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부코 비

노부코
信子
인물 정보
다른이름 아소 노부코(결혼 전 이름)
출생 1955년 4월 9일 (69세)
일본 도쿄도 시부야구
국적 일본
학력 쇼토유치원
세이신여학원 초등과
세이신여학원 중등과
영국 랭커셔주 Independent school
영국 Roselyn House College
직업 왕족(왕자비)
종교 가톨릭신토
배우자 토모히토 왕자
가족 시할아버지 다이쇼 일왕, 시할머니 데이메이왕후(사다코)
아버지 아소 다카키치, 어머니 아소 가즈코
시아버지 미카사노미야 다카히토 왕자, 시어머니 유리코 비
형제: 첫째 오빠 아소 다로, 둘째 오빠 아소 지로, 셋째 오빠 아소 유타카, 첫째 언니 소마 유키코, 둘째 언니 아라후네 아키코
시동생 다카마도노미야 노리히토 왕자, 아랫동서 히사코 비
자녀: 장녀 아키코 공주, 차녀 요코 공주
시조카: 쓰구코 공주, 센게 노리코, 모리야 아야코
6촌 시조카: 도시노미야 아이코 공주, 코무로 마코, 카코 공주, 히사히토 왕자
활동기간 1980년 왕자비 책봉

일본의 왕족(왕자비). 나루히토 일왕의 5촌 당숙이자 아키히토 상왕의 사촌동생인 토모히토 왕자의 아내이다. 오시루시는 꽃복숭아[1]이다.

친정[편집 | 원본 편집]

아버지 아소 다카키치(麻生太賀吉)와 어머니 아소 가즈코(麻生和子)의 3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대대로 사업을 운영해온 아소 가문은, 일제강점기에 강제로 징용된 많은 한국인들을 규슈의 탄광에서 가혹하게 혹사시켜 큰 부를 이룩한 악질적인 전범기업 가문이다.

어머니 가즈코는 요시다 시게루(吉田茂) 前 일본 총리의 3녀이며, 화족(귀족) 출신 정치인인 마키노 노부아키(牧野伸顕) 백작의 외손녀이다. 본래 노부아키는 오쿠보 도시미치(大久保利通)의 차남인데, 마키노 가문에 양자로 입양되어서 ‘마키노 노부아키’가 되었다. 도시미치는 사츠마번(薩摩藩)[2] 출신의 정치인으로, 기도 다카요시(木戶孝允)ㆍ사이고 다카모리(西郷隆盛)와 함께 메이지유신을 주도하여 ‘유신삼걸’로도 불리는 인물이다.

극우 망언 정치인으로 악명이 높은 큰오빠 아소 다로(麻生太郞)는 스즈키 젠코(鈴木善幸) 前 총리의 딸 치카코(ちか子)와 결혼했고, 본인 역시 일본 총리를 지냈다. 둘째 오빠 지로(次郎)는 가쿠슈인대학 재학 중이던 1964년에 사고를 당하여 22세의 나이로 요절했고, 셋째 오빠 유타카(泰)는 아소 가문의 사업을 이어받아 운영하고 있다. 큰언니 유키코(雪子)는 화족 소마 카즈타네(相馬和胤)와, 작은언니 아키코(旦子)는 주스페인일본대사를 지낸 외교관 아라후네 키요히코(荒船淸彦)와 결혼했다.

학업과 성장[편집 | 원본 편집]

노부코는 어머니 가즈코의 외사촌 자매인 하야시 데이코(林貞子)가 설립한 쇼토유치원을 졸업했고, 이후로는 가톨릭 미션스쿨인 세이신여학원에 입학했다. 이는 집안의 종교적 배경과 관련된 것으로 보이는데, 아소 가문은 어울리지 않게도 집안 대대로 가톨릭을 믿기 때문이다.

세이신여학원에서 초등학교중학교를 졸업한 후로는 영국으로 유학을 떠났고, 1973년 영국 Roselyn House College를 졸업했다. 학업을 마친 후로는 일본으로 귀국하여, 자신이 어린 시절 다녔던 쇼토유치원에서 영어교사로 근무했다.

결혼과 가정[편집 | 원본 편집]

영국에서 유학하던 시절, 노부코는 히로히토(쇼와) 당시 일왕의 조카인 토모히토 왕자와 처음 만났다. 1972년, 26세의 토모히토 왕자는 노부코에게 청혼했다. 그때는 노부코가 아직 어렸기 때문에(17세), 8년이 지난 1980년에야 결혼했다. 1981년에 장녀 아키코 공주를, 1983년에 차녀 요코 공주를 낳았다.

그러나 부부의 금슬은 썩 좋지 못했다. 성격차이 때문이라고도 하고, 토모히토 왕자의 알코올 중독가정폭력 때문이라고도 한다. 왕족이라는 신분과 체면 때문에 차마 이혼하지는 못했지만, 오랫동안 별거하며 지냈다고 한다. 사실상 이혼한 것과 다름없는 상태였던 것이다. 노부코 비는 몸이 아플 때도 친정 형제들의 별장에서 요양했고, 이후로도 오랫동안 왕실 가족들과 함께 지내지 않았다.

2012년 남편 토모히토 왕자가 사망했을 때도, 2014년 시동생 가츠라노미야 요시히토(桂宮宜仁) 왕자가 사망했을 때도, 2016년 시아버지 미카사노미야 다카히토 왕자가 사망했을 때도, 노부코 비는 장례식과 제사에조차 참석하지 않았다. 공식적으로는 “건강이 좋지 않아서”라고 했지만, 사실은 부부관계 및 가족관계가 나쁘기 때문이었다. 노부코 비의 장녀이자 미카사노미야 가문의 맏손녀인 아키코 공주가 상주로서 행사를 주관했고, 이후로도 남자가 없는 미카사노미야 가문에서 장손 노릇을 도맡고 있다. 아키코 공주는 아예 “시집가지 않고 평생 독신으로 왕실에 남아서 미카사노미야 가문을 지키겠다”고 선언까지 했다.

노부코 비는 남편과 시가 외에, 두 딸 아키코 공주요코 공주와도 사이가 나쁘다. 거의 만나지도 왕래하지도 않고 지내며, 공식 행사에서 마주쳐도 거의 대화하지 않는다고 한다. 두 공주는 어머니와 사이가 나쁘지만 아버지 및 친가에는 각별하여, 아버지가 생전에 했던 활동들을 계승하고 있다. 아키코 공주의 ‘독신선언’ 또한 그러한 사고방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요코 공주는 언니와 달리 독신선언은 하지 않았지만, 시집가지 않고 언니와 함께 여전히 독신으로 왕실에 머무르고 있다.

이렇듯 가족들과 사이가 나쁜 노부코 비이지만, 왕족으로서의 공무는 꾸준히 수행하고 있다. 그녀가 왕족 신분이라는 사실만큼은 변함이 없고, 왕족들의 죽음 및 고령화와 공주들의 출가(出嫁)로 일본 왕실의 규모가 점점 줄어들어, 일할 왕족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2022년 신년행사에서 노부코 비는 작년 12월에 성년(만 20세)을 맞이한 도시노미야 아이코 공주를 축하하는 한편, 아이코 공주의 숙모인 키코 비에 대해서는 견제하며 불편해하는 태도를 보였다.

기타[편집 | 원본 편집]

특기는 요리로, 1992년과 2013년에 가정요리에 관한 책을 출간했다. 후자는 후쿠시마현의 요리에 대해 다루고 있다.

각주

  1. 예쁜 을 감상하기 위하여 개량된 복숭아나무
  2. 오늘날의 가고시마현 전역+미야자키현 서남부 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