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 (성씨)

()씨는 한국의 성씨이다. 2000년 대한민국 통계청 인구조사에서 257,178명으로 조사되어, 한국 성씨 인구 순위 30위이다. 본관은 의령, 영양, 고성, 남원 등 22본이 있다.

중국에는 람()이라는 성씨가 대한민국에서는 두음법칙으로 남으로 표기되기도 한다.

연원[편집 | 원본 편집]

영양 남씨 / 의령 남씨 / 고성 남씨[편집 | 원본 편집]

시조 남민(南敏)의 원래 이름은 김충(金忠)으로 755년 당나라 사신으로 일본을 다녀오는 도중에 태풍을 만나 표류하다가 신라 유린지(有隣地, 지금의 영덕군 축산면)에 도착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중국 여남(汝南) 출신이므로 신라 경덕왕남민(南敏)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고 한다. 김충의 후손인 홍보, 군보, 광보 세 명의 형제가 고려 충렬왕 때 공을 세워 남홍보(南洪甫)는 영양군, 남군보(南君甫)는 의령군, 남광보(南匡甫)는 칠성군에 봉해져서 각각 영양 남씨, 의령 남씨, 고성 남씨의 중시조가 되었으며 이들을 1세조로 대를 잇고 있다. 이 중 의령 남씨남재, 남은 등이 조선 개국에 공을 세움으로서 중앙정계의 중추에 진출하여 조선시대 상신(相臣) 6명과 대제학 6명을 배출하였다. 역사 인물로는 조선 세조 때의 무신 남이 장군과 조선 숙종영의정에 오른 남구만 등이 있다. 2000년 인구는 영양 남씨 69,155명, 의령 남씨 150,394명, 고성 남씨 9,982명이다. 영양, 의령, 고성을 제외한 다른 나머지 본관은 시조와 연원을 정확히 알 수가 없다.

남원 남씨[편집 | 원본 편집]

남원 남씨의 시조 나중룡(羅仲龍)은 고려 때 군기감(軍器監)을 역임했다고 전한다. 본래 성씨였던 나()에서 남()으로 변경한 사유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전하지 않고 있다. 2000년 인구는 2,174명이다.

병영 남씨[편집 | 원본 편집]

1663년 ~ 1666년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 출신의 헨드릭 하멜 일행 가운데 7명이 전라도에 정착하여 조선 여인과 결혼하였고 후손이 오늘날까지 전해지는데 남()씨 성을 사용하게 되었다고 한다. 당시 조선 효종 시대에 전라남도 강진군 병영면 일대에 하멜 일행과 병영 남씨 선조가 거주했을 것으로 추측되는 유적지가 남아있다. 이들은 초기에는 전남 강진군 병영면을 중심으로 세거하였으며 이후 1670년을 전후하여 전라남도 여수, 순천 지역에 잔류하였고 다른 일파는 60년이 지난 1730년경 전라도 나주로 집단 이주하였다. 일부에서는 가승기록을 가지고 있었으며 일제강점기 이후에 의령 남씨 대동보에 분산 입록되었다. 이들은 의령남씨 충간공파에 200여호 1,000명이 현존하며 사천백공파에 150여호 800명이 현존한다.[1][2]

인물[편집 | 원본 편집]

참고 자료[편집 | 원본 편집]

  • 뿌리찾기운동본부 편저 (1998년 4월 25일). 《한글판 우리집의 족보》. 서울: 민중서원, 부록 11쪽쪽

각주

Wikipedia-ico-48px.png
이 문서는 한국어 위키백과남 (성씨) 문서 14901332판에서 분기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