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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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시대 정보
기간 음력 서력 1910년 7월 25일~서력 1945년 7월 8일.
양력 서력 1910년 8월 29일~서력 1945년 8월 15일.

일제강점기는 일본 제국대한제국을 강제 병합하며 세워진 조선총독부대한제국의 국민들을 다스린 기간이다.

2 역사[편집]

2.1 성립 과정[편집]

당시 아시아 패권국이며 메이지 유신으로 성공적인 근대화를 누린 일본 제국은 여느 군국주의 국가답게 영토를 넓히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일본은 한반도가 반도 지형의 특성 상, 해양 세력과 대륙 세력이 교차하는 곳이라는 이점에 주목하여 당시 다소 개항이 늦은 대한제국을 점령하기 위해서 러시아 제국과, 청 제국과의 전쟁으로 견제 세력을 모두 물리친 후, 미국과의 조약(가쓰라·태프트 밀약)으로 한반도의 지배권한을 얻어 내었다. 그리하여 일본 제국1910년에 한일강제합병을 하게 되며 기존의 조선통감부를 개편, 조선총독을 기반을 한 조선총독부를 조선 정치 권한의 중심으로 만들어 일제강점기가 시작되었다.

2.2 무단 통치(1910 ~ 1919)[편집]

일제의 폭력적, 강압적인 통치. 이 시기에는 경찰이 아닌 헌병이 치안을 담당하였고, 관리나 교원들이 제복을 입고 칼을 차 공포정치를 하였다.

최고 권력기구는 조선총독부였으며, 무관을 임용하였다. 또 조선인을들 더 쉽게 탄압하기 위해 조선태형령이라는 법을 만들었다.

토지 약탈을 목적으로 토지조사사업을 실시하여 농민들의 토지를 수탈해 조선농민들이 소작농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또 회사령을 반포하여 회사설립을 허가제로 바꾸어 한국인의 회사설립을 막았다.

언론, 출판, 집회, 결사 자유는 완전히 박탈당하였고 민족신문은 폐간되었다.

교육은 일본어 중심으로 가르쳤고 조선어 교육은 축소하였다. 그리고 조선인들은 초등교육과 기술교육만 가르쳤다.

2.3 문화 통치(1919 ~ 1931)[편집]

3.1 운동 이후 일제는 헌병경찰통치에서 보통경찰통치로 바꾸고 약간의 배려를 주었다. 물론 배려라고 할 수 없는 수준의 생색에 불과했다. 일제는 조선의 단결력에 놀랐는지 친일단체, 친일파를 양성해 민족 이간책을 내었다.

경제적으로는 회사령을 폐지하고 자국의 식량이 부족하다며 산미증식계획을 실시해 밭을 논으로 바꾸고 토지를 개간, 종자를 개량하였다. 그리고 식량을 조선에서 대부분 수탈해 갔는데 문제는 일제의 식량 수탈량이 조선의 식량 생산량보다 많아 식량부족 문제가 심화되었다. 때문에 토지조사사업으로 소작농으로 전락한 농민들은 대부분 몰락하게 된다. 그리고 일제는 만주에서 잡곡을 수입하여 조선에 배급하게 된다.

그리고 언론의 자유가 살짝 풀려 한글신문 발행이 허가되었지만 내용은 검열삭제 되어 발행 되었다. 그리고 이 시기에 동아일보조선일보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조선인들에 대한 교육차별이 심화되어 민립대학 설립운동을 통해 돈을 모아 학교를 설립하려 했으나 일본이 그것을 막기위해 경성제국대학을 설립하고 조선인의 고등교육을 실시했다.[1]

그러나 동시에 1925년 치안유지법 신설로 독립운동을 아래부터 옥죄기 시작했고, 헌병경찰대신 파견된 고등경찰 인력은 오히려 늘어났다.

이 시기 물산장려운동, 형평사 운동, 원산총파업이 일어났고, 1927년 국내 최대 독립운동 조직 신간회가 결성되었다.

2.4 민족 말살 통치(1931 ~ 1945)[편집]

우리나라의 흑역사는 대부분 이 시기에 일어났다. 만주사변중일전쟁에 이어 태평양 전쟁까지 치르게 된 일본은 자원부족, 식량부족으로 막장으로 치닫게 된다. 일제는 이 시기에 조선을 완전히 병참기지화시킨다. 국가총동원령을 내려 식량 수탈은 기본이요, 남성들은 징병, 징용하고 여성들은 위안부, 집에있는 쇠붙이란 쇠붙이는 무기를 만든다고 다 가져갔다. 철도 선로도 뜯어갈 정도였다. 그리고 조선을 일제에 동화시킨답시고 내선일체같은 것를 주장하고, 창씨개명, 신사참배, 황국신민서사 암송을 강요하는 등 민족을 말살시키는 통치를 시행했다. 학교에서는 한국어, 한국사 교육을 금지시키고 소학교도 황국신민의 학교라는 뜻의 국민학교로 바꿔버린다. 결국 핵폭탄을 2방이나 맞고나서야 패배를 인정하였다. 그러나 자기국민이 너무 힘들어 하는 것 같아 봐준다는 식으로 정신승리를 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아무튼 우리나라는 광복을 맞게 되었다. 그런데 그 때의 어린 아이들은 일제의 민족말살적인 세뇌교육때문에 일본이 조국인줄 알고 사람들이 왜 만세를 부르는지 의아해했다고 한다.

2.5 최후[편집]

1945년, 그간 청, 러시아 등 대국을 물리쳐본 경험에 자신감이 상승할대로 상승한 일제는 그로 인해 눈이 멀어 겁도 없이 미국에 대항하여 진주만 공습을 펼친 대가로 벌어진 태평양 전쟁에서 그간 쌓이고 쌓여온 내/외부적 문제가 겹치고 겹치면서 탈탈 털려 점차 패망의 길을 걸었고, 여기에 같은 추축국의 일원이였던 이탈리아독일 또한 연합군에게 항복하면서 유럽 전선이 정리가 되자 소련, 영국 등의 연합군들도 일본에게 주목하기 시작, 일본은 유례없는 대위기에 봉착하게 된다.

그 와중에 결국 끝내 태평양을 제패하여 거리낄 것이 없어진 미국이 일본 본토를 폭격하는 사태로 이어졌고, 이는 오랜 역사동안 외국의 침략을 상대적으로 적게 받은 일본인들에겐 충격과 공포 그 자체였다. 결국 히로시마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되어 해당 도시들의 모든것이 말 그대로 철저하게 파괴되는 사태까지 벌어지자 결국 일본은 완벽하게 넉다운되었고 1945년 8월 15일 천황무조건 항복 선언을 끝으로, 얼마후 정식 항복문서가 조인되고 일본에 미군정이 들어섰으며, 자연스럽게 일제 강점기도 끝나게 되었다.

하지만 몇몇 독립운동가들이 우려하였듯 '독립'은 스스로의 손으로 이룬 것이 아닌 외세의 손을 빌려 이룩한 것이 되어버렸다.

3 역대 이왕[편집]

4 역대 총독들[편집]

역대 이름 사진 취임 이임 이력
제1대 데라우치 마사타케
(寺内正毅)
Masatake Terauchi 2.jpg 1910년 10월 1일 1916년 10월 14일 통감부 제3대 통감, 육군대장, 원수, 수상
제2대 하세가와 요시미치
(長谷川好道)
Hasegawa Yoshimichi.jpg 1916년 10월 14일 1919년 8월 12일 육군대장, 원수
제3대 사이토 마코토
(齋藤實)
Makoto Saito.jpg 1919년 8월 13일 1927년 12월 10일 해군대장, 수상
임시대리 우가키 가즈시게
(宇垣一成)
Kazushige Ugaki 2.jpg 1927년 4월 15일 1927년 10월 1일 육군대장
제4대 야마나시 한조
(山梨半造)
Yamanashi Hanzo.jpg 1927년 12월 10일 1929년 8월 17일 육군대장
제5대 사이토 마코토
(齋藤實)
Makoto Saito.jpg 1929년 8월 17일 1931년 6월 17일 해군대장, 수상
제6대 우가키 가즈시게
(宇垣一成)
Kazushige Ugaki 2.jpg 1931년 6월 17일 1936년 8월 5일 육군대장
제7대 미나미 지로
(南次郎)
Minami Jiro.jpg 1936년 8월 5일 1942년 5월 29일 육군대장
제8대 고이소 구니아키
(小磯國昭)
Koiso2.jpg 1942년 5월 29일 1944년 7월 21일 육군대장, 수상
제9대 아베 노부유키
(阿部信行)
Nobuyuki Abe formal.jpg 1944년 7월 24일 1945년 9월 28일 육군대장, 수상

5 각주

  1. 조선교육령 개정으로 학령자체는 조금 늘어났으나 고등교육을 위한 필수제도는 갖추어지지 않았다. 이마저도 3차 교육령 개정이후 일본인 교사 파견이 의무화되고, 조선어가 선택교육화하면서 유명무실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