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페소

필리핀 페소
Piso ng Pilipinas 피소 낭 필리피나스tl
Bangko Sentral ng Pilipinas (BSP).svg Bangko Sentral ng Pilipinas 2020 logo.png
구형 CI 신형 CI
화폐 정보
사용국 필리핀
ISO PHP
기호
보조단위
1/100 센티모(Sentimo) [¢]
지폐 ₱20, ₱50, ₱100, ₱200, ₱500, ₱1000
(기념권 : ₱2000, ₱5000, ₱100000)
동전 ₱1, ₱5, ₱10, ₱20
(드물게 유통) 1¢, 5¢, 25¢ / (희귀) 10¢, 50¢
중앙은행 필리핀 중앙은행 (Bangko Sentral ng Pilipinas)
인쇄처 필리핀 보안공단 (Security Plant Complex)
조폐국 필리핀 보안공단 (SPC, 케손 시티)
환율 24.4원/₱ (2020.8.30 기준)
23.5원/₱ (2014.9. 기준)
이전 화폐

Philippine Peso 필리핀 페소)
Peso Filipino 페소 필리피노 (es)

개요[편집 | 원본 편집]

필리핀의 법정 통화. 흔히 "페소"라고 하고, 유래도 에스파냐의 화폐단위인 "페소(페세타)"에서 온 것이 맞기는 한데, 타갈로그어(필리핀어)로는 "피소(Piso)"라고 읽으며, 따라서 이 문서 또한 원래는 "필리핀 피소"가 맞는 표현이다. 하지만 필리핀 현지인을 제외한 (때로는 현지인들도) 대부분은 여전히 "페소"라고 읽고 있기 때문에 본 문서에서도 표제명을 포함해 일괄 "페소"로 작성한다.

환전 및 사용[편집 | 원본 편집]

필리핀 페소는 한국에서 취급하는 통화로 주력까지는 아니지만, 수요가 묘하게 있어서 규모가 어느 정도 되는 은행이라면 대부분 보유하고 있기에 아주 어렵지는 않게 환전이 가능하다. 주로 ₱500와 ₱1,000를 보유하고 있으며, 간혹가다 ₱100짜리를 찾아볼 수 있다. ₱200는 현지에서도 드물게 통용되어서 구경이 어렵고, ₱100 미만 권종은 저액권 취급이다.

다만 한국 내 은행에서 환전하면 수수료가 그리 저렴하지 않은 관계로, 대량 환전시에는 미국 100달러짜리로 챙겨간 다음에 현지에서 환전하는 방법을 주로 이용한다. 이때 주의점은 현지 환전소 및 은행에서 지나치게 낡거나 살짝이라도 뜯어지거나 찢어진 달러화는 받지 않는다는 것. 또한 미국 달러가 아닌 권종이나 저액면(20달러 이하)은 수수료를 추가로 물리는 경우가 많다. 현지 환전이 목적이면 여튼간 깨끗한 100달러로 챙겨갈 것.

더불어 환전사기가 관광지 위주로 특히나 빈번한 편이라 주의를 요한다. 가장 흔한 예는 개인적으로 다가와 좋은 환율로 쳐주겠다고 꼬시는 암환전 루트. 필리핀은 추가 수수료 차이만 제외하면 공식 환전소 환율이 대개 좋게 쳐주기 때문에 굳이 암환전을 이용할 필요가 없다.

물가는 전반적으로 저렴하다는걸 확실하게 체감할 수 있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여행객 입장에서 그런 것이고, 현지인들은 일부 상류층[1]을 제외하면 대다수가 팍팍하다고 느낀다. 약 50% 정도를 차지하는 중산층의 월 소득이 대략 2~3만페소 내외인데(※최저 시급 기준으로는 1만페소 미만), 이 정도 갖고는 생활비만으로도 상당수를 날려먹는다. 대략 한국의 1970~80년대 정도로 비유할 수 있다.

여담이나, 1페소짜리 동전은 한국 100원짜리 동전과 크기가 동일해서 대형마트 카트에 호환이 되어 저렴한 보증금(?)으로서 대용할 수 있다. 다만 재질은 다르므로 자판기에는 넣어봤자 반환된다.

제5공화국 (1986(1993) ~ 현재)[편집 | 원본 편집]

에드사 혁명으로 인해 필리핀의 정치적 환경이 변화하면서 1993년 6월 14일 신중앙은행법을 제정, 정부기관과 완전히 분리된 지금의 필리핀 중앙은행 (BSP, 1993~)이 출범하였다.

신세대 시리즈 (5차, 2010 ~ 현재)[편집 | 원본 편집]

2009년, 필리핀 중앙은행측은 보안성 강화와 내구력 강화를 도모하기 위해 25년만의 신권 기획안을 내놓았고 2010년 12월에 첫 모습을 선보였다. 현대 은행권 디자인의 대세에 따라 인물도안보다는 생물이나 풍경을 적극 도입하는 방향이 반영되어있다.

다도국(多島國)답게(?) 확산속도가 극악으로 느렸고[2], 신권을 내놓자마자 도안으로 들어간 새(鳥) 이름을 잘못 쓰거나 지폐 자체의 하자가 발행하여 리콜조치가 발생하는 등, 괜한 고생이 많았다. 중앙은행측도 이런점을 인정했는지 못해도 3년간은 그대로 구권과 병용취급을 하겠다고 언급했으며, 그 공약이 잘 이루어져서(?) 2016년부터서야 비로소 유일한 공식 통화가 되었다.

이 시리즈에서 기존의 면 섬유 베이스에 아마(린넨) 10% 혼방을 마닐라삼 20% 혼방으로 변경하였다.

New Generation Banknote Series : 필리핀 페소 5차 발행권 (현행)
₱20 마누엘 케손 ₱50 세르히오 오스메냐 ₱100 마누엘 록사스
PHP501.jpg PHP503.jpg PHP505.jpg
흰코사향고양이 & 계단식 논 자이언트 트레발리 (생선) & 타알 호수 고래상어 & 마욘 화산
₱200 디오스다도 마카파갈 ₱500 베그니노 아키노, 코라손 아키노 ₱1,000 산토스, 에스코다, 림
PHP507.jpg PHP509.jpg PHP511.jpg
안경원숭이 & 보홀 초콜렛 힐[3] 앵무새 & 푸에르토 프린세사 지하강 국립공원[4] 진주조개, 바다거북 & 투바타하 암초 자연공원[5]
PHPCoins5th.jpg
2018~2019년 신형 동전 ₱1,000 폴리머 신권 ₱5,000 기념권
  • 2017년 12월 29일, 얼굴이 사라진 ₱100권종이 발생하여 은행 당국이 긴급 회수에 들어간 사건이 있었다.
  • 2019년 후반기에 ₱20 동전이 발행되었다. 이후로 당분간 지폐와 병행하다가 차츰 대체할 예정이다.
  • 2021년, 마젤란이 사망한 사건인 막탄 전투 500주년 기념으로 지도자 아푸아푸를 올린 ₱5000 기념권이 발행되었다. 크기가 ₱2,000 대형 기념권과 비슷하며, 그때와 마찬가지로 법정화폐로서 통용력은 갖고 있으나, 그럴려고 만든 것이 아니므로 유통을 권장하지는 않는다고. 실제로 유통가 대비 개별 거래가가 10배 가량 비싸게 형성되어 있다.
  • 2022년 4월 18일에 ₱1,000 권종의 폴리머 신권을 발행하면서 인물을 모두 제거하고 독수리를 넣은 신권을 발행하였다. 발표는 2021년 중순 경에 하였는데, 당시 산토스/에스코다/림의 후손들은 이와 같은 결정을 정치적인 조치라고 항의하였고, 비평가들도 당시에 점점 주가가 올라가던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6]의 압력으로 가문의 숙적인 아키노 부부(₱500 권종의 모델)의 모습을 지우기 위한 전초가 아닌가라는 의심을 내놓았었다. 이를 의식한건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여튼간 중앙은행은 어디까지나 폴리머 재질의 유용성 테스트일 뿐이라고 못을 박았고, 같은 해에 인장(CI)만 교체한 면재질 신형 ₱1,000 권종도 같이 발행하였다.
 발권은행 정책에 따라 폐기되거나 시중에서 사용이 중단되어, 국내외 환전도 할 수 없는 통화입니다.
 해당 국가 방문시 현금거래 중 받지 않도록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새 디자인 시리즈 (4차, 1985 ~ 2016)[편집 | 원본 편집]

원래 이 시리즈는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집권 중인 1985년에 발행되었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필리핀 민주화 혁명(에드사 혁명)이 터졌고, 마르코스가 축출되면서 짧은 기간에 사회가 급변하면서 은근슬쩍 녹아있던 마르코스 흔적 지우기를 위해 수차례의 개정이 가해졌다. 그 중 1993년에 신중앙은행법 제정으로 중앙은행 명칭이 BSP로 바뀌어서 신 CI가 들어간 권종에 한하여 "BSP 시리즈" 라고도 불린다.

이 시리즈는 2016년부터 통용 불가 및 환전 중단, 2017년부로 완전 폐기되었다.

New Design Series : 필리핀 4차 발행권
₱5 에밀리오 아기날도
독립선언문 & 구형 대포
₱10 아폴리나리오 마비니 & 안드레스 보니파치오[7] / 카티푸난 활동 지침서 ₱20 마누엘 루이스 케손 이 몰리나
필리핀 초창기의 국장
PHP401.jpg NDS obverse 10 Philippine peso bill (1997).jpg PHP405.jpg
아기날도가 독립을 선언하는 장면 바라소아인 교회 파시그 강 앞 말라카냥 대통령궁
₱50 세르히오 오스메냐
₱100 마누엘 아쿠냐 록사스
성조기를 내리고 필리핀기를 내거는 장면
₱200 디오스다도 팡간 마카파갈[8]
아기날도 사당
PHP407.jpg PHP409.jpg NDS obverse 200 Philippine peso bill.jpg
국립 박물관[9] 필리핀 중앙은행 청사 에드사 제 2혁명 (2001년) 선언장면[10]
₱500 베그니노 아키노[11]
필리핀 국기 & 베그니노 아키노의 타자기[12]
₱1,000 호세 아바드 산토스(좌측), 호세파 르란네스 에스코다(하단), 빈센테 림(우측)[13]
₱2,000 (미발행권)
NDS obverse 500 Philippine peso bill.jpg NDS obverse 1000 Philippine peso bill.jpg
베니그노 아키노의 일생을 담은 그림들 계단식 논
발행 취소된 마르코스 ₱500
  • 2010년대 이후 시중에서는 ₱5나 ₱10가 동전사용량에 밀려 사실상 거의 통용되지 않았다. 따라서 생산도 중단했다.
  • ₱100의 경우, 한때 글로리아 마카파갈 아로요(Arroyo) 대통령이 재직중이던 당시 중앙은행이 이 지폐의 개정판을 만들어 내놓았는데, 서명란의 대통령 이름을 "Arrovo"라고 오타를 낸 적이 있었다. "아로보 100페소"등으로 검색해보면 도둑이나 강도로 인쇄되었다는 일화로 소개되어 있는데, 엄밀히는 "Arrobo"가 도둑이라는 뜻의 에스파냐어 명사이므로 단순한 오타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B나 V나 필리핀어 입장에선 발음이 매우 유사하니. 여튼 이 사태를 늦게 깨달은 중앙은행측은 긴급히 회수에 시도했으나 이미 풀릴대로 풀린 상태라 제대로 회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이후 발행분은 제대로 수정되어 인쇄되었다.) 참고로 이 "아로보 노트"가 반은 웃음거리로 기삿거리로도 올라오는 등 상당히 특별한 취급을 받게되자, 그 소식을 들은 아로요 대통령마저 화내기는 커녕, "가격이 오르기 전에 좀 가져다 놔야겠네요 ㅋ"라는 드립을 치기도 했었다 카더라.
  • 최초 계획상으론 신 고액권에 해당하는 ₱500권에 마르코스(우측 이미지)가 들어갈 예정이었다. 하지만 나중에 나타난 아키노 여사의 파워로 마르코스가 실각되어 엎어졌다.
  • ₱2,000 지폐는 1999년에 후술할 기념권으로 먼저 나왔고, 이후 2001년에 통상 사이즈 보급판(500만장)으로 다시 발행할 예정이 있었다. 그러나 당시 대통령인 조지프 에스트라다(2017년에는 마닐라 시장)이 민중봉기로 인해 축출당하여서 계획이 엎어지고 그대로 사장될 뻔했으나, 2012년에 1%인 5만장만 살려내어 유통 금지를 전제로 교육 및 기념사(史) 목적으로 특별 주문한 앨범에 넣어서 재배포 하였다.

기념권[편집 | 원본 편집]

기본적으로 필리핀의 기념권은 기존 지폐에 기념할 문구를 덧인쇄하여 푸는 것을 기본으로 했다. 다만 1998년 6월 30일, 필리핀 페소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2,000 지폐 30만장과 독립 100주년을 기념하는 ₱100,000(!) 지폐 1,000장을 새 권종으로 만들어 내놓았었다. 액면가도 높고 판매가도 정말 높은 편이지만, 둘 다 사이즈가 심히 범상치 않다.

2021년에는 ₱5,000 기념권이 발행되었다. 상단의 현행권 문단 참조.

필리핀 페소 기념권 시리즈
₱100,000 (1999) ₱2,000 (1999) ₱5,000 (2021)
(현행권 참조)

제4공화국 (1969(1972) ~ 1986)[편집 | 원본 편집]

이 시기는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독재기와 거의 일치한다. 1969년 이전까지 필리핀 페소는 필리핀의 공용어 문제[14]에 미국(엄밀히는 미군)의 영향이 더해져 영어로만 표기하였으나, 1969년에는 역대 최초로 타갈로그어(현재의 필리핀어)로 쓰여진, 훗날 '필리피노 시리즈(Pilipino Series)'로 명명된 은행권이 발행되었다. 인쇄는 영국의 토머스 데라루(Thomas De La Rue)이다.

그러다 1972년 제4공화국 출범으로 필리핀 공화국 중앙은행 (CMA, 1973 ~ 1993) 설치를 골자로 하는 대통령령 개정[15]으로 인해 전량 자국에서 생산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기존 '필리피노 시리즈'는 폐기 및 반송처리 되었고[16], 1973년에 새 사회 시리즈(Ang Bagong Lipunan)로 명명된 신권 시리즈로 대체되었다. 다만 통상적인 '중앙은행'과는 달리, 사실상 정부기관에 종속된 형태(통화청(Monatary))로 운영되어, 거의 독재자 마르코스의 입맛대로 굴러갔었다. 다만 법령이 세워졌다고 곧바로 공장이 세워지지는 못한 관계로 1978년 케손시에 조폐공사가 들어서기 전까지는 기존대로 영국 데라루에서 CMA의 방침에 따라 제조되었고, 그 이후부터 국내 생산으로 선회하였다.

필리핀 페소 2차/3차 발행분 (1969/1973/1978)
1969년 발행 (2차) 1970년대 초 개정 (3차) 첨쇄권 발행 (3차 개정)
₱1 ₱2 호세 리살 ₱5 안드레스 보니파치오
독립선언서 (필리핀) 피의 우호계약 (카티푸난 ver)
₱10 아폴리나리오 마비니 ₱20 마누엘 루이스 케손 이 몰리나 ₱50 세르히오 오스메냐 (필리핀 4대 대통령)
바라소아인 교회 말라카냥 대통령궁 구 국회의사당
₱100 마누엘 아쿠냐 록사스
구 필리핀 중앙은행 건물

제3공화국 (1946(1951) ~ 1969)[편집 | 원본 편집]

1935년에 커먼웰스(commonwealth) 성립으로 자치권을 얻은 필리핀은 1945년 10월 24일에 UN을 가입하였고, 이듬해 1946년 7월 4일에 제3공화국으로 독립하였다. 그간의 통화는 미국의 허가로 발행된 것이었기 때문에 필리핀이 독자적으로 운영할 중앙은행이 필요하였고, 2년 반 정도의 준비기간을 거쳐 1949년 1월 3일에 설립되었다.

중앙은행 설립 후에서야 신권 발행 계획으로 진입하여서, 2년 뒤인 1951년에 배포를 시작하고 1974년까지 통용시켰다. 이때는 표기언어를 영어로 하였기 때문에 분류명으로서 English Series(영어 시리즈)라고 한다.

1946년부터 1950년까지는 미국령 시절에 사용한 통칭 '빅토리 노트'[17]에 '필리핀 중앙은행 (CENTRAL BANK OF PHILIPPINES)'라는 첨쇄를 추가한 것으로 대체 통용하였다. 1942년부터 약 3년간 일본 점령기 시절에 미국령 임시정부가 발행한 비상권(Emergency Issue)을 회수하는 과정에서 배포하였는데, 일제강점기 초기에 발행된 권종은 무제한 전액 교환, 1945년 재탈환 무렵에 발행한 권종은 500페소까지만 전액, 그 이상은 일정 금액 범위마다 부분인정으로 교환해 주었다. 이후 추가 첨쇄된 '빅토리 노트'의 '영어 시리즈'로의 교환은 전량 무제한으로 받아주었다.

필리핀 페소 : 영어 시리즈(English Series)
₱0.05, 0.10, 0.20 (센타보 소액전) ₱½ 마욘 산에서 카라바오에 탄 세 사람
₱1 아폴리나리오 마비니[18] ₱2 호세 리살[19] ₱5 마르셀로 힐라리오 델 필라 이 가트마이탄 & 그라치아노 로페즈 하에나
바라소아인 교회 마젤란의 상륙[20] La Solidaridad (필리핀의 독립신문)
₱10 마리아노 고메즈, 호세 부르고스, 하신토 자모라 ₱20 안드레스 보니파치오, 에밀리오 하신토 ₱50 안토니오 루나
우르다네타와 레가즈피의 기념물[21] 카티푸난[22]지침서

& 푸가드 라윈의 만세운동(발린타왁) 기념물

다투 시카투나와 레가즈피의 피의 우호서약[23]
₱100 멜코라 아퀴노[24] ₱200 마누엘 루이스 케손 이 몰리나 (필리핀 2대 대통령) ₱500 마누엘 아쿠냐 록사스 (필리핀 5대 대통령 및 현대 필리핀 성립 이후 첫 대통령)
카티푸난의 용사와 혁명 당시의 필리핀기 구 국회의사당 옛 중앙은행 건물
  • 센타보 소액전과 200/500페소는 1957년까지만 사용되었다. 나머지는 1974년까지.

같이보기[편집 | 원본 편집]

각주

  1. 이라 해도 전체 국민의 단 2% 정도만이 200만원 남짓(10만 페소) 이상을 번다.
  2. 당시 현지 교민의 말에 의하면, 2011년 중순이 되었어도 신권을 구경도 못해봤다는 증언도 있었다.
  3. 유네스코 자연유산에 등록된 원뿔모양 카르스트 지형. 여러 개 언덕들이 봉긋봉긋 솟아올라있는 모양을 하고 있고, 건기에 들어서면 단풍이 지면서 전체가 갈색으로 변하는데 그 모양이 다름 아닌 허쉬초콜렛의 키세스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졌다(...)
  4. 동굴 안에 강이 형성되어 있는 독특한 동굴. 배를 타고 동굴 속을 탐험할 수 있는 매우 유명한 관광지.
  5. 국립 해양공원 중 하나. 필리핀 최초의 세계자연유산으로, 형형색색의 산호초가 서식하고 있다.
  6. 당시 대통령인 로드리고 두테르테의 딸인 사라 두테르테와 친분이 생기면서 협력관계에 들어갔었다.
  7. 보니파치오는 처음엔 없었다가, 나중에 개정되면서 추가되었다.
  8. 필리핀 9대 대통령. 후술할 100페소 인쇄오류 사건의 주인공이자 14대 대통령인 아로요 여사의 아빠다.
  9. 과거엔 입법부 건물로 쓰였다가 행정부로 바뀌었었다. 지폐 앞면 우측의 장식물들이 이를 상징하는 것.
  10. 아로요 여사가 일으킨 민중혁명으로, 부정부패로 유명한 호세 마르셀로 에헤르시토를 내쫓아버렸다. 전체적으로 이 200페소짜리 지폐가 이 부녀들을 위해서 만들어진 지폐나 다름없다.
  11. 11대 대통령인 코라손 아키노의 남편. 정치계에 들어와 대통령 후보로도 올라왔으나, 아키노의 세력을 두려워 한 독재자 마르코스의 계엄령으로 체포 및 수난을 당하고, 그의 위협을 피해 미국으로 망명갔다가 필리핀으로 돌아왔다. 바로 그 공항출구에서 경호원이 지켜보는 가운데 암살당했다. 기묘한 건 암살당하기 직전 타고있던 비행기 내에서 옆에 있었던 기자의 질문에 "조국 필리핀은 암살이 공공서비스처럼 제공되는 나라니까요."라는 드립을 쳤다는 것. 여튼 이러한 남편의 사망이 평범한 아줌마였던 코라손 아키노를 정계로 내보낸 이유가 되었고, 훗날 마르코스를 축출하는 계기 중 하나가 되었다. 왠지 모 소설의 누구와 사정이 비슷하다. 참고로 그의 사망날짜인 8월 21일은 "니노이 아키노의 날"로 지정, 공휴일이 되었다.
  12. 베그니노 아키노는 한국전쟁당시 종군기자로 지냈는데, 당시 쓰여진 것이다. 유언으로 자신이 죽으면 친구 DJ에게 타자기를 건네달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카더라.
  13. 형태는 각기 다르나, 세 인물 모두 일본제국에 대항한 인물들이다. 비교적 얕게 다뤄지던 반일파 인물의 도안.
  14. 약간 심한 방언 정도의 차이일 뿐이나, 필리핀도 아주 크게 타갈로그와 세부아노로 양분된 다국어 국가이다.
  15. 이라고는 하지만 계엄령에 가깝다.
  16. 기 보관중인 분량은 첨쇄를 넣어서 풀었다.
  17. 태평양 전쟁 당시 유통된, 뒷면에 VICTORY라는 첨쇄가 찍혔던 권종.
  18. 필리핀의 헌법을 제정한 초대 수상. 하지만 당시는 미국치하에 있었기 때문에 바로 폐기당했다.
  19. 에스파냐 지배 당시의 인물로, 필리핀 독립운동가의 상징급이다. 대대적인 조직을 구성하고 독립운동을 지휘하던 중 체포되어 1896년 총살형당했다.
  20. 앞면 인물과 매치해보면... 상당히 미묘하다? 원인과 결과? 후세의 복수극?
  21. 에스파냐 출신 선교사와 정복자다. ...어?
  22. 반 에스파냐 조직
  23. 손목에 줄 그어 내린 서로의 피를 물에 섞어 마시는 전통종교상의 의식이라고 한다(...) 에스파냐의 유입 이후로는 와인을 섞어 마시기도 했다고.
  24. 탄당 소라(Tandang Sora)라는 이명으로도 불린다. 필리핀에선 혁명의 대 어머니로 존중받는데, 혁명운동을 일으킬 당시 나이가 84세였기 때문. 바람이 되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