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외환 위기

1 개요[편집]

1997년 하반기에 일어난 금융 사건으로 대한민국의 외환보유량이 부족해서 외채를 갚을 수 없게 되자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 금융을 요청해서 외환을 빌린 사건이다. 당시에 외화보유액에 비해 큰 외채를 지고 있던 한국이 외화 부족으로 외채를 갚을 수 없게 되자 IMF 측에서 구제 금융을 통해 외환을 빌려주었다. 한편 많은 기업들이 유동성 위기를 겪어 한보철강·기아자동차·해태그룹·대우그룹 등의 대기업들을 비롯해 무수한 기업들이 도산하는 사건이 일어났고, 큰 경기침체로 이어졌다.

2 사건의 진행[편집]

3 외환 위기가 미친 영향[편집]

구제금융을 받은 후 대한민국은 긴축제정과 구조조정이 활발히 일어나게 되었으며, 개인이 파편화 되고 사회적인 상품화가 만연해지면서 신자유주의의 영향을 받게 되었다. 이로 인해 실업자 증가, 안정적인 일자리의 감소로 인한 비정규직 증가, 가족의 해체 등 다각도의 영향을 받게 되었다. 공공재의 민영화 압력이 커진 것도 이 시점부터이다.

시장개방으로 인한 외환 투자가 주식시장에 쉽게 들어온 것도 이때의 영향이 크다. 특히 론스타 같은 헤지펀드가 들어왔으며, 외환은행 지분 매각 과정에서 먹튀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런 흐름은 20년이 지난 2016년 현재도 진행중이다.

철도에도 매우 큰 영향을 끼쳤다. 공사중이던 노선은 개통이 연기되고 계획했던 노선은 연기 또는 백지화되기도 했다. 서울의 3기 지하철 계획이 백지화되고 2002 한일 월드컵에 대비해 공사중이던 노선은 서울 지하철 6호선을 제외하면 월드컵을 넘긴 뒤에야 개통했다. 특히 비수도권 지하철에게는 하필 노선망을 확충하려는 시기에 터지는 바람에 피해가 컸다. 이 영향으로 광주 도시철도대전 도시철도는 1호선이 생긴 지 10년이 지났는데도 후속 노선의 계획이 여러 번 바뀌는 바람에 아직도 착공되지 않고 있다.

이 사태를 계기로 새로 도입된 것이 있는데 그건 바로 경전철민간투자사업이다. 재정 중전철 사업이 경전철 또는 민자 중전철 사업으로 바뀌는 경우가 많았다. 외환위기 이후에 연장 노선이 아닌 신규 노선으로 착공된 중전철 노선을 보면 국철을 활용하는 노선이거나 민자 노선[1]이다. 중전철 중에서도 대형 전동차 노선만 생기고 있고 지방 광역시 지하철에 쓰인 중형 전동차 노선은 모두 경전철로 계획이 바뀌면서 더 이상 생기지 않고 있다.

3기 지하철 백지화로 인해 서울의 강남~도심 지하철 노선이 늦어지고, 2호선이 같이 생길 줄 알고 지은 광주 도시철도 1호선안습의 길을 걷게 되고, 수인선동해남부선 복선전철화는 티스푼 공사의 레전설로 남게 되고, 민자사업의 수요예측 병크 등등 철도에 남긴 상처는 아직도 남아 있다.

4 참조[편집]

  • 서울 지하철 9호선, 인천국제공항철도, 신분당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