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진교

광진교
광진교.jpg
남단에서 촬영
다리 정보
위치 서울특별시 광진구 광장동 - 강동구 천호동
횡단 한강
길이 구교: 1,037m
신교: 1,056m
구교: 9.45m
신교: 20m
관할 서울특별시
착공일 구교: 1934년 8월 14일
신교: 1997년 3월 18일
설계 신교: 제일ENG
건설 신교: 삼환기업

개요[편집 | 원본 편집]

광진교한강을 건너는 다리로, 광진구강동구를 잇는다. 한강에 건설된 2번째 다리이다.

구교[편집 | 원본 편집]

광진교가 위치하고 있는 광나루는 옛부터 충주를 거쳐 동래로 또는 원주를 거쳐 동해안으로 빠지는 요충지에 있는 유명한 도선장이었고 1920년대에는 증기선으로 화물차나 버스같은 것도 도강해줄 수 있었다. 그러나 한번 홍수가 나면 수일간에 걸쳐 교통이 두절되어 그 불편함은 이루 헤아릴수 없었고 1930년대를 전후해서 교통량이 격증하여 하루에 도강하는 자동차, 우차, 손수레 등이 수백대에 달하게 되었으므로 도로교통의 원활한 수송을 기하고자 일제 강점기였던 1936년, 폭 9.4m, 왕복 2차선 규모의 트러스교로 개통되었다. 6.25 전쟁이 발발하자 북한군의 남하를 저지할 목적으로 1950년 6월 28일, 다리 중앙부가 폭파되기도 하였다. 1953년, 휴전 이후 미군에 의해 트러스 구조물이 제거되고 교각을 보강한 후 라멘 게르버교 형태로 변모하였다.

신교[편집 | 원본 편집]

1980년대 이후 노후화가 심각해진 광진교에 대한 안전성 문제가 지속적으로 거론되었다. 원래 강남지역의 천호동 일대 개발과 맞물려 광진교가 중추적인 역할을 해야했지만 도로의 폭도 좁고 안전성 문제로 인해 하류쪽에 천호대교가 새롭게 건설될 정도였다. 급기야 1984년 장마철에 광진교 일부가 변형되기에 이르렀다. 원래 이전부터 장마철을 겪으면서 지속적으로 다리에 변형이 발생하여 수차례 보수공사를 진행하였지만, 땜질식 처방에 불과했고 더 이상 다리가 버티기 어렵다는 판단을 내린 서울시는 1989년부터 다리 교각을 보강하고 상부는 원래대로 트러스 구조로 복원하려는 계획을 수립하였다. 이후 1994년부터 철거작업이 진행되어 교각 하부만 남기고 재시공을 준비하였다.

원 계획안대로 왕복 2차로 트러스교로 복구하려던 계획은 당시 폭증한 해당 지역의 주민들이 지속적으로 왕복 4차로급 다리로 개축해달라는 민원이 제기되었고, 서울시는 이를 받아들여 기존 계획을 폐기하고 1997년부터 교각부터 아예 새롭게 시공하는 것을 포함한 광진교 확장 재시공을 시작하였다. 이후 2003년 11월 4일 광진교의 본선과 남단 일부구간이 임시개통되어 차량 운행이 재개되었고, 2005년 6월 30일에 자전거 도로 접속부와 램프가 설치되면서 광진교 재건축이 완료되었다.

새롭게 개통한 광진교는 천호대교와 함께 강동지역의 교통량을 분산하고 강남과 강북의 왕래를 담당하게 되었다.

걷고싶은 다리 프로젝트[편집 | 원본 편집]

걷고싶은다리로 변모한 광진교

2009년, 당시 서울시장이었던 오세훈의 역점 프로젝트인 한강르네상스의 일환으로 광진교는 걷고싶은다리로 개축되었다. 주된 내용은 기존 왕복 4차로의 도로구간을 왕복 2차로로 줄이고, 기존 2차로 도로구간을 자전거 도로 및 친환경 녹지 보행도로 개조하는 것이었다. 또한 광진교의 중앙 교각 하단부에 전망대를 설치하여 광진교 주변의 아차산을 바라볼 수 있고, 전망대 바닥은 강화유리가 설치되어 한강을 상부에서 관찰할 수 있다.

주변 정보[편집 | 원본 편집]

  • 북단은 광진구 광장동으로 연결된다. 강변북로 구리 방향으로 출구가 있고, 다른 방향에서는 광진교 접속이 제한된다. 광진교 북단은 서울특별시 영역의 최동단에 해당한다.
  • 남단은 올림픽대로 양방향에서 진입은 가능하나, 진출은 막혀있다. 천호대교가 광진교의 역할을 대부분 넘겨받은 구조이기 때문이다.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