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환

대한민국 환
Bank of Korea (1).jpg
화폐 정보
사용국 대한민국
ISO (미설정)[1]
기호 [2]
보조단위
1/100 전(錢)[3]
지폐 1圜(미제 only), 5圜(미제 only), 10圜, 50圜, 100圜, 500圜(국산 only), 1000圜
동전 10圜, 50圜, 100圜
중앙은행 한국은행 (Bank of Korea)
인쇄처 미정부출판소(USGPO) (미제 시리즈)
KOMSCO.jpg한국조폐공사 (이승만 시리즈)
조폐국 필라델피아 조폐소 (Philadelphia Mint)
이전 화폐
이후 화폐
대한민국 원(1기) [100:1] (1945~1953)
일본령 조선 엔 (1910~1945)
대한제국 원 (1902~1910)
대한민국 원(2기) [1:10]

영어 : Korean Hwan 코리언 환

개요[편집 | 원본 편집]

대한민국에서 1953년부터 1962년까지 유통시킨 통화이다. 시기를 보면 답이 나오겠지만, 한국전쟁의 후폭풍으로 피폐해진 경제에 산소호흡기라도 달아줄 요량으로 제 2 긴급통화조치를 통해 개혁한 통화이다. 그러나 현실은 시궁창이어서, 박정희 전 대통령이 기획한 경제개발 5개년계획에 녹아있던 제 3 긴급통화조치로 다시 원화로 전환시키며 막을 내렸다. 즉, 한국 전쟁으로 인해 기존의 1,000원(1기)이 1원(2기)으로 된 셈이다.

한국전쟁으로 인해, 그리고 남북분단 사태로 인해 인력과 기술 부족으로 조폐청(한국조폐공사)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던 까닭에, 처음에는 미국에서 찍어낸 것을 그대로 수입하여 썼고, 이후에는 미국을 포함한 일본과 영국 등에 하청 분산의뢰하여 전량을 수입하거나 인쇄 원판만 의뢰하고 나머지는 국내에서 찍어내는 식으로 공급하였다. 국내에서 전 과정을 원판부터 제작하고 찍어내기 시작한 건, 2기 원화로 넘어간 이후인 1965년(세종대왕 100원권)부터이다.

사용 환경[편집 | 원본 편집]

환율 추이[편집 | 원본 편집]

전란 직후라 그런지 환율 변동폭이 다이나믹하였다. 등장직후인 1953년 2월 환율이 60환/USD, 그리고 폐지 직전인 1961년에 1,250환/USD이니 8년 평균으로 인플레가 150%에 달한 셈. (순간인플레는 300%를 넘었다.) 뭐... 이거이거에 비하면 별거 아니지만.

동전[편집 | 원본 편집]

10환(무궁화), 50환(거북선), 100환(이승만과 청와대 상징) 3종류가 있었다.

이후 3차 통화조치 때 10환과 50환은 각각 1원 주화와 5원 주화로 계승되었으나, 100환은 박정희 통치하에 이승만이 어울릴리가 없으니 다보탑 10원으로 갈아버렸다. 1992년부터 10원 미만은 사실상 취급하지 않게 되었으므로, 명맥이 끊겼다고 봐도 무방하다.

지폐[편집 | 원본 편집]

이승만 시리즈 (2차)[편집 | 원본 편집]

  • 위 목차명은 워낙 이승만이 자주 들어가서 불리는 별칭 같은 것으로, 공식적인 용어는 아니다.
개갑 100환 (1962.05.16) 모자상[4] / 독립문
대한민국 환 - 이승만/세종대왕 권종 (2차 / (접두어 없음) → 新(신) → 改(개) → 改甲(개갑) 순 발행)
10환 (황색지, 1953.03.17)
10환 (개정) (백색지, 1953.12.15)
개 500환 (세종대왕 1961.04.19) 50환 (1958.08.15)
남대문 / 총석정 (해금강) 세종대왕 / 한국은행 서울 본관 독립문 / 이순신 & 거북선
개 100환 (우이박, 1957.03.26) (×) 500환 (우이박, 1961.04.19) 개 1,000환 (우이박, 1960.08.15)
이승만 / (도안 없음) 이승만 / (도안 없음) 세종대왕 / 봉화(성화)
신 100환 (좌이박 황색지, 1953.12.18)
신 100환 (개정) (좌이박 백색지, 1954.02.01)
(×) 500환 (중앙이박, 1956.03.26) 신 1,000환 (1957.03.26)
이승만 / 독립문 이승만 / (도안 없음)[5] 이승만 / 한국은행 휘장(CI)
  • 이 중에서 개갑 100환(모자상)은 한국조폐공사제조 지폐 중 최단기간(5월 16 ~ 6월 10일, 25일간)동안 유통된 지폐이다. 미사용 기준 거래시세는 약 100만원대.
    • 1962년에는 새 고액권인 5,000환 지폐(세종대왕 도안, 갈색)도 발행 예정에 있었으나, 제 3차 긴급통화조치(원화 재도입)로 인해 취소되었다.
  • 당초에는 미국 달러처럼 이승만의 얼굴이 지폐 중앙에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휴대 편의상 반으로 접어서 가지고 다니다보니 필연적으로 낡아지면 얼굴이 반쪽으로 갈라지는 사태가 나타났고, 그걸 본 이승만 대통령이 매우 탐탁치 않게 여기자 재빠르게 옆쪽으로 옮겨지게 되었는 야사가 있다. 그러면 가로로 접어보자?

미제 시리즈 (1차)[편집 | 원본 편집]

미리 기술하였듯,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만들었기 때문에 흔히 미제라 부른다. 분명 쓰여있기는 원이라 쓰여있는데 환으로 분류하는 이유가, 긴급통화조치를 결정하기 전에 어른의 사정이 적용된 목적으로 미조폐국에게 의뢰하여 제조되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환 - 미제(美製) 시리즈 (1차 / 1953년 02월 17일 발행)
저액 뒷면 저액 앞면 고액 앞면 고액 뒷면
1환(적색), 5환(주황색) 10환(청색), 100환(녹색), 1000환(적갈색)
  • 위 두 종류는 액면에 따라 색깔만 다르고 디자인은 똑같다.

대중문화 속 대한민국 환[편집 | 원본 편집]

  • 창작물이 제 1 공화국(이승만 정부) 시절을 배경으로 하는 경우엔 고증을 위해 환화를 소품으로 활용한다. 몰론 촬영할 때는 가짜지폐를 이용한다.
    • 만화/드라마에선 타짜가 대표적인 적용 사례이다.
    • 온라인 게임인 섯다에서도 시대 고증을 위해 환을 사용한다. 다발 뭉텅이로 툭툭 나오니 엄청 저렴해 보이지만, 지금(21세기)은 그 하나하나가 모두 귀히 여겨지는 지폐들이다.

각주

  1. ISO 코드 제정(1973년) 이전에 개혁으로 퇴출되었고, 이후로도 코드를 별도로 부여하지 않았다.
  2. 한자를 그대로 사용했다. 그거 참 쓰기 곤란한 기호다
  3. 설정은 했으나, 실제로 쓰인 적은 없다.
  4. 母子像. 서울의 유명 함흥냉면 전문점인 '오장동 흥남집' 창업자의 손녀딸(권기순)과 그 아들(증손자, 윤재순)이다. 과거 조폐공사에 재직하다가 결혼으로 인해 퇴직하였는데, 퇴직 후 도안실장의 연락으로 잠깐 덕수궁으로 나갔다가 뜬금포로 사진을 찍혔다고 하며, 나중에서야 지폐 도안으로 올라갔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한다.
  5. 한국은행은 '당초문양(唐草紋)'으로 안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