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코 비

유리코
百合子
인물 정보
다른이름 다카기 유리코(결혼 전 이름)
출생 1923년 6월 4일 (100세)
일본 도쿄도 미나토구
국적 일본
학력 여자가쿠슈인
직업 왕족(왕자비)
종교 신토
배우자 미카사노미야 다카히토 왕자
가족 시아버지 다이쇼 일왕, 시어머니 데이메이왕후
시아주버니 쇼와 일왕, 지치부노미야 야스히토 왕자, 다카마도노미야 노리히토 왕자
형님 고준왕후, 세츠코 비, 키쿠코 비
자녀: 장녀 고노에 야스코, 장남 토모히토 왕자, 차남 가츠라노미야 요시히토 왕자, 차녀 센 마사코, 3남 다카마도노미야 노리히토 왕자
큰며느리 노부코 비, 작은며느리 히사코 비
조카 히가시쿠니 시게코, 히사노미야 사치코 공주, 다카츠카사 가즈코, 이케다 아츠코, 아키히토 상왕, 히타치노미야 마사히토 왕자, 시마즈 다카코
손녀 아키코 공주, 요코 공주, 쓰구코 공주, 센게 노리코, 모리야 아야코
활동기간 1941년 왕자비 책봉

일본의 왕족(왕자비). 나루히토 일왕의 아버지인 아키히토 상왕의 막내 숙모. 오시루시는 오동나무이다.

현재 일본 왕실의 최고령자이다.

친정[편집 | 원본 편집]

화족(귀족) 집안의 딸로, 아버지는 다카기 마사나리(高木正得)이며 어머니는 구니코(邦子)이다. 4자매 중 차녀로 태어났다.

형제로는 언니 키누코(衣子), 여동생 모모코(桃子)와 사요코(小夜子)가 있고, 4자매 모두 화족 가문의 아들과 결혼했다. 아들이 없는 집이기 때문에, 형부 키고시 마사요리(木越正順)가 데릴사위로 들어와 성씨를 ‘다카기’로 바꾸고 가문을 계승했다. 모모코는 쿄고쿠 다카하루(京極高晴)와, 사요코는 다카오카 스에아키(高丘季昭)와 결혼했다.

외할머니 이리에 노부코(入江信子)는 다이쇼 시대의 유명한 여성 문학가인 야나기하라 뱌쿠렌(柳原白蓮)의 이복언니이다. 노부코와 뱌쿠렌의 고모인 야나기하라 나루코(柳原愛子)는 메이지 일왕의 후궁으로, 다이쇼 일왕의 생모가 된다. 노부코의 아들 이리에 스케마사(入江相政)는 쇼와 일왕(히로히토)의 시종장(侍從長)을 지냈는데, 스케마사가 궁중에서 일하며 보고 들은 내용을 기록한 일기는 중요하고 귀중한 역사적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1945년의 패전과 1947년의 신적강하로 인하여 방계 왕족들과 화족들은 평민으로 강등되었고, 재산을 잃은 사람들도 많았다. 유리코 비의 친정인 다카기 가문 또한 마찬가지였고, 아버지 마사나리는 1948년 자살했다.

성장과 결혼[편집 | 원본 편집]

패전 이전에 가쿠슈인은 남학교와 여학교(여자가쿠슈인)로 나뉘어 있었고, 왕족과 화족의 자제들만을 입학시켜 교육하는 관립학교였다. 유리코는 1928년 여자가쿠슈인 유치원에 입학했고, 1931년 여자가쿠슈인 본과로 진학했다. (오늘날의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과정)

18세가 되던 해인 1941년, 유리코는 여자가쿠슈인 본과를 졸업하고 곧장 결혼했다. 상대는 히로히토 당시 일왕의 막냇동생인 미카사노미야 다카히토 왕자로, 유리코 비보다 8살 연상인 1915년생이었다. 하지만 다카히토 왕자가 4형제 중 늦둥이 막내여서, 유리코 비의 아주버니들과 형님들은 유리코 비보다 훨씬 더 나이가 많았다. 큰형님인 나가코 왕비(고준왕후)는 1903년생으로 무려 20년이나 연상이어서 거의 어머니뻘이었고, 나가코 왕비의 장녀 데루노미야 시게코 공주는 1925년생으로 숙모인 유리코 비보다 불과 2살 아래였다. (하지만 현재까지 살아있는 유리코 비와 달리, 시게코는 1961년에 사망했다.)

시어머니 데이메이왕후(사다코)는 맏며느리인 나가코 왕비에게 매우 엄격하고 어려운 시어머니였으나 나머지 며느리들에게는 관대했는데, 늦둥이 막내며느리인 유리코 비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사다코 대비는 유리코 비와 그녀의 아이들을 귀여워했다. 나가코 왕비가 2남 5녀를 낳았지만 둘째며느리 세츠코 비와 셋째며느리 키쿠코 비는 불임이었기에, 유리코 비의 자녀들은 방계이지만 귀한 왕손이었다.

자녀[편집 | 원본 편집]

남편 미카사노미야 다카히토 왕자와의 사이에서 3남 2녀를 낳았다. 손이 귀한 일본 왕실에서 아들을 3명이나 낳았지만, 3명 모두 아들을 낳지 못하고 부모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 이후 남자가 없는 미카사노미야 가문에서, 맏손녀 아키코 공주가 할머니 유리코 비를 보필하며 장손 노릇을 하고 있다.

첫째[편집 | 원본 편집]

장녀 고노에 야스코(近衛寗子)는 1944년 4월 26일생으로, 세이신여학원 유치원에 이어 가쿠슈인 초등과ㆍ여자중등과ㆍ여자고등과를 거쳐 가쿠슈인대학 문학부 영문과를 졸업했다. 대학 재학 중이던 1966년에 고노에 타다데루(近衞忠煇)와 결혼하여 왕족 신분을 상실했다.

결혼 당시 타다데루는 일본적십자사 사원이었고, 훗날 사장에까지 오른다. 그의 형 호소카와 모리히로(細川護熙)는 제79대 일본 총리를 지냈다. 본래 타다데루의 성씨는 호소카와였으나 외가인 고노에 가문에 양자로 입적되어 성씨가 바뀐 것이다. 타다데루의 외할아버지는 제34대, 38대, 39대 일본 총리를 지낸 고노에 후미마로(近衛文麿)이다.

타다데루와 야스코는 1970년 7월 18일 외아들 고노에 타다히로(近衞忠大)를 낳았다. 며느리 구니 케이코(久邇桂子)는 고준왕후의 큰오빠 구니 아사아키라(久邇朝融)의 차남인 아사타케(朝建)의 장녀이다. 타다히로와 케이코는 2남 1녀를 낳았다.

둘째[편집 | 원본 편집]

장남 토모히토 왕자는 1946년 1월 5일생으로, 가쿠슈인대학 법학부 정치학과를 졸업했다. 제92대 일본 총리를 지낸 아소 다로(麻生太郞)의 여동생인 아소 노부코와 결혼했다. 1981년 큰딸 아키코 공주를, 1983년 작은딸 요코 공주를 낳았다.

어려서부터 말썽꾼이었으며, 아버지 다카히토 왕자와 달리 우익 성향이었다. 그리고 두 딸도 토모히토 왕자로부터 우익적인 성향과 행보를 물려받았다.

2012년 6월 6일 사망했다(향년 66세). 장남이기에 남동생들과 달리 분가하지 않았고, 아버지의 뒤를 이어 미카사노미야 가문의 가장이 될 예정이었으나, 아버지보다 먼저 사망하여 무산되었다.

한편 그의 큰딸 아키코 공주는 “미카사노미야 가문과 왕실을 지키기 위해, 시집가지 않고 평생 독신으로 왕실에 남겠다”고 선언했다.

셋째[편집 | 원본 편집]

차남 가츠라노미야 요시히토(桂宮宜仁) 왕자는 1948년 2월 11일생으로, 가쿠슈인대학 법학부 정치학과를 졸업했고 호주(오스트레일리아)에 유학도 다녀왔다. 형제들과 달리 결혼하지 않고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학창시절 학우들로부터 “왕족들은 세금으로 잘 먹고 잘 산다”고 놀림을 받아 상처가 되었다고 한다.

40세 무렵부터는 이런저런 병으로 고생했는데, 한쪽 눈이 보이지 않았고 보행도 부자유스러워 휠체어를 사용했다.

본래 궁호는 차남 이하의 왕자가 결혼하여 가장이 되면 받는 것이지만, 요시히토 왕자는 예외적으로 결혼하지 않고도 궁호를 받았다. 그에게 사생아가 있다는 소문도 있지만 일본 왕실에서 사생아는 가문을 계승할 수 없기에, 설령 정말로 사생아가 있다 하더라도 소용없는 일이다.

2014년 6월 8일, 도쿄대학 의학부 부속병원에서 사망했다(향년 66세).

넷째[편집 | 원본 편집]

차녀 센 마사코(千容子)는 1951년 10월 23일생이다.[1] 쇼토유치원가쿠슈인 초등과ㆍ여자중등과ㆍ여자고등과에 이어 가쿠슈인대학 법학부 법학과를 졸업했다.

대학 시절에는 프랑스 파리의 소르본대학으로 유학을 갔는데 “마사코 공주가 학업에 전념하지 않고 방탕하게 놀면서 생활하고 있다”는 소문이 일본에까지 들려오는 바람에, 어머니 유리코 비가 크게 걱정하여 프랑스까지 직접 쫓아가서 일본으로 데려오려 했다고 한다. (훗날 남동생 다카마도노미야 노리히토 왕자의 장녀인 쓰구코 공주도, 젊은 시절의 작은고모와 비슷한 행보를 보였다.)

어찌어찌 무사히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후로는, 유학 시절 배운 프랑스어를 활용하여 외국인들과 접견하는 등의 공무를 수행했다. 1983년에는 5살 연하인 센 소시츠(千宗室)와 결혼하여 왕족 신분을 상실했다. 이듬해에는 장남 아키부미(明史), 1987년에는 장녀 마키코(万紀子), 1990년에는 차남 다카부미(敬史)를 낳았다.

센 가문은 대대로 다도(茶道)를 가업으로 계승해온 가문으로, 소시츠에 이어 다카부미가 가업을 계승하게 되었다. 장남 아키부미는 시인(詩人)이 되었고 키쿠치(菊地) 가문에 입적했으며, 장녀 마키코는 사카다(阪田) 가문으로 시집갔다.

다섯째[편집 | 원본 편집]

3남 다카마도노미야 노리히토 왕자는 1954년 12월 29일생으로[2], 5남매 중 막내이다. 가쿠슈인 초등과ㆍ중등과ㆍ고등과를 거쳐 가쿠슈인대학 법학부를 졸업했고, 이후 캐나다 퀸스대학교에 유학했다.

1984년 돗토리 히사코와 결혼하여 분가, 다카마도노미야 가문을 창설했다. 1986년 장녀 쓰구코 공주, 1988년 차녀 노리코 공주, 1990년 3녀 아야코 공주를 낳았다. 2002 한일 월드컵 때는 아내 히사코 비와 함께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2002년 11월 21일, 아내와 어린 딸들을 남겨두고 급사했다(향년 47세). 막내이지만 형들과 누나들보다도 더 먼저 사망했다.

각주

  1. 코무로 마코(1991년생)와 생일이 같다.
  2. 카코 공주(1994년생)와 생일이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