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독립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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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문
건축물 정보
주소 서울 서대문구 현저동 941번지
대지면적 1,644 m2
문화재 정보
종목 사적 제32호
지정일 1963년 1월 21일

개요[편집 | 원본 편집]

갑오개혁 이후 독립협회가 주축이 되어 자주독립의 의지를 다짐하기 위해 중국 사신을 영접하던 영은문(迎恩門)을 헐고 세운 문이다. 문의 형상은 프랑스 파리개선문을 본따서 만든 것이다.

건설 배경[편집 | 원본 편집]

갑오개혁이 외국세력의 간섭으로 성공하지 못하였고 국민들은 나라의 자주독립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이에 국민들은 민족의 독립과 자유를 위해서는 어떠한 간섭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중국사신을 맞이하던 영은문을 헐고 그 자리에 독립문을 세우게 되었다.

1896년 서재필이 조직한 독립협회의 주도하에 국왕의 동의를 얻고 뜻있는 애국지사와 국민들의 폭넓은 지지를 얻으며, 프랑스 파리의 개선문을 본떠 1898년에 완성을 보았다.

다만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이 문이 건설될 당시 독립의 개념은 중국의 속방이었던 것에서 독립한다는 의미가 가장 강하였다. 영은문을 헐어버리고 그 자리에 문을 세운 것도 그 이유. 즉, 현대 대한민국의 관점에서 보면 조금 뜨악할 수도 있는 게 이것을 위해서 다른 외세인 일본과 손을 잡는 것 등을 주장하기도 하였다는 것.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독립문 설립 위원장이자 가장 많은 기부금을 출자하고, 현판의 글씨를 쓴 사람은 바로 이완용 [1]

특성[편집 | 원본 편집]

화강석을 쌓아 만든 이 문의 중앙에는 무지개 모양의 홍예문이 있고 왼쪽 내부에는 정상으로 통하는 돌층계가 있다. 정상에는 돌난간이 둘러져 있으며, 홍예문의 가운데 이맛돌에는 조선왕조의 상징인 오얏꽃무늬가 새겨져 있다. 그 위의 앞뒤에는 한글과 한자로 ‘독립문’[2]이라는 글씨와 그 양옆에 태극기가 새겨져 있다. 문앞에는 영은문 주초 2개가 남아있다.

원래 남동쪽으로 70m떨어진 길 한가운데에 있었는데, 1979년 성산대로 공사에 따라 지금의 위치(독립문 공원)로 옮기게 되었다.

각주

  1. http://news.kbs.co.kr/news/view.do?ncd=598055
  2. 우측에서 좌측으로 써져 있으며, 두음법칙이 나오기 이전이라 지금 방식으로 읽으면 "문닙독"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