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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安, 顔)씨는 [[한국의 성씨]] 및 중국의 성씨다.
안(安)은 한국의 성씨이다.
 
안(安)씨는 2015년 대한민국 통계청 조사에서 685,639명으로 조사되어, 한국 성씨 인구 순위 17위이다. 본관은 순흥(順興)·죽산(竹山)·광주(廣州)·탐진(耽津)·안산(安山)·안동(安東)·수원(水原)·평안(平安)·순천(順川)·공산(公山)·태원(太原) 등 문헌에 109본이 전해지나, 이 중에서 시조와 유래를 알 수 있는 본관은 10본이다. 순흥·죽산·광주·탐진의 4본이 대본이며, 순흥 안씨가 전체 안씨 인구의 과반수를 상회한다.
 
 


== 한국 ==
== 한국 ==

2021년 11월 4일 (목) 21:41 판

안(安)은 한국의 성씨이다.

안(安)씨는 2015년 대한민국 통계청 조사에서 685,639명으로 조사되어, 한국 성씨 인구 순위 17위이다. 본관은 순흥(順興)·죽산(竹山)·광주(廣州)·탐진(耽津)·안산(安山)·안동(安東)·수원(水原)·평안(平安)·순천(順川)·공산(公山)·태원(太原) 등 문헌에 109본이 전해지나, 이 중에서 시조와 유래를 알 수 있는 본관은 10본이다. 순흥·죽산·광주·탐진의 4본이 대본이며, 순흥 안씨가 전체 안씨 인구의 과반수를 상회한다.


한국

(安)씨는 2000년 대한민국 통계청 조사에서 637,786명으로 조사되어, 한국 성씨 인구 순위 18위이다. 본관은 문헌에 109본이 전해지나, 현존하는 본관은 순흥(順興)·죽산(竹山)·광주(廣州)·탐진(耽津)·신죽산(新竹山)·경주(慶州)·안동(安東)·수원(水原)·평안(平安)·순천(順川)·공산(公山)·태원(太原) 등 35본이며, 이 중에서 시조와 유래를 알 수 있는 본관은 10본이다. 순흥·죽산·광주의 3본이 대본이며, 순흥 안씨가 전체 안씨 인구의 과반수를 상회한다.

  • 광주 안씨(廣州安氏) 시조 안방걸(安邦傑)은 고려 태조 때 광주(廣州)의 반란을 진압한 공으로 대장군에 오르며 광주군에 봉해졌다. 태조가 후삼국을 통일한 후 지방 유력자들에게 성씨를 갖게 하는 정책에 따라 안(安)씨 성을 갖게 되었다. 2000년 인구는 43,609명이다.
  • 순흥 안씨(順興安氏) 시조 안자미(安子美)는 고려 신종 때 흥위위보승별장(興威衛保勝別將)을 역임하고 신호위상호군(神虎衛 護軍)에 추봉되었다.[1] 안자미의 증손 안향(安珦)이 충렬왕 때 벽상삼한삼중대광(壁上三韓三重大匡)에 올랐다. 2000년 인구는 468,827명이다.
  • 구 죽산 안씨(竹山安氏)는 안준(安濬)과 안영의(安令儀)를 1세조로 하는 두 계통이 있다. 안영의(安令儀)의 증손 안전(安戩)이 고려 충렬왕 때 도지휘사(都指揮使)를 지냈다. 후손은 조선 중기의 학자인 안방준(安邦俊)이다.
  • 신 죽산 안씨(新竹山安氏)의 시조 안원형(安元衡)은 고려 공민왕 때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역임하면서 나라에 공을 세워 죽성군(竹城君)에 봉해졌다고 한다.
  • 탐진 안씨(耽津安氏) 시조 안우(安祐)는 고려 공민왕 때 중서평장정사(中書平章政事)·추충절의정란공신(推忠節義定亂功臣)에 올랐다.[2] 2000년 인구는 23,282명이다.
  • 공산 안씨(公山安氏) 시조 안익(安翊)은 고려 때 찬성사(贊成事)를 지냈다. 2000년 인구는 1,678명이다.
  • 안산 안씨(安山安氏) 시조 안자유(安子由)는 고려 충목왕 때 첨의평리(僉議評理)를 지냈다. 2000년 인구는 872명이다.
  • 제천 안씨(堤川安氏) 시조 안적재(安迪材)는 고려시대 평리(評理)를 지냈다. 2000년 인구는 252명이다.
  • 주천 안씨(酒泉安氏) 시조 안정방(安挺方)은 고려 때 호장(戶長)을 지냈다. 2000년 인구는 308명이다.
  • 태원 안씨(太原安氏) 시조 안만세(安萬世)는 원나라 전서를 지냈다. 노국공주가 고려에 올 때 같이 와서 정착하여 공민왕 때 예부상서(禮部尙書)를 지냈다. 2000년 인구는 1396명이다.

논란

  • 1999년에 편찬된 죽산안씨대동보에 따르면, 구 죽산 안씨의 시조로 알려지는 안방준(安邦俊)은 당나라 종실(宗室) 이국정(李國貞)의 아들인 이원(李瑗)의 장남 이지춘(李枝春)이며, 그는 864년(신라 경문왕 4년)에 이엽춘(李葉春), 이화춘(李花春) 형제와 왜구토벌에 큰 공을 세우자 안국지신(安國之臣)이라는 뜻에서 안씨(安氏) 성을 받았고, 이 때에 안방준으로 개명하고 죽산군(竹山君)에 봉해졌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신당서 70권의 당나라 종실 세계에는 이국정의 아들 중에 이원(李瑗)이라는 인물이 없다. 따라서 이국정 - 이원 - 이지춘으로 이어지는 1999년 죽산안씨대동보의 세계는 근거가 없다. 씨족원류 등의 옛 문헌에서 죽산 안씨의 맨 윗대로 언급되는 사람은 안준(安濬)과 안영의(安令儀)이다. 1919년 이후 모화사상의 영향으로 죽산 안씨 문중이 항간에 떠돌던 『농서이씨동래설(隴西李氏東來說)』이나 『죽산안씨 同源譜』라는 설(說)을 범례(凡例) 또는 별록(別錄)으로 기록하면서 “믿지 못한다 (尙難徵信)“라고 스스로 기록하였다.
  • 순흥 안씨 측에서는 시조 안자미(安子美)부터 안향(安珦)의 증손자인 안원숭(安元崇)까지 7세가 줄곤 독자(獨子)였기 때문에 신 죽산 안씨와 탐진 안씨가 시조라고 주장하는 안원형과 안원린은 순흥 안씨와의 계대를 짜맞추기 위한 가상 인물이라고 한다.[3]

중국

편안할 안 安

(安)씨 중국 성씨로 계통이 소수 민족 포함하여 10가지 정도의 계통이 있다. 중국에서는 우즈베키스탄/위구르족 지역을 안식국으로 불러 이 지역 사람들이 안씨가 되었지만 계별적으로 출신은 다르다. 당나라 무렵에 소그디아 안에는 안(安)국과 강(康)국이 있었다. 안씨에는 북위 선비족도 계통도 있으며, 선비 복성 가운데도 안지(安迟)라는 성이 있어서 줄였다고 한다.

  • 안세고(安世高)는 한나라 무렵에 파르티아/우즈베키스탄 왕족의 출신 승려로 후한에서 불교을 전파하였다.
  • 안현(安玄)은 안세고을 따라 온 승려 인데 안국 출신이라 안씨가 되었지만, 안세고와 같은 가계는 아니다.
  • 안지(安迟)는 북위 선비족 복성이다.
  • 안연언(安延偃)은 당나라 현종 때 소그디아 출신의 이란계 무장이다. 안록산의 양아버지이다.
  • '안록산" 당나라시절 안사의난을 일으킨 군사무장인 안록산(安祿山)의 친부는 소그디아 강(康)국 출신으로는 소그드인 강씨였다. 안연언의 양아들이 되어 안씨가 되었다. 어머니는 돌궐족이다.
  • 안중회(安重誨)는 후당의 총리였다. 후당 황제 이종후, 군권을 맡은 주홍소(朱弘昭)는 위구르족 출신이었다. 안중회 가문은 이종후와 주사적심과 가까운 인척 관계이다. 중국 기록에 의하면 설연타/셀렝가 출신의 위구르족 들이 당나라에 귀화하여 안씨가 되었다고 한다.
  • 중국 소수 민족 이족이 명나라 때 안씨로 창성하였다.
  • 청나라 때 몽골족다우르족이 안씨로 병경하였다.
  • 기타 당나라 때 선비족으로 전하는 해인(奚人)이라는 사람이 안씨로 변성했다고 한다. 또한 안씨에는 출신을 알 수 없는 외국 사람도 많다고 한다.
顔 낯 안

(顔)씨는 공자의 제자 였던 안회(顔回)에 연원을 둔다. 인물로는 후한원소 진영의 무장 안량, 당나라 현종 때 서예가 안진경(顔眞卿)이 있다. 안진경(顔眞卿)은 당나라 현종안녹산(安祿山)의 반란을 방어하였다. 이들은 당나라 리왕조와 매우 친화적인 가문이다.

안씨 성을 가진 인물

각주

  1. 김성회의 뿌리를 찾아서〈69〉안씨(安氏)·순흥안씨(順興安氏) 토속 성씨 순흥안씨, 고려 때 시조 증손 안향 이후 크게 번성, 세계일보, 2014년 3월 11일
  2.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672080 『高麗史』 卷 一百十三, 列傳 二十六]
  3. 안재홍 (2009년 7월 21일). 《순흥 안가는 없다》. 다락방. ISBN 978897858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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