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룡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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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편집 | 원본 편집]

구룡포항.JPG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구룡포읍 구룡포리에 있는 항구일제강점기인 1920년경부터 일본인들이 몰려와 살면서 본격적으로 개발된 항구이다. 이 당시에는 고래잡이를 위한 포경선들이 주로 몰려왔었으며, 장생포항과 함께 동해 바다의 고래를 거의 씨를 말리다시피 한 곳이기도 하다. 연안항으로는 1961년 지정되었으며, 포항시 일대의 어업 및 수산물 유통을 주로 담당하는 곳으로 오징어대게를 잡는 선박들의 입출항이 가장 많으며, 과메기의 본고장으로도 유명한 곳이다.

시설현황[편집 | 원본 편집]

항의 북단에는 북방파제, 남쪽에는 남방파제가 축조되어 있다. 물양장으로 휴계부두, 급빙부두가 자리하고 있으며, 항 남쪽에는 트롤위판장, 수산물위판장이 완공되어 있다.

등대 현황[편집 | 원본 편집]

사라말등대
사라말등대.JPG
사라말등대 야간 점등 모습
등대 정보
번호 1343 / M4404
위치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구룡포읍 구룡포리 191-2
35°59′27.6″N 129°34′02.7″E
등고 18
높이 9.7
광파표지 9초 1백섬광 / 19해리 / 명호: 208~011º

구룡포에는 방파제 등대 2개와 인근에 사라말등대가 자리하고 있다.

  • 사라말등대 : 구룡포 북쪽의 곶인 사라말에 자리한 등대로 도로 바로 옆에 자리한 무인등대이다. 이 등대 앞은 사라말 암초군으로 이루어진 얕은 해역으로 맨 암초군의 동쪽 끝, 사라말 등대에서는 500미터 가량 떨어진 해상에 서측에 장애물이 있음을 알리는 동방위표지가 하나 더 자리하고 있다. 즉, 이 등대와 해당 방위표지 사이로 들어오면 암초에 걸리게 되는 위치이므로 항상 이 방위표지 바깥쪽으로 돌아서 항해를 하여야 한다.
  • 북방파제등대 : 우현표지로 붉은색의 등대이다.
  • 남방파제등대 : 좌현표지로 흰색의 등대이다. 한 가지 특이사항으로 남방파제 등대 북동쪽 약 300미터 지점에 수심 4.3m의 암초맥이 존재하기 때문에 항해시 주의가 요구된다.

구룡포 근대문화역사거리[편집 | 원본 편집]

구룡포 근대문화역사거리.JPG

일제강점기 당시 구룡포에서 가장 번화했던 거리로 당시 우체국, 주재소(현재의 파출소), 관공서 등의 모든 공공건물이 있었으며, 하시모토 젠기치라는 사람이 살던 가옥을 근대역사관으로 바꾸어서 당시 일본인들의 구룡포 정착 상황과 생활 모습을 볼 수 있도록 해 두었다. 의외로 나이 많은 일본인들이 이 곳을 많이 찾는 편인데. 이 집에 와서 당시의 향수를 추억하는 듯? 물론 한국인 입장에서 보면 그 시절을 그리워 한다는 것 자체가 소름돋는 일이지만...

구룡포 공원[편집 | 원본 편집]

  • 구룡포 공원
    구룡포 근대문화역사거리 뒤편의 언덕에는 공원이 하나 자리하고 있는데 언덕 맨 위에는 일본인들이 신사를 세워놓았던 자리이다. 해당 신사가 있던 자리에는 용왕당이 자리하고 있다. 한켠에는 당시 일본인들이 세웠던 공덕비가 있는데 높이 5미터에 이르는 꽤 큰 탑이다. 재질은 당시 일본에서 직접 공수해 온 규화목(나무 화석)2기를 凸자 형태로 세운 것으로 해방 직후 탑의 앞면과 뒷면을 시멘트로 덧칠해 버려서 비문의 내용을 볼 수 없게 되어버렸다.
  • 계단 돌기둥
    원래 1920년대 일본인들이 세웠던 것이다. 계단을 올라가는 방향으로 왼쪽에 61개, 오른쪽에 59개의 돌기둥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당시 돌기둥에는 구룡포항을 조성하는데 기여한 구룡포로 이주한 일본인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패전으로 일본인들이 떠난 다음에 구룡포 주민들이 시멘트를 발라 기록을 모두 덮어버리고 돌기둥을 거꾸로 돌려세웠다가 1960년에 충혼탑을 지금의 공원 자리에 세우게 되면서 기여한 후원자들의 이름을 다시 앞뒤를 돌려 세운 돌기둥에 새겨놓았다.
  • 충혼탑
    원래 일본 육군 기념비가 세워져 있던 자리로 해당 날짜는 일본군이 중국 봉천에 입성한 날짜를 기리는 의미로 지정된 것이다. 충혼탑의 아래쪽 기단이 바로 당시 일본인들이 세웠던 기념비의 기단이었으며, 위쪽의 글자를 시멘트로 덧칠해 버리고 충혼탑으로 사용하여 오다가 2007년 9월 국가보훈처에서 해당 기단은 별도로 보존해 놓고 새로 충혼탑을 건립하게 되었다. 참고로 당시 사용하던 기단부 일부의 시멘트를 뜯어내니 친일단체인 "제국 재향군인회"라는 명문이 있었다고. 이런데다가 충혼탑 건설을 했었다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 당시 신사 입구에 서 있던 사자상이 충혼각 입구에 서 있는 것은 덤.


일제 잔재에 시멘트를 덧칠하고 재활용한게 뭐 이리 많아 시멘트를 발라 덧씌운다고 부끄러운 역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