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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뜻|고조선|중세 한반도의 국가|고대 국가}}
{{마을 정보
{{다른 뜻|조선 (산업)||배를 만드는 산업}}
|이름 = 고양시
{{한국사의 시대 구분}}
|그림1=[[파일:Goyang Montage.jpg|300px]]
{{사용자:Pika/대체용 틀
|그림1 설명 = 위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일산 호수공원 장미축제,<br />고양시청, 고양국제꽃박람회,<br />고양시 호수공원, 킨텍스, 아람누리도서관
|나라이름    = 대조선국
|면적 = 267.41
|원어이름    = 大朝鮮國
|세대 = 401,772|세대_조사연도 =<small>2017년</small>
|존속연도    = 518년 8일
|인구 = 1,042,065|인구_조사연도 =<small>2017년</small>
|국기        = Flag of Korea (November 1882).svg
|일반구 = 3
|국기설명    =  
|하위 행정구역1 명칭=행정동
|국장        =  
|하위 행정구역1=39
|국장설명    =  
|하위 행정구역2 명칭=법정동
|지도        = 1726년조선.png
|하위 행정구역2=53
|지도설명    = 서력 [[1726년]](영조 2년)의 조선 영토와 주변국을 나타낸 지도이다.
|지도자 직함=시장
|표어        =  
|지도자=이재준 ([[더불어민주당]])
|국가        =
|지도자2 직함=국회의원
|수도        = [[서울|한양]]
|지도자2=갑: [[심상정]] ([[정의당]])<br />을: [[한준호]] ([[더불어민주당]])<br />병: [[홍정민]] ([[더불어민주당]])<br />정: [[이용우]] ([[더불어민주당]])<br />
|공용어      = [[한국어]]
|관청명=고양시청
|국어        =  
|관청소재지=[[덕양구]] [[고양시청로]] 10 ([[주교동]] 600)
|국교        = [[유교]]
|홈페이지 = http://www.goyang.go.kr/
|정치체제    = [[전제군주제]]
|상징1 종류=시목
|군주        =  
|상징1=[[백송]]
|수반 직책  =  
|상징2 종류=시화
|수반        =  
|상징2=[[장미]]
|부수반 직책 =  
|상징3 종류=시조
|부수반      =  
|상징3=[[까치]]
|입법부      =  
}}{{다른 뜻 넘어옴|고양}}
|인구        =
'''고양시'''(高陽市)는 [[대한민국]]의 [[경기도]] 북서쪽에 위치한 [[시 (행정구역)|시]]다. 남쪽과 남동쪽으로 [[서울특별시]], 서쪽과 남서쪽으로 [[한강]]을 사이에 두고 [[김포시]], 북쪽으로 [[파주시]], 북동쪽으로는 [[양주시]]와 접해 있으며, [[인천광역시]]와는 자동차로 약 한 시간 거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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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도메인  =
|국제전화    =
|이전나라    = [[고려]]
|이후나라    = {{나라|대한제국}}
|비고        =
}}


'''조선'''(朝鮮)은 [[1392년]]부터 [[1897년]]까지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를 통치하였던 왕조이다. 공식 명칭으로 '''조선국'''(朝鮮國)이라 하였으며, 때로 대조선국(大朝鮮國)이라는 명칭을 어보(御寶), 국서(國書) 등에 사용하였다. 흔히 조선왕조(朝鮮王朝)라고 부르며, 일제 강점기에는 이씨조선(李氏朝鮮)이라고도 불렀다. [[1392년]] [[고려]]왕조의 뒤를 이어 [[이성계]]가 건국한 나라이다. [[1897년]]부터는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여 조선이라는 국호는 더 이상 사용되지 않게 되었다.
[[2014년]], [[대한민국]]에선 열 번째로 인구수 100만 명을 돌파한 지자체가 되었고, 1기 신도시에 해당하는 [[일산신도시]]가 대표적이다.
 
조선이라는 이름을 쓴 왕조는 역사상 두 개이나 여기서는 14세기부터 19세기까지 한반도에 존재했던 왕조를 다룬다. 국호의 유래는 고조선이다. 그리고 고대국가였던 조선은 [[고조선]] 항목을 참조.
 
==개요==
고려 말기 [[신진사대부]]의 지원을 받은 [[이성계]]에 의해 건국되었으며 이후 500여 년 동안 존속됐다. 조선은 유교에 의한 통치 이념을 기본으로 임금과 신하에 의한 치를 중요시했다. 조선이 통치하는 동안 한반도에서는 한글의 창제와 과학 기술 및 농업 기술의 발달 등이 이루어졌으며, 임진왜란을 비롯한 여러 외침을 극복하고, 현재의 한민족과 한국 문화의 직접적 전통의 기반이 되는 문화를 형성한 시기이기도 하다.
 
조선은 사실상 이민족한테 거의 시달리지 않았던 왕조이기도 하다. 일단 조선시대에는 전반적으로 왜구의 침입이 그 전왕조인 [[고려]]에 비해 드물었다. 조선이 왜구의 침입을 몇 번 받았기는 하지만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ref>[[17세기]] 부터의 [[조선왕조실록]] 기록에는 [[왜구]]가 침입했다 류의 기록이 없다.</ref>  [[임진왜란]], [[병자호란]] 이후에는 아예 왜구한테 침입당하지도 시달리지도 않았으므로 조선은 양난 이후 250년이 넘는 기간 내내 평화를 누렸다. 또한 15세기 중반부터는 왜구의 침입 자체가 꽤 드문 사건이었다.<ref>15세기 중반부터 [[임진왜란]]까지 대략 150년인데 이 기간동안 일어난 왜변은 10번 이하이다.</ref>또한 17세기부터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해적금지령]]으로 인해 [[왜구]] 자체가 사라져서 조선이 왜구한테 시달리는 일도 더 이상 없었다. 그러므로 조선이 500년 내내 왜구한테 시달렸다는 주장은 거짓말에 불과하다.<ref>만약 정말로 조선이 500년 내내 왜구한테 시달렸다면 [[19세기]]말까지 왜구가 존재했어야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또한 임진왜란 종전 이후에도 왜구의 침입이 있었다면 조선왕조실록에 임란 이후에도 왜구의 침입이 있었다는 사건이 기록되었겠지만, 실제로는 조선왕조실록에는 그러한 기록은 전혀 없다.</ref> 간혹가다 17세기이후에도 왜구가 존재했으며 왜구는 해적이므로 조선을 침입했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왜구 자체는 확실히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해적금지령으로 인해 사라졌다. 실제로 [[15세기]] 중반부터는 황산대첩과 이종무의 대마도 정벌의 영향때문인지 [[16세기]]까지 왜변이 몇번 없었다. 즉,오히려 조선은 왜구한테 시달리지 않았던 기간이 길었다. 조선시대에도 왜구침입은 있었지만 보통 사이에 2~30년의 간격, 길게는 60년의 간격을 두고 일어났다.


==역사==
==역사==
===조선 전기===
[[1992년]] 시로 승격되기 전에는 고양군이었다. 고양이라는 명칭은 [[조선]] [[태종 (조선)|태종]] 13년([[1413년]])에 '''고'''봉 (현재의 일산서/동구), 덕'''양'''현(현재의 덕양구) 등을 고양현으로 통폐합하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덕분에 [[2013년]]에는 '고양시 600년'기념하는 행사가 많이 열렸다.
===[[임진왜란]][[병자호란]]===
임진왜란은 일본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사무라이들의 불만을 외부로 돌리기 위해 조선을 침공한 전쟁이다. 전쟁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으로 나눠지는데 임진왜란 이후 조선과 명나라는 일본과 협상을 시도하였으나 결렬되었고 일본이 다시 한번 쳐들어 온게 정유재란이다.
 
병자호란은 여진을 통일하고 후금을 건국, 그리고 국호를 청으로 바꾼 청나라가 조선을 침공한 전쟁이다. 조선은 청나라의 대군에 참패하였으며 청나라를 부모의 나라로 섬기게 되었다.
 
간혹가다가 조선이 화교왕조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붕당 정치===
[[숙종 (조선)|숙종]]의 환국정치로 건강한 붕당문화가 완전히 사라져 서로 죽고 죽이는 개싸움이 벌어지게 되었다.
 
===세도 정치===
[[정조]] 사후 어린 [[순조]]가 즉위하면서 세도 정치가 시작된다. 이는 정조의 왕권강화정책의 결과로, 정조도 본인이 그렇게 일찍 죽을 줄은 몰랐을 것이다. 권력이 왕 1인에게 집중된 상황에서 어린 세자가 즉위함으로써 대리청정을 실시하는 왕후, 그리고 그와 연결된 외척(안동 김씨와 풍양 조씨 등을 꼽을 수 있다.)이 득세하여 횡포를 부릴 수 있었던 것이다. 상호견제라는 붕당이 완전히 붕괴되었으며 1당, 아니 1가문 독재였다. 그 후 [[헌종 (조선)|헌종]], [[철종]]의 치세 때에는 더욱더 악화되어 민중의 삶이 낙후되었다. 결국 전정, 군정, 환곡을 아우른 [[삼정의 문란]]이 극에 달하자 지친 농민들은 [[임술 농민 반란]]을 일으킨다.


이는 철종이 사망하고 즉위한 [[고종 (조선)|고종]]의 아버지 [[흥선대원군]]이 집권하면서 많이 달라진다.
==[[일반구]]==
[[파일:Districts of Goyang City.png|320픽셀|가운데|고양시의 행정구역]]


===[[흥선대원군]]의 집권===
{| class="wikitable sortable" style="font-size: 90%;"
! 구 이름
! 법정동
! 행정동
! 인구
! 면적
|-
| [[일산서구]]
| 8
| 9
| 300,893명 <small>(2016년)</small>
| 42.80km²
|-
| [[일산동구]]
| 13
| 11
| 292,612명 <small>(2016년)</small>
| 59.10km²
|-
| [[덕양구]]
| 32
| 19
| 446,233명 <small>(2016년)</small>
| 42.56km²
|}


===[[갑오개혁]] 이후===
==홍보==
===마스코트===
<gallery mode="nolines">
파일:Goyang City Mascot.png|현재의 고양고양이
File:Goyangoyangi.jpeg|고양고양이 원안
File:kokogoyang.jpg|옛 마스코트 코코
</gallery>
본래 고양시의 마스코트는 '코코'로 꽃을 인간화한 빨간 머리의 요정이었는데 [[2012년]]부터 고양시의 이름이 [[고양이]]와 비슷하는 것을 착안해 SNS에서 고양이를 이용해 홍보를 시작해 반응이 좋자 고양이 캐릭터인 '고양고양이'를 공식 마스코트로 채택했다. 이에 따라 물러나게 된 코코는 현재 고양꽃박람회의 마스코트로 활동하고 있다.


== 역대 국왕 ==
===SNS 사용===
{{참조|조선의 역대 국왕}}
[[2012년]] 말에 갑자기 고양시의 공식 [[페이스북]]의 프로필 사진과 배경 사진이 고양고양이로 변경되면서 사람들에게 관심을 얻었고 [[일산신도시]]보다 인지도가 낮았던 고양시를 알리는 데 좋은 결과를 받았다. 이때부터 고양고양이를 이용하여 적극적으로 SNS 활용에 나서면서 말 끝에 항상 "-할 고양"을 붙이기 시작했다.


{{조선의 왕}}
[[2012년]] [[12월 1일]] 고양시청의 페이스북 관리자가 페이스북의 좋아요 수가 8천 개를 넘어가면 최성 시장이 고양이 인증을 하겠다는 약속을 했고, 이 약속을 한 지 사흘 째인 [[12월 3일]] 좋아요 수가 8천 개를 넘어서 1만 개를 넘어서자, 최성 고양시장이 고양이 분장을 한 인증샷을 페이스북 페이지에 직접 올렸다. 최성 고양시장은 고양시 페이스북 외에 자신의 페이스북에도 인증사진을 올리며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들의 도시, 고양시! 앞으로 사랑해주세요! 야~옹!"이라고 덧붙였다. [http://www.mt.co.kr/view/mtview.php?type=1&no=2012120314480685221&outlink=1 해당 기사]


=== 외우는 법===
===글꼴===
조선의 역대 국왕에 대해 외울 때, 앞글자를 따서 외우곤 한다.
[[2016년]] [[8월 10일]]에 [[SNS]] 콘텐츠 개발을 위해 만든 [[글꼴]]인 [[고양체]]를 무료로 배포하였다. 고양시의 [[마스코트]] [[캐릭터]]인 '고양고양이'와 고양시의 브랜드를 딩벳(Dingbat)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으로, 고양시 관계자는 "마스코트를 활용해 심볼을 구성한 사례는 고양시 전용서체인 '고양체'가 최초일 것"이라고 전했다.<ref>[http://www.goyang.go.kr/kr/intro/sub05/03/index.jsp?bdId=44247&bbsMode=view 고양시, 저작권 침해 걱정 없는 '고양체' 글꼴 출시 - 보도자료 > 고양시청]</ref>


{{인용문2|'''태'''조 '''정'''종 '''태'''종 '''세'''종 '''문'''종 '''단'''종 '''세'''조 <br />
==관광==
'''예'''종 '''성'''종 '''연'''산군 '''중'''종 '''인'''종 '''명'''종 '''선'''조<br />
고양시는 기본적으로 위성도시, 특히 일산 지역은 초창기 [[서울특별시]]에 대부분을 의존하는 [[베드타운]]으로서 조성되었다. 그나마 정발산 역세권 개발 이후로 10여 년간 죽만 쑤다가 겨우 원흥지구 개발, 킨텍스 인근 개발로 겨우 상업이 눈에 띄기 시작했을 정도로, 관광에 큰 신경을 쓴 동네가 아니다.
'''광'''해군 '''인'''조 '''효'''종 '''현'''종 '''숙'''종 '''경'''종 '''영'''조<br />
'''정'''조 '''순'''조 '''헌'''종 '''철'''종 '''고'''종 '''순'''종}}


모아서 쓰면
사적지는 대부분 고양시의 본진인 덕양구에 넓게 분포하며, 반대로 먹고 놀 만한 번화가는 대개 일산구 정발산쪽에 몰려있다.
* [[행주산성]]
* [[북한산성]]
* [[서오릉]] (西五陵): 덕양구 [[신도동]]에 위치한 조선시대 5개의 능을 합한 능호이다.
* [[서삼릉]] (西三陵): 덕양구 [[원당동]]에 위치해 있으며, 조선시대 정릉, 효릉과 예릉을 합한 세 개의 능호이다.
* 고양가와지볍씨박물관: 덕양구 [[원흥동]]의 고양시 농업기술센터 내에 위치한 박물관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볍씨]]를 만날 수 있다. 가와지는 현재의 [[대화동]]과 [[주엽동]] 사이에 있는 옛지명이다.
* [[일산호수공원]] (고양600년기념관 외): 일산동구 [[장항동]]에 있는 호수를 낀 거대한 공원으로, 자전거를 타면서 호수공원을 둘러볼 수 있는 산책로와 노래하는분수대가 있으며, 이곳의 화원에서 해마다 국제꽃박람회를 개최한다.
* 라페스타 (La Festa), 웨스턴돔 (Western Dom): 라페스타와 웨스턴돔은 모두 일산동구 장항동에 위치한 식당, 카페, 상점, 영화관 등 여러 상업시설이 모여 있는 스트리트 형 쇼핑몰이다. 라페스트와 웨스턴돔은 각각 커다란 광장을 사이에 두고 마주쳐 있다.
* [[킨텍스]] (고양국제전시장): 일산서구 [[대화동]]에 위치한 거대한 종합 전시장이며, 각종 박람회와 전시회가 열린다.
* 장항습지: 민간인 통제구역으로, 방문시 사전에 고양시 환경보호과로 연락이 필요하다. 주로 생태사진가가 찾는다.
* [[이케아|이케아 고양점]]: 덕양구 [[도내동]]에 위치해 있다.
* [[스타필드 고양]]: 덕양구 [[동산동]]에 위치한 각종 의류점과 식당, 영화관, 찜질방, [[이마트 트레이더스]] 등이 모여 있는 종합쇼핑센터이다.


'''태정태세문단세 예성연중인명선 광인효현숙경영 정순헌철고순'''
=== 명물 및 명산품 ===
한낱 경기도 촌동네에 불과(?)했던 곳이 위성도시를 통해 역변한 사례다보니, 이렇다 할 고양시만의 명물은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러나 사실, 유명하진 않아도 숨어있는 명물이 몇 가지 있다.
* 웅어회 : [[웅어]]는 [[봄]]이 제철인 소형 등푸른 생선으로, 서해와 남해유역 중에서도 한강과 낙동강의 중하류에서 주로 잡힌다. 이를 포를 뜬 뒤 썰어서 약간의 기름과 향신료로 무쳐서 먹는데, 특히 행주 지역의 웅어는 진상품으로 특별히 관리되었을 정도로 유명하였다. 다만 고양시 일대의 어업이 쇠퇴하다보니 행주 웅어회 또한 자취를 감추는 과정에 있으며, 다른 지역의 명물로 바뀌는 중이다.
* [[막걸리]] : 옛부터 고양 지역은 김포와 동일한 유역으로서 고품질의 [[쌀]] 재배가 성행하였었고, 경의선이 서울 중심까지 직송으로 보내줄 정도로 물류환경도 좋아서 유통기간이 생명이었던 생 막걸리를 전문으로 하는 양조장이 많이 들어섰었다. 그런만큼 경쟁도 심해서 막걸리 질이 유난히 좋은 것으로 유명했다. 21세기에 들어선 시점에야 고양쌀의 생산량도 줄어들고 양조장도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서 다수가 문을 닫았으며, 막걸리 자체가 상대적으로 저가평준화 되고, 냉장유통기술의 발전 덕택에 지방 특색 막걸리까지 대량 유입되어서 완전히 밀리는 감이 있지만...
* [[열무]] : 북한산 반대편에 자리한 동두천과 함께 특산품으로서 일산 열무가 유명하다.
* [[장미]]와 [[선인장]] : 고양시의 정기 행사인 꽃박람회도 그렇고, 고양고양이로 뜨기 전에는 꽃을 마스코트로 사용했을 정도로, 화훼산업이 융성하였었다. 화훼시장 자체가 줄어든 2010년대에는 눈에 띄지 않을 정도가 되었긴 하나, 여전히 수도권의 시즌 공급량을 책임질 정도는 된다.


이 된다. 보통 나리 나리 개나리... 노래에 맞추고 마지막에 종을 붙이는 식으로 외우는 편
== 출신 인물 ==
{{참고|분류:고양시 출신}}


== 평가 ==
== 바깥 고리 ==
=== 동시기 일본과의 비교 ===
* [http://www.goyang.go.kr/ 고양시청 홈페이지]
본격적으로 한반도와 일본열도간의 국력차가 역전된 시기로 평가된다. 과거엔 '조선은 일본보다 정치, 경제,문화 모든 면에서 선진국이었는데 메이지유신으로 역전되었다' 라는 평가가 있었으나 [[조선 통신사]]들의 기록만 봐도 이미 일본이 [[에도 막부]] 시절 네덜란드 등과 접촉하면서 난학을 발전시키고 문물이 발전하여 이런면을 통신사들도 배워야 한다고 느꼈다는 부분이 있다. 심지어 일본의 우수한 문물은 우리도 배워야 하지 않겠느냐는 논의가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이 조선 초부터 존재하고 있으며 이 논의들을 살펴보면 종이, 안료, 무기, 광물지식, 화폐경제 등 제조업과 산업분야에서 조선보다 더 발전되어 있었다는 것이다.[http://sillok.history.go.kr/id/kda_11112003_005 대표사례] 물론 화약, 도자기나 기타 다른 문물은 조선이 일본을 앞선 경우도 존재했지만 임진왜란 이후엔 그마저도 우위가 사라졌다는 평가가 많다.


조선초에도 제법 격차가 있었다는 게 사실이라면 양국의 질적 역전은 고려시대에 발생했을 소지도 충분하기에 이 문제를 조선의 문제로만 돌리기도 곤란하긴 하다. 전근대 농업사회의 국력은 넓은 영토와 많은 인구로 결정되는데, 이미 일본은 조선시대 이전부터 인구면에서 한반도 국가를 압도하고 있었다. 그 절대치의 추월 시기는 통일신라 시기다, 가마쿠라 막부 초기다 등등 다양하나 일단 조선 초부터 일본인구는 한반도를 한참 능가한 시점이었다. 국토면에서도 일본은 혼슈 하나가 압록-두만 이남 한반도보다 약간 더 크고 규슈와 시코쿠 또한 만만치 않게 크다.
{{각주}}
{{대한민국의 광역자치단체}}
{{경기도의 기초자치단체}}


게다가 일본은 태평양에 바로 맞닿아 있고, 한반도보다 남쪽에 있어 기후가 훨씬 따뜻하고 강수량 역시 높다. 때문에 농업 부분에서도 당연히 한반도보다 유리한 위치에 있었다. 한반도에서는 17세기에 들어서야 정착한 모내기법 또한 일본에서는 풍부한 강수량 덕분에 이미 15세기 부터 전국적으로 이뤄지고 있었다. 이미 조선시대 이전부터 일본은 큰 국토와 축복받은 기후 덕에 월등한 생산력을 보여주었다. 거기다 전근대 일본은 세계적인 은 생산지로서 당시 세계 은 생산의 30%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쯤되면 조선이 일본보다 우월한 국가라고 하기 어렵다.
[[분류:고양시| ]]


{{주석}}
{{리브레 맵스 마커|37.65836915445337|126.83199763298035|10|고양시}}
{{분기|조선}}
[[분류:조선| ]]

2022년 3월 24일 (목) 05:55 판

{{{마을이름}}}
지역 정보
인구 1,042,065 명
면적 267.41 km2

고양시(高陽市)는 대한민국경기도 북서쪽에 위치한 다. 남쪽과 남동쪽으로 서울특별시, 서쪽과 남서쪽으로 한강을 사이에 두고 김포시, 북쪽으로 파주시, 북동쪽으로는 양주시와 접해 있으며, 인천광역시와는 자동차로 약 한 시간 거리이다.

2014년, 대한민국에선 열 번째로 인구수 100만 명을 돌파한 지자체가 되었고, 1기 신도시에 해당하는 일산신도시가 대표적이다.

역사

1992년 시로 승격되기 전에는 고양군이었다. 고양이라는 명칭은 조선 태종 13년(1413년)에 봉 (현재의 일산서/동구), 덕현(현재의 덕양구) 등을 고양현으로 통폐합하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덕분에 2013년에는 '고양시 600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많이 열렸다.

일반구

구 이름 법정동 행정동 인구 면적
일산서구 8 9 300,893명 (2016년) 42.80km²
일산동구 13 11 292,612명 (2016년) 59.10km²
덕양구 32 19 446,233명 (2016년) 42.56km²

홍보

마스코트

본래 고양시의 마스코트는 '코코'로 꽃을 인간화한 빨간 머리의 요정이었는데 2012년부터 고양시의 이름이 고양이와 비슷하는 것을 착안해 SNS에서 고양이를 이용해 홍보를 시작해 반응이 좋자 고양이 캐릭터인 '고양고양이'를 공식 마스코트로 채택했다. 이에 따라 물러나게 된 코코는 현재 고양꽃박람회의 마스코트로 활동하고 있다.

SNS 사용

2012년 말에 갑자기 고양시의 공식 페이스북의 프로필 사진과 배경 사진이 고양고양이로 변경되면서 사람들에게 관심을 얻었고 일산신도시보다 인지도가 낮았던 고양시를 알리는 데 좋은 결과를 받았다. 이때부터 고양고양이를 이용하여 적극적으로 SNS 활용에 나서면서 말 끝에 항상 "-할 고양"을 붙이기 시작했다.

2012년 12월 1일 고양시청의 페이스북 관리자가 페이스북의 좋아요 수가 8천 개를 넘어가면 최성 시장이 고양이 인증을 하겠다는 약속을 했고, 이 약속을 한 지 사흘 째인 12월 3일 좋아요 수가 8천 개를 넘어서 1만 개를 넘어서자, 최성 고양시장이 고양이 분장을 한 인증샷을 페이스북 페이지에 직접 올렸다. 최성 고양시장은 고양시 페이스북 외에 자신의 페이스북에도 인증사진을 올리며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들의 도시, 고양시! 앞으로 사랑해주세요! 야~옹!"이라고 덧붙였다. 해당 기사

글꼴

2016년 8월 10일SNS 콘텐츠 개발을 위해 만든 글꼴고양체를 무료로 배포하였다. 고양시의 마스코트 캐릭터인 '고양고양이'와 고양시의 브랜드를 딩벳(Dingbat)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으로, 고양시 관계자는 "마스코트를 활용해 심볼을 구성한 사례는 고양시 전용서체인 '고양체'가 최초일 것"이라고 전했다.[1]

관광

고양시는 기본적으로 위성도시, 특히 일산 지역은 초창기 서울특별시에 대부분을 의존하는 베드타운으로서 조성되었다. 그나마 정발산 역세권 개발 이후로 10여 년간 죽만 쑤다가 겨우 원흥지구 개발, 킨텍스 인근 개발로 겨우 상업이 눈에 띄기 시작했을 정도로, 관광에 큰 신경을 쓴 동네가 아니다.

사적지는 대부분 고양시의 본진인 덕양구에 넓게 분포하며, 반대로 먹고 놀 만한 번화가는 대개 일산구 정발산쪽에 몰려있다.

  • 행주산성
  • 북한산성
  • 서오릉 (西五陵): 덕양구 신도동에 위치한 조선시대 5개의 능을 합한 능호이다.
  • 서삼릉 (西三陵): 덕양구 원당동에 위치해 있으며, 조선시대 정릉, 효릉과 예릉을 합한 세 개의 능호이다.
  • 고양가와지볍씨박물관: 덕양구 원흥동의 고양시 농업기술센터 내에 위치한 박물관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볍씨를 만날 수 있다. 가와지는 현재의 대화동주엽동 사이에 있는 옛지명이다.
  • 일산호수공원 (고양600년기념관 외): 일산동구 장항동에 있는 호수를 낀 거대한 공원으로, 자전거를 타면서 호수공원을 둘러볼 수 있는 산책로와 노래하는분수대가 있으며, 이곳의 화원에서 해마다 국제꽃박람회를 개최한다.
  • 라페스타 (La Festa), 웨스턴돔 (Western Dom): 라페스타와 웨스턴돔은 모두 일산동구 장항동에 위치한 식당, 카페, 상점, 영화관 등 여러 상업시설이 모여 있는 스트리트 형 쇼핑몰이다. 라페스트와 웨스턴돔은 각각 커다란 광장을 사이에 두고 마주쳐 있다.
  • 킨텍스 (고양국제전시장): 일산서구 대화동에 위치한 거대한 종합 전시장이며, 각종 박람회와 전시회가 열린다.
  • 장항습지: 민간인 통제구역으로, 방문시 사전에 고양시 환경보호과로 연락이 필요하다. 주로 생태사진가가 찾는다.
  • 이케아 고양점: 덕양구 도내동에 위치해 있다.
  • 스타필드 고양: 덕양구 동산동에 위치한 각종 의류점과 식당, 영화관, 찜질방, 이마트 트레이더스 등이 모여 있는 종합쇼핑센터이다.

명물 및 명산품

한낱 경기도 촌동네에 불과(?)했던 곳이 위성도시를 통해 역변한 사례다보니, 이렇다 할 고양시만의 명물은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러나 사실, 유명하진 않아도 숨어있는 명물이 몇 가지 있다.

  • 웅어회 : 웅어이 제철인 소형 등푸른 생선으로, 서해와 남해유역 중에서도 한강과 낙동강의 중하류에서 주로 잡힌다. 이를 포를 뜬 뒤 썰어서 약간의 기름과 향신료로 무쳐서 먹는데, 특히 행주 지역의 웅어는 진상품으로 특별히 관리되었을 정도로 유명하였다. 다만 고양시 일대의 어업이 쇠퇴하다보니 행주 웅어회 또한 자취를 감추는 과정에 있으며, 다른 지역의 명물로 바뀌는 중이다.
  • 막걸리 : 옛부터 고양 지역은 김포와 동일한 유역으로서 고품질의 재배가 성행하였었고, 경의선이 서울 중심까지 직송으로 보내줄 정도로 물류환경도 좋아서 유통기간이 생명이었던 생 막걸리를 전문으로 하는 양조장이 많이 들어섰었다. 그런만큼 경쟁도 심해서 막걸리 질이 유난히 좋은 것으로 유명했다. 21세기에 들어선 시점에야 고양쌀의 생산량도 줄어들고 양조장도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서 다수가 문을 닫았으며, 막걸리 자체가 상대적으로 저가평준화 되고, 냉장유통기술의 발전 덕택에 지방 특색 막걸리까지 대량 유입되어서 완전히 밀리는 감이 있지만...
  • 열무 : 북한산 반대편에 자리한 동두천과 함께 특산품으로서 일산 열무가 유명하다.
  • 장미선인장 : 고양시의 정기 행사인 꽃박람회도 그렇고, 고양고양이로 뜨기 전에는 꽃을 마스코트로 사용했을 정도로, 화훼산업이 융성하였었다. 화훼시장 자체가 줄어든 2010년대에는 눈에 띄지 않을 정도가 되었긴 하나, 여전히 수도권의 시즌 공급량을 책임질 정도는 된다.

출신 인물

바깥 고리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