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이란 이슬람 공화국 또는 이란아시아국가이다. 수도테헤란이다.

1 페르시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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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역사를 얘기할 때 페르시아를 빼놓을 수 없다. 페르시아란 현재의 이란 지역을 가리키는 지명, 또는 그 지역을 중심으로 발흥했던 옛 왕조들을 가리키는 명칭이다. 1935년 3월 21일 팔라비 왕조의 레자 샤가 국호를 공식적으로 이란으로 바꾸었다. 즉 그 이전의 원래 이란의 국명은 페르시아였다!

이 예쁘면서도 간지나는 이름을 왜 굳이 이란으로 바꿨는지 싶겠지만 당시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원래 아케메네스, 사산 왕조 시절 때만 해도 페르시아는 영광의 상징과도 같은 이름이었다. 하지만 제국주의 시대 서구 열강들에게 온갖 유린을 당하고 온갖 굴욕과 수모를 당하며 페르시아란 이름의 이미지가 박살나게 된다. 페르시아 사람들 스스로도 페르시아라고 불리기 싫을 정도로 수구보수꼴통과 굴욕의 상징이 되어버린 것. 이란으로 국명을 바꿀 당시의 이란이란 이름은 팔라비 왕조의 친미 정책과도 연관되는 개방·개혁의 상징과도 같은 희망에 찬 이름이었다. 근데 지금은...

그러나 현재는 이란이란 이름도 호메이니의 쇄국 정책과 일방 정치로 얼룩지고 급기야 테러지원국이라는 오명까지 쓴 부끄러운 국명이 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옛 영광의 국명이었던 페르시아로 돌아가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2 역사[편집]

옛날부터 기록이 나와있는 국가 중 하나이다. 메소포타미아와 경쟁을 했고, 이후 사산 왕조를 통해 매우 번영했다. 나중에는 이슬람 제국의 일부가 되었다가 다시 떨어져 나와 왕국의 된 뒤 러시아영국의 힘겨루기의 중심이 되기도 했다.

2.1 선사시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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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엘람 문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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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아리아인의 정복[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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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메디아 제국[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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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편집]

아케메네스 제국
페르시아 제국
Standard of Cyrus the Great (Achaemenid Empire).png
키루스 2세의 군기
Standard of Cyrus the Great (White).png
국장
Achaemenid Empire -480 BC.png
기원전 480년경의 페르시아 강역
공식 명칭 امپراتوری هخامنشی‎
공용어 고대 페르시아어, 아람어, 엘람어, 아카드어, 메디아어
수도 바빌론, 파사르가다이, 에크바타나, 수사, 페르세폴리스많기도 해라
국교 바빌로니아 종교, 조로아스터교[1]
인구 정보
인구 약 50,000,000명명
인구 밀도 6.3명/km²명/km²
지리 정보
넓이 약 8,000,000km²[2]km²
정부 정보
정부 형태 봉건 군주제
초대 아케메네스 (기원전 680년~기원전 655년)
2대 테이스페스 (기원전 655년~기원전 640년)
5대 (제국 시조) 키루스 2세 (기원전 559년~기원전 530년)
7대 (전성기) 다리우스 1세 (기원전 522년~기원전 486년)
8대 크세르크세스 1세 (기원전 486년~기원전 465년)
16대 다리우스 3세 (기원전 336년~기원전 330년)
경제 정보
유통 화폐 시글라스(Siglos), 다릭(Daric)
  1. Boiy, T. (2004). 《Late Achaemenid and Hellenistic Babylon》. Peeters Publishers. 101쪽. ISBN 978-90-429-1449-0.
  2. 기원전 480년 기준

B.C. 559년부터 B.C. 330년까지 229년간 통치한 이란의 고대 왕조. 흔히 페르시아 제국이라고 부른다. 영어로는 Achaemenid로 표기한다.

메디아의 황제였던 아스티게아스의 외손자이자 안산이라는 메디아 제국의 제후국의 왕이었던 키루스는 하르파구스의 도움을 얻어 기원전 554년 외할아버지를 배신때리고이런 패륜아를 봤나... 메디아 제국을 상대로 반란을 일으켜 기원전 549년 엑바타나를 정복함으로서 메디아 제국을 정복하여 이란 고원에서 절대 권력을 잡게 된다. 이후 키루스는 원래 국명이었던 메디아 제국을 페르시아 제국으로 바꿈으로서 페르시아 제국은 그 위대한 대제국 역사의 서막을 올린다.

메디아 제국을 장악한 키루스는 그 다음으로 부유한 나라였던 리디아를 노렸다. 이후 그는 리디아의 왕 크로이소스와 맞붙게 되었다.

리디아는 펠롭스 신화에서도 알 수 있듯이 말을 굉장히 잘 다루는 나라였고 따라서 강력한 기병대가 특징이었다. 크로이소스 또한 리디아의 강력한 기병대를 이끌고 먼저 페르시아를 향해 선빵을 걸어오게 된다.

키루스는 먼저 리디아 서쪽에 있는, 리디아의 신하국이었던 그리스계 이오니아 국가들에게 리디아에게 반란을 일으키라고 꼬드겼으나 거절당하고, 직접 리디아를 치게 된다.

천재적인 군사 전략가였던 키루스는 이 리디아를 정복하기 위해서 꾀를 썼다. 바로 당시 기병대들에 대한 대항마로 낙타 부대(...)를 투입한 것인데 대체 이 황당한 전술이 왜 먹힌 건지 모르겠지만 낙타를 처음 보는 기병대들은 몹시 당황했고 결국 키루스 2세가 이끄는 페르시아군이 가는 곳마다 크로이소스 왕이 이끄는 리디아군을 완전히 쳐부수며 기원전 546년 리디아까지 정ㅋ복ㅋ하게 된다.

그 다음 그는 리디아와의 전쟁 때 자기 편에 붙지 않았던 에게 해의 그리스계 이오니아 도시 국가들을 무력으로 정복하거나 매수하여 집어삼키는 등 당근과 채찍(?) 방법을 써서 기원전 542년쯤 되면 에게 해 연안의 이오니아 도시국가들을 거의 다 정복하게 된다.

이후 이번엔 동쪽으로도 진출하여 마르기아나아라코시아, 그리고 박트리아까지 무너뜨림으로서 중앙아시아에서 그 누가 침략하더라도 견딜 수 있는 무적의 철벽 방어진을 구축했다.

동쪽에서 먹을 나라 다 먹은 키루스는 다시 서쪽으로 군사를 돌려 이번엔 고대 부유함의 상징이었던 신바빌로니아를 침략하게 된다. 근데...이번엔 정말 싱겁게 끝났는데 바빌론 시를 포위했더니 성 안 백성들이 싸워보지도 않고 그냥 문을 열어줬다고 한다(...)

단 위의 기록은 이후 키루스 2세에 의해 왜곡된 부분도 있어서 어느 정도 걸러들어야 할 부분도 있다. 헤로도투스의 기록에 의하면 초기에 키루스는 시 공성전에서 실패했고, 오랜 시일이 걸리자 유프라테스 강의 물줄기를 돌려서 강바닥이 마르도록 했고, 병사들은 마른 강바닥을 통해 행군해 들어갔다고 했다는 기록까지 있기 때문이다. 이 기록이 사실이라면, 백성들이 성문을 연 건 사실이지만 용맹히 맞서 싸웠었고, 갈증을 못 이겨 어쩔 수 없이 문을 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키루스 2세는 위대한 정복왕이기도 했지만 위대한 대인배이기도 했다. 그는 포로로 잡은 바빌로니아의 마지막 왕 나보니두스를 매우 극진히 대접해줬고 편안한 여생을 보내게 해주다 이듬해 죽었을 땐 국장(!)으로 장례를 치뤄 옛 대제국의 마지막 군주로서의 예우를 해주었다.

또한 신바빌로니아에 의해 멸망당하고 유린당했던 약 4만 명에 육박하는 유대인[1]들이 바빌로니아에게 압류당했던 재산을 되찾아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주는 칙령을 내려 고향잃고 남의 나라에서 노예 생활하던 유대인들은 다시 자신의 고향으로 되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유대인들은 페르시아인들을 해방자로 간주했고 성경에서도 키루스 2세[2]를 하느님의 명령을 따른 자라며 칭송하고 있다.[3]

초대 아케메네스 기원전 680년~기원전 655년
2대 테이스페스 기원전 655년~기원전 640년
3대 키루스 1세 기원전 640년~기원전 580년
4대 캄비세스 1세 기원전 580년~기원전 559년
5대 키루스 2세 기원전 559년~기원전 530년
6대 캄비세스 2세 기원전 530년~기원전 522년
7대 다리우스 1세 기원전 522년~기원전 486년
8대 크세르크세스 1세 기원전 486년~기원전 465년
9대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 기원전 465년~기원전 424년
10대 크세르크세스 2세 기원전 424년
11대 소그디아누스 기원전 424년~기원전 423년
12대 다리우스 2세 기원전 423년~기원전 404년
13대 아르타크세르크세스 2세 기원전 404년~기원전 358년
14대 아르타크세르크세스 3세 기원전 358년~기원전 338년
15대 아르타크세르크세스 4세 기원전 338년~기원전 336년
16대 다리우스 3세 기원전 336년~기원전 330년
  1. 여기서 말하는 유대인은 말 그대로 유대 왕국의 백성들을 말한다.
  2. 성경에선 고레스로 표기.
  3. http://www.godswill.com.br/xe/Kwangho4/4165

3.2 셀레우코스 왕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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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파르티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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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사산 왕조 페르시아[편집]

사산 왕조 페르시아
이란샤흐르(Ērānshahr)
Derafsh Kaviani.png
국기
Senmurv.svg.png
국장
Sassanid Empire 226 - 651 (AD).GIF
짙은 파란색은 평상시 영역, 중간 파란색은 비잔티움 제국과의 분쟁지역, 옅은 파란색은 전성기 때 일시적으로 차지한 영역이다.
공식 명칭 사산 제국
공용어 중세 페르시아어
수도 크테시폰
국교 조로아스터교
지리 정보
넓이 약 6,600,000km²km²
정부 정보
정부 형태 절대군주제
초대 아르다시르 1세 (226년~241년)
2대 샤푸르 1세 (241년~272년)
22대 (전성기) 호스로 1세 (531년~579년)
경제 정보
유통 화폐 비론(Billon)

3.5 19세기 이후[편집]

19세기와 20세기를 거치면서 많은 혼란을 겪던 이란은 이슬람 혁명으로 왕국에서 신정 국가로 탈바꿈하여 지금에 이르렀다.

4 지리[편집]

서쪽으로 이라크, 북서쪽으로 터키,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북쪽으로 카스피 해, 북동쪽으로 투르크메니스탄, 동쪽으로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을 맞대고 있다. 남쪽으로는 페르시아 만이 있으며 이 만 맞은 편에는 사우디아라비아와 다른 아랍계 국가들이 있다.

이란의 지형은 험준한 산맥들이 가운데의 사막을 둘러싼 모습이며 이 때문에 이란의 인구는 살기 좋은 서부, 북부에 몰려있다.

5 정치[편집]

이란은 신정 체제를 위로 한 공화국이란 점에서 많이 독특한 정치 체계를 지닌 국가이다. 이란은 다른 나라들처럼 대통령을 뽑으나, 대통령 위에는 시아파 성직자(최고지도자)가 있기에 대통령을 깔아 누를 수 있다(...).

그러나 바다 건너 사우디아라비아와는 달리 엄연한 공화국이기에 민주적으로 의회가 선출된다.

6 외교[편집]

이란은 팔라비 왕조 시절에는 친미, 친서방 국가였으나, 이슬람 근본주의를 따르는 시아파 지도자인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가 쿠데타로 정권을 잡으면서 반미, 반서방 국가로 돌아서 미국과의 관계는 매우 적대적이었다. 그러나 냉전이 끝나고 이웃 국가인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파키스탄이 혼란해지자 미국과 이란은 어느 정도 가까워졌다. 그러나 2016년 미국에 트럼프가 집권하고 상원의 과반수를 공화당이 채우고, 공화당은 이란에 매우 강경책을 써 악화되기 시작했다. 2020년 들어 카셈 솔레이마니 사령관이 바그다드 국제공항에서 미국의 공습으로 사망하고, 이란이 주이라크 미군 기지를 공격하는 등 관계가 극히 나빠지기 시작했다.

대한민국과는 1962년 수교하였다.

7 군사[편집]

  • 이란군은 크게 보면 이원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정규군인 이슬람공화국군과 최고지도자(라흐바르)[1] 친위대인 이슬람혁명수비대 여기에 군사경찰 역할을 겸하는 경찰도 따로 포함하기도 한다. 과거 나치 독일과 흡사하다고 볼 수 있다.[2]

7.1 이슬람공화국군[편집]

  • 육군
  • 해군
  • 공군
  • 방공군

7.2 이슬람혁명수비대[편집]

  • 육군
  • 해군
  • 공군
  • 특수부대(쿠드스)

8 문화[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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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각주

  1. 이란은 신정국가이기에 이 최고지도자의 권력/권한이 대통령보다 훨씬 위이다. 이란군(공화국군과 혁명수비대, 경찰) 자체 통수권한부터 해서 사법부, 입법부, 행정부(심지어 최고지도자가 대통령을 인준하거나 해임까지 가능)까지 쥐락펴락하는 존재이다.
  2. 나치 독일도 정규군인 국방군, 총통(히틀러)의 친위대인 슈츠슈타펠 여기에 비밀경찰인 게슈타포까지 존재했던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