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테네그로

몬테네그로
Crna Gora
Црна Гора
Flag of Montenegro.svg
국기
Coat of arms of Montenegro.svg
국장
국가
"Oj, svijetla majska zoro"
나라 정보
수도 포드고리차 (Podgorica)
공용어 몬테네그로어
정부유형 공화국
인구 647,073 명
면적 13,812 km2
기타 정보
GDP PPP:
전체: 15,700 달러
1인당: 달러
화폐 유로
시간대 UTC+1
ISO 499, ME, MNE
도메인 .me

몬테네그로유럽나라이다. 이탈리아어로 검은(Negro) 산(Monte)이라는 뜻이며, 현지어(세르보크로아트어)로는 같은 의미로서 '츠르나고라'[1]라고 한다.

지리[편집 | 원본 편집]

아드리아 해 동쪽에 위치하며, 대체로 산지와 구릉으로 이루어져 있다.

역사[편집 | 원본 편집]

몬테네그로의 역사는 저 멀리 로마 시대까지 올라가나, 대체로 현 몬테네그로인들의 조상인 슬라브 부족들이 대거 남하한 7세기부터 제대로 역사로 다룰 수 있다.

중세 시대[편집 | 원본 편집]

몬테네그로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첫 국가는 두클랴(Duklja; Doclea) 왕국이었다. 원래 두클랴 왕국은 비잔틴 제국의 속국이었으나, 보이슬라블례비치(Vojislavljević) 왕조 아래 차츰 독립을 추구하여 1024년 바르(Bar) 전투에서 비잔틴 군에 맞서 이긴 뒤 독립을 얻어냈다. 그 뒤 두클랴 왕국은 미하일로(Mihailo; 1046~1081) 왕과 그의 아들 보딘(Bodin; 1081~1101) 왕 아래 전성기를 누린다.

그러나 왕국의 고질병인 후계 상속 문제로 인해 서로 치고박고 싸우다가 힘이 약해져 12세기 말 네마니치(Nemanjić) 왕국(나중에 세르비아 제국이 된다)이 무력으로 점령하면서 다시 쇠퇴한다. 또한 당시 로마 가톨릭이 주류였던 두클랴 지방이 강제로 정교회로 개종당하는 등 많은 수난을 겪었다. 곧 네마니치 왕국이 두샨(Dušan) 왕의 사망(1355년)을 기점으로 쇠퇴하자 당시 두클랴 지방의 영주였던 발사 1세(Balsa I)가 두클랴 지방의 독립을 다시 주장하며 1360년 네마니치 왕국에서 떨어져 나와 발시치(Balsic) 왕조의 제타(Zeta) 공국을 세운다.

발사 1세의 둘째 아들이었던 주라지 1세(Djuradj; ? ~ 1378)는 발시치 왕조의 기틀을 다진 인물로, 원래 두클랴 왕국의 영토를 상당수 수복하고 체제 정비와 상업 진흥에 힘을 썼다. 그러나 두클랴 왕국의 옛 영토 일부가 다른 나라들의 일부가 된 탓에 주라지 1세는 이웃들과 그닥 평화적으로 지내지 못했다. 이후 주라지 1세가 사망한 뒤 발시치 왕조는 지방 호족들의 출현과 이웃 나라들과의 전쟁에 국력을 쏟아붓다(다만 1389년 코소보 전투에서 세르비아를 돕기도 했다) 결국 발사 3세(1403 ~ 1421년)가 왕위를 다른 귀족에게 넘기면서 끝나버린다.

왕위가 이렇게 붕 뜨자 제타 공국에는 왕위를 놓고 귀족들의 치열한 싸움과 혼란이 계속되었다. 이 혼란 끝에 승자가 된 사람은 바로 발시치 왕조의 분파였던 츠르노예비치(Crnojević) 왕조였다. 츠르노예비치 왕조를 연 스테판(Stefan; 1427 ~ 1465)은 세르비아와 보스니아가 오스만 튀르크의 무력으로 궤멸당하는 것을 바로 옆에서 보고 베네치아 공화국과 속국 관계를 맺는 등 외교에 중점을 두었다.

스테판을 이은 이반(Ivan; 1465 ~ 1490)은 아버지와 달리 베네치아와 대립하며 해안가 일부를 정벌하였다. 그러나 오스만 튀르크가 더욱 더 가까이 다가오자 위협을 느끼고 다시 베네치아 밑으로 들어간 뒤 오스만 튀르크를 물리친다. 또한 수도를 좀 더 쉽게 방어하기 위해 1482년 스카다르(Skadar; Shköder) 호에 맞닿은 자블랴크(Žabljak)에서 로브첸(Lovcen) 산 밑턱의 체티녜(Cetinje)로 옮겼다. 이반의 뒤를 이은 주라지(1490 ~ 1496)는 학식이 깊은 사람이었고 그에 걸맞게 인쇄소를 들여와 책을 출판하는 등 문화 진흥을 이끌었다. 그러나 오스만 튀르크가 다시 쳐들어오자 그는 프랑스로 도망쳐버리고 츠르노예비치 왕조 또한 끝나버렸다.

페트로비치 왕조[편집 | 원본 편집]

츠르노예비치 왕조가 끝난 뒤 몬테네그로는 오스만 튀르크 제국이 다스리는 땅이 되었다. 그러나 몬테네그로는 꾸준히 오스만에 반기를 들었고, 결국 16세기에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자치를 획득한다. 몬테네그로는 이후 몬테네그로 동방 교회의 수장인 "블라디카(Vladika)"가 이끄는 신정 국가가 되었는데, 특이하게도 블라디카는 사람들이 모여 직접 귀족 자제들 중 한 명을 뽑는 식으로 승계되었다.

1697년 블라디카가 된 다닐로 페트로비치(Danilo Petrović)는 블라디카를 세습직으로 바꾸면서 페트로비치 왕조를 세웠다. 물론 정교회의 수장은 동정이어야 했기에 세습은 삼촌이 조카에게 물려주는 식으로 이어졌다.

페타르 1세(Petar I; 1784~1830)와 페타르 2세(1830~1851)의 치세에는 수많은 개혁 시도가 이루어져 법령, 과세 제도, 원로원 등이 생겨난다. 페타르 2세의 사망 이후 페타르 2세의 장남이었던 페로 토모브(Pero Tomov Petrović)와 조카였던 다닐로(Danilo Petrović) 사이에서 계승권을 놓고 다투다가 러시아 제국의 지지를 받은 다닐로가 경쟁에서 승리한다. 이때 러시아가 다닐로를 "몬테네그로의 대공"으로 지칭하면서 참 쉽게 몬테네그로는 세속화된다.

몬테네그로의 대공의 된 다닐로는 일단 꾸준히 문제를 일으켜왔던 오스만 튀르크와의 국경 문제를 잠시 마무리짓고, 법률을 개혁하는 등 강력한 중앙집권화 정책을 펼쳤다. 외교적으로 그는 독립을 인정받기 위해 러시아프랑스에 접근하였으나 미적지근한 태도로 인해 별 성과는 얻지 못했다. 결국 1860년 8월 다닐로는 배에 오르던 와중 암살당하고 만다.

개화기[편집 | 원본 편집]

1860년 다닐로를 이어 대공이 된 니콜라(Nikola)는 프랑스에서 유학을 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근대화 정책을 펼쳐 나갔다. 교육, 통신, 사법, 군사, 외교 등에서 서방 열강들과 같은 수준으로 끌어올리려 갖은 노력을 하였으며, 또한 1878년에는 베를린 회의에서 공식적으로 독립을 인정받았다.

니콜라는 개화 정책에 박차를 가해 헌법을 1905년 도입하였고, 1910년에는 입헌군주국으로 정치제를 바꾸면서 왕이 된다. 그러나 대한 제국처럼 결말은 그닥 좋지 않았다.

근현대[편집 | 원본 편집]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몬테네그로는 연합국 측에 서서 오스트리아-헝가리 연합 왕국에 맞선다. 그러나 1916년 오스트리아가 점령한 뒤 1918년 연합국 측이 이길 때까지 계속 오스트리아 치하에 있었다.

전쟁이 끝나고 몬테네그로는 독립 대신 유고슬라비아 왕국의 일부로 합병되기로 결의한다. 그리하여 몬테네그로는 계속 유고슬라비아의 일부로 남아있다가 유고슬라비아 내전이 발발하자 1990년 세르비아와 함께 신유고 연방을 이룬다. 그러나 별 혜택을 못 본 몬테네그로 국민들은 주민투표를 거쳐 2006년 다시 독립하였다.

정치[편집 | 원본 편집]

행정구역[편집 | 원본 편집]

몬테네그로는 23개의 지방 자치제인 옵슈티나(Opština)로 나뉜다. 아래는 각 옵슈티나를 임의로 나눈 지역별로 구분하여 나열하였다.

  • 해안가 지역 (과거 몬테네그로의 중심지였던 지역들이며, 관광객들도 많이 찾는 구역들)
    • (크로아티아, NW)◀ 헤르체그노비(Herceg-Novi), 티밧(Tivat), 코토르(Kotor), 체티녜(Cetinje), 부드바(Budva), 바르(Bar), 울치니(Ulcinj) ▶(SE, 알바니아)
  • 중부지역 (스르프스카-알바니아 사이)
    • (NW)◀ 니크쉬치(Niksic), 다닐로브그라드(Danilovgrad), 포드고리차(Podgorica, 수도) ▶(SE)
  • 북부지역 (스르프스카-세르비아 사이)
    • (스르프스카, W)◀ 플루시네(Pluzine), {(S◀)샤브니크(Savnik), 사블랴크(Zabljak), 플례블랴(Pljevlja)(▶N)} ▶(E, 세르비아)
    • (세르비아, N)◀ 비옐로폴례(Bijelo Polje), 모이코바치(Mojkovac), 콜라쉰(Kolasin) ▶(S, 포드고리차)
  • 동부지역 (세르비아-코소보-알바니아 사이)
    • 페트니차(Petnjica), 로사예(Rozaje), 베레네(Berene), 안드리예비차(Andrijevica), 플라브(Plav), 구시녜(Gusinje)

군사[편집 | 원본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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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편집 | 원본 편집]

특이하게도, 몬테네그로는 유로존에 가입하지 않았으나, 유로를 공식 화폐로 쓰고 있다.

정치적인 면과는 별개로 경제적으론 세르비아와 서로 의존하고 의지하는 사이이다. 아드리아해로 가는 항구가 다수 있고, 구 유고연방에서 거의 마지막에 떨어져 나간 곳이라 코소보와도 영향을 주고 받는다. 남쪽의 알바니아와는 중립에 가깝고, 서북쪽의 크로아티아와는 교류가 잘 이뤄지는 편.

인근 발칸국가 주민들이 휴양지로 많이 찾는 곳인데, 바다건너 이탈리아인들도 크로아티아 대신에 방문할 정도이다. 이런 관광수입이 결코 적지 않은 비중이라서 나라 자체로 외국인에게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

사회[편집 | 원본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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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편집 | 원본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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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편집 | 원본 편집]

  • 네이버 블로그의 도메인 '.me'는 사실 몬테네그로의 국가 도메인을 구입하여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2] [3] [4]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