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원: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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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6월 25일 (토) 23:33 판

영어 : (South) Korean Won [1]

개요

대한민국에서 사용하는 통화로 한국 원이라고도 한다. ISO 4217코드는 KRW, 기호는 ₩이다. 보조단위로 (Jeon)이 설정되어 있으나 환율계산과 같은 상황 아니면 사용하지 않는다. 인플레이션은 1.6%(2014년 7월 추정)이다.

발행은 공기업[2]한국은행이 전량 담당하며, 지폐 및 동전의 생산은 한국조폐공사[3]가 전량 맡고있다.

서러운 현실이지만 2015년 현재 여전히 한국 원화는 대외적으로 인지도가 낮은 통화이다(...) 동북아시아 자체가 유로 출범 이전의 유럽에 버금가는 통화의 전쟁터이고, 그 상황에서 양 옆으로 규모로 밀어붙이는 통화전통적으로 철벽 안정의 인지도를 가진 통화가 있기 때문에 콩라인 조차도 못 되는 상황. 몰론 여타 인지도 떨어지는 통화들에 비하자면 영향력이 분명 있는 편인데 아직은 입지가 다소 좁을 뿐이라 보면 된다. 특히 수출실적에 열을 올리는 경제구조와 미국 달러의 의존도가 심히 높아서 대외환위기에 쉽게 흔들리는 약점이 치명적이다. 의외로 북한의 존재는 통화가치에 그다지 반영되지 않는 편인데, 해외발 통화위기나 통화긴축 결정 때 환율이 쉽게 흔들리는 것과는 달리 북한이 무슨 짓을 벌였을때는 평상시와 별로 다르지 않은 점에서 관찰이 가능하다.

전신은 대한민국 환 및 조선 원 (북한 원과는 별개이다.), 더 이전에 통용된 식민지 통화인 조선 엔을 전신으로 보기도 한다.

환전 및 사용

굳이 이런 내용이 필요할까 싶긴 하다만 현 시점에서 한국 원이 한국 바깥에서 통용되는 경우는 정말로 별로 많지 않다. 유럽이나 미국 등지에서는 한인상점을 제외하면[4] 듣보잡이고,[5] 중국에서도 극히 일부에서만 취급할 정도로 많이 제한적이고, 끽해야 몽골이나 캄보디아 등의 몇몇 나라 한정으로 높게 평가하는 정도이다. 반대로 외화를 한국 돈으로 환전하는 것은 별로 불편하지 않다.

한국 지폐는 5만원권이 약간 특별하게 취급될 뿐이고 나머지는 별 탈없이 통용이 가능하다. 가장 많이 사용되는 것은 1만원권과 1천원권인데 특히 1천원권의 활약이 가장 크다. (자판기는 거의 대부분이 1천원만 먹는다. 단, ATM에서 인출되는 단위는 5만원과 1만원권.) 카드 사용이 나름 보편화 되어있어 현금이 없어도 극히 일부를 제외하곤 불편없이 소비활동이 가능하다.

한국 동전은 10원짜리(단, 옛 10원짜리는 별개)를 제외하고 자판기 사용이 가능하고, 가게에서도 갯수한정 없이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대개 수십장 단위에 달하면 민폐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1천원이 그리 큰 값이 아닌 관계로 동전이 잘 쌓이지는 않겠지만, 너무 많이 쌓였다면 자판기에서 최대한 써버리거나 은행에서 교환하면(※이때는 대량일 경우 한정) 된다.

2기 (현행권)

아래 서술하는 2기 시리즈의 모든 "원" 단위 화폐는 지금도 쓸 수 있으며, 공식적으로 한국은행 및 시중은행에서 현행권과 교환이 가능하다. (단, 전(Jeon)단위는 안 된다.) 사용시에는 액면가 그대로로만 사용할 수 있지만 초창기 발행 권종들은 수집가 등에게 팔면 몇십배 내지는 몇천배~몇만배까지도 받을 수 있어서 사용하는 게 손해라는 것이 포인트이다. 몰론... 보기에 좋은것만 그러니 너무 기대하지는 말 것.

이하 분류는 사용 시대순으로 분류한 것으로, 한국은행에서는 공식적으로 권종별로 가나다순을 붙여서 분류하고 있다. 예로 현행권은 가 오만원, 바 만원, 마 오천원, 다 천원. 이 방식은 1993년에 채택한 방식으로 이전에는 갑을병정 순으로 붙였다.

5차 (2006 ~ 현재)

Hanguk Won 5th Series
모습 분류 액면 인물 앞면 뒷면
1,000원 퇴계 이황 명륜당(성균관), 매화 계상정거도
5,000원 율곡 이이 오죽헌 몽룡실 초충도 2점 (신사임당 작품)
10,000원 세종대왕 일월오봉도, 용비어천가 혼천의, 천상열차분야지도, 보현산 천문대망원경
50,000원 신사임당 묵포도도, 초충도수병 (신인선 作) 월매도(어몽룡 作), 풍죽도 (이정 作)
  • 1만원권 앞면 배경에 쓰여진 용비어천가의 일부는 원본의 제 2장 가락인데, 이상하게도 마지막 행이 누락되있다. 이에 대해서 어떤 이가 한국은행에 문의한 결과로, '용비어천가의 디자인은 용비어천가의 옛글 형태를 그대로 사용하여 훈민정음의 본뜻을 계승토록하고 끝 소절 한 줄은 생략하여 여운을 남기도록 디자인되었으며, 일월오봉도의 5봉과 연관시켜 용비어천가를 5행으로 리 디자인(Re-Design) 하였습니다.'라는 답변을 받았다고 한다.[6] 참고로 원본 제 2장 풀버전은 다음과 같다. "불휘깊은남간 바람에아니뮐쌔 곶도쿄여름하나니 샘이깊은믈은 가마래아니그츨쌔 내히이러바라래가나니"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 움직이니, 꽃 좋고 열매많이 하느니, 샘이 깊은 물은 가뭄에 아니 그칠세, 내가 이루어져 바다에 가느니.)

4차 (1983 ~ 2007)

Hanguk Won 4th Series
모습 분류 액면 인물 앞면 뒷면
1,000원 퇴계 이황 투호, 사슴 도산서원
다, 라 5,000원 율곡 이이 벼루, 오죽헌
다, 라, 마 10,000원 세종대왕 물시계, 경회루 (경복궁)
  • 초창기 발행된 1천원권(기번호 '가가가~가차마')에서 인쇄과정 중 뭔가가 잘못되었는지 미묘한 똥냄새 비슷한 냄새가 풍겼었다. 이를 똥돈이라고도 부르곤 한다. 하필이면 뒷면의 무늬 일부가 노란색인 것이 특징이기도 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지금은 세월이 오래 지난지라 굳이 코를 대고 맡아봐도 냄새가 나지 않는다.
  • 4차 권종까지는 기번호를 한글로 표기하였다. 10개만 사용하므로 '가나다라마바사아자차'(※양성번호)까지만 사용한 다음 '거너더러머버서어저처'(※음성번호)로 넘어간다. 예를 들어 가가차 다음은 가나가, 가나나, 가나다..., 그리고 차차차 다음은 거거거, 거거너, 거거더...이다. 이걸 이용한 개드립이 조금 흥하기도 했었다. 예를 들면 '바나나' '아라라' '너어저' '머거저' 같은.

2차 & 3차 (1962 ~ 1982)

이 시대는 원화의 혼돈기라 볼 수 있다. 2차와 3차는 몰론, 1차 권종까지 혼합되어 사용되었기 때문에 정확한 구분이 어려운 편. 2차는 대략 선행판, 3차는 1970년대를 주름잡는 통화라 보면 된다. 특히 1966년 한국조폐공사에서 처음 원화 동전(1원, 5원, 10원)을 생산해내면서 1차 저액 지폐의 입지가 크게 좁아졌다. 이후 50원 주화(1972년 12월 1일), 100원 주화 (1970년 11월 30일)가 연달아 발행되면서 저액 지폐를 차츰 밀어냈다. 천원짜리 동전도 슬슬 나올때가 된 것 같은데...

전량 국내생산이지만 5천원권은 영국 데라루의 원판을, 1만원권은 일본 조폐국의 원판을 사용하여 찍어냈다. 그나마 같은 동양인이라 그런지 세종대왕님은 은근히 작화보정(...)지금의 인자한 모습과 달리 위엄 날리는 모습이었다.을 받았지만 율곡 이이는... 망했어요급이었다. KBS 스펀지에서도 이 때의 율곡이이가 소재로 다뤄진 적이 있다.

첫 1만원권 발행계획 당시 디자인은 앞면에 석굴암의 본존불상, 뒷면에 불국사가 들어갈 예정이었다. 원판이 완성되고 시제품을 찍어내 당시 대통령인 박정희의 재가를 받고 친필서명까지 받아낸 다음 공표하였는데, 그걸 본 두 메이저 종교단체가 합심하여 반발해 무산되었다. 기독교계는 왜 불교만 편애하냐!!는 식의 병크를, 불교계는 신성한 불상을 세속의 상징인 돈따위에 올릴 수 없다!!!는 식의 병크를. 결국 처음부터 다시 만드느라 1년 늦게 나왔다. 하지만 이미 주문한 용지까지 폐기할 자금의 여유따윈 없었기 때문에 그냥 인쇄해버렸다. 덕분에 가 만원권 왼쪽 은화의 석굴암 본존불상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이후 나 만원권이 발행될 때 석굴암 불상이 삭제되었다.

Hanguk Won 3rd Series
모습 분류 액면 앞면 뒷면 발행
100원 세종대왕 한국은행 본관 1965년 8월
500원 이순신, 거북선 현충사 1966년 8월
1,000원 퇴계 이황, 무궁화 도산서원 1975년 8월
5,000원 율곡 이이 오죽헌 1977년 6월
10,000원 세종대왕 경회루 (경복궁) 1979년 6월
Hanguk Won 2nd Series
모습 분류 액면 앞면 뒷면 발행
KRW201.jpg
10원 첨성대 거북선 196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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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원 파고다공원의 팔각정 봉화, 무궁화 1969년 3월
100원 독립문 경회루 1962년 11월
500원 숭례문 거북선 196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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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0원 율곡 이이, 봉화 한국은행 본관 1972년 7월
10,000원 세종대왕, 무궁화 근정전 (경복궁) 1973년 6월

1차 (1962 ~ 1969)

1962년 6월 10일, 경재개발 5개년 계획에 발맞춰 "원"화의 복귀에 의의를 두어 제 3차 긴급통화조치로 내놓은 권종이다. 1기의 "원"화와의 차이점은 한자를 전혀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

대한민국 환과의 교환비율은 10환 = 1원[7]이고 지폐는 최대 신권 500원(=5,000환) 교환 한도라는 무리수를 두어서 반발과 논란이 심했다. 사실 개혁의 목적 자체가 지하자금의 회수 및 통칭, '돈굴리기'로 늘어나는 재산을 강제로 회수하여 지속적인 통화가치하락을 막고, 회수한 자금을 국토개발자금으로 쓰겠다는 것이었다. 최종목표 및 정도가 다르기는 하지만, 북한의 4차 화폐개혁때와 숨겨진 목적이 거의 일맥상통한다(...) 그렇지만 이 목적은 결국 실패한 것으로 간주하는데, 자금회수는 제법 되었으나 인플레이션은 여전히 꾸준하게 나타나 물가가 전혀 잡히지도 않았고, 그러면서도 큰 돈(한화 한정)을 쥐어봤자 좋을 게 없다는 계기가 되어 산업이 위축되었기 때문이다.

이 조치 이후로 기존의 환을 전면 사용하지 못하도록 했으나, 사용량이 폭주하는 소액권 보급에 차질이 생김에 따라(이 당시엔 원화 동전이 아직 나오지 않았다.) 예외적으로 50환과 10환 동전의 통용을 1975년 3월 21일까지 허용하였다.

비공식 별칭은 영제(英製) 시리즈. 전량을 영국의 데라루(De La Rue)사에서 인쇄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 그래서 한글폰트가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상당히 어색해 보이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디자인부터 인쇄까지 죄다 영국에서 했으니. (몰론 감수는 한국은행이 했다.) 종류는 1원부터 500원까지 6종이 발행되었는데, 1원 미만(옛 1환단위)의 소액을 처리하기 위해 10전과 50전짜리 지폐를 추가로 도입하여 모두 8종이 되었다.[8]

현재 통용되는 한국은행권 중에선 가장 비싼 값으로 수집가들에게 거래되는 시리즈이며, 그 중에서도 가장 귀하게 여겨지는 것은 총석정 50원화이다. 걸레짝도 수만원 가량은 쳐주니 집안을 샅샅이 뒤져보자

Hanguk Won 1st Series (Low)
10전 50전 1원 5원 10원
Hanguk Won 1st Series (High)
모습 분류 액면 앞면
50원 총석정
100원 독립문
500원

1기

시기상 1950년 8월 28일부터 1953년 3월 17일까지 사용된 것을 지칭한다. 기간을 보면 알겠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전쟁 중인 시기이다. 북한측에서 남한 경제를 교란시키기 위해 1949년 말~1950년 초에 대량으로 살포한 가짜 조선은행 100원권이 문제가 되어서 당시 대통령인 이승만이 조선 원화의 통용을 중단시키는 제1차 긴급통화조치를 내려 화폐개혁이 일어났다.

막 독립한 국가에 전쟁이 터진 통에 한가하게(?) 돈을 찍고 있었을리는 없고, 전량 미국에서 만들어 수입하였다.

0기 (한국은행 설립 전)

시기상 1945년 8월 15일부터 1949년 혹은 1950년 8월 27일까지[9] 해당되며, 당시 은행의 명칭은 조선은행이었기 때문에 흔히 '조선은행권 원화'라고 불린다.

기념권

기념주화

한국은행 최초의 기념주화는 1970년 7월 15일에 발행된 '대한민국 반만년역사 기념주화' 6종(금화 2종, 은화 4종)이다. 이 시리즈는 가격도 가격이지만[10] 대외판매용으로소량만 풀었기 때문에 현 시점에서도 구경하기 어렵기로 유명하다.

하지만 반대로, 5년 뒤(1975년 8월 14일) 등장한 광복 30주년 100원권 기념주화는 값싼 가격에 어마무시한 양이 풀린 관계로 지금조차 거저먹기 수준으로 구하는 것이 가능하다.

기념지폐

그동안 한국은행은 통화량이 쓸데없이 늘어날 것을 두려워하여 무조건 멜팅포인트보다 떨어지는 가치를 갖는 기념주화만 생산해왔지만,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의 홍보가 필요하다는 위원회의 의견을 받아들여 2017년 말 경에 처음으로 기념지폐를 발행한다고 발표하였다. 전량 위원회에서 사들인 후 시중에 배포(판매)하는 형태로 발행된다.

디자인은 몰론, 정확한 액면이나 발행 수량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으나, 홍보에 중점을 둔 만큼 고가-소량발행 형태로 나오진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베이징올림픽)과 러시아(소치올림픽)의 전례로 볼 때, 그리고 개최 시기(제 23회, 2018년)를 따졌을 때 대략 2천원권 2018천장이나 2만원권 23만장 정도로 발행될 가능성이 크다.

트리비아

  • 5차 발행분의 경우, AA-A시리즈의 1번부터 100번까지는 한국은행 본관 화폐박물관에 다발째로 보관되어있고, 101번부터 110번까지는 1장 단위, 그리고 10000번까지는 10장 단위로 경매를 통해서 배포하였고, 30000번까지는 한국은행 서울 본점에서 최대 90장 단위[11]로 배포하였다. 이후 1000000번까지는 배급을 요청한 시중은행에 랜덤으로 라 쓰고 친밀도 높은 순으로라 읽는다 풀렸다.
    • 참고로 4차 발행분까지는(대략 가가가 2번 ~ 100번. 1번은 박물관 소장. 1천번까지라던가 1만번까지라는 이야기도 있는데 정확한 값은 알 수 없다. 그렇지만 100번까지와 그 이상은 대우가 많이 다르다.) 당시 한국은행 및 공직 관계 고위직에 있었던 사람들에게 기념 및 선물용(...)으로 뿌렸었다. 구김이나 접힘이 전혀 없다는 전제하에 이것들은 현재 거의 수백만원대에 거래되고 있다(...) 뭔가 대단히 불합리하다고 생각된다면 아직 헬조선에 적응하지 못한거다(?)


각주

  1. 회화에선 그냥 '코리안 원'이라 하지만 문서 등에선 South를 안 붙이면 북한 원과 혼동할 수 있으며, 이런 혼동을 피하고자 사전이나 카탈로그 등에서는 분단 이전의 원화(1945~1948. 1948년에 남한 정부가 수립되었기 때문.)만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하고 있다.
  2. 흔히 정부기관으로 오해하곤 하지만 엄연히 말해 한국은행 또한 기업으로서 운영되는 은행이다. 다만 일반 업무를 하지 않는 중앙은행의 역할을 맡을 뿐이다. 때문에 법적으로 대통령 산하 정부기관인 기획재정부(재무부)가 간섭하지 못하는데 이 설정은 통화운영의 공정성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다만 현재 한국은행의 총재는 대통령이 임명하고 있다. (응?)
  3. 이것 또한 오해하기 쉬운데, 한국조폐공사와 한국은행은 서로 연관이 없는 기업이다. 말하자면 인쇄소와 출판사의 차이보다도 관련이 없다. 조폐공사는 기획재정부 산하 기관이라 정부기관의 하나이면서 공기업의 형태를 띄는 특수한 기관이다.
  4. 그것도 비한국인이 운영한다면 마찬가지로 듣보잡 취급.
  5. 환전을 해주기는 한다. 그러나 대개 수수료가 어이가 나가 기가 찰 수준으로 높은 편이다.
  6. http://kin.naver.com/qna/detail.nhn?d1id=11&dirId=110801&docId=56999632
  7. 따라서 1기 원화와의 비는 1000:1이 된다.
  8. 하지만 별로 인기가 없어서 얼마 안 가 사장되었다. 옛날돈을 취급하는 회현지하상가에 가보면 이게 다발로 쌓여있다.
  9. 1949년에 실질적으로 북한 원이 분리되었기 때문이다.
  10. 최고 25,000원부터 최저 1,000원권까지 총 액면가만 63,500원인데, 당시 물가로 치면 라면 약 3,200봉지 혹은 소고기 약 100kg에 해당했다. 현재 가격으로 환산하면 약 250~300만원 수준이다.
  11. 원래 100장 단위로 배포할 예정이었으나 이때 한은 앞에 몰려온 사람들이 워낙 많았던 탓에 (흡사, 코믹마켓 전날밤을 방불케 했었다.) 항의가 빗발치자 한도를 낮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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