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게 노리코

센게 노리코
千家典子
인물 정보
다른이름 다카마도노미야 노리코(결혼 전)
출생 1988년 7월 22일 (35세)
일본 도쿄도 미나토구 아이이쿠병원
국적 일본
학력 쇼토유치원
가쿠슈인 초등과
가쿠슈인 여자중등과
가쿠슈인 여자고등과
가쿠슈인대학 문학부 심리학과
직업 왕족(공주) → 일반인
종교 신토
배우자 센게 구니마로
가족 증조할아버지 다이쇼 일왕, 증조할머니 데이메이왕후
할아버지 미카사노미야 다카히토 왕자, 할머니 유리코 비
아버지 다카마도노미야 노리히토 왕자, 어머니 히사코 비
형제: 언니 쓰구코 공주, 여동생 모리야 아야코
사촌언니: 아키코 공주, 요코 공주
활동기간 2014년 결혼으로 왕실 이탈

일본의 前 왕족(공주). 나루히토 일왕의 6촌 여동생이다. 공주 시절 오시루시난초였다.

가계[편집 | 원본 편집]

증조할아버지는 다이쇼 일왕, 할아버지는 다이쇼 일왕의 4남(막내)인 미카사노미야 다카히토 왕자, 아버지는 다카히토 왕자의 3남 2녀 중 막내인 다카마도노미야 노리히토 왕자이다.

다카히토 왕자는 20세가 되던 해에 성인식을 치르며 분가(分家)하여 미카사노미야 가문을 창설했고, 노리히토 왕자는 1984년 돗토리 히사코와 결혼하면서 미카사노미야 가문에서 분가했다. 노리히토 왕자의 큰아버지인 히로히토(쇼와) 당시 일왕은, 가장(家長)이 된 노리히토 왕자에게 ‘다카마도노미야’라는 궁호를 하사했다. 이로써 다카마도노미야 가문이 창설되었고, 노리히토 왕자와 그의 처자식은 ‘다카마도노미야 일가’로 불리게 되었다.

탄생과 성장[편집 | 원본 편집]

1988년 7월 22일, 도쿄 아이이쿠병원에서 태어났다. 형제로는 언니 쓰구코 공주(1986년생)와 여동생 아야코 공주(1990년생)가 있다.

다카마도노미야 일가의 3자매는 왕실학교인 가쿠슈인유치원 대신 쇼토유치원에 다녔다. 시부야구의 고급 주택가에 있었던 쇼토유치원은 졸업생들 다수를 명문 사립초등학교에 진학시키는 명문 유치원으로 유명했고, 비싼 원비를 감당할 수 있는 부유층 자제들이 주로 다녔다. 큰어머니인 노부코 비는 결혼 전에 쇼토유치원에서 영어교사로 근무했고, 그녀의 큰딸 아키코 공주와 작은딸 요코 공주는 쇼토유치원에 다니다가 가쿠슈인 유치원으로 옮겼다.

쇼토유치원을 졸업한 후에는 가쿠슈인 초등과로 진학했고, 졸업 후에는 가쿠슈인 여자중등과로 진학했다. 2002년 11월 21일에는 아버지 노리히토 왕자가 갑자기 사망하여, 어머니 히사코 비와 어린 공주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당시 고등학생이던 쓰구코 공주, 중학생이던 노리코 공주, 초등학생이던 아야코 공주교복을 입고 아버지의 장례식에 참석했다. 이때 언니 쓰구코 공주의 머리카락이 갈색으로 염색되어 있어 논란이 되었는데, 히사코 비는 “평소의 모습 그대로 아버지를 보내드리게 하고 싶어서”라고 밝혔다.

학업[편집 | 원본 편집]

가쿠슈인 여자고등과를 거쳐, 2007년 4월 가쿠슈인대학 문학부 심리학과로 진학했다.[1] 노리코 공주는 중고등학생 시절부터 연극발레를 좋아했고, 대학에 진학하여 심리학을 공부하면서부터는 임상심리학과 정신의료에 특히 관심을 보였다. 대학에서는 남녀 구분없이 다양한 친구들과 두루 사귀었다고 한다.

대학 1학년 때는 여름방학을 이용하여 한국을 방문했고, 서울 용산구 성심여중고 교내 수녀원에 머물렀다. 성심여중고는 성심수녀회에서 운영하는 학교인데, 노리코 공주의 당숙모 미치코 왕비ㆍ큰어머니 노부코 비ㆍ어머니 히사코 비도 성심수녀회가 운영하는 세이신여학원 출신이라는 인연이 있다. 노리코 공주는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숙소에서 똑같은 식사를 하는 등 특별대우 없이 지냈고, 봉사활동에도 참가했다.

2008년 7월 22일부터 성년(만 20세)이 된 노리코 공주는 본격적으로 공무에 데뷔했다. 대학을 졸업하던 2011년 3월에는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났다. 노리코 공주는 어머니, 언니, 여동생과 함께 재해지를 방문하여 위문했다.

결혼[편집 | 원본 편집]

2014년, 노리코 공주는 센게 구니마로(千家國麿)와 결혼했다. 3자매 중에서 제일 먼저 결혼한 것이다. 왕실전범에 따라 그녀는 왕족 신분을 이탈, 평민 센게 노리코가 되었다. 일본 왕실에서는 시집가는 공주에게 일정한 지참금을 주는데, 노리코는 1억 675만 엔(약 10억 4,000만원)을 받았다.

구니마로는 노리코 공주보다 15살이나 연상인 1973년생으로, 센게 가문은 대대로 시마네현의 유서 깊은 신사인 이즈모타이샤(出雲大社)의 제관(祭官)을 맡아오고 있다. 현재는 구니마로의 아버지 센게 다카마사(千家尊祐)가 제관이며, 구니마로 또한 고쿠가쿠인(國學院) 대학[2] 신도학과를 졸업하고 아버지를 보조하며 뒤를 이을 준비를 하고 있다. 노리코 공주는 중학생 시절 아버지를 잃은 후, 어머니와 함께 이즈모타이샤에 드나들다가 구니마로와 알게 되었다고 한다.

결혼 이후 노리코는 구니마로가 살고 있던 시마네현에 신접살림을 차렸다. 하지만 오래도록 아이 소식이 없다. 부부관계가 좋지 못하다거나, 구니마로가 몸이 아파 제관직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거나, 노리코가 시골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여 도쿄의 친정(왕실)에 머물며 사실상 별거하고 있다는 등의 소문이 있다. 그래도 겉으로는 큰 사건이나 말썽 없이, 종종 친정의 행사에도 참가하며 지내고 있다. 공주 시절 오시루시가 난초였던 인연으로, 결혼 후로도 난초 관련 단체의 명예총재를 맡고 있다.

각주

  1. 6촌 올케인 키코 비도 같은 대학 같은 학과 출신이다.
  2. 사촌언니 아키코 공주가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대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