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술탄국 سلطنة عُمان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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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정보 | |
수도 | 무스카트 |
공용어 | 아랍어 |
정부유형 | 전제군주제 |
군주 | 하이삼 빈 타리크 알사이드 |
기타 정보 | |
화폐 | 리알 |
ISO | 512, OM, OMN |
도메인 | .om |
오만한 나라가 아니다 50,000
오만은 중동에 위치한 나라다.
역사[편집 | 원본 편집]
고대[편집 | 원본 편집]
오만 지역에는 옛날부터 구리 광산이 있었으며, 이는 수메르인들의 기록에도 남아 있다. 이를 바탕으로 구리 산업이 기원전 4세기부터 있었으며, 인도양 각지로 교역을 했다. 다만 이는 철기 시대가 도래하면서 중요성이 줄어들었다.
반면에 오만 남부는 세계적으로 매우 귀한 향신료인 유향의 재배 지역이어서 중요성이 매우 컸다. 유향은 종교 의식 등에 많이 쓰였기 때문에 무역량이 매우 컸는데, 이 덕분에 이곳은 매우 부유했으며, 6세기 초반까지도 꾸준히 무역이 지속되었다.
이후 이슬람교가 선지자 무함마드에 의해 창시되고 아라비아 지역을 중심으로 퍼져 나갔다. 이때 무함마드는 오만으로 특사를 보내 이슬람교를 믿을 것을 권고하였으며 이를 곧 받아들여 오만은 630년 이슬람교를 국교로 삼는다. 이후 약 1세기간 우마이야 왕조의 통치를 받다가 이라크의 압바스 왕조의 통치를 받게된다. 그러다가 오만인들은 칼리프가 더 이상 세습되어서는 안 된다는 이바디파의 교리를 받아들여 8세기에 자신들만의 이맘, 즉 종교 지도자를 선출하였다.
중세[편집 | 원본 편집]
그 후 오만은 고립된 지리적 위치를 통해 혼란스러운 중동의 정세에서 한발짝 물러나 교역에 집중하였다. 특히 소하르(Sohar)는 중동의 주요 무역지로 떠오른다. 하지만 동시에 포르투갈은 인도양 무역을 장악하기 위해 16세기에 오만의 해안가를 점령하고 150년간 통치한다. 그러던 중 1650년 오만의 술탄 빈 사이프 알 아루비가 포르투갈인들을 축출하고 오만의 최초 왕조인 야아루바(Ya'aruba) 왕조를 연다. 이 때는 오만의 황금기라 일컬어지며, 여러 가지 문화 유산들이 그 당시 세워졌다.
그러나 1744년 술탄 빈 사이프 2세가 사망하자 누가 그를 이을지를 두고 해안가 사람들과 내륙 지방 사람들과의 내전을 벌어지다가 이를 기회로 삼은 페르시아가 해안가 지방을 점령하였다. 이도 잠시, 오만의 장군이었던 아흐메드 빈 사이드(Ahmed bin Said)가 이들을 내쫓고 오만의 현 왕조인 사이드 왕조를 세운다.
곧 오만은 팽창주의적 정책을 펼쳐 저 멀리 남쪽의 케냐의 몸바사와 탄자니아의 잔지바르에 교역소(또는 식민지)를 설치하고 서방 국가와도 외교 관계를 세운다. 이때는 오만의 전성기라 불리운다.
하지만 또 다시 권력 승계를 놓고 후계자들이 다투던 중, 영국이 이에 간섭하면서 오만과 잔지바르를 분리시킨다. 그러면서 오만은 쇠퇴하고, 다시 중동의 조용한 국가로 돌아간다.
근대와 현재[편집 | 원본 편집]
그렇게 오만이 쇠퇴하던 중, 영국은 오만에게 접근하여 1891년 오만을 영국의 보호국으로 만든다. 하지만 영국은 오만을 딱히 건드리지는 않았고, 곧 1951년 오만은 영국의 보호국 신세를 벗어난다. 그러나 내륙지방과 예멘 접경 지역에서 반군이 준동하였고, 이를 보다 못한 왕세자 카부스(Qaboos)가 1970년 무혈 쿠데타를 일으켜 현 국왕으로 즉위왕위를 계승하는 중입니다, 아버지, 즉시 반란군을 제압한다. 곧 카부스는 일련의 개혁과 친서방 정책을 실시하여 헌법을 제정하였으며, 경제 척도 또한 상승한다. 2000년에는 WTO에 가입하였으며, 2009년에는 미국과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한다.
지리[편집 | 원본 편집]
지형[편집 | 원본 편집]
오만은 아라비아 반도 끝자락에 위치하고 있다. 또한 호르무즈 해협과 인도양을 끼고 있어 전략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다. 동부 해안가에는 산맥이 있다.
오만은 북서쪽에는 아랍에미리트와, 서쪽으로 사우디아라비아와, 그리고 남서쪽으로는 예멘과 접하고 있다. 해상으로는 이란, 파키스탄, 인도와도 접하고 있다.
총 면적은 31만 km2이며, 이는 한반도의 약 1.4배 크기이다.
기후[편집 | 원본 편집]
오만은 남부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이 사막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해안 평야도 전 국토의 3% 밖에 안 된다. 내륙 지방은 전형적인 사막 기후를 띠며 덥고 건조하나, 해안가는 바다의 영향으로 인해 덥고 습하다. 어쨌든 간에 덥다. 강우량은 해마다 달라서 알기 힘든 편이나, 연중 비가 내리는 날은 거의 없다.
정치[편집 | 원본 편집]
오만은 절대군주제이다. 현 술탄 카부스 1세는 입법, 행정, 사법에 대한 최고 권한을 지니며, 국가평의회와 자문평의회는 법률 심의와 국왕 자문용 기관이다. 하지만 다른 아랍 왕국들과는 다르게 현 술탄은 개혁을 이끌면서 국민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으며, 개념이 충만한 사람으로 평가된다.
행정구역[편집 | 원본 편집]
오만은 4개 주(governorate)와 5개의 행정지역(region)으로 나뉜다. 그 밑에는 61개의 행정지구(wilayat)가 있다. 주요 도시로는 현재 수도인 무스카트와 남부 지역의 중심지인 살랄라가 있다.
외교[편집 | 원본 편집]
현재 국왕인 카부스 국왕의 즉위 이전까지는 철저한 고립 정책을 취했으나, 카부스 국왕의 취임 이후로는 적극적인 개방 정책을 펼치고 있다. 또한 이웃나라인 아랍에미리트, 사우디아라비아, 예멘 등과 국경 획정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우호 관계를 지내고 있다. 서방 국가와도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합동 군사 훈련도 한 바 있다.
대한민국은 1971년 7월 27일 오만을 승인하였다. 대한민국과는 1974년 3월 28일 대사급 외교관계를 수립하였으며, 1976년에는 주오만 한국대사관이, 1984년에는 주한 오만대사관이 설립되었다. 또한 오만에서는 대한민국의 경제 성장을 보고 대한민국을 경제적 모델로 보고 있으며, 대한민국은 오만에서 석유같은 에너지자원을 수입해 오고 있다. 북한과도 형식적으로 외교관계를 수립하였으나, 경제적, 문화적 교류는 전무하다. 당연하지.
주한 오만 대사관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새문안로3길 9 (신문로1가 58–13)에 위치해 있다. 중앙일보 “경희궁 옆 ‘아랍 궁전’ 오만대사관 문 열다”
경제[편집 | 원본 편집]
군사[편집 | 원본 편집]
오만은 모병제를 택하고 있으며, 약 4만 4천명이 군사와 준군사 조직에 소속되어 있다. 오만은 꾸준히 중동 정세를 파악하면서 해군과 육군을 증강하고 있으며, 특히 해군에 중심을 두어 키워내고 있다.
사회[편집 | 원본 편집]
민족 구성[편집 | 원본 편집]
오만은 절대 다수가 아랍인이나, 몇몇은 아프리카계, 이란계, 파키스탄계 혼혈이다. 또한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스리랑카, 필리핀에서 건너온 사람들이 일하기도 한다.
종교[편집 | 원본 편집]
오만은 이슬람교도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그들은 수니파나 시아파가 아닌 오만에만 있는 이바디파를 믿는다.제3의 길 그리고 종교적 극단주의 운동은 세력을 떨치지 못하고 있으며, 오히려 외국인들에 대해 관용적이고 온건한 분위기가 자리잡은 지 오래이다.
문화[편집 | 원본 편집]
이슬람 문화가 깊게 침투하였으며, 여느 중동 국가와 크게 다르지 않다.
외부 링크[편집 | 원본 편집]
각주
동아시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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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령 | |
옵서버: 유엔 총회 옵서버 국가. · 일부승인: 일부 유엔 회원국에게 승인받은 나라. · 비회원국승인: 유엔 비회원국에게만 승인받은 나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