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어 : Österreichischer Schilling (외스터라이히셰어 실링)
소개 (2기 실링)
1945년 독일제국 패망 이후부터 유로화 전환 직전인 2001년까지 오스트리아에서 사용된 통화. ISO 4217코드는 ATS, 기호는 S 혹은 Ös, 보조단위로 그로셴(Groschen)이 있었다. 최종 인플레이션은 2%. 유로화와의 교환비는 13.7603실링/EUR이고, 반대로 지난 통화였던 제국마르크와의 교환비는 1:1로 해주되 150실링을 한도로 두었다. 이는 제국마르크의 괴멸적인 폭락으로 인해 통화 자체가 바닷물처럼 넘쳐나다보니 정부측에서 아예 계산을 포기하고 한 사람당 150실링씩 뿌렸다고 표현하는 것이 현실적일 정도다.
이후 1947년 11월에 다시 한 번 신 실링화 법안이 공표되고, 그동안 뿌려준 150실링 가지고 얼마나 열심히 벌었나를 테스트하듯 150실링까지는 1/1로, 그 초과값은 1/3비율로 다시 신권으로 교환하며 통화를 재정비하였다. 이렇게 되자 1950년의 환율은 26실링/USD로 정립되었다. 하지만 미국이 브레튼우드 시스템을 포기하면서 흔들릴 조짐이 보이니 오스트리아 실링은 도로 독일 마르크에 의지하게 되었다. (1976년 7월)
현찰 시리즈 (2기)
최종신판 (가제)
Austria Schilling Series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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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습 | 앞면 | 뒷면 | |
S. 20
(미발행) |
구스타프 클림트 | ||
S. 50
(미발행) |
아이다 파이퍼[1] | ||
S. 100
(미발행) |
프란츠 슈베르트 | ||
S. 500 | 로자 마이레더 | ||
S. 1,000 | 칼 란트슈타이너 | ||
S. 5,000
(미발행) |
마리 폰 에브너 에셴바흐
(소설가) |
- 500, 1000실링을 제외한 나머지는 실물로 등장하지 못했다. 혹은 이미지만 그럴싸하게 만들어 훼이크를 쳤을 가능성도 있는데 중앙은행측에선 별도의 설명이 없다.
최종판 (가제)
Austria Schilling Series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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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습 | 앞면 | 뒷면 | |
S. 20 | 모리츠 미카엘 다핑거 | 알베르티나 | |
S. 50 | 지그문트 프로이트 | 조세피넘
(의학교) | |
S. 100 | 오이겐 폰 바베르크 | 국립과학대 아카데미 | |
S. 500 | 오토 바그너 | 우체국 저축은행 | |
S. 1,000 | 에르빈 슈뢰딩거 | 빈 대학교 | |
S. 5,000 |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 잘츠부르크 이미지 디자인 |
국립음악극장 |
구판 (가제)
표
1기 실링
위 2기 실링과는 별개의 통화로, 1918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깨지고 난 후인 1924년 12월 20일 제정된 실링통화법안(Schillingrechnungsgesetz)에 의해 기존 오스트리아 헝가리 크로네를 대체하는 통화로서 등장했다. 교환비는 10,000크로네 = 1실링. 하지만 1938년 독일제국의 강제병합으로 인해 2제국마르크 = 3실링의 비율로 강제전환당하며 막을 내렸다.
각주
- ↑ 오스트리아의 여행작가. '80일간의 세계일주 (쥘 베른 작)'의 모티프를 제공한 것으로 유명하다.
북·서유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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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LB) | |
유로(€) 시스템 | |
남유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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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유럽 | |
유라시아 |
- ↑ 여기에 해당하는 이전 화폐는 동전도 교환대상에 해당한다. 단, 유로화를 제외한 통화는 유효하더라도 모두 유로화로 교환한 후에 사용이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