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루과이 페소 Peso Uruguayo |
|
---|---|
화폐 정보 | |
사용국 | 우루과이 |
ISO | UYU |
기호 | $ ($U[1]) |
지폐 | $20, $50, $100, $200, $500, $1000, $2000 |
동전 | $1, $2, $5, $10 |
중앙은행 | 우루과이 중앙은행 (Banco Central del Uruguay) |
인쇄처 | 4개국 외주 (영국, 프랑스, 독일, 칠레) |
환율 | 29원/$U (2020.04.30 기준) |
소개
우루과이에서 사용하는 페소계 통화이다. 브라질로부터 독립함에 따라 등장하였고, 근대화폐의 역사가 여타 서유럽 국가와 맞먹을 정도로 매우 긴 편에 속한다.
인플레이션이 심각하던 주변국가들과 마찬가지로, 20세기 말의 우루과이 페소화 가치도 대체로 불안정한 편이었지만, 2002년 금융위기의 여파로 2004년에 정권 자체가 통으로 교체되었고, 외부 시장경제 확대에 주안을 둔 정책을 통하여 차츰 성장세를 되찾고 차곡차곡 빚도 갚아나가, 현재는 남미에서 그럭저럭 괜찮게 사는 나라로 변모하였다.
환전 및 사용
한국에서 우루과이 페소는 취급하지 않는다. 따라서 현지에서 미국 달러를 매개로 환전하거나 ATM으로 인출하여 쓰는 것이 권장되는데, ATM 인출방식은 별도로 매기는 수수료가 다소 비싼 편이고, 환전소 이용은 환율이 다소 제각각인 것에 유의.
우루과이 물가 자체는 그다지 싼 편이라고 할 수 없다. 2010년대 중반 기준으로는 패스트푸드점이 $100~200 가량, 일반식당 물가는 기본이 $200부터, 의류는 대략 $1,000단위이다. 인근국가와 비교할 때, 브라질(리우와 같은 대도시 한정)에 비해선 저렴하고 아르헨티나와는 동급이고 파라과이에 비해선 비싼 수준이었는데, 그렇다고 현지인들이 무진장 잘 벌고 먹는 건 아닌지라(오히려 한국보다 임금이 낮다.), 생필품 정도만 주로 유통되는 좁은 시장환경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 2020년대에 들어서는 기어코 칠레까지 뛰어넘어 남미 최고 수준으로 올랐고, 2022년과 2023년에 걸친 가뭄 및 물부족 사태로 경제가 크게 망가지고 말았다.
여담으로 영수증에 쓰이는 기호들 대체로 $를 사용하기 때문에, 위와 같은 물가 사정이 겹쳐서, 영수증을 볼 때마다 뭔가 엄청난 쇼핑을 한 기분이 들 것이다(...)
중앙은행권 (Peso Moneda Nacional, 1935~)
2000년대 이후에 들어서는 남미의 스위스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로 부패가 덜한 나라라는 이미지를 품에 안아 안정적이고 가치가 상당한 통화가 되었지만, 그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그다지 순탄치는 않았다.
3기 페소, UYU
1993년 3월 1일에 1/1,000의 비율로 개혁되었다.
- 1페소, 2페소는 처음부터 동전으로 발행, 5페소와 10페소는 동전으로 완전히 교체가 완료되었다. 50페소짜리 주화도 있으나 가치가 다소 높은지라 수요는 많이 낮은 편.
- 초창기인 1994년에는 스테인리스 재질의 10, 20, 50센테시모 주화를 발행했는데 거의 쓰여지진 않았다고 한다. 오죽하면 화폐개혁 당시, 구권 1,000페소권 미만 권종은 1,000페소 단위(=신 1페소)로 맞춰서 가져오지 않으면 교환도 할 수 없도록 조치가 가해졌었다. 결국 2010년 7월부로 완전히 폐기처분했다. 그러나 여전히 일상생활에서는 센테시모까지 가격범위에 넣고 있으며, 만일 거스름돈에 보조단위가 생기면 쿨하게 반올림하여 계산한다.
2기 페소, UYN
군부는 피치못할 선택으로 1973년에 통화개혁을 실시했다. 값은 신(Nuevo) 1페소 = 구 1,000페소이며, ISO 4217코드는 UYN이었다. 거기에 환율도 미리 대폭 상승시켜 신 1.5페소/USD로 맞춰놓았다. 그리고 크롤링 페그제[2]를 통해 최대한 환리스크를 줄여보려 했으나 암시장이 커지기만 할 뿐, 전혀 효과를 보지 못했다. 매년 낮게는 25%, 많게는 50%에 가까운 인플레를 기록, 그 절정에 달한 80년대 초에는 100%를 넘는 인플레이션으로 날마다 회사가 무너지고 가게가 무너지고를 반복해 한 해에만 수천개의 업체가 .도산하는 사태가 발생했을 정도니... 묵념 1985년 민주화가 일어나 정권이 바뀌어서도 상황은 나아질 기미가 없었으며, 그 여파는 3기 페소까지 이어져 2002년 우루과이 금융위기[3]가 닥치고 나서야 겨우 종결을 맺게 되었다. 여담이나 환율이 1,000페소/USD를 넘은 해는 3기화 개혁 4년 전인 1989년이었고, 보조단위 센테시모(Centesimo)는 1993년을 끝으로 사실상 자취를 감추었다.
표
- 2만 페소 이상은 3기 페소와 동일한 디자인이다.
1기 페소
1935년에 도입되었다. 기존 태환권의 지위가 위태로웠던 당시 통화법 개정(El Departmento de Emisión)으로 중앙은행이 설립된 것에 기인한데, 말만 중앙은행이지, 그냥 돈 만드는 공장에 불과했다. 이 당시까지 써오던 금태환권은 무조건 중앙은행권으로 교환시킨 후 통용이 중지되었고, 규정 환율은 0.08페소/프랑(약 1.5페소/USD), 미국 달러 시장의 평가 환율은 약 2페소/USD였다. 하지만 이에 가까운 수치로 수정된 것은 1940년대에 들어서였다.
1960년 10월 7일 IMF에 가입하면서 고정환 제도를 실시했는데 그 값은 7.4페소/USD였다. 하지만 동시기 실제 시장에서 유통되는 환율은 거의 12 ~ 15페소까지 상승한 상태. 이후로도 매년 환율은 폭등하여 한 해가 지날때마다 17페소, 24페소, 70페소, 77페소, 199페소(1967년)로 전혀 예측불허한 양상을 보여주었다. 진정한 의미의 중앙은행(Banco Central del Uruguay)이 출시된 해가 1967년임을 감안하면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상황. 정작 중앙은행이 개통되고도 상황은 전혀 나아진 것이 없었다. 일단 고정환을 255페소(1970년)까지 끌어올리기는 했으나 시장환율은 벌써 1,300페소를 찍고 있었다.
몰론 이러한 배경에는 50년대부터 태평양을 장악한 미국과 친한 호주와 뉴질랜드등의 기세로 인기가 시들해져버린 목축업(1차 산업)이 유일이다 싶은 산업인지라 쇠퇴기를 맞이한 것이 첫째, 그리고 게릴라 내전과 쿠데타가 60~70년대에 연이어 터지면서 군부가 사실상 모든 걸 장악해버린 것이 둘째였다. 단순히 군이 장악한 것만으로 나락의 길에 빠지...지는 않겠지만 문제는 군부가 주요 정책으로 삼는 경찰국가 하에서는 기본적으로 국민들의 통제력이 향상되어 생산성이 감소하고 시장이 작아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상기해봐야 한다.
표 2개
구 페소
지역태환권 (Peso en Moneda Legal, 1875~)
환금성 강화 페소 (Peso Fuerte Doblon, 1856~)
초기 페소와 레알 (Peso - Real, 1828~)
각주
북아메리카 메소아메리카 |
|
---|---|
카리브해 | |
남아메리카 | |
외화사용국 | |
구(舊) 통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