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시

광양
지역 정보
종류
시장 정현복
국회의원 서동용 (순천·광양·구례·곡성 을)
행정구역 5 행정동, 10 법정동, 1 읍, 6 면
인구 151,045 명
면적 463.081 km2
기타 정보
상징 고로쇠 (나무)
동백꽃 (꽃)
갈매기 (새)
웹사이트 www.gwangyang.go.kr/index.gwangyang

시 면적 출처는 국가통계포털 2018년 기준.

광양시전라남도 동남부에 위치한 이다. 서쪽으로 순천시, 북쪽으로 구례군, 동쪽으로 경상남도 하동군과 접하며 남쪽으로는 여수시가 해상으로 접하며, 이순신대교를 통해 육로로 연결되어 있다.

개요[편집 | 원본 편집]

1981년에 한적한 어촌이던 섬진강 하구의 금호도와 태인도를 매립해 광양제철소를 건설했다. 제철소가 건설되면서 광양시의 산업 구조는 농어업 중심에서 제조업 중심으로 바뀌고 포항시와 함께 세계적인 제철도시로 성장하고 있다.

역사[편집 | 원본 편집]

  • 백제 시대에는 마로현이었다.
  • 757년 (통일신라시대) 회양현으로 개칭되었다.
  • 940년 (고려시대) 광양현으로 개칭되었다.
  • 1895년 (조선시대) 광양군이 되었다.
  • 1896년 (조선시대) 전라남도에 속한다.
  • 1914년 돌산군 태인면(묘도 제외)을 골약면에 편입하였다(이 지역은 원래 광양소속이었으며, 1896년 돌산군이 신설되면서 돌산군에 편입되었다가 광양으로 돌아온 것이다.).
  • 동시에 사곡면, 우장면, 칠성면을 광양면으로, 진하면과 월포면을 진월면으로 통합했다. (9면)
  • 1925년 인덕면을 광양면에 합면했다. (8면)
  • 1949년 광양면이 광양읍으로 승격되었다. (1읍 7면)
  • 1966년 골약면 금호리, 태인리를 관할하는 태인출장소를 설치하였다.
  • 1973년 골약면 송장리를 여천군 율촌면에 통합하였다.
  • 1983년 태인출장소가 태금면으로 승격되었다. (1읍 8면)
  • 1986년 골약면, 태금면, 옥곡면 광영리를 관할하는 전라남도 광양출장소가 설치되었다.
  • 1989년 골약면, 태금면 일대를 동광양시로 승격하였다. (광양군 1읍 6면/동광양시 5동)
  • 1995년 광양군과 동광양시를 통합하여 현재의 광양시에 이른다. (1읍 6면 5동)

지리[편집 | 원본 편집]

북부는 소백산맥 줄기인 백운산 등 여러 산들이 중첩된데 비해[1] 남부 해안가로 갈수록 지대가 낮아진다. 동부는 북부에 비해 경사가 완만한 낮은 구릉지이고, 서부도 100m 안팎의 낮은 구릉지를 이룬다. 섬진강이 동쪽과 북쪽 경계를 흘러 남해로 빠져나가며 섬진강 유역은 평야가 별로 없다[2]. 평야는 주로 광양만 일대에 분포한다.

겨울철에 따뜻하고 비가 많이 오며, 난대성 식물이 잘 자란다.

행정구역[편집 | 원본 편집]

광양시의 행정구역은 1읍 6면 5행정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북부는 산세가 험준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인구는 남부에 있다. 광양읍과 중마동이 중심지이며, 두 지역 사이에 산이 있어 시역이 나뉜다. 일반적으로 도농통합이 되면 군 중심지는 쇠락하는 경우가 많지만 광양읍은 오히려 뜨고 있는 추세이다.

중마동과 광양읍의 인구가 5만 명 안팎으로 굉장히 많다. 행정동과 읍은 인구 5만 명 이상이 되면 분동하는 것이 원칙이나 분동되지 않고 있다. 근데 광양읍은 인구가 다시 5만 명 아래로 떨어졌다.

그래서 고작 15만 명 밖에 안 되는 광양 인구 중 3/1이 광양읍에, 또 3/1이 중마동에 있으며, 그 나머지 중 약 3만 명이 나머지 4개 행정동에 있다. 그리고 6개 면의 인구 총합은 약 16000명.

  • 골약동
    중마동과 함께 시 승격 이전 골약면을 구성한다. 동광양 기준으로 서쪽에 해당하며 황금동 일대의 간척지에 산단이 들어서있다. 황금지구 도시개발이 예정되어있어 앞으로 인구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 중마동
    골약동과 함께 시 승격 이전 골약면을 구성한다. 동광양의 중심지이다. 광양시청, 중마터미널 등의 위치하며 광양시 인구의 약 2/5가 거주한다.
  • 광영동
    시 승격 이전엔 옥곡면 광영리였다. 동광양시 소속 광영동이 되면서 옥곡면에서 분리됐다. 중마동과 완전히 분리됐음에도 개발 시기가 빠른 편이었다. 인구는 약 2만명이며, 동네 자체의 상권이 거의 없는 배후단지에 가깝다.
  • 금호동
    태인동과 함께 시 승격 이전 태금면을 구성한다. 제철소가 있는 금호도를 관할한다. 금호대교와 길호대교로 중마동과 바로 연결되기에 섬의 고립된 특성은 잃었다. 제철소 직원 가족들이 주로 거주하는 사택들이 많다. 제철중학교와 제철고등학교가 있다.
  • 태인동
    금호동과 함께 시 승격 이전 태금면을 구성한다. 금호도 바로 옆에 있는 태인도를 관할한다. 주변의 금호도, 옥곡, 하동과 교량으로 연결됐다. 광양 동 지역 가장 외곽지역 중 하나이며 산업단지가 들어설 예정이다. 대략 100년 전 돌산군 소속이던 시절엔 태인면의 중심지였다.
  • 광양읍
    광양의 전통적 중심지이다. 광양시 서남부에 치우쳐져있다. 중마동을 중심으로 한 동광양과는 시가지가 이격되어 있고 생활권도 다르다. 인구는 약 5만명으로, 광양시 전체의 1/3 가량에 달한다. 인구에 비하면 상권이 빈약한 편이다. 이는 광양읍이 순천시와 가까워서 그렇다. 하지만 덕례리에 LF스퀘어가 들어서면서 어느 정도 옛이야기가 되었다. 그래도 여전히 순천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 봉강면·옥룡면·진상면
    광양시의 북부에 위치한다. 이 지역은 백운산 등 험준한 산지이기에 농토의 비율이 낮아 인구가 적다. 면 당 2~3천 명 정도 거주한다. 면들 간의 직선거리가 가깝지만 산으로 단절돼있고 인구가 적은 탓에 연결이 잘 안 되어있다. 그리고 북부는 산지이기에 그나마 농지가 있는 남부에 면소재지가 있다.
  • 옥곡면
    중마동의 북쪽에 위치한다. 옥곡,진상,진월,다압으로 가는 광양 시내버스가 일부 시간대에 옥곡에서 출발한다. 동광양시 승격 때 광영리를 동광양시에 편입했다.
  • 진월면
    시의 최동단이다. 섬진강 재첩 채집이 성했었다.
  • 다압면
    광양시 최외곽지역이다. 진상면에서 섬진강변을 따라 쭉 올라가면 나오는 곳이다. 면 전체가 하동 생활권이며 북부는 화개장터와 가깝다. 매화마을이 있다.

교육[편집 | 원본 편집]

교통[편집 | 원본 편집]

순천의 광역교통망에 속하기 때문에 도로든 철도든 부산방향이 아닌 이상 순천을 지나게 되어있다.

도로[편집 | 원본 편집]

고속도로[편집 | 원본 편집]

국도[편집 | 원본 편집]

지방도[편집 | 원본 편집]

기타 도로[편집 | 원본 편집]

  • 이순신대교: 광양시 중마동에서 여수시 묘도동을 잇는 교량. 묘도에서 묘도대교를 통해 여수 본토와 연결된다. 그 동안 순천으로 돌아가야 했던 여수와의 이동 시간이 30분 가량 짧아졌다. 특히 광양제철소와 여수산단을 바로 잇는다.
  • 구 2번 국도

철도[편집 | 원본 편집]

경전선이 광양시를 동서로 지나간다. 그 외에 지선 광양제철선이 있다.

경제[편집 | 원본 편집]

농업, 수산업도 꽤 하지만 공업이 주 산업이다. 남동임해공업지역에 속하며, 세계최대 규모의 제철소로 유명하다. 이에 맞게 경제력도 전국에서 손에 꼽을 정도이다. 광양제철소 주변에 관련 업체가 여럿 입주해있으며, 광양항은 선박 46척을 동시에 댈 수 있는 항만 시설을 갖추고 있다. 그 주변이 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되어있다.

농업은 쌀, 보리, 시설 원예농업이 성하다. 그 외에 진상면의 , 다압면의 매실 등이 있다.

수산업은 과거 광양만 일대에 고기잡이나 양식업이 성했으나 공업 시설이 들어서고 바다 오염이 심해져 크게 쇠퇴했다. 섬진강 유역에서는 재첩 채집도 많이 했으나 재첩 개체수도 점점 감소하고 있다.

주요 기관[편집 | 원본 편집]

문화·관광[편집 | 원본 편집]

출신 인물[편집 | 원본 편집]

자매 도시[편집 | 원본 편집]

기타[편집 | 원본 편집]

바깥 고리[편집 | 원본 편집]

각주

  1. 그래서 광양시 북부 면들은 남북으로 길게 되어있다. 산이 여럿 있고 남쪽으로 강이 흐르기 때문에 생활권이 남북으로 길게 형성된 것.
  2. 나주평야를 만든 영산강 유역과 대조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