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철교

한강철교
Hangang railway bridge.jpg
북단에서 바라본 모습
다리 정보
위치 서울특별시 용산구 이촌동 -동작구 노량진동
횡단 한강
길이 A선 : 1,136m
B선 : 1,110m
C선 : 1,113m
D선 : 1,113m
A,B선 : 5.6m
C,D선 : 10m
관할 한국철도공사
국가철도공단
착공일 1897년 3월 29일
개통일 제1철교(A) : 1900년 7월 5일
제2철교(B) : 1912년 9월
제3철교(C) : 1944년 8월
제4철교(D) : 1994년 12월

서울특별시 용산구 이촌동동작구 노량진동을 이어주는 철도교이다. 대한민국 근현대사에 있어서 한강에 건설된 최초의 교량이라는 역사적 의미가 있다. 2024년 현재 용산역노량진역 사이를 이어주는 역할을 담당한다.

역사[편집 | 원본 편집]

1896년, 경인선 철도 부설권을 획득한 미국인 제임스 모스의 주도로 한강을 건너는 철도교의 건설이 1897년에 시작되었다. 착공 이후 자금난과 일본측의 압력에 위협을 느낀 모스는 철교 부지의 토목공사가 마무리되는 시점에서 부설권을 일본측에 넘겼고 1900년 7월 5일 제1철교(A선)가 완공되었다. 서울에서 인천까지 육로로 12시간, 배편으로는 8시간 정도 소요되었으나 경인선과 한강철교가 완공되면서 기차로 2시간 이내로 도착할 수 있게 되었다.

한강철교가 건설된 자리는 조선시대 까지만 하더라도 나룻터가 있던 자리였고, 철교가 완성된 이후에도 일본에 대한 반감으로 나룻배를 이용하여 한강을 건너던 조선인들이 상당히 많았다. 제임스 모스는 한강철교와 인도교를 나란히 건설할 계획이었으나, 부설권을 넘겨받은 일본은 인도교를 건설하지 않았다. 대신 1917년 한강철교 상류 지점에 인도교(지금의 한강대교)를 건설하였다.

1905년, 경부선이 개통하면서 열차 통행량이 늘어나게 되었고 기존의 단선 철교로는 늘어난 통행량을 감당하기 어려워 복선화의 필요성이 대두되어 제1철교 상류방향에 새로운 철교를 건설하기 시작하여 1912년 제2철교(B선)가 개통하였다. 1913년에는 거더 강재를 보강하는 작업을 진행하였다. 그러나 1925년 7월 발생한 기록적인 홍수(을축년 대홍수)로 제1철교와 제2철교의 구조물이 크게 파손되거나 유실되는 피해를 입었고, 이후 복구작업을 진행하면서 기존보다 교각과 제방의 높이를 약 1m정도 증설하여 재개통하였다. 1944년에는 제1철교의 하류 방향에 제3철교(C선)가 개통되어 한강을 건너는 열차의 통행량이 크게 증가되었다.

1950년 6월 25일, 6·25 전쟁이 발발하면서 한강철교도 전화에 휘말리게 되었다. 전쟁 발발 2일이 지난 6월 27일 저녁, 이승만을 비롯한 정부요인들은 몰래 한강철교를 건너 대전으로 피난하면서 미리 녹음한 라디오 방송을 통해 서울에 남아있던 시민들에게 국군이 인민군을 물리칠테니 안심하고 서울에 머물러 있어달라는 담화문이 흘러나왔다. 대통령의 라디오 담화 여파로 서울 시민들은 피난을 주저하게 되었는데, 다음날인 6월 28일 작전상의 이유로 예고도 없이 3개의 철교를 모두 폭파하였다. 따라서 영문도 모르고 서울에 남아있던 시민들과 한강 이북의 국군은 퇴로가 차단되어 큰 피해를 입게 되었다.

1951년,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국군과 UN군은 서울수복 작전을 실행하기에 앞서 폭파된 한강철교를 복구하는 작업을 진행하였다. 미군 공병대는 우선적으로 1951년 4월부터 제1철교(A선)에 대한 복구작업을 진행하여 6월 임시복구를 완료하였고, 제2철교(B선)는 1952년 2월에 임시복구를 완료하고 재개통하였다. 남아있던 제3철교(C선)은 1952년 10월 복구를 시작하여 1957년 7월 완전하게 복구하여 복선 철도교로 재개통하였다. C선 재개통 이후 기존에 임시로 활용하던 A선과 B선은 사용을 중지하게 되었다. 이후 시간이 흐른 1966년, 정부 주도로 한강복구사업을 진행하면서 경인선 복선화와 함께 방치되고 있던 A선과 B선에 대한 재시공을 결정하였다. A,B선의 복구작업은 1967년 8월 28일 착공하여 1969년 6월 28일 공사를 마무리하고 재개통하였다.

이후 1974년 개통한 수도권 전철 1호선의 수요와 운행거리가 늘어나게 됨에 따라 선로용량 확보 차원에서 A선과 C선 사이의 공간에 새로운 복선철교를 건설하기 시작하여 1994년 12월, D선이 개통하면서 현재의 모습으로 한강철교가 자리잡게 되었다.

특징[편집 | 원본 편집]

전형적인 트러스 공법으로 건설된 교량이다. 특이사항은 4개의 철교 모두 철제 트러스 구조물이 남단과 북단에 모두 설치된 것이 아니라 남단부터 한강의 2/3 너비만큼만 설치되었다는 점이다. 또한 트러스 구조물의 형태도 A,B선은 전형적인 박스형 구조물이라면, C선과 D선은 연결부위가 삼각뿔 형태로 솟아있다는 차이가 있다.

한강에 건설된 최초의 교량이라는 역사적 의미와 함께 대한민국의 근현대사의 상징과 같은 건축물임을 감안하여 2006년 6월 10일 대한민국 국가등록문화재 제250호로 지정되었다. 비교적 최근에 건설된 D선을 제외한 A,B,C선이 해당된다.

한강철교 배선[편집 | 원본 편집]

1994년 개통한 D선을 포함하여 한강철교는 모두 4개의 철도교가 인접하여 한강을 가로지르는 형태이다. 용산역 방향으로 상류방향에 건설된 A선과 B선은 단선 철교이며 수도권 전철 1호선의 급행열차가 건너는 선로이다. B선은 중간에 왼쪽으로 살짝 굽어있는 선형이므로 이 선로를 통과하는 열차는 속도제한이 걸리게 된다. 즉 급행열차가 B선의 커브로 인해 속도가 줄어들면서 직선으로 뻗어있는 D선을 통과하는 완행열차에게 추월당하는 상황도 종종 발생하게 되는 것. 경부선을 타고 올라온 열차가 경원선 이촌역 방향으로 삼각선을 타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면 분기시설이 갖춰진 영등포역을 통과하면서 B선에 연결된 바깥쪽 선로로 갈아타고 한강철교에 진입하게된다.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단선으로 건설된 A, B선은 급행전철이 통과하고, 복선 철교인 D선은 평소 통행량이 많은 완행전철이 사용하며 또다른 복선 철교인 C선 역시 통행량이 많은 KTX를 포함한 일반열차가 사용하는 구조이다.

주변 정보[편집 | 원본 편집]

여담[편집 | 원본 편집]

  • 1900년대에 건설된 교량답게 현대에 건설된 다른 한강의 교량들과 다르게 교각의 높이가 낮은 편에 속한다. 따라서 한강철교 아래를 통과하는 강변북로와 올림픽대로 모두 한강철교와 한강대교를 지나는 구간은 고도가 낮아진다. 특히 강변북로보다 저지대에 건설된 올림픽대로는 한강철교와 한강대교 사이를 이어주는 구간의 고도가 한강 수면과 닿을 정도로 급격히 낮아지는 구간이며, 여름철 태풍이나 장마로 인해 한강의 수위가 높아질 경우 강물에 침수되어 도로가 통제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