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왕

용왕(龍王/竜王)은 하천호수, 바다를 다스리며 호풍환우를 관장하는 의 임금으로, 신격화된 용을 가리킨다. 자주 용신(龍神)이란 단어와 혼용된다.

설명[편집 | 원본 편집]

통상 수신(水神)인 용이 특정한 바다, 호수, , 혹은 그에 못미치는 작은 연못, 우물을 영지로 삼았을 경우 용왕이라 경칭한다고 여겨진다.

용이 전래되는 대한민국, 일본, 중국아시아권 설화에서 공통적으로 찾아볼 수 있으며 이를 숭배하는 문화도 있다. 수신의 성격을 갖고 있어 비를 청하는 기우제 때 용왕에게 제를 올리는 경우가 적지 않으며, 어촌에서 용왕에게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기원하는 건 드물지 않은 일이다.

전통적인 용왕 신앙은 인도에서 불교를 통해 전래된 나가와 결합해 당나라 시대 이후 도교에 적극적으로 흡수되어 사해용왕을 비롯한, 보다 구체적인 형태의 신앙이 된다. 도교 전설에 따르면 중국 각지의 강하호해(江河湖海) 개개마다 다스리는 용왕이 있고 이들은 옥황상제에게 과 그곳에 사는 물짐승을 다스리도록 명을 받았다고 한다. 중국 도처에는 이들에게 제를 올리는 용왕묘가 있으며, 한국에도 용왕을 받드는 무속 신앙은 뿌리 깊은 것에 속한다.

『용왕』이라는 명칭이 정확히 언제부터 유행했는지는 불명확하나, 가장 오래된 기록은 서기 751년 당나라 시대의 현종이 사해의 용왕에게 봉호를 내린 것이다. 서기 1110년에도 풍류천자라 불렸던 북송 시대의 휘종이 당시 민간에서 믿어지고 있는 다섯 용, 『천하오룡(天下五龍)』이라 불리던 용신들에게 왕작을 내렸다는 기록이 있다. 이에 따르면 휘종은 청룡신을 광인왕(廣仁王)으로, 적룡신을 가택왕(嘉澤王)으로, 황룡신을 부응왕(孚應王)으로, 백룡신을 의제왕(義濟王)으로, 흑룡신을 영택왕(靈澤王)으로 책봉하였다.[1]

불교의 용왕[편집 | 원본 편집]

불경에 나오는 용왕은 산스크리트어 나가라자(Nāga-Raja)의 한역명이다. 인도 신화의 뱀신 나가는 불교에 흡수되어 불법의 수호신이 되었는데, 이들은 중국에 들어오면서 용(龍)으로 한역되어 중국의 전승과 융합된다. 따라서 인도에서 나가의 제왕(諸王)들인 나가라자들도 마찬가지로 중국에 들어서면서 용왕(龍王)으로 한역된 것이다. 대표적인 불교의 용왕으로는 아난타 용왕과 팔대용왕을 꼽을 수 있다.

불교에서 용왕의 위치는 미묘한데, 그네들은 사람보다 강력하지만 엄연히 축생, 즉 사람보다 못한 존재로 그려지기 때문이다. 용왕의 수명은 자그마치 1중겁(8만 세)에 이를 뿐더러 힘은 세고 신통력까지 가지고 있으나, 사람처럼 깨달음을 얻기란 지난하다. 따라서 축생인 것이다.

용왕에 얽힌 설화[편집 | 원본 편집]

용왕이 나오는 설화는 한중일 삼국에 모두 전해지지만, 한국의 동해 용왕과 중국의 동해 용왕은 사실 다른 인물로 봐야 한다. 왜냐하면 한국에서 말하는 동해와 중국의 동해는 (당연하게도) 다른 바다이기 때문이다. 한반도의 설화에서 북해 용왕이 나오지 않는 이유도 한국의 세계관에는 북해가 존재하지 않아서 그렇다.

한국[편집 | 원본 편집]

석탈해
석탈해의 고향은 대대로 용왕이 다스리는 나라로, 석탈해는 그 나라의 왕자였다는 전설이 있다.
문무왕
신라의 문무왕은 사후 동해의 용왕이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왕건
고려의 건국왕 왕건은 서해 용왕의 외손자라는 전설이 있다.
처용
동해 용왕의 아들 중 하나라는 전설이 있다.

중국[편집 | 원본 편집]

당태종
비 내리는 업무를 소홀히 하여 참수당하게 된 경수하 용왕의 구명 탄원을 완수하지 못해 용왕의 원한을 샀다(《서유기》 참조).
사해용왕
용왕 중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알려진 존재. 동서남북의 사해(四海)를 다스리는 오씨 4형제를 가리킨다.

각종 작품 속의 용왕[편집 | 원본 편집]

  • 한국의 고전 소설 《구운몽》에서는 동정호의 용왕과 그 딸 백능파가 주요 인물로서 등장한다.
  • 중국의 고전 소설 《서유기》에서는 손오공으로 인해 사해의 용왕이 크게 낭패를 본다. 사해용왕들은 손오공에게 신진철(여의봉)을 비롯해 다수의 보물을 바치게 되었다. 이후 손오공이 삼장법사를 모시고 서천으로 가는 도중에도 수시로 소환되어 도움을 준다.

같이 보기[편집 | 원본 편집]

각주

  1. 龐進 저 《중국용문화》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