급 인지도로 마친 니토베 이나조(新渡戸稲造) 대신 등장한, 마찬가지로 대중들에게 있어 무명에 가까웠던[40] 메이지 여류문인의 히구치는, 아주 제대로 홍보되면서 인물 자체가 재조명되었다. 열도의 흔한 여존남비 현상


  • 참조 : 여기서부터 아래의 지폐는 1엔 이상 권종에 한하여 일본 국내에서의 사용(유통)이 가능하다.
    • 그러나 대개 대면 거래 한정으로 가능하며, 자판기나 ATM 등에선 인식을 못할 수 있다. 또한 외국의 환전소(한국 포함)에선 A~C호 구권(때로는 D호마저)의 환전을 취급하지 않으니[41] 주의하자.[42]

쇼와 시대 구권 (B/C호)[편집 | 원본 편집]

B호는 1950년부터 발행, C호는 B호의 연장선으로서 1963년 전후로 도입되었다. 이 당시에는 고액권=쇼토쿠 태자라는 이미지가 있었는데, 후대(1984~2024)의 후쿠자와 유키치의 이미지와 동일하였다. 다만 5천엔/1만엔권은 당시 일본인의 감각으로도 상당한 고액권이어서[43] 주류로 쓰이는 고액권은 1,000엔권이었다. 때문에 창작물 등에서도 후기 쇼와 지폐의 이미지로 주로 1천엔권(가끔가다 이와쿠라 500엔권)이 그려지곤 한다.

사실 엄밀히 말하면 더 이전 구권인 A호권도 '쇼와 시대'의 구권이긴 하지만, A호권의 경우는 이미지적으로 '발전하는 쇼와 시대'라기 보다는, 제국이 망한 직후에 지독히 어려웠던 시절의 포지션에 더 가깝다. 그 A호권 지폐의 상징이 쇼토쿠 태자 100엔권(및 니노미야 1엔권)이었던 탓인지, 후기 쇼와를 묘사할 때 B호권의 쇼토쿠 1천엔보다는, C호권의 이토 히로부미 1천엔권을 좀 더 자주 채용하곤 한다.

그 C호권으로 개정 당시 1,000엔 이하 신규 및 기존 권종을 와시(화지)를 섞은 혼합소재(미색지)를 대신해 순면소재의 백색지로 바꿔 도입하였는데, 부작용이 더 많다는 조폐국의 판단으로 D호권부터는 다시 와시 혼합소재(미색지)로 회귀했다. 때문에 C호권은 다른 일본은행권과 촉감부분 등에서 이질적인 편이다.

1982년에 500엔권 동전이 발행되었음에도 C호의 이와쿠라 500엔권 지폐도 계속 발행되어 1984년에 D호로 개정된 이후로도 병행 통용되었으나, 1994년 4월부로 발행을 중단하였다. 이후 10여년간은 간간히 눈에 띄었으나, E호권 개정 무렵(2004년 전후)에 사실상 자취를 감추었다. 자판기 및 ATM 등에서 신권 취급을 위해 업그레이드 할 때, 500엔권을 취급하지 않는 방향으로 전환된 영향으로 보인다.

일본 엔 : 쇼와시대 (B호(2차)/C호(3차), 1950 ~ 1963 ~ 1983)
¥100 (B) 이타가키 다이스케
국회의사당 (도쿄)
¥500 (C) 이와쿠라 도모미
후지산
¥1,000 (C) 이토 히로부미
한국인중국인이 이 지폐를 싫어합니다.
¥10,000 (C) 쇼토쿠 태자
(뒷면 도안 없음)
Yen22.jpgSeriesB100Yen Bank of Japan note - back.jpg Yen31.jpgSeries C 500 Yen Bank of Japan note - back.jpg Yen32.jpgSeries C 1K Yen Bank of Japan note - back.jpg Yen25.jpgSeries C 10K Yen Bank of Japan note - back.jpg
¥50 (B) 다카하시 고레키요
일본은행 본청사 (도쿄)
¥500 (B) 이와쿠라 토모미
후지산
¥1,000 (B) 쇼토쿠 태자
호류지 유메도노 (법륭사몽전)
¥5,000 (C) 쇼토쿠 태자
일본은행 본관
Yen21.jpgSeries B 50 Yen Bank of Japan note - back.jpg Yen23.jpgSeries B 500 Yen Bank of Japan note - back.jpg Yen24.jpgSeries B 1000 Yen Bank of Japan note - back.jpg
Series C 5K Yen Bank of Japan note - front.jpg
Series C 5K Yen Bank of Japan note - back.jpg
  • 5천엔과 1만엔은 B호권과 유사한 디자인을 하고 있지만, 시기적으로 늦게 나온 탓인지(1958년) 백색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공식 분류상으로는 C호권으로 구분한다. 다만 시제품 발행은 B호 시기에 가까운 1953년에 이뤄졌었고, 당시의 1만엔에는 앞면 좌측에 A호권 100엔 뒷면에 있던 호류지(법륭사)가 들어가있었다.
    • 지금 시선에서야 50년대에 왜 10만원짜리[44]가 필요했을까?, 싶었겠으나 그 당시 대미 환율이 달러당 300엔이 넘어서, 미달러 환산액이 30달러도 채 안되었다.[45] 일본의 경제모델이 미국을 따르기도 하였고, 무역 의존도도 매우 높았기에 환전 편의를 위해서도 필요하였다.
  • 액면 자체가 낮은 A호권(및 공식적으로는 B호권 포함)을 제하고, 고액권 중에서는 가장 발행시기가 빠른 본 시리즈의 1만엔권(C호)가 가장 위조에 취약하기 때문에 위폐가 어느 정도 존재한다. 최근 사례는 2010년대 초반 대만발 위폐로, 한국에도 일부가 흘러들어와 소소하게 뉴스거리가 된 적이 있다. 진폐에 비해 아주 약간 푸른빛깔을 띄는 것이 특징이지만, 직접 대조하지 않는 이상은 눈에 띄지 않아서 취급시에는 대단히 주의가 필요하다.
  • C호권 1000엔(1963년)에는 원래 시부사와 에이이치가 들어갈 예정이었으나, 어른의 사정으로 이토 히로부미로 바뀌었다. 시부사와의 등재는 그로부터 60년의 세월이 지난 2024년(F호)에서야 이루어졌다.
  • 토요사토미미노 미코가 든 나무패는 C호권(1만엔)의 쇼도쿠 태자를 보고 그렸다고 원작자 ZUN이 직접 밝힌 바 있다.

A호권 (1946~1949)[편집 | 원본 편집]

1946년부터 도입된 시리즈이나 시대적으로 B호권과 혼용되기도 하였고, 발행 순서도 뒤죽박죽으로 되어 있어 연대구분은 명확하지 않은 편이다. 엔의 보조단위인 '센(銭)'단위도 발행했었지만, 1953년 법률 제 60호 "소액통화의 정리 혹은 지불금의 단수계산에 관한 법률"의 제정에 의해 금지되었다. 무분별하게 발행된 일제 엔화 및 군표를 일제히 정리하는 대가로 만들어진 대체통화이다. 대략 두 엔화간의 가교같은 역할을 한 권종이라 보면 된다.

1946년(쇼와 21년) 일본은 태평양 전쟁의 패전으로 과거 일본 제국이 뿌린 돈이 너무 많아 사실상 경제적 파탄으로 이어지던 시기였다. 당시 총리인 요시다 시게루는 예금봉쇄를 명령하였다. 기존의 모든 통화를 예금 이외로는 모두 무효화하고, 대신 신권의 인출을 당분간 1세대당 300엔[46] 및 1인당 100엔 인출의 제한을 둔 것.

63년 후 어떤 집단에서 시행한 정책과 닮은 것처럼 보이겠지만, 결정적으로 신용할 수 있는 예금이었기에 사회문제로 이어지지는 않은건 몰론, 성공적으로 인플레를 잡아내어 디노미네이션의 좋은 사례로 거론된다.

Nihon Yen A(1st) Series (1946~1949)
¥0.05 ¥0.10 ¥1
Yen11.jpg

매화나무

Yen12.jpg

비둘기

니노미야 손도쿠

¥5 ¥10 ¥100
Yen15.jpg Yen16.jpg

쇼토쿠 태자 (앞)
호류지=법륭사 (뒤)

  • A호권 10엔은 발행 당시 미국의 음모로 찍어낸 돈이라는 소문이 돌았는데, 그 근거는 아래와 같았다.
    • 앞면 좌측의 일본 국회의사당이 십자가 형태의 틀 안에 들어있다.
    • 앞면 우측의 국화무늬와 봉황※둘 다 일본 황실을 상징함.이 철책 안에 갇혀있는 형태를 띈다.
    • 앞면의 틀 형태 자체가 외곽선 따라 크게 보면 미국(米国)으로 읽히게끔 그려져 있다.
    • 뒷면 배경 쪽에 있는 작은 무늬들을 세어보면 48개[47]가 있어, 미국 국기의 별 = 미국의 주(州)를 나타내고 있다.
  • 100엔권의 경우, 신권(A호권) 발행이 늦어져서 기존 지폐에 인지를 부착하여 신권을 표기하는, 일종의 첨쇄권이 통용된 적이 있다.
  • 1945년 패전 직후 당시에는 급격한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1,000엔권도 발행 예정에 있었다. 총 3번의 시도가 있었다.
    • い천엔권(평판인쇄) : 크기 172 * 100mm, 앞면에 야마토타케루(우측), 타케베 대사 본당(좌측)[48]을 집어넣었다. 사실 1942년 발행된 갑호권 1000엔을 재활용한 것으로, 일제에서 일본국으로 변경되면서 뒤따르는 제반 기재사항을 적당히 손봤을 뿐이다. 그러나 당시 재무성 장관(大蔵大臣[49])이 실제 인쇄중이던 지폐들을 보고는 "이건 고액권 주제에 너무 허접해서 되려 헤프게 쓸 우려도 있고, 위조하기도 쉬워서 되려 화폐경제만 어지러워지고 물가 상승을 부채질하게 될 거다" 라고 쿠사리 조언하며 그대로 발행 계획이 엎어졌다. 하지만 그 전에 이미 나흘에 걸쳐 440만장(기번호 1~3)이나 인쇄를 해버렸기에, 기껏 찍어놓고는 전량 천공처리로 폐기하였다. 때문에 실물은 견본으로만 남아있다.
    • A천엔권(1945년, 볼록판인쇄) : 패전 후 급격히 증가하는 인플레를 잡기 위해 예금봉쇄 계획과 함께하던 권종으로, 12신장의 바사라 장군상을 사이에 두고 신 야쿠시지(新薬師寺)와 호류지 봉황&나비를 양쪽에 넣을 예정이었다. 그러나 당시의 정부인 미군정(GHQ)이 승인해주지 않아 계획이 엎어졌다.
    • A천엔권(1946년, 요판인쇄) : 일본제국 엔 폐지에서 일본국 엔으로 전환하는 과도기에 계획하던 고액권으로, 기존에 쓰이는 고액권이 당시 환율로 30센트[50] 가량밖에 되지 않아 불편함이 많았기에 GHQ의 인가까지 받아내어 의욕적으로 인쇄하려 하였다. 급하게 찍어내야 했기에 기존 제국시절에 쓰인 야마토타케루 도안의 갑 천엔권(甲千円券)에서 은행명만 바꾼 정도의 인쇄판을 그대로 쓰기로 하고, 대신 색상만 바꿔서 차별점을 두었다. 그러나 그 갑 천엔권의 인쇄판 뒷면에 남아있던 태환(兌換)문구가 문제되어[51] 배포 직전에 중단되고 만다. 그때 이미 약 540만장 정도 인쇄하였기에 실물이 남아있긴 하나, 천공처리 혹은 견양 낙인 후 폐기되어서 견양권으로만 남아있다.

이야기거리[편집 | 원본 편집]

  • 자동번역기에서 일본→한글로 번역시, 엔을 그냥 '원'이라 번역하는 일이 있다. 이 때문에 엔을 (환율이 적용된)원으로 착각하여 결제하였다가 참사를 당하는 경우도 있다. 이는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라 일본에서는 되려 10배 커진 엄청난 가격(...)으로 오해해 경악하고 구매를 관두기도 한다고.
  • 일본 엔화는 지폐와 동전을 막론하고, 지폐(E호권)에 숨겨둔 미세문자 'ニ', 'ホ', 'ン'[52]을 제외하면 히라가나가타가나가 단 한 글자도 쓰여있지 않다. 모두 로마자 아니면 한자로만 쓰여있는게 특징. 본격 자국문자 디스하기
  • 주조 및 조폐는 같은 곳에서 행해지나 동전은 일본국 정부에서, 지폐는 일본은행에서 발행하고 있다.
  • 일본 500엔 동전 구권(A)이 한국 500원 동전(A)과 규격이 거의 일치해서, 자판기의 판독기가 두 동전을 구별하지 못하는 일이 잦았다. 그래서 한국의 500원 동전을 가져와다 자판기에 넣어 쓰는 일이 허다하게 일어나자[53] 정부에서는 자판기에 500엔을 못넣게 조치하였다고 한다. 일본은행이 한국은행에게 왜 비슷하게 만들었냐고 항의했지만, 까놓고 보니 간발의 차로 500엔 동전이 500원 동전보다 늦게 나온 것이 드러나, 결국 일본 정부가 500엔 동전의 도안을 갈아치우게 되었다.[54][55]

특이한 원지(原紙)[편집 | 원본 편집]

엔화 지폐 자체의 특이점으로, 보통 면화나 플라스틱 소재로 만드는 다른 지폐들과는 달리 닥나무(ミツマタ)로 만든 와시(和紙)소재를 다량 함유한 전용 용지를 사용하고 있다. 때문에 전체적으로 펄프색[56]이고, 실제로 만져보면 다른 돈들보다도 '종이'라는 인상이 확연하다.

와시는 섬유질이 질겨서 일반적인 내구력이 좋기는 하나, 나무섬유 특성상 접힘으로 인한 찢어짐에 정말 많이 취약하여 험하게 쓰면 금이 쉽게 나거나 반쪽나기 쉬운 단점이 있다. 그리고 색감도 많이 수수하다. 그래서 내구도에 비해 유통수명은 짧은데[57], 일본 사회가 현찰을 무척 선호하는데다 낡은 지폐를 좋지 않게 보는 관습이 있다보니 순환이 굉장히 빠르게 진행되기에 그렇게 큰 문제로 보지 않는 듯 하다.

여담으로 돈 찍어내기 위해 일본 인쇄국이 사들인 닥나무는 거의 대부분이 네팔 등지에서 온 수입품으로, 2019년도 기준으로 일본산 6톤(톤당 330만엔 가량), 수입산 96톤(톤당 135만엔 가량) 정도라고 한다. 2024년부터 생산될 신권에는 원료 수급 안정화를 위해 일본산의 비중을 조금 더 높일 것을 계획하는 듯 하다.출처(일본어)

조선한테 무슨 감정이라도 있어요?[편집 | 원본 편집]

공교롭게도 인물 도안 자체가 드문 A호권을 제외한 나머지 시리즈에, 최소 1사람 정도씩은 한국인에게 불편한 인물들이 도안되어 있다. B호권에선 강경정한론자인 이타가키 타이스케를, C호권에선 그 유명한 이토 히로부미, D호권 및 E호권에선 일본 제국주의의 불을 붙인 후쿠자와 유키치, 그리고 F호권에선 조선 경제 침탈의 선구자인 시부사와 에이이치와 미국인과 조선인 사이의 일본인을 거론할 때 이중잣대를 표하던 츠다 우메코가 선정되었다.

사실 이런 해석이 가능한 것은, 일본 엔화에 도안 되는 인물 중 니노미야 손도쿠(A호권 1엔)와 전설의 쇼토쿠 태자 말고는[58] 전부 일본 근대화 이후 제국 시절에 활동했기 때문으로, 당시 시대상으로 일본이 조선을 바라보는 눈높이 자체가 더 이전 시대와는 전혀 달랐기 때문인 점을 고려해볼 수 있다.

또한 일본으로선 메이지와 다이쇼 시대의 인물 자료가 가장 풍부하고, 일본 자체로도 저 때부터 사회적으로 급속도 발전을 했음을 감안하면, (주로) 아시아 국가에서의 통념상 국민[59] 모두가 인정하거나 존경할 만한 지폐 인물의 선정에 있어 메이지/다이쇼 시대의 인물들을 적극 채용하는 것이 그리 이상하지 않다. 한국에서 일제 강점기나 근현대의 인물보다 조선 시대 인물을 적극 도입하는 것과 비슷하다.

각주

  1. 은근히 연예부 기사에서 JYP와 자주 혼동한다. 가끔가다 경제부 기사에서도 헷갈리곤 한다(...) 영진박 엔터테인먼트
  2. ¥(통화기호)를 쓴다면 숫자 앞에, 円(한자)를 쓴다면 숫자 뒤에 붙인다.
  3. 센 단위는 1953년부터 유통되지는 않고 있으나 환율 계산 등에는 지금도 쓰인다. 한국의 '전'단위와 취급이 같다.
  4. 일본은행과 함께 일본 정부와는 별개의 운영권을 갖는 국립기관(인가법인)이다. 도쿄에 본사가 있다.
  5. 동전 제조 및 발행을 전담하며, 일본은행과는 무관한 일본 정부 산하의 기관(정확히는 독립행정법인(独立行政法人))이다. 오사카에 본사가 있다.
  6. 구어체로는 상당수가 닛폰엔(にっぽんえん)이라고 읽지만, 정식으로는 "니혼엔"이라 읽는다. 하지만 정작 '일본은행'의 표기법은 닛폰긴코(Nippon Ginko)...
  7. 현지인들의 발음은 '르어번 위안(엔)으로 부른다.
  8. GHQ의 조사로는 당시 적정환율이 약 300엔/USD 내외였으나, 폐허나 다름없던 일본을 급속성장시킬 목적으로 추가 하향평가를 가한 것이다. 이 고정환은 1977년까지 유지되었다 변동제로 전환되었는데, 1989년 버블경제로 터지기 직전까지 계속 경제력에 걸맞지 않게 낮은 가치를 유지하여 지금의 일본을 가능케 했다는 분석이 있다. 대신 그 반동으로 버블 이후 엔다카를 불러오는 참사가 일어났지만...
  9. 획수가 많기 때문에 사용빈도가 잦던 중국과 일본에서는 각자가 간략화 시도를 하였다. 중국은 결론적으로 圆으로 축약하였지만 일본에서는 처음엔 口안에 ㅣ을 쭉 긋는 방식(...)을 쓰다가 조금 더 그럴싸하게 정비하는 과정을 통해 현재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10. 당연하지만 말만 그렇다는 거지, 진짜 건네주면 군말없이 받긴 한다.
  11. 2천엔권은 일본 현지에서 2003년부터 발행을 중단했기 때문에 점차 잔존수량이 줄어드는 중이다. 2013년 통계상 1억장이 유통되고 있는데, 이는 한참 옛날에 발행이 중단된 500엔권(약 2억장)의 절반밖에 안 된다. 그렇지만 일본은행측에선 사용을 계속 권장하고 있는데, 중앙은행 금고에서 잠자고 있는 2천엔권 재고가 굉장히 많기 때문이다. 오키나와는 사정이 반대로 사용량이 타 지역에 비해서 매우 활발한데, 2천엔권 자체가 제 26회 큐슈-오키나와 G8 정상회담으로 한동안 아오안이던 오키나와에게 관심을 불어넣기 위해 등장한 통화였기 때문이다.
  12. 한국으로 치자면 엔화를 아프리카,중남미,중동권 등 환전하기 어려운 화폐로 취급 하는것과 같은 개념이다.
  13. 예를 들어 일본 평균 환율이 100KRW/9엔 이라 치면 은행 환전소에서는 100원당 8엔40센 으로 치는등 어이 털리는 수수료를 자랑하기 때문이다.
  14. 다른 은행카드 대부분이 약 1% 수수료에 별도 인출수수료(건당 3천원 정도)를 부과하는 반면, 시티은행 현금인출시엔 0.1%에 건당 1달러만 내면 끝이다. 10만엔을 인출시 전신환값 제외하고 2천원으로 끝낼 것을 13,000원 주고 뽑아야 할 판이니...
  15. 약간만 쇼핑해도 1천엔쯤은 우습게 넘어간다.
  16. 자판기는 어지간하면 1천엔권만 먹는다. 몰론 식당 자판기나 전철 표 판매기같은 것은 1만엔권도 먹는다.
  17. 이때는 최대한 1천엔권으로 챙겨가는 것이 심신에 좋다. 구할 수 있다면 500엔 동전도 유용한데 당연히 한국에서는 거의 없다.
  18. 유학생이나 일본 거주라면 그냥 돼지에게 먹여뒀다가 ATM에 확 쓸어넣으면 장땡이니까.
  19. 어떤 마트에서는 아예 1엔 단위를 자체적으로 쿨하게 부담해주는 서비스를 시행하고 있을 정도로 귀찮은 존재이다.
  20. 자칫 국가부도에 빠질 뻔한 그리스의 수준보다도 높다(!)
  21. 오렌지주스 사태는 미국 내 오렌지 흉작이 더 큰 원인이기는 하지만, 결정적인 타격은 엔저에 있다.
  22. 수수료 300엔 + 세금 24엔의 구조. 일본은 은행수수료도 상거래에 해당하기에 세금이 붙는다.동전 처리하러 갔다가 동전 더 만들 기세
  23. 통화의 단위 혹은 화폐의 발행등에 관한 법률 제 7조(법화로서의 통용한도) 화폐는 액면가격의 20배까지를 한도로, 법정통화로서 통용한다. (貨幣は、額面価格の20倍までを限り、法貨として通用する。)
  24. 양은냄비의 소재와 거의 유사하다.
  25. 이 진실이 널리 알려지기 전까지는 혐한러들의 주요 레퍼토리(한국이 베낀 것 리스트)이기도 했다.
  26. 레이와로 넘어가기 이전이다.
  27. 츠다주쿠여자대학 설립자
  28. 해당 합의 자체가 과평가 된 달러값을 조정하는 걸 용인해달라는 내용이다.
  29. 달러의 계속적인 하락을 저지하기 위한 합의.
  30. 다만 해외투자 및 차관의 경우는 다른 과소비와는 달리, 버블 이후로도 유용하게 써먹게 되는 유산(?)이 되었기도 하다.
  31. 신흥 공업국인 한국의 영향이 크게 들어갔다.
  32. 버블 호황기를 계기로 엔화는 준기축통화가 되었는데, 이때부터 불황에는 엔화가 종종 100엔/US$ 미만으로도 떨어지게 비싸지고, 호황에는 상대적으로 싸지는, 그야말로 세계 경제 측정기가 되었다.
  33. 만(萬)단위를 읽을 때 '1'을 생략할 수 있는 한국어와 달리 일본어에선 생략할 수 없어서 '만'이 아니라 '이치만'으로 읽는다. 일본인 입장에서는 '만'단위만 언급하면 1만인지 2만인지 정확히 알 수 없기 때문. 예를 들어 ¥15000 (오천엔)은 이치만고센엔 (일만오천엔). 한국어도 억 이상부터는 동일하게 적용된다. (ex : 100,010,000 → "일억만 ("억만"(X)) / 이치오쿠이치만") 단, 천단위 이하는 숫자 '1'을 포함하여 읽어도, 읽지 않아도 무관하다. (ex : 10,000,000 → 잇센만(일천만) = 센만(천만))
  34. 후지산만 전문적으로 찍은 사진가, 오카다 고요(岡田紅陽)의 작품을 사용한 도안으로, D 오천엔권의 후지산 또한 마찬가지이다. 야마나시현의 모토스 호수(本栖湖)에서 촬영한 것이다.
  35. 尾形光琳(おがた・こうりん) - 燕子花図(かきつばたず)
  36. 도쿄여자대학 설립자
  37. 源氏物語絵巻第38帖「鈴虫」(겐지모노가타리 제 38장, 스즈무시)의 일부. 9개 구절 모두다 앞소절(윗부분) 나오고 뒷소절은 잘렸다.
  38. 해당 시를 현대어로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十五夜のゆふくれに仏のおまへ(보름달이 아직 그림자를 숨기고 있는 저녁 무렵 부처님 앞에) / に宮おはしてはしちかくなかめたまひつヽ念珠したまふわかき(황녀(온나산노미야)분이 납시게 되셔, 가까이 바라보며 불경을 외고 계십니다.) / あまきみたち二三人はなたてま(젊은 분들이 두세명, (황녀에게) 꽃을 보내드리고자) / つるとてならすあかつきのおとみつ(아카츠키(閼伽坏, 부처에게 바치는 공양수같은 것.)나 물의 소리를 내어서) / のけはひなときこゆさまかはりたる(속세를 벗어난 일에 열중하듯 보이도록 했으나) / いとなみにいそきあへるいとあわれな(매우 안 된 일이긴 하지만) / るにれいのわたりたまひてむしのねいとしけく(みたるるゆふへかなとてわれもしのひやかに念珠したまふ)(연례행사마냥 겐지가 와버렸으니 '곤충들의 울음소리가 많이 섞인 저녁이네요.' 라고...) (※편집자 번역)"
  39.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면, 절간에 있는 궁녀는 공양으로 올린 물그릇을 열심히 때리며 한창 제를 지내는 것처럼 보이게 하여 히카루 겐지의 발을 돌리게 하려 했지만, 겐지는 끝끝내 담을 넘어와 물그릇 소리를 밤에 우는 곤충 소리에 비유하며 "소리가 참 좋네요", 라며 작업을 거는 장면이다.
  40. 일본 고등학교의 현대문학 교과서에 나오긴 하지만, 딱 그 정도이다. 문학에 구태여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면 아주 어렴풋이 '아, 그런 작가도 있었...나?' 정도로만 기억할 인지도였다.
  41. A~C호권 환전에 성공했다면 그건 어디까지나 환전소에서 편의를 준 것이다.
  42. 농협은행 에서는 현행권만 받으며 2천엔 지폐를 제외한 이외 지폐는 애당초 취급을 안한다 안내를 받았다. 하나은행,우리은행,신한은행은 불명
  43. 1970년 전후 평균임금이 약 4~6만엔 정도였다. 후술하지만 당시 엔달러 환율은 360엔/USD으로, 환산하면 약 100~200달러 정도이다.
  44. 1958년 당시 물가는 2021년 대비 물가지수 기준으론 절반 수준, 생활물가 기준으로는 ¼에 불과했다. 즉, 지금으로 치면 대략 30~40만원짜리 지폐가 나오는 격.
  45. 바꿔 말해서 기존 최고액권(1천엔)은 고작 3달러였다는 것. 삼딸라는 너무 적소, 사딸라 쯤 합시다. 다만 미국도 사정은 비슷해서, 1950년대의 생활물가가 2020년 대비 약 1/10 수준이었음에도 첨단공업상품(차량, TV, 전화기, 라디오, 냉장고 등)의 대중화로 인해 고액권 수요가 발생하여서 이미 100달러 지폐까지 발행하고 있었다.
  46. 미화로 약 1달러 정도. 당시 일본의 물가(구매력 기준)로 치자면 약 100만원에 해당하는 큰 돈이었다. (당시 노동자의 월 임금이 400엔 내외.)
  47. 당시는 알래스카와 하와이를 편입하기 이전이어서 총 48주였다.
  48. 야마토타케루를 모시는 신사의 총본산. 시가현의 오오츠(大津)에 있다.
  49. 정확히는 대장성(오오쿠라) 장관. 지금은 재무성으로 직함(財務大臣)이 변경됨.
  50. ※360엔/USD
  51. 당시 발행하려던 천엔권은 불환권이었다. 거기서 태환(=현물환금. 이 시점에선 미국 달러 환전)을 보장하면 혹시나 모를 뱅크런 같은 사태를 방지할 수 없어, 발행하는 의미가 없어진다.
  52. 그것도 앞뒤로 각각 한 글자씩, 총 6개밖에 없다. 위치를 모른다면 월리를 찾아라가 다시보니 선녀로 느껴질만큼 난이도가 높다.
  53. 혐한 세력은 지금도 이걸 한국인과 자이니치들의 민폐짓이라 단정하지만, 그렇다고 보기엔 너무 많은 양, 너무 넓은 범위에서 발견되었다.
  54. 日 변조막기위해 새 500엔 동전 검토, 연합뉴스, 1999.11.21.
  55. 일본은 500엔때문에 동전에 최초로 홀로그램을 넣는 나라로.,
  56. 미색(米色)이라고도 한다.
  57. 일본은행 오피셜에 의하면, 1만엔권이 4~5년 정도, 나머지는 1~2년 남짓이라 한다. 참고로 한국 지폐는 5만원 및 1만원권이 약 10년 이상, 5천원 및 1천원권은 5년 정도이다.
  58. 덧붙여 2000엔권 뒤쪽 구석에 들어간 무라사키 시키부도 헤이안 시대 사람이긴 하다.
  59. 즉, 여기선 일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