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 파운드

아일랜드 파운드
Punt Éireannach 푼트 에이레나흐ie
Irish Pound 아이리시 파운드en
BancCeannaisnahEireann.jpg
화폐 정보
사용국 아일랜드
비공식 사용국:
ISO IEP
기호 £ (IR£)
보조단위
1/100 핑인(pingin), 펜스(pence) [p]
지폐 £5, £10, £20
희귀 : £50, £100, (구권 : £½, £1)
동전 1p, 2p, 5p, 10p, 20p, 50p, £1
중앙은행 아일랜드 중앙은행 (Banc Ceannais na hÉireann)
환율 약 1,500 ~ 1,600원/£ (2002년 이후)
고정환율 IR£0.787564/€(1999~)
= €1.269738/IR£
이전 화폐
이후 화폐
자유국 푼트 (Saorstát Punt)

개요[편집 | 원본 편집]

아일랜드에서 2002년까지 사용한 파운드 계열 통화이다. 아일랜드 게일어로는 '푼트(punt, 복수형은 푸인트(puint))'로 읽지만, 현지 아일랜드인의 제 1 언어조차 영어가 절대적으로 우세인지라, 대개 파운드(Pound) 또는 퀴드(=에일 퀴드(Eire Quid))라고 불리었으며, 따라서 본 항목의 표제 및 지칭도 통칭에 따라 아일랜드 파운드로 서술한다.

다만 2002년 이후로 영어로 간단히 '아이리시 파운드(아일랜드 파운드)'라 칭하는 것은, 대개 아래 설명하는 유통정지된 권종이 아닌, 유효 상태로 남아있는 북아일랜드 파운드를 가리키므로 유의할 것.

상세[편집 | 원본 편집]

아일랜드 파운드는 그 가리키는 범위를 넓게 보자면 최초라고 확인된 시기가 이미 천년이 훌쩍 넘은 서기 997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미 옆 나라의 영향으로 1파운드=20펜스, 1펜스=12실링의 체계가 잡혀있었다. 그러다 영국의 아일랜드 간섭이 강화되는 12세기 후반(1180년대)에 파운드 스털링계열로 편입되었고, 잉글랜드 내부의 문제로 1460년에 다시 역할이 분할되었으며[1], 1701년부터 아일랜드 파운드를 조금 더 낮은 값인 12/13[2]으로 책정하여 19세기 초까지 이어왔다. 그리고 급기야 1826년, 영국은 아일랜드의 경제주권을 완전히 빼앗아버렸다.

그 후 약 100년 가량이 지난 1928년에야 사실상 독립과 함께 재발행을 시작하였는데, 1998년 말에 파운드화를 폐기시키기로 했으니, 그야말로 진짜 1000년 금생(金生)이다. 엄밀히는 1001년이긴 하지만

환전 및 사용[편집 | 원본 편집]

기본적으로 아일랜드 파운드는 유로화 전환을 이미 끝마쳤으므로 시중에서 그냥 사용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아일랜드 중앙은행은 중앙은행 발행분 전체에 대하여 지폐와 동전 모두 유로화로의 교환을 받아주고 있다. 현장에서 직접 교환을 신청해도 되고, 우편으로 보내어 송금받는 방법도 가능하다. 다만 약 200유로-150파운드 상당부터는 신분 증명을, 약 1,000유로-700파운드 상당 이상부터는 자금출처 증명을 제출해야 한다. 신청양식 다만 아일랜드 파운드 자체가 대부분 희귀템인 까닭에, 은행을 통해 유로화로 바꾸는 것보다, 그냥 직접 팔아치워서 유로를 벌어들이는 것이 효율적일 수도 있다(...)

과거 현역으로 통용되었던 시절에는 영국과 유사한 유통방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가 실질적인 최고액권 역할을 하고, 일반적으론 대개 £5 지폐 여러장과 동전 정도만 활발히 유통되었다. £50나 £100는 유로 지폐로 비유하면 €200 및 €500 정도의 이미지에 가까웠다고.

본래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 간의 정치 및 종교적 불화로 인해 교류가 많이 제한적이긴 하였으나, 1998년 벨파스트 협정 이후로는 짧게나마 사실상 상호 유통을 전면 허용하게 되었다.[3] 하지만 협정 이전부터 잉글랜드 파운드와 사실상 1:1 환율을 유지하였는데[4], 근본적으로 아일랜드의 산업경제가 영국(북아일랜드 및 브리튼 섬 본토)에게 크게 의존하고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중앙은행 발행분[편집 | 원본 편집]

아일랜드 중앙은행이 발족된 이후(1943년)에 발행된 통화로, 일반적으로 '아일랜드 파운드'라 하면 아래의 것들을 이야기한다.

C 시리즈 (Nótaí bainc sraith C (1992~2001))[편집 | 원본 편집]

1992년부터 1996년에 걸쳐 도입하였으나, 몇 년도 안 지난 1998년에 유로화 전환 결정, 이에 따라 2000년 초부터 신권 발행 중단, 2001년 연말까지만 유통되었다.

그나마 나라 사정이 좋아진 시기에 도입되었다는 것 말고는 근본적으로 지나치게 짧은 기간에만 쓰여졌고, 고액권의 필요성이 워낙에 없었던 덕에[5] £50와 £100는 특히나 찔끔 나왔다가 폭풍회수 당하여 현존하는 수량이 다른 유로이전권에 비해 극악 수준으로 적은 편이다. 덕분에 환율값 대비로선 가장 악랄한 가격대로 거래되는 중.

1991년에 9명의 디자이너가 초대되어 통조림당한 끝에 제각기 특색있는 도안을 제시하였는데, 그 중에서 로버트 발라(Robert Ballagh)의 디자인이 선정되었다. "지금의 아일랜드를 만든 공로자"를 테마로 하여, 폰트나 배경은 전통적인 기법을, 주요 도안은 현대적인 기법을 채용하였다.

A나 B시리즈에 비하면 가히 혁신적일 정도로 크기가 작아졌고, 위조방지장치의 수준도 혁신적으로 고급화 되었다. 특히 테두리 여백을 없앤 인쇄기술은 동시기 핀란드 마르카스위스 프랑정도 뿐이 적용되지 않았던 고급 기술이었다.

£5 캐서린 엘리자베스 매콜리 £10 제임스 오거스틴 조이스 £20 대니얼 오코넬
IEP301.jpg IEP303.JPG
자비의 수녀회 소속 어머니 자비 대학병원[6] 더블린 해안 오코늘의 사택 (케리=키어르라)
앙투안 오 라프테리[7]의 시 "Mise Raifteirí"를 보고있는 교실 안 아이들 에드워드 스미스의 커스텀 하우스에 있는 리페리 강을 형상화 한 조각 및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 "피네간의 경야"의 배경이 되는 지역의 묘사도. (19세기) 1845년 아일랜드 정치인들의 서약서와 당시 쓰여진 의회건물[8]
£50 더글러스 하이드 £100 찰스 스튜어트 파넬 아일랜드 파운드 3차(최종) 시리즈
대통령궁(Áras an Uachtaráin) & 아다 성배(Ardagh Hoard)의 무늬 파넬의 생가(Avondale House) 및 견공
파이프를 들고있는 더글라스 하이드와 게일어 연맹의 인장, 그리고 16세기 왕립학원에서 쓰인 자료의 일부 오코늘 거리의 파넬 동상과 연설문의 일부

B 시리즈 (Nótaí bainc sraith B (1976~1991))[편집 | 원본 편집]

1976년부터 1982년까지 발행되어, 1992년 무렵까지 유통되었다. (£1 지폐에 한해서는 2001년까지 유통되었다.) 중앙은행 설립 이래 최초로 아일랜드 국내에서 디자인 및 인쇄까지의 전 과정을 담당하였다. 구권(A시리즈)에 비해 작아졌기는 하나, 여전히 큼지막한 사이즈가 특징.

10진법으로 변경된 후의 A시리즈 시스템을 그대로 이어받았으나, £100 권종은 어른의 사정[9]으로 계획만 하고 실제 발행을 불발되었다. 그래서 기껏 유통을 중단시킨 A시리즈 £100 권종을 어차피 별로 쓰지도 않았지만 도로 부활시켰다.

주요 테마인 "아일랜드의 역사"에 걸맞게 글자 하나하나부터 화풍이나 구성까지 토속적인 중세 유럽풍 디자인을 적극적으로 채용한 것이 특징이며, £1에서 £20까지는 시대순으로 배치하였다.

아일랜드 파운드 2차 시리즈
£1 메이브 여왕[10] £5 요하네스 스코투스 에리우게나[11] £10 조너선 스위프트[12]
IEP201.JPG IEP203.JPG IEP205.jpg
쿨리의 가축약탈 신화[13]를 기록한 내용 리기파치의 시집[14] 1735년 시의회 결의안 문서에 있는 더블린 문장(복원형)
던 카우의 서[15] 켈즈의 서[16]에 있는 동물묘사화 한 점 존 로크(지도제작가)가 그린 1756년판 더블린 지도
£20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17] £50 털록 오 케롤런[18] £100 (미발행권) 그라너 니 말러[19]
IEP209.jpg
아베이 극장판의 쿠훌린[20] & 예이츠가 쓴 "디어드라"[21]의 원고 캐롤런 연주의 애청자와 견공, 그리고 캐롤런의 곡 팀브렐(Timbrell)의 악보
블라스코다 제도[22] & 토마스 오 크로한의 저서, "섬사람 (An tOileánach)"[23] 성 미칸 교회 오르간 위쪽의 나무장식[24] 1567년 히베르니아 (Hibernia) 지도

A 시리즈 (Nótaí bainc sraith A, 1차, 1928~1975)[편집 | 원본 편집]

공식적인 설정으로는 1928년에 도입된 시리즈로, 현대 아일랜드 파운드 유일한 비(非)10진법 통화이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1938년 이후에 '아일랜드'라는 이름을 내걸 수 있었고[25], 중앙은행도 늦게 만들어졌기 때문에 1943년, 혹은 분산된 은행들의 통합과정이 마무리 된 1953년[26]부터가 시발점이라 볼 수 있다. 발행도 현재의 런던 데라루(De La Rue)사가 되는 워털루 앤 손스(Waterlow and Sons)가 담당하였다.

이 시리즈의 별칭은 '아일랜드의 (江)'. 뒷면에 시원스럽게 흐르는 강의 물줄기...가 그려져 있지는 않고, 현재는 환경자치단체부(Department of the Environment, Community and Local Government)로 쓰이는 커스텀 하우스(Teach an Chustaim)의 내부에 그려진 강의 모습을 묘사한 그림에서 가져온 인물같은 그림들이 하나씩 박혀있다. 상세 명칭은 아래에.[27]

(표1)

  • 앞면 도안은 존 레이버리(John Lavery)가 그린 레이버리의 여인이 들어가 있는데, 저액권(£-/10 ~ £5)는 여권사진만하게 들어가 있지만 고액권(£10 이상)은 허리 위 반신이 모두 드러나는 형태를 띈다. 여자는 돈이다?
  • 10실링은 10진법으로 전환하는 과정인 1968년 6월 6일에 단종되었다.
  • 나머지는 1975년 ~ 1977년 교체하는 과정에서 갈렸다. 하지만 20푼트짜리마저도 (당시로선) 지나치게 고액이라 사용율이 개떡같았던 이유로, 100푼트는 B시리즈로 계승되지 못했다.
  • 참고로 크기가 무진장 크다. 50푼트, 100푼트의 경우는 203*114mm에 달한다(...).
  • 여담을 달자면 고액권은 잔존수량이 정말 적어서 비싸게 거래된다. 특히 사진의 50푼트의 경우는...

각주

  1. 이름이나 형태가 거의 같지만 별개의 것으로 보 시각이다. 일종의 본교/분교 차별과 비슷하다.
  2. 영국 1파운드 = 아일랜드 1파운드+1펜스. 수수료?
  3. 아일랜드가 유로로 전환하면서 환율차이가 크게 벌어졌음에도, 여전히 1:1로 적용시키는 사례가 많이 남아있다. 몰론 단가가 더 비싼 1파운드를 1유로로 치는 쪽으로만 해당되고, 역방향으론 거의 받아주지 않는게 함정.
  4. 1990년대 전후로 점점 규격이 달라지긴 하였으나, 동일 액면에 같은 크기라면 영국 동전도 별 필터링 없이 시중에 유통되었다.
  5. 그나마 1999년 막판에 이르러서 £50의 수요가 증가한 바가 있긴 하다.
  6. Ospidéal an Mater Misercordiae of Sisters of Mercy
  7. Antoine Ó Raifteiri
  8. Na Ceithre Cúirteanna = Four Courts, 흔히 "사의회(四議會)" 정도로 번역된다.
  9. 2017년에서야 아일랜드 중앙은행이 관련 기록을 공개하였다. 간단히 정리하여 2가지 이유로 발행되지 못했는데, ①기반 자료가 없는 상태에서 디자인을 하다보니 시간을 너무 많이 끌어버린 점, ②그리고 당시 재무장관이 고액권의 지하자금화 리스크를 매우 심각히 여긴 점이 얽혀서 결국 미발행으로 끝났다는 이야기이다.
  10. Medb, 켈트 신화에 등장하는 코노트의 여왕. 철자가 Medb라서 메드브로 읽기 쉬운데, 메이브다. 철자와 읽는법이 개...같이 맞지 않는 게일어의 특징이 그대로 드러난 부분. (그래서 영어로는 Maeve로 표기하기도(!)) 전설에나 나오는 신화시대 인물답게 모습에 관해선 여러 가지 추측이 있는데, 실물화폐에 그려진 모습은 잉여로운 리얼리티 센스의 영향으로 거의 꽃거지(...)에 가까우나, 일본어판 위키의 경우는 서양식 모에화를 거쳤는지 매우 간지나는 그림을 갖다놓았다.
  11. Johannes Scotus Eriugena, 9세기 인물로, 플라톤 철학자 겸 사상가 겸 시인
  12. Jonathan Swift, 걸리버 여행기의 작가. 태생은 더블린이나, 영국계 부모에게서 태어났고, 영국에서 초창기 시절을 보낸 덕에 영국과 아일랜드가 서로 자기네 인물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여러모로 영국쪽 이미지가 더 강해서 안습. 그러나 스위프트 본인이 풍자소설의 대가이며, 영국에서 차마 못볼 것을 다 보고 쫓겨나듯 아일랜드로 돌아온 인물이라...
  13. Táin Bó Cúailnge
  14. 바이킹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11세기의 장식 시집
  15. Lebor na hUidre, 12세기경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피지(皮紙) 위에 기록된 문서. 현존하는 아일랜드 최고(古)의 원서이지만, 전 소유자인 왕립학원의 보관부주의로 많은 부분이 소실되어 책으로서의 복원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16. 8세기경 만들어진 기독교 성서의 수필사본으로, 장식이 알록달록 빼곡하게 그려져 있어 (유럽인 기준으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이라는 평도 있다.
  17. William Butler Yeats, 시인, 극작가이자 노벨문학상 수상자. 아일랜드 문인의 상징이다.
  18. Toirdhealbhach Ó Cearbhalláin, 17~18세기 인물로, 시각장애 음유시인이다. 눈이 보이지 않으면서도 작곡과 작사를 모두 해내는 비범함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도 주로 애용하던 악기가 아일랜드의 상징인 하프라 범국민급 인지도를 가지고 있다.
  19. Gráinne Ní Mháille, 통칭, 그레이스 오말리(Grace O'Malley).
  20. Cú Chulainn
  21. Deirdre, 아일랜드 신화 및 얼스터 전설에 등장하는 비극의 히로인인 디어드라를 주인공으로 다룬 작품
  22. Na Blascaodaí, 영칭인 블래스킷 제도(Blasket islands)라고도 한다. 아일랜드 서남부의 켈리 주(州) 딩글 반도 끝자락 너머에 있는 제도. 낙도 특성상 사회서비스 제공이 어려웠기 때문에 원주민 대부분이 정부 주도의 이주정책으로 바로 건너편, (날씨가 좋으면) 고향이 직격으로 보이는 딩글로 이주하였다. 이들(뒤에 언급되는 토마스 오 크로한(Tomás Ó Criomhthain)을 포함)이 고향을 추억하며 남긴 문헌에는 게일 민족 특유의 전통생활양식이 그대로 나타나있어, 민족학적 가치를 인정받은 바 있다.
  23. 실물의 배경을 자세히 보면 글씨로 채워져있다. 그것이 이 책.
  24. 교회는 1095년에 처음 세워졌고, 1686년에 재건, 1825년에 현재의 위치로 이동하였다. 클래식의 대가 중 하나인 헨델이 "메시아"를 처음 연주한 오르간이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이를 반영한 듯, 나무장식에 수많은 악기들이 빈틈없이 조각되어있다.
  25. 그 전까지는 자치주 파운드(Saorstát pound)라는 명칭이었다.
  26. 이 과정에서 만들어지고 쓰여졌던 권종이 별도로 존재하기는 하나... 관련자료를 구하기가 매우 어렵다.
  27. 다만 천조국의 위키러가 찾아낸 내용이며, 중앙은행 측에서 공식적으로 밝히지는 않았다.
  1. 여기에 해당하는 이전 화폐는 동전도 교환대상에 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