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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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일본제국
大日本帝國
1868~1947
Flag of Japan (1870–1999).svg
국기
Imperial Seal of Japan.svg
국장
Japanese Empire (orthographic projection).svg
일본 제국의 최대 강역
표어
五箇条の御誓文
국가
나라 정보
수도 도쿄
공용어 일본어
국교 국가신토
정부유형 전제군주제(사실상)
군주 천황

대일본제국(大日本帝国, The Empire of Japan)은 1868년 1월 3일부터 1947년 5월 3일까지 존재한 일본제국이다.[1] 약칭은 일제(日帝).

천황제를 기반으로 한 제국주의 국가이다. 메이지 유신으로 성립되었고, 패전 후 미군정의 주도 하에 일본국 헌법(평화 헌법)이 발효되면서 일본국으로 대체되었다.

역사[편집 | 원본 편집]

막부의 몰락[편집 | 원본 편집]

청나라가 아편전쟁에서 패배한 후 청나라는 동아시아에 대한 영향력을 크게 잃어버렸고 일본이 개화에 성공하면서 형국이 뒤집어진다. 이후 미국이 일본을 개항하도록 강요했고, 일본은 이후로 외국 국가들과 불평등한 조약을 맺게된다. 막부의 실책으로 간주되어 지방에서는 막부에 대한 여론이 매우 악화된다. 급기야 개화의 방향을 두고 막부를 없애고 천황 중심의 정치를 하자는 존왕양이파[2]와 기존 체제를 유지하면서 조정과 막부가 협치하자는 공무합체파가 서로 내전을 일으키기까지 한다. 조슈 정벌로 천황파가 크게 타격을 받지만 천황파가 다시 우위를 점하였다. 결국 에도 막부의 마지막 쇼군이 대정봉환을 결심하였고 천황세력에 의해 막부가 공식적으로 폐지된다. 천황은 가장 먼저 정부군을 구성하고 폐번치현으로 봉건제의 흔적을 말끔히 지워버리는 시도를 하였다. 메이지 천황은 메이지 유신 개혁과 함께 일본 제국을 선포한다. 점차 개화의 성과가 보이자 불평등조약을 평등 조약으로 바꾸려는 꿈을 꾸게 된다.

제국주의 일본[편집 | 원본 편집]

일본 제국은 이후로 조선에게 강화도 조약으로 시작하여 불평등한 조약들을 맺게해 점차 조선을 예속화한다. 일본 제국은 조선을 두고 청나라와 전쟁해 승리하며 1년 조세의 4배에 달하는 전쟁 배상금을 받고, 이후 영국과 동맹을 맺고 러시아와의 전쟁에서도 승리한다. 일본 제국은 이후로 대한제국에 을사늑약을 강요하여 외교권을 박탈하고 1910년 한일병합조약으로 강제합병한다. 얼마 안 되어 벌어진 제1차 세계대전에서 영국과 동맹이었던 일본 제국은 독일 제국의 태평양 식민지들을 점령하고는 승전국의 편에 서며, 이후 영국과 함께 국제 연맹에 가입한다.

영국은 더 이상 필요가 없어진 일본 제국을 견제하기 시작했고, 이에 이어 대공황이 터지자 일본 제국의 경제는 크게 악화한다. 군사 정권이 들어선 일본 제국은 이를 전쟁으로서 해결하려 했고, 중국에 대한 침략을 진행한다. 만주사변으로 중국의 만주 지역을 침략하고는 만주국이라는 괴뢰국을 세웠으며, 얼마 안되어서 중국과 전쟁을 벌인다. 일본 제국은 중국의 수도인 남경을 점령하고는 남경대학살이라는 사실상의 테러 행위를 저질렀으며, 이것 외에도 중국인들에게 강제 생체실험을 벌이는 등 잔혹행위를 계속했다. 영국과 미국은 이에 일본에게 물자제재를 가했고, 일본 제국은 이에 반발해 진주만 공습으로 태평양 미군 기지를 폭격하고는 동남아시아를 침략했으며, 지배지역의 여성들을 위안부로 강제동원하고 지배에 반발하는 식민지인들을 학살하는 등 폭압적 점령을 지속한다.

일본 제국은 영국의 식민지인 인도 제국과 영연방 국가인 호주에 대한 침략을 시도하나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태평양 전쟁에서는 미국에게 크게 참패하는 등 점차 패퇴하기 시작한다. 이후 미군은 일본의 태평양 식민지들을 차례차례 해방하며 일본에 근접했고, 이후부터 일본 수도인 도쿄에 대공습(도쿄대공습)을 가한다. 일본과 동맹이었던 나치 독일이 패망하고 소련이 일본에 선전포고하는 등 일본 제국의 상황은 크게 불리해진다. 결국 미군은 일본 제국의 히로시마나가사키에 핵폭탄을 투하해 수십만명의 사상자를 만들었고, 결국 천황이 항복하면서 일본 제국은 패망했으며, 식민지들은 해방된다.

현재[편집 | 원본 편집]

일본의 흑역사. 서구권에서는 나치가 악의 대명사다보니 일본 제국은 다소 묻힌 감이 있지만, 똘끼, 광기 등등에서 결코 나치에게 지지 않았다. 오히려 나치를 서양의 일본 제국이라고 해도 전혀 틀린 말이 아니다.

현재 일본의 공식명칭은 일본국이나, 일본의 우익세력들은 대일본제국이라는 표현을 고수하기도 한다. 이는 광대한 영토를 차지했던 제국주의 시대에 대한 향수로 생각된다. 그러나, 실상 그 광대한 영토는 일본 본토 외의 많은 식민지로 이루어진 것이고, 그 식민지 주민들의 고통은 엄청났다. 이러한 제국주의 시대를 그리워하고 이를 공공연히 표출하는 것 자체가 주변국의 국민들에게 실례가 되는 일이다. 타인에게 폐를 끼치는걸 삼가는 문화가 있는데도 실례가 되는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있다.

애초에 일본제국을 바라는 것 자체가 신분제 부활을 바라는거나 마찬가지다. 다행인 것은 이런 걸 날치기 통과시킨다면 전 세계적으로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3]

5ch 일부 사용자를 비롯한 우익 세력의 뜻과는 반대로 일본인 대부분은 일본제국으로의 복귀를 상징하는 평화헌법 폐지에 죽어라 반대하고 있다. 군대 가야되니까 하지만 해당 시대의 주역이었던 현 노년층에서 가장 반발이 심한데 일본제국 시절에는 딱히 식민지 사람만 고통받은게 아니라 일본 내 민간인들도 군부에게 쥐어짜이며 지옥같은 삶을 살았기 때문. 물론 제국 후반(쇼와시대 초기)의 국가총동원령을 제외하면 얼마되지는 않는다. 그런데 이걸 우익세력이 간간히 '일본도 피해봤쯈!'의 자료로 써먹는 게 또 문제다.(...) 실제로 전쟁이 나도 적극적으로 참여할지도 미지수이다...

정치[편집 | 원본 편집]

일본제국의 정치체제는 기본적으로 프로이센을 모방한 외견적 입헌군주제였다. 1889년 대일본제국 헌법이 제정되었다. 당시 이 헌법은 동아시아에서 최초로 제정된 근대 헌법이었다.

그러나 당시 일본 제국의 헌법은 의회 제도를 인정하면서도 천황에게 사실상 무제한 권력을 주는 모순된 체제였다. 사실상 전제군주제와 다르지 않았다. 또한 일본 제국 헌법을 모방한 청나라의 흠정헌법과 대한국 국제도 그래서 전제군주제에 더 가까운 모습을 표방했다.

물론 일본의 전통으로 메이지 유신을 주도했던 쪽과 이후에 그들이 원로로 영향력을 강하게 유지하던 시기에는 천황의 대권을 대리하는 명목으로 나라를 이끌었다. 1920년대에는 불안하게나마 다이쇼 데모크라시라고 민주주의를 어느정도 시행해서 나라가 굴러갔다.

하지만 대공황 이후인 1930년대 일본제국이 급속히 군국주의 국가로 가면서 사실상 민주주의는 사라졌다. 국가 총동원령이 선포되면서 개인의 의사는 철저히 짓밟혔다.

같이 보기[편집 | 원본 편집]

각주

  1.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1945년 항복 이후로 GHQ의 지배를 받았다.
  2. 조선의 위정척사파와 같다.
  3. 일반적으로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