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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자:Pika/대체용 틀
{{단체 정보
|전쟁이름 = 제2차 세계 대전
| 이름          = International Maritime Organization
|원어이름 =  
| 로고          = 국제해사기구.gif
|그림    = [[파일:'Nan White' Beach, JUNO Area at Bernieres-sur-Mer.jpg]]
| 로고크기        =  
|그림설명 = [[오버로드 작전]] 중 주노해변에 상륙하는 연합군
| 그림          =  
|포괄사건 =  
| 크기          =  
|날짜    = 1939년 9월 1일~1945년 9월 2일
| 설명          =  
|위치    = [[아프로-유라시아]] 대륙, 혼슈, 웨이크 등 몇몇 섬 지역
| 지도 그림      =  
|결과    = 연합국의 승리
| 지도 그림 설명 =  
|단체1    = {{숨김 시작|title=연합국}}
| 약칭          = IMO
* {{나라|폴란드|1928}}
| 표어          =  
* {{나라|프랑스|1830}}→{{나라|프랑스|자유}}
| 결성          = 1948년 3월 17일
* {{나라|영국}}
| 해산          =
* {{나라|오스트레일리아}}
| 유형          = IGO
* {{나라|뉴질랜드}}
| 이념          =
* {{나라|남아프리카 연방}}
| 형태          = 국제연합 산하 전문기구
* {{나라|덴마크}}
| 목적          = 공해상의 안전 운항 도모
* {{나라|노르웨이}}
| 본부          = 영국 런던
* {{나라|네덜란드}}
| 위치          =  
* {{나라|룩셈부르크}}
| 활동지역      = 전세계
* {{나라|벨기에}}
| 회원          =  
* {{나라|이집트|1922}}
| 언어          =  
* {{깃발|그리스|왕국}} [[그리스 왕국]]
| 설립자        =  
* {{나라|유고슬라비아 왕국}}
| 현재수장      =  
* {{나라|에티오피아 제국}}
| 수장명칭1      = 사무총장
* {{나라|네팔 왕국}}
| 초대수장1      =  
* {{나라|소비에트 연방}}
| 현재수장1      = 임기택(2016~2023)
* {{나라|몽골|1940}}
| 주요기관      =
'''[[진주만 공습]] 이후:'''
| 모기관        = 국제연합
* [[File:Flag of Republic of China.svg|20px]] [[중화민국]]
| 제휴기관      =
* {{나라|미국|1912}}
| 활동 인원        =  
* {{나라|쿠바|1902}}
| 예산          =  
* {{나라|도미니카 공화국}}
| 웹사이트      = [http://imo.org 홈페이지]<br />[http://imokorea.org 한국어 소식(한국해사안전국제협력센터)]
* {{나라|아이티|1859}}
| 기타사항      =
* {{나라|멕시코}}
* {{나라|과테말라}}
* {{나라|엘살바도르}}
* {{나라|온두라스|1898}}
* {{나라|코스타리카}}
* {{나라|니카라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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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라|브라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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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라|니카라과}}
* {{나라|칠레}}
* {{나라|아르헨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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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깃발그림|Flag of the Provisional Government of the Republic of Korea.svg}} [[대한민국 임시정부]]
* {{나라|라이베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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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깃발|유고슬라비아|1943}} [[유고슬라비아 민주 연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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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2차대전 요약 짤.png|thumb|400px|당시 전쟁 상황을 요약한 그림|left]]{{-}}
'''국제해사기구'''(International Marine Organization;IMO)는 [[UN]] 산하의 전문기구로 해운과 선박에 관련한 사항 전반과 해상에서의 안전, 보안, 선박으로부터의 해양오염 방지를 책임지는 국제기구이다. 즉 해운업에 영향을 주는 것을 모두 다루는 기구라 할 수 있다.


'''제2차 세계 대전'''(第二次世界大戰, {{영어|World War II}})은 1939년 9월 1일부터 1945년 8월 15일에 걸쳐 범세계적으로 전개된 [[전쟁]]이다.
==역사==
기원전 5000년전부터 선박을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을 만큼 해운의 역사는 오래되었지만, 공해상의 해운을 공통적으로 통제하는 기구는 부재했었다. UN 소위원회에서 부분적으로 담당했지만 [[타이타닉호 사고]] 이후에 뒤늦게 “해상에서의 인명 안전을 위한 국제협약(SOLAS)”을 채택하는 등 체계적인 시스템의 필요성이 수표면 위로 떠올랐다.
* 1948년 국제연합해사회의에서 “국제해사기구 설치에 관한 협약” 채택
* 1958년 일본 가입을 마지막으로 배수량 100만톤 이상 소유국 7개국을 만족하여 IMO협약 발효
* 1959년 “정부간 해사자문기구(IMCO)” 제1회 총회 개최
* 1982년 “국제해사기구”로 명칭 변경


사상 두 번째의 세계 대전이자 인류 역사상 사상 최대 규모의 전쟁으로, 사실상 현대 국제사회를 만든 직접적 기원이며 21세기까지도 국제사회에게 그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장 [[국제 연합]](UN)은 이 전쟁에서 승전한 연합국 간의 모임에서 기원하는 것이다.
==조직==
* 총회
*: 회원국이 모두 모여 안건을 결정하는 회담의 장...인데, 참여자가 너무 많고, 횟수도 2년에 한번이라 이사회에서 올라온 안건을 처리하는 거수기에 가깝다. 다만 사무총장이나 이사회에서 임시총회를 소집할 수 있다.
* 이사회
*: IMO의 실질적인 의사결정기구로, 총회에서 총 40개국이 선출되며 임기는 2년이다. 이사회의 면면을 보면 배 많이 띄우는 해운 10개국(A그룹), 배 많이 쓰는 화주 10개국(B그룹), 기타 지역대표 20개국(C그룹)으로 구성된다. 이사회의 업무는 사무국에서 보조한다.
*: 이사국의 순환이 정체되는 것은 IMO 초기부터 논란이 되어 왔으며, 16개국이었던 이사국은 정관 개정을 여러번 거쳐 40개국까지 늘어났다. 그럼에도 순환이 잘 되는 편은 아니어서 대한민국의 경우 C그룹에서 5연임, A그룹에서 10연임하여 30년째 이사국으로 재임하고 있는 상황이다<ref>[https://www.yna.co.kr/view/AKR20191129156800003 한국, 국제해사기구 최상위 이사국 10연속 진출], 연합뉴스, 2019.11.29.</ref>. A, B그룹의 경우 너무 정체가 심해서 간혹 A·B그룹에서 C그룹으로 누가 내려갈 때만 다른 국가가 잠깐 합류하는 정도에 그친다. C그룹도 고이기는 마찬가지라서 몇몇 자리만 순환되고 나머지는 익숙한 얼굴들이다.
{|class=wikitable style=margin:auto;
|+ 이사국 목록(2020-2021)<ref>[http://www.mof.go.kr/iframe/article/view.do?articleKey=28043&boardKey=10&menuKey=376&currentPageNo=1 한국, 국제해사기구(IMO) 최상위 A그룹 이사국 10연속 진출], 해양수산부, 2019.12.02.</ref>
|-
! A그릅
| 대한민국, 일본, 중국, 이태리, 그리스, 영국, 미국, 파나마, 러시아, 노르웨이
|-
! B그룹
| 호주, 독일, 프랑스, 스페인, 인도, 캐나다, 네덜란드, UAE, 브라질, 아르헨티나
|-
! C그룹
| 싱가포르, 몰타, 말레이시아, 사이프러스, 인도네시아, 바하마, 남아공, 멕시코, 칠레, <br />벨기에, 이집트, 페루, 모로코, 덴마크, 터키, 태국, 자메이카, 필리핀, 쿠웨이트, 케냐
|}


재산적인 피해는 도저히 산출이 불가능할 수준이며, 인명피해는 사망자만 따져서 약 5~7천만 명, [[소련]], [[중국]], [[동남아시아]] 등지에서 기아로 사망한 간접 피해까지 추산하면 거의 1억에 근접하는 피해를 낸 것으로 추정된다. 인명피해 역시 정확한 통계나 집계가 불가능한, 추정 수치이다. 전투가 격렬했을 적에는 하루에 사상자가 몇만 명 단위로 발생했던 말 그대로 미친 전쟁이었다.
* 소위원회
*: 이사회 밑에서 실무를 담당하는 기구로, 5개 소위원회가 구성되어 있으며 하위에 전문위원회가 설치되어 있다. 프로젝트 단위로 작업반이 구성되어 세부적인 논의를 진행한다.
** 해사안전위원회(MSC)
** 해양환경보호위원회(MEPC)
** 법률위원회(LEG)
** 기술협력위원회(TC)
** 해상교통간소화위원회(FAL)


== 배경 ==
==업무==
[[제1차 세계 대전]]에 비하면 2차 대전의 발발 원인은 비교적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다. 물론 진짜 발발 원인이 간단한 게 아니라 1차 대전이 그만큼 발발 배경과 원인 분석이 기괴할 정도로 복잡하다는 것이지만, 상대적으로 제2차 세계 대전의 발발 원인은 간략화하기 쉬운 편이다. 그러나 간략화한다고 해서 쉽게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여전히 2차 대전의 배경에 대해서는 수많은 학자들 간의 토론과 연구가 진행 중이다.
* [[국제해사협약]]의 준수여부 감시
* SOLAS 및 SAR 등에 따른 인명구조 정보공유 및 안전 감시
* LL 및 COLREG 등에 따른 선체안전 정보공유 및 감시
* MARPOL 및 런던 협약 등에 따른 해양오염 감시
* STCW에 따른 선원교육 정보공유


가장 고전적인 설명은 선발 [[제국주의]] 국가(영국, 프랑스)와 후발 제국주의 국가(독일, 이탈리아, 일본)의 충돌이라는 것이다. 이는 1차 대전의 배경 설명에서도 나오는 것인데, 충분한 식민지를 확보하지 못한 후발 제국주의 국가들이 원료 공급지와 상품 시장을 확보하기 위해 식민지를 원했고, 1차 대전으로 식민지를 모두 상실한 독일, 1차 대전 승전국임에도 식민지 분배를 거의 받지 못한 일본과 이탈리아가 경제 대공황으로 영국, 프랑스의 식민지 블록이 형성되면서 이를 타개코자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본과 이탈리아는 대규모 식민지를 요구할 만큼 국내의 산업화가 충분히 이루어지지도 않은 상태였다는 반론이 있다.
==회원국==
 
* 회원국 (174개국)
이념적으로는 민족주의에 파시즘이 결합되면서 3국에서 극단적인 민족주의 정권이 등장했다. 이는 당시 서구 국가(미국, 영국, 프랑스)에서는 볼 수 없는 것으로 서구 국가들은 경제적 위기 속에서도 민주주의 정권이 정상적으로 작동된 반면, 이탈리아는 [[1923년]]에 일찌감치 민주 정권이 붕괴되었고, 독일은 경제 대공황의 위기 속에 [[바이마르 공화국]]이 붕괴되어 민주 정치가 종말을 맞이했으며, 일본은 군부와 민간 정부의 힘겨루기 속에 최종적으로 민간 정부가 패하고 군부가 정권을 잡게 되었다.
*: IMO의 골격인 국제해사협약을 비준한 국가들을 가리켜 회원국이라 한다. ‘바다는 모두의 것’이라는 사상에 입각해 내륙국도 회원국이 될 수 있다.
 
{| class=wikitable style=margin:auto;
독일에 한정해서는, 패전국에 대한 가혹한 징벌이 독일의 민족 감정을 들끓게 했다는 설명도 있다. 독일은 1차대전 패배로 모든 해외 식민지를 포기하고 동부 영토 상당수와 알자스-로렌을 상실하였으며, 군비를 제한당하고 라인란트 지역의 비무장지대화와 막대한 전쟁 배상금을 강요받았다. 여기에 독일 내부에서 유대인 및 사회주의자 때문에 전쟁에셔 졌다는 억지 주장까지 강력히 대두되면서 잃어버린 정당한 권리를 되찾자는 목소리가 나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알자스-로렌은 병합 40년이 지나도록 독일인들은 본국 취급조차 하지 않은 곳이며, 독일의 해외 식민지는 그다지 중요한 곳도 없었고 경제적으로도 보탬이 되지 않았다. 전쟁 배상금은 분명 천문학적인 수치였지만 여러 차례에 걸쳐 탕감되었다.
! 국명 || 비준년도
 
! 국명 || 비준년도
종합하자면 독일의 민족적, 국가적 자긍심이 크게 상처받은 상황에서 하필이면 타이밍 안 좋게 세계 대공황이 터졌고, 이로 인한 경제적 타격으로 민주주의 정부가 무너지고 극단적 민족주의가 크게 세를 떨치며 파시스트 정권이 수립, 이들의 대외 팽창 시도가 끝내 세계 대전으로 발발했다는 것이다.
! 국명 || 비준년도
 
|-
그 외에 하필이면 독일 파시스트 세력의 지도자가 하필이면 [[아돌프 히틀러]]였다는 것도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인데, 아돌프 히틀러가 아닌 다른 인물이었다면 전쟁은 막지 못했어도 적어도 세계 대전으로 번지지는 않았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 외에 [[1935년]]에서 [[1939년]]에 걸치 구 연합국들의 외교적인 독일 압박이 모조리 실패한 외교 정책의 실패도 한 요소로 들어갈 수 있는데 특히 영국과 프랑스의 공조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고, 소련과의 공동 협력에 실패해 [[독소 불가침조약]]이라는 최악의 결과물을 만들어낸 것도 중요한 문제였다.
| [[캐나다]] || style=text-align:center;| 1948
 
| [[네덜란드]] || style=text-align:center;| 1949
== 진행 과정 ==
| [[영국]] || style=text-align:center;| 1949
=== [[1939년]]: 전쟁 발발 ===
|-
[[1939년]] [[9월 1일]], 단치히 회랑 문제로 독일군이 전면적으로 [[폴란드 침공]]을 개시하면서 사상 최악의 대전쟁이 시작되었다. 정작 히틀러와 독일 수뇌부는 영국과 프랑스가 개입하지 않을 거라 생각하였지만, 계속되는 독일의 침략 행위에 더 이상 참지 못한 영국, 프랑스는 공동으로 [[9월 3일]], 대 독일 선전포고를 하고 전쟁에 뛰어들었다.
| [[미국]] || style=text-align:center;| 1950
 
| [[아일란드]] || style=text-align:center;| 1951
그러나 영국과 프랑스는 동원준비를 하느냐 초기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못했고, 덕분에 서부 전선에서는 총성 한 번 없는 이른바 [[가짜 전쟁]]이 지속되는 동안 독일은 소련과 함께 1달만에 폴란드 전토를 정복한 후 분할했다. 이후 40년 [[3월]]까지는 대규모 충돌은 없고 상호간의 소규모 해전이나 통상파괴전만 치러졌다.
| [[미얀마]] || style=text-align:center;| 1951
 
|-
=== [[1940년]] : 서부전선의 붕괴와 프랑스의 항복, 영국의 분투 ===
| [[벨기에]] || style=text-align:center;| 1951
{{인용문|프랑스의 전투는 끝났다. 이제 '''영국 전투'''가 시작되었다!|[[윈스턴 처칠]], 대 독일 전쟁의 지속을 결의하며}}
| [[오스트레일리아]] || style=text-align:center;| 1952
[[1940년#4월|1940년 4월]], 독일은 철광석의 원활한 수급을 목적으로 베제뤼봉 작전을 통해 [[덴마크]][[노르웨이]]를 전격적으로 침략, 덴마크로부터 군 주둔권을 얻어내고 노르웨이 및 연합군과의 교전 끝에 노르웨이 전 영토를 장악했다.
| [[프랑스]] || style=text-align:center;| 1952
 
|-
이런 북해의 총성과 별개로, [[1940년]] [[5월 10일]], 황색 작전을 통해 독일군이 서부 전선에서 전면적으로 총공세에 돌입했다. [[에리히 폰 만슈타인]]의 낫질 계획에 따라 독일군은 아무도 예상치 못한 아르덴 산림 지대를 돌파하여 연합군의 주력 부대를 해안가로 포위하는데 성공했고, 이 일련의 돌파 작전으로 프랑스군 주력의 1/3과 영국의 대륙 원정군, 벨기에군, 네덜란드군이 모조리 괴멸당하는 대참사가 일어났다.
| [[이스라엘]] || style=text-align:center;| 1952
 
| [[아르헨티나]] || style=text-align:center;| 1953
영국군은 황급히 됭케르크에서의 철수 작전을 강행하여 대륙 원정군을 빼내왔지만, 그러는 동안 독일군은 텅 빈 프랑스 내륙을 향해 파죽지세로 진격했다. 프랑스의 또 다른 주력 부대 중 1/3은 [[마지노선]]에서 독일 C집단군과 대치하여 움직이지 못해 독일군은 압도적인 숫적 우세와 화력, 제공권을 바탕으로 고속 진격을 거듭, 마침내 프랑스 정부는 파리를 무저항 도시로 선포하고 후퇴, [[6월 13일]] 파리에 독일군이 입성하였다. 그 직전인 [[6월 10일]], 이탈리아가 독일에 가세하여 프랑스에 선전 포고했고 [[6월 17일]], 프랑스의 새로운 총리로 선출된 [[앙리 필리프 페탱]]이 휴전을 제의, [[6월 22일]] 프랑스와 독일간의 정전 조약이 체결되었다.
| [[도미니카 공화국]] || style=text-align:center;| 1953
 
|-
프랑스의 항복으로 고립된 영국은 내부의 소수 강화론을 묵살하고 결전을 천명했다. 노르웨이 패전으로 실각한 [[네빌 체임벌린]]을 대신하여 새로 전시 거국 내각의 수상이 된 [[윈스턴 처칠]]은 결사 항전의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이에 독일은 [[8월]]부터 대대적으로 영국 본토를 폭격, 사상 최대의 공중전이라는 [[영국 본토 항공전]]이 일어났다. 전세는 한때 독일에게 유리하게 돌아가는 듯했으나, 독일측의 일부 미스와 영국 공군의 필사적인 반격으로 마침내 영국의 승리로 끝났다.
| [[아이티]] || style=text-align:center;| 1953
 
| [[온두라스]] || style=text-align:center;| 1954
한편, 새로이 추축국에 가세한 이탈리아는 그리스와 영국령 이집트를 침공했지만 모두 참패하고 패퇴, 자국령까지 밀렸으며 지중해 제해권은 영국군의 [[타란토 공습]]으로 완전히 영국에게 넘어가 버렸다.
| [[멕시코]] || style=text-align:center;| 1954
이후 헝가리, 루마니아, 불가리아가 추축국에 가입하고 추축국들은 유고슬라비아를 침공했다.
|-
 
| [[스위스]] || style=text-align:center;| 1955
'''그리고 이 이후로 추축국은 점점 패퇴하기 시작한다.'''
| [[에콰도르]] || style=text-align:center;| 1956
 
| [[이탈리아]] || style=text-align:center;| 1957
=== [[1941년]]: 사상 최악의 전쟁, 동부 전선의 독소 전쟁 ===
|-
[[1941년]] 초, 영국군은 북아프리카에서 승승장구하여 이탈리아령 리비아 대부분을 석권하는 듯했지만 [[에르빈 롬멜]]이 이끄는 독일군 북아프리카 군단이 참전하면서 다시 패퇴, 원래의 리비아-이집트 국경으로 후퇴했다. 뒤이어 [[4월]]에는 독일군이 유고슬라비아를 침략, 항복을 받아내고 이탈리아군이 고전하고 있던 그리스 전선에 개입, 발칸 전선을 종식시켰다.
| [[이집트]] || style=text-align:center;| 1958
 
| [[그리스]] || style=text-align:center;| 1958
[[1941년]] [[6월 22일]], 이 전쟁의 획기적 전환점이라고도 불리는 독소 전쟁이 발발했다. 독일군은 북부 핀란드 영토에서부터 남부 루마니아 국경에 이르는 긴 지역에서 일제히 전면적인 총공세, [[바르바로사 작전]]을 시작했다. 불과 3달여 만에 독일군은 서부 러시아 대부분을 석권했고, 키예프, 스몰렌스크, 민스크 등지에서 대규모 포위 섬멸전을 소련군 수백 개 사단을 섬멸했으며 레닌그라드를 포위하고 모스크바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그러나 독일군의 지속적 소모, 길어진 보급선, 러시아의 겨울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진격이 크게 둔화되었고, 소련은 [[이오시프 스탈린]]이 모스크바 사수를 선언하며 극동과 후방의 부대를 동원하고 새로운 부대를 신편하는 즉시 전선으로 내보내어 모스크바 전투에서 승리, 독소전쟁은 장기화되었다.
| [[이란]] || style=text-align:center;| 1958
 
|-
한편, 태평양에서는 ABDA(America-Britain-Dutch-Australia) 포위망이 형성, [[중일전쟁]] 중이던 일본에 대한 석유 금수 조치를 단행하고 있었고, 일본은 이에 대한 타개책은 선전포고 없이 미국의 태평양 함대 기지인 [[하와이]]의 진주만을 공습, 태평양 함대를 반신불수로 만들어버리고([[진주만 공습]]), 뒤이어 동남아시아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남방 작전]]에 돌입한다. 이에 독일과 이탈리아와 호응하여 미국에 선전 포고하면서 마침내 미국이 대전에 참가하게 된다.
| [[일본]] || style=text-align:center;| 1958
 
| [[노르웨이]] || style=text-align:center;| 1958
=== [[1942년]] : 전쟁의 전환점, 반격의 시작 ===
| [[파키스탄]] || style=text-align:center;| 1958
동부 전선에서는 동계를 넘긴 독일군이 소련군의 두 반격(브야즈마 포켓 공격 및 [[제2차 하르코프 공방전]])을 완파해낸 뒤, [[1942년]] 하계 공세인 [[블라우 작전]]을 개시했다. 독일군은 크림 반도의 소련군을 일소한 후 소련 남부 지역으로 초고속 진격을 단행, 카프카스와 스탈린그라드 양방향으로 공세를 펼쳤고, 독일 제6군이 스탈린그라드에 도달하자, 소련군은 남부 교통의 요충지인 이곳을 사수하기 위해 투입 가능한 모든 전력을 긁어모으며 악명 높은 [[스탈린그라드 전투]]가 시작되었다. 독일군은 막대한 희생을 치르면서도 소련군을 거의 밀어내며 시가지 대부분을 석권하였으나, [[11월 10일]] 천왕성 작전을 발동하며 스탈린그라드에 대한 포위망을 형성했다. 이에 독일군은 만슈타인이 이끄는 돈 집단군으로 포위망 돌파에 나섰으나 실패했고, 스탈린그라드 전투는 종막으로 치달았다.
|-
 
| [[파나마]] || style=text-align:center;| 1958
북아프리카 전선에서는 에르빈 롬멜의 북아프리카 군단이 토보록 요새를 함락하고 이집트 깊숙히 위치한 엘 알라메인까지 치고 올라왔다. 영국군은 나일 강까지 후퇴하게 해달라고 요청했으나 윈스턴 처칠은 무슨 일이 있어도 현 위치를 사수하라고 강력히 지시했고, 독일군의 공세 능력도 현저하게 떨어지면서 엘 알라메인에서 전선은 교착되었다. 이후 새로이 부임한 영국의 [[버나드 몽고메리]] 장군은 섣불리 공세에 나서지 않고 지원 받은 전략을 모아두었다가 일제히 공세를 개시, [[10월]]에서 [[11월]]에 걸친 제2차 엘 알라메인 전투에서 독일군을 격파하고 리비아로 몰아냈다. 동시에 미영 연합군은 [[비시프랑스]]령 모로코와 알제리에 상륙하여 북아프리카 서부를 석권하고 아프리카의 추축군을 튀니지로 밀어넣었다.
| [[러시아]] || style=text-align:center;| 1958
 
| [[터키]] || style=text-align:center;| 1958
태평양 전선에서 일본군은 남방 작전으로 동남아시아를 석권하고 [[실론 해전]]으로 인도양의 제해권까지 장악하며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호주를 봉쇄하기 위해 포트 모르즈비를 점령하려던 것이 미국 해군의 반격으로 좌절되고([[산호해 해전]]), 뒤이어 미 해군 항공모함을 모두 격침시킨다는 목적으로 행히진 [[미드웨이 해전]]에선 오히려 항공모함 4척을 잃는 대참패를 당했다. 뒤이어 호주에 대한 해상 수송로 봉쇄를 목적으로 진행된 [[과달카날 전투]]에서는 미군의 본격적인 반격을 받으며 귀중한 전력만 낭비한 채 패하였고, 미국은 차근차근히 태평양을 가로지르기 시작했다.
|-
 
| [[덴마크]] || style=text-align:center;| 1959
=== [[1943년]]: 파시스트의 심장부를 향하여 ===
| [[핀란드]] || style=text-align:center;| 1959
스탈린그라드 전투 종결 직후, 독일군은 [[제3차 하르코프 공방전]]의 대승으로 한숨을 돌렸으나 여전히 동부 전선의 균형추는 소련에게 기울어져 있었다. 이후 양국은 거의 모든 전력을 쿠르스크 돌출부에 집중시켜, [[7월 6일]] 사상 최대 규모의 기갑전이라는 [[쿠르스크 전투]]가 발발했다. 쿠르스크 전투에서 소련군은 큰 피해를 입었음에도 독일군에게도 만만찮은 피해를 안기며 최종적으로는 독일군의 포위 시도를 저지해냈고, 동부 전선의 균형추를 확실하게 소련으로 가지고 온다.
| [[독일]] || style=text-align:center;| 1959
 
|-
북아프리카 전선에서는 미·영 연합군이 튀니지에서 추축군의 항복을 받아내어 전선을 종결시키고, 곧바로 시칠리아에 상륙 후 점령하고 이탈리아는 추축 동맹에서 이탈, 항복한다. 그러나 곧바로 독일군이 이탈리아를 점령해버리며 북부에 [[베니토 무솔리니]]를 수장으로 하는 괴뢰 살로 공화국을 건설했다. 연합군은 남부 이탈리아에 상륙한 후 북진을 시작하며 이탈리아 전선이 새로이 형성된다.
| [[가나]] || style=text-align:center;| 1959
 
| [[인도]] || style=text-align:center;| 1959
태평양에서는 남양 군도의 각 주요 환초와 섬들을 대상으로 한 공략전이 시작되어 타라와와 같은 요충지들이 속속 미군에게 떨어졌다. 미군은 태평양을 가로지르며 일본 본토와 그 점령지 코앞까지 진공했다.
| [[라이베리아]] || style=text-align:center;| 1959
 
|-
=== [[1944년]]: 해방과 자유의 해 ===
| [[스웨덴]] || style=text-align:center;| 1959
[[1944년]] [[6월 6일]] 새벽, 프랑스 북부의 노르망디 해안에 수천 여 척의 함정과 비행기가 배와 하늘을 뒤덮었다. 됭케르크 철수 이후 약 4년여 만에 연합군이 유럽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 유명한 [[노르망디 상륙작전]]이었다. 독일군은 국지적으로 반격을 시도했으나 주력 대부분이 동부전선에 묶여 있어서 연합군의 상륙에 대대적으로 대응하지 못했고, 상륙 3달 여 만인 [[8월 23일]] 마침내 프랑스의 수도 파리가 해방되었다. [[파리]]가 해방된 이후에도 연합군은 진격을 멈추지 않고 동쪽으로 향했다. 이를 저지하기 위해 독일은 마지막 전력을 긁어모아 [[아르덴 대공세]]를 펼쳐 잠시 동안이나마 연합군에 위기를 주었으나 이내 공세는 돈좌되었다.
| [[불가리아]] || style=text-align:center;| 1960
 
| [[코트디부아르]] || style=text-align:center;| 1960
동부 전선에선 소련군이 바르바로사 작전 3주년을 맞는 [[1944년]] [[6월 22일]][[바그라티온 작전]]을 발동, 동부 전선 전역에서 총공세에 돌입했다. 이 대규모 공세에 동부 전선의 독일군은 휩쓸려 나가 순식간에 무너졌고, 소련군은 삽시간에 [[벨로루시]]까지 탈환하고 구 [[폴란드]] 영토까지 진격했으며, 독일의 동맹국이던 핀란드, 불가리아, 루마니아가 소련에 항복하고
|-
추축국에 이탈하려는 헝가리가 독일에게 점령되었다.
| [[아이슬란드]] || style=text-align:center;| 1960
 
| [[쿠웨이트]] || style=text-align:center;| 1960
태평양에서 미군은 [[필리핀 해 해전]], [[레이테 만 해전]]으로 일본의 남은 해상 전력을 완전히 섬멸하고 태평양에서의 절대적인 제해권을 확보하였으며 뒤이어 괌과 사이판을 점령하고 [[일본 본토 공습]]을 개시했다. 맥아더가 이끄는 미군은 레이테 섬을 시작으로 필리핀 탈환전을 개시, 빠른 속도로 일본군을 격퇴했으며, 버마에서는 일본군의 [[임팔 작전]]이 대실패로 끝나, 영국군이 역으로 버마 탈환에 나섰다.
| [[뉴질랜드]] || style=text-align:center;| 1960
 
|-
=== [[1945년]]: 신들의 황혼 ===
| [[폴란드]] || style=text-align:center;| 1960
해를 넘겨 계속된 아르덴 대공세는 마침내 연합군의 완승으로 끝났고, 서부전선 붕괴는 가속화되었다. 연합군은 이제 프랑스-독일 국경을 넘어 독일 영토로 진공했고, 이들 앞을 막아서는 독일군은 존재하지 않았다. 동부 전선에서도 소련군은 베를린을 향해 총공세를 펼쳤고, 마침내 [[4월]] 하순 베를린이 포위되었다. 전세를 되돌릴 수 있다는 허황된 믿음을 가지고 있던 아돌프 히틀러는 [[4월 30일]] 베를린의 지하 벙커에서 권총 자살했고, 얼마 안 가 베를린 국회의사당에 소련기가 내걸리며 베를린 전투가 종료되었다. 히틀러에 의해 후계자로 지명된 해군 원수 및 신임 대통령 [[카를 되니츠]][[5월 8일]] 연합국에 무조건 항복함으로서 유럽의 전쟁이 끝났다.
| [[세네갈]] || style=text-align:center;| 1960
 
| [[캄보디아]] || style=text-align:center;| 1961
태평양에서는 미군이 필리핀을 완전히 탈환하고, 이오지마, 오키나와, 보르네오 등을 차례차례 점령했다. 계속되는 공습으로 일본 본토의 대도시들은 모두 초토화되었고, 대규모 기뢰 부설과 잠수함 작전으로 일본 본토의 물자난은 가중되었다. 동남아시아에서 영국군은 버마를 거의 탈환하고 태국 국경에까지 이르렀으며, 중국 전선에서도 약화된 일본군을 향해 중국군이 덤벼들고 있었다. 그럼에도 항복을 거부하던 일본을 향해 미국은 [[히로시마]][[나가사키]]에 인류 최초의 핵공격을 단행했다. 동시에 [[8월 9일]], 소련이 선전포고와 함께 만주와 사할린에서 일본을 향해 공세를 시작하자 [[8월 15일]] 일본도 무조건 항복을 선언함으로서 전쟁이 끝났다.
|-
 
| [[카메룬]] || style=text-align:center;| 1961
== 결과 ==
| [[인도네시아]] || style=text-align:center;| 1961
권위주의의 극단화인 파시즘이라는 절대적 악의 근원을 격멸한 뒤 연합국은 미국을 필두로 하는 자본주의 진영 제1세계와 소비에트 연방을 필두로 하는 제2세계로 분열되었다. 전쟁으로 완전히 그 힘을 잃고 식민 제국이 해체된 영국, 프랑스와 달리 그 막강한 국력을 바탕으로 전쟁 승리를 주도한 서방 진영의 리더 미국, 그리고 엄청난 피해를 입었지만 결국 독일을 격파하고 그 와중에 동유럽 전체를 세력권에 편입한 소련은 각각 자본 진영과 공산 진영의 맹주로 떠오르며 이후 40여년간 지속될 냉전의 주축이 된다.
| [[마다가스카]] || style=text-align:center;| 1961
 
|-
영국과 프랑스, 네덜란드는 대전으로 인한 피해와 부담을 감당해내지 못하고 식민지들을 포기하였으며, 패전국 일본과 이탈리아의 식민지들은 자연적으로 모두 독립하였다. 승전국 측 열강들은 미국의 도움을 받으며 서방 중견국의 위치를 차지했지만, 독일은 동독과 서독으로 분단되었고, 일본은 정규군 보유를 금지당하며 미국으로부터 엄격한 제약을 받았다. 비록 [[일본군 위안부 문제|위안부 문제]], 강제 징용 등의 아픔을 겪기도 했으나 일본 제국의 패망을 불러옴으로써 한국에게 일본 제국 치하로부터의 해방이라는 결과를 주기도 한 전쟁이다.
| [[모리타니]] || style=text-align:center;| 1961
 
| [[모로코]] || style=text-align:center;| 1962
한국은 일본의 항복으로 광복을 맞이하긴 했지만 직후<ref>독일 패배하여 유럽 전선이 정리된 이후인 [[1945년]] [[2월 4일]] 개최된 [[얄타 회담]]에서 미국과 소련의 상호 합의하에 미리 정해진 행동이긴 했다.</ref> 한반도에 주둔 중인 일본군의 무장해제 및 안정화를 명분 삼아 한반도 중앙을 관통하는 38선을 기준으로 남쪽에는 미군이, 북쪽은 소련군이 각각 진주(進駐)하게 되었고, [[제국주의]]가 종식되자마자 미국을 위시한 자유진영과 소련을 위시한 공산진영의 대립이 또다시 한반도에서 벌어지고야 말았다. 같은 추축국이었음에도 독일은 자국의 영토가 동서로 분단되었지만, 일본은 영토 분단이나 정치적 혼란은 거의 발생하지 않은 상태에서 오히려 일본에 의해 식민지배를 당했던 피해자인 한국이 오히려 남과 북으로 분단되는 결말을 맞이하게 되었다.
| [[나이지리아]] || style=text-align:center;| 1962
 
|-
== 같이 보기 ==
| [[대한민국]] || style=text-align:center;| 1962
* [[태평양 전쟁]]
| [[스페인]] || style=text-align:center;| 1962
* [[독소 전쟁]]
| [[알제리아]] || style=text-align:center;| 1963
* [[중일 전쟁]]
|-
| [[브라질]] || style=text-align:center;| 1963
| [[시리아]] || style=text-align:center;| 1963
| [[튀니지]] || style=text-align:center;| 1963
|-
| [[필리핀]] || style=text-align:center;| 1964
| [[루마니아]] || style=text-align:center;| 1965
| [[트리니다드 토바고]] || style=text-align:center;| 1965
|-
| [[쿠바]] || style=text-align:center;| 1966
| [[레바논]] || style=text-align:center;| 1966
| [[몰타]] || style=text-align:center;| 1966
|-
| [[싱가포르]] || style=text-align:center;| 1966
| [[몰디브]] || style=text-align:center;| 1967
| [[페루]] || style=text-align:center;| 1968
|-
| [[우루과이]] || style=text-align:center;| 1968
| [[사우디아라비아]] || style=text-align:center;| 1969
| [[바베이도스]] || style=text-align:center;| 1970
|-
| [[헝가리]] || style=text-align:center;| 1970
| [[리비아]] || style=text-align:center;| 1970
| [[말레이시아]] || style=text-align:center;| 1971
|-
| [[칠레]] || style=text-align:center;| 1972
| [[적도 기니]] || style=text-align:center;| 1972
| [[스리랑카]] || style=text-align:center;| 1972
|-
| [[중국]] || style=text-align:center;| 1973
| [[키프로스]] || style=text-align:center;| 1973
| [[콩고 민주 공화국]] || style=text-align:center;| 1973
|-
| [[이라크]] || style=text-align:center;| 1973
| [[요르단]] || style=text-align:center;| 1973
| [[케냐]] || style=text-align:center;| 1973
|-
| [[시에라리온]] || style=text-align:center;| 1973
| [[태국]] || style=text-align:center;| 1973
| [[콜롬비아]] || style=text-align:center;| 1974
|-
| [[오만]] || style=text-align:center;| 1974
| [[수단]] || style=text-align:center;| 1974
| [[탄자니아]] || style=text-align:center;| 1974
|-
| [[오스트리아]] || style=text-align:center;| 1975
| [[콩고 공화국]] || style=text-align:center;| 1975
| [[에티오피아]] || style=text-align:center;| 1975
|-
| [[기니]] || style=text-align:center;| 1975
| [[베네수엘라]] || style=text-align:center;| 1975
| [[바하마]] || style=text-align:center;| 1976
|-
| [[바레인]] || style=text-align:center;| 1976
| [[방글라데시]] || style=text-align:center;| 1976
| [[카보베르데]] || style=text-align:center;| 1976
|-
| [[가봉]] || style=text-align:center;| 1976
| [[자메이카]] || style=text-align:center;| 1976
| [[파푸아뉴기니]] || style=text-align:center;| 1976
|-
| [[포르투갈]] || style=text-align:center;| 1976
| [[수리남]] || style=text-align:center;| 1976
| [[앙골라]] || style=text-align:center;| 1977
|-
| [[기니비사우]] || style=text-align:center;| 1977
| [[카타르]] || style=text-align:center;| 1977
| [[모리셔스]] || style=text-align:center;| 1978
|-
| [[세이셸]] || style=text-align:center;| 1978
| [[소말리아]] || style=text-align:center;| 1978
| [[지부티]] || style=text-align:center;| 1979
|-
| [[도미니카 연방]] || style=text-align:center;| 1979
| [[감비아]] || style=text-align:center;| 1979
| [[모잠비크]] || style=text-align:center;| 1979
|-
| [[네팔]] || style=text-align:center;| 1979
| [[예멘]] || style=text-align:center;| 1979
| [[베냉]] || style=text-align:center;| 1980
|-
| [[가이아나]] || style=text-align:center;| 1980
| [[세인트루시아]] || style=text-align:center;| 1980
| [[UAE]] || style=text-align:center;| 1980
|-
| [[코스타리카]] || style=text-align:center;| 1981
| [[엘살바도르]] || style=text-align:center;| 1981
| [[세인트빈센트 그레나딘]] || style=text-align:center;| 1981
|-
| [[니카라과]] || style=text-align:center;| 1982
| [[피지]] || style=text-align:center;| 1983
| [[과테말라]] || style=text-align:center;| 1983
|-
| [[토고]] || style=text-align:center;| 1983
| [[브루나이]] || style=text-align:center;| 1984
| [[베트남]] || style=text-align:center;| 1984
|-
| [[앤티가 바부다]] || style=text-align:center;| 1986
| [[북한]] || style=text-align:center;| 1986
| [[바누아투]] || style=text-align:center;| 1986
|-
| [[볼리비아]] || style=text-align:center;| 1987
| [[솔로몬 제도]] || style=text-align:center;| 1988
| [[말라위]] || style=text-align:center;| 1989
|-
| [[모나코]] || style=text-align:center;| 1989
| [[벨리즈]] || style=text-align:center;| 1990
| [[상투메 프린시페]] || style=text-align:center;| 1990
|-
| [[룩셈부르크]] || style=text-align:center;| 1991
| [[크로아티아]] || style=text-align:center;| 1992
| [[에스토니아]] || style=text-align:center;| 1992
|-
| [[알바니아]] || style=text-align:center;| 1993
|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 style=text-align:center;| 1993
| [[체코]] || style=text-align:center;| 1993
|-
| [[에리트레아]] || style=text-align:center;| 1993
| [[조지아 (나라)|조지아]] || style=text-align:center;| 1993
| [[라트비아]] || style=text-align:center;| 1993
|-
| [[파라과이]] || style=text-align:center;| 1993
| [[슬로바키아]] || style=text-align:center;| 1993
| [[슬로베니아]] || style=text-align:center;| 1993
|-
| [[북마케도니아]] || style=text-align:center;| 1993
| [[투르크메니스탄]] || style=text-align:center;| 1993
| [[카자흐스탄]] || style=text-align:center;| 1994
|-
| [[나미비아]] || style=text-align:center;| 1994
| [[우크라이나]] || style=text-align:center;| 1994
| [[아제르바이잔]] || style=text-align:center;| 1995
|-
| [[리투아니아]] || style=text-align:center;| 1995
| [[남아프리카 공화국]] || style=text-align:center;| 1995
| [[몽골]] || style=text-align:center;| 1996
|-
| [[사모아]] || style=text-align:center;| 1996
| [[그레나다]] || style=text-align:center;| 1998
| [[마셜 제도]] || style=text-align:center;| 1998
|-
| [[세르비아]] || style=text-align:center;| 2000
| [[통가]] || style=text-align:center;| 2000
| [[코모로]] || style=text-align:center;| 2001
|-
| [[몰도바]] || style=text-align:center;| 2001
| [[세인트키츠 네비스]] || style=text-align:center;| 2001
| [[산마리노]] || style=text-align:center;| 2002
|-
| [[키리바시]] || style=text-align:center;| 2003
| [[투발루]] || style=text-align:center;| 2004
| [[동티모르]] || style=text-align:center;| 2005
|-
| [[짐바브웨]] || style=text-align:center;| 2005
| [[몬테네그로]] || style=text-align:center;| 2006
| [[쿡 제도]] || style=text-align:center;| 2008
|-
| [[우간다]] || style=text-align:center;| 2009
| [[팔라우]] || style=text-align:center;| 2011
| [[잠비아]] || style=text-align:center;| 2014
|-
| [[벨라루스]] || style=text-align:center;| 2016
| [[아르메니아]] || style=text-align:center;| 2018
| [[나우루]] || style=text-align:center;| 2018
|-
|}


* 준회원국
*: 회원국의 통치령은 소속 회원국의 통보에 의해 준회원국이 될 수 있다. 이들은 옵저버에 해당하며 총회 투표권이나 이사회 피선거권이 없지만 부담금은 동등하게 낸다.
** 마카오 (중국령) - 1967년 가입
** 홍콩 (중국령) - 1990년 가입
** 페로 제도 (덴마크령) - 2002년 가입
{{각주}}
{{각주}}
{{서양사}}
{{유엔}}
[[분류:제2차 세계 대전| ]]
[[분류:국제기구]]
[[분류:1939년 분쟁]]
[[분류:1948년 설립]]
[[분류:명수 2]]
[[분류:바다]]
[[분류:영국]]
[[분류:유엔]]

2022년 6월 1일 (수) 16:41 판

{{{단체이름}}}
국제해사기구.gif
단체 정보
목적 공해상의 안전 운항 도모
본부 영국 런던
웹사이트 홈페이지
한국어 소식(한국해사안전국제협력센터)

국제해사기구(International Marine Organization;IMO)는 UN 산하의 전문기구로 해운과 선박에 관련한 사항 전반과 해상에서의 안전, 보안, 선박으로부터의 해양오염 방지를 책임지는 국제기구이다. 즉 해운업에 영향을 주는 것을 모두 다루는 기구라 할 수 있다.

역사

기원전 5000년전부터 선박을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을 만큼 해운의 역사는 오래되었지만, 공해상의 해운을 공통적으로 통제하는 기구는 부재했었다. UN 소위원회에서 부분적으로 담당했지만 타이타닉호 사고 이후에 뒤늦게 “해상에서의 인명 안전을 위한 국제협약(SOLAS)”을 채택하는 등 체계적인 시스템의 필요성이 수표면 위로 떠올랐다.

  • 1948년 국제연합해사회의에서 “국제해사기구 설치에 관한 협약” 채택
  • 1958년 일본 가입을 마지막으로 배수량 100만톤 이상 소유국 7개국을 만족하여 IMO협약 발효
  • 1959년 “정부간 해사자문기구(IMCO)” 제1회 총회 개최
  • 1982년 “국제해사기구”로 명칭 변경

조직

  • 총회
    회원국이 모두 모여 안건을 결정하는 회담의 장...인데, 참여자가 너무 많고, 횟수도 2년에 한번이라 이사회에서 올라온 안건을 처리하는 거수기에 가깝다. 다만 사무총장이나 이사회에서 임시총회를 소집할 수 있다.
  • 이사회
    IMO의 실질적인 의사결정기구로, 총회에서 총 40개국이 선출되며 임기는 2년이다. 이사회의 면면을 보면 배 많이 띄우는 해운 10개국(A그룹), 배 많이 쓰는 화주 10개국(B그룹), 기타 지역대표 20개국(C그룹)으로 구성된다. 이사회의 업무는 사무국에서 보조한다.
    이사국의 순환이 정체되는 것은 IMO 초기부터 논란이 되어 왔으며, 16개국이었던 이사국은 정관 개정을 여러번 거쳐 40개국까지 늘어났다. 그럼에도 순환이 잘 되는 편은 아니어서 대한민국의 경우 C그룹에서 5연임, A그룹에서 10연임하여 30년째 이사국으로 재임하고 있는 상황이다[1]. A, B그룹의 경우 너무 정체가 심해서 간혹 A·B그룹에서 C그룹으로 누가 내려갈 때만 다른 국가가 잠깐 합류하는 정도에 그친다. C그룹도 고이기는 마찬가지라서 몇몇 자리만 순환되고 나머지는 익숙한 얼굴들이다.
이사국 목록(2020-2021)[2]
A그릅 대한민국, 일본, 중국, 이태리, 그리스, 영국, 미국, 파나마, 러시아, 노르웨이
B그룹 호주, 독일, 프랑스, 스페인, 인도, 캐나다, 네덜란드, UAE, 브라질, 아르헨티나
C그룹 싱가포르, 몰타, 말레이시아, 사이프러스, 인도네시아, 바하마, 남아공, 멕시코, 칠레,
벨기에, 이집트, 페루, 모로코, 덴마크, 터키, 태국, 자메이카, 필리핀, 쿠웨이트, 케냐
  • 소위원회
    이사회 밑에서 실무를 담당하는 기구로, 5개 소위원회가 구성되어 있으며 하위에 전문위원회가 설치되어 있다. 프로젝트 단위로 작업반이 구성되어 세부적인 논의를 진행한다.
    • 해사안전위원회(MSC)
    • 해양환경보호위원회(MEPC)
    • 법률위원회(LEG)
    • 기술협력위원회(TC)
    • 해상교통간소화위원회(FAL)

업무

  • 국제해사협약의 준수여부 감시
  • SOLAS 및 SAR 등에 따른 인명구조 정보공유 및 안전 감시
  • LL 및 COLREG 등에 따른 선체안전 정보공유 및 감시
  • MARPOL 및 런던 협약 등에 따른 해양오염 감시
  • STCW에 따른 선원교육 정보공유

회원국

  • 회원국 (174개국)
    IMO의 골격인 국제해사협약을 비준한 국가들을 가리켜 회원국이라 한다. ‘바다는 모두의 것’이라는 사상에 입각해 내륙국도 회원국이 될 수 있다.
국명 비준년도 국명 비준년도 국명 비준년도
캐나다 1948 네덜란드 1949 영국 1949
미국 1950 아일란드 1951 미얀마 1951
벨기에 1951 오스트레일리아 1952 프랑스 1952
이스라엘 1952 아르헨티나 1953 도미니카 공화국 1953
아이티 1953 온두라스 1954 멕시코 1954
스위스 1955 에콰도르 1956 이탈리아 1957
이집트 1958 그리스 1958 이란 1958
일본 1958 노르웨이 1958 파키스탄 1958
파나마 1958 러시아 1958 터키 1958
덴마크 1959 핀란드 1959 독일 1959
가나 1959 인도 1959 라이베리아 1959
스웨덴 1959 불가리아 1960 코트디부아르 1960
아이슬란드 1960 쿠웨이트 1960 뉴질랜드 1960
폴란드 1960 세네갈 1960 캄보디아 1961
카메룬 1961 인도네시아 1961 마다가스카 1961
모리타니 1961 모로코 1962 나이지리아 1962
대한민국 1962 스페인 1962 알제리아 1963
브라질 1963 시리아 1963 튀니지 1963
필리핀 1964 루마니아 1965 트리니다드 토바고 1965
쿠바 1966 레바논 1966 몰타 1966
싱가포르 1966 몰디브 1967 페루 1968
우루과이 1968 사우디아라비아 1969 바베이도스 1970
헝가리 1970 리비아 1970 말레이시아 1971
칠레 1972 적도 기니 1972 스리랑카 1972
중국 1973 키프로스 1973 콩고 민주 공화국 1973
이라크 1973 요르단 1973 케냐 1973
시에라리온 1973 태국 1973 콜롬비아 1974
오만 1974 수단 1974 탄자니아 1974
오스트리아 1975 콩고 공화국 1975 에티오피아 1975
기니 1975 베네수엘라 1975 바하마 1976
바레인 1976 방글라데시 1976 카보베르데 1976
가봉 1976 자메이카 1976 파푸아뉴기니 1976
포르투갈 1976 수리남 1976 앙골라 1977
기니비사우 1977 카타르 1977 모리셔스 1978
세이셸 1978 소말리아 1978 지부티 1979
도미니카 연방 1979 감비아 1979 모잠비크 1979
네팔 1979 예멘 1979 베냉 1980
가이아나 1980 세인트루시아 1980 UAE 1980
코스타리카 1981 엘살바도르 1981 세인트빈센트 그레나딘 1981
니카라과 1982 피지 1983 과테말라 1983
토고 1983 브루나이 1984 베트남 1984
앤티가 바부다 1986 북한 1986 바누아투 1986
볼리비아 1987 솔로몬 제도 1988 말라위 1989
모나코 1989 벨리즈 1990 상투메 프린시페 1990
룩셈부르크 1991 크로아티아 1992 에스토니아 1992
알바니아 1993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1993 체코 1993
에리트레아 1993 조지아 1993 라트비아 1993
파라과이 1993 슬로바키아 1993 슬로베니아 1993
북마케도니아 1993 투르크메니스탄 1993 카자흐스탄 1994
나미비아 1994 우크라이나 1994 아제르바이잔 1995
리투아니아 1995 남아프리카 공화국 1995 몽골 1996
사모아 1996 그레나다 1998 마셜 제도 1998
세르비아 2000 통가 2000 코모로 2001
몰도바 2001 세인트키츠 네비스 2001 산마리노 2002
키리바시 2003 투발루 2004 동티모르 2005
짐바브웨 2005 몬테네그로 2006 쿡 제도 2008
우간다 2009 팔라우 2011 잠비아 2014
벨라루스 2016 아르메니아 2018 나우루 2018
  • 준회원국
    회원국의 통치령은 소속 회원국의 통보에 의해 준회원국이 될 수 있다. 이들은 옵저버에 해당하며 총회 투표권이나 이사회 피선거권이 없지만 부담금은 동등하게 낸다.
    • 마카오 (중국령) - 1967년 가입
    • 홍콩 (중국령) - 1990년 가입
    • 페로 제도 (덴마크령) - 2002년 가입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