蟾津江 / Seomjin River
전라북도 진안군에서 발원하여 영남과 호남지방 사이를 지나 광양만을 통해 남해로 흐르는 국가하천이다. 길이는 225km로 남한에서 4번째로 긴 강이며,한반도에서는 7번째로 긴 강이다. 유역면적은 4,896km²
이름의 유래[편집 | 원본 편집]
원래 섬진강은 가람 사수강·사천·두치강 등으로 불렀는데, 고려 우왕 11년(1385)에 왜구가 섬진강 하구에 침입했을 때 수십만 마리의 두꺼비떼가 울부짖어 왜구가 광양쪽으로 피해갔다는 전설이 있어, 이때부터 강 이름에 두꺼비 '섬(蟾)', 나루 '진(津)'자를 붙여 섬진강이 되었다.[1]
발원지[편집 | 원본 편집]
섬진강의 발원지는 문헌에 따라 여러 가지가 있으며 대표적인 지역으로는 마이산, 지리산, 팔공산, 진안군 등 각양각색으로 표시되어 있다. 그러나 1983년 ‘이형석’의 답사와 국토지리정보원에 의해 섬진강의 최장 발원지는 전북 진안군 백운면 신암리 봉황산 상추막이골 데미샘으로 밝혀졌다.
지류[편집 | 원본 편집]
유역 지역[편집 | 원본 편집]
호남정맥과 백두대간으로 둘러싸인 지역이다. 전라도에서 호남정맥 내측은 전부 전부 섬진강 유역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여기서는 섬진강과 그 지류의 유역들을 전부 기재한다. 본류가 통과하는 지자체는 ★표시. 본류가 지자체 경계선으로만 지나는 지자체는 ☆표시.
여담[편집 | 원본 편집]
섬진강 인근의 문화[5][편집 | 원본 편집]
섬진강유역은 험준한 산악지대로 둘러싸여 있어 외부세계와의 왕래가 크지 않아 하나의 독자적인 문화권을 형성하였다. 또한 역사시대 이래로 동서의 접경지대에 위치하고 있어 동서세력의 영토 쟁탈의 대상이 됨으로써 수많은 전란의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신라의 삼국통일 이후에는 동서의 대립보다는 문화적 연결교량으로서의 역할이 중요하게 되었다.
역대 중앙권력의 주변지역이었기 때문에 지배층의 문화가 미친 영향이 적다. 그리하여 낙동강 유역에서 보이는 것과 같은 양반문화의 흔적이 적으며 도시의 발달이 더딘 반면 토착세력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크다. 따라서 섬진강유역의 경우에는 피지배계층 문화의 잔영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할 것이다.
섬진강 유역은 근대 산업화과정에서도 소외되어 낙후됨을 면치 못하고 있다.섬진강의 저주 애초에 도심지역이 섬진강 유역에 위치한 시는 남원시 하나밖에 없다! 이 지역은 여전히 농업에 대한 의존이 크며 자본주의의 상업화에 예속되어 있는 실정이다. 별다른 산업기반이 거의 없기 때문에 관광업에 목숨을 걸고 있기도 하다. 남원, 곡성, 보성 등 모두 매년 무수히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오는 지역이다. 이러하여 남한에서 4번째로 긴 강임에도 참 다행스럽게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에 선정되지 못하였으며, 대신 같은 호남지방의 영산강이 선정되었다. 하지만 4대강 사업에 선정되었다면 재첩은 몰살당했을 걸? 게다가 섬진강 유역인 호남정맥 내측과 호남정맥 외측의 도시 풍광과 규모가 심하게 차이난다. 일례로, 전라남도에서 섬진강 유역에 완전히 들어가는 곡성군은 인구 3만명대를 간신히 넘기고, 구례군은 3만 아래로 떨어졌다. 보성군은 군청 소재지인 보성읍이 호남정맥 내측, 최대 인구 밀집지인 벌교읍이 호남정맥 외측인데, 보성읍은 군청 소재지임에도 인구가 1만이 채 되지 않는다. 오히려 상권으로 보면 벌교읍이 더 번성해 있다.
큰 규모의 강 가운데에서는 가장 오염이 덜한 강으로 평가 받는다. 깨끗한 물에서만 산다는 재첩이 국내에서는 거의 섬진강에서 독점이다시피 하다. 그래서 섬진강 하류 유역에는 재첩국 등의 재첩 요리점들이 많은 편이다. 하동군이 재첩으로 특히 유명하다. 다만 요즘은 중국산 재첩이 많이 들어오기 때문에 가짜에 유의하자.그런데 중국 강물이 그렇게 깨끗함? 광양제철소가 수질에 좀 영향을 주는 듯하다. 지역에 가면 제철소가 들어온 건 좋은데 수질이 나빠졌다는 얘기를 종종 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