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성씨)

(姜, 康, 強, 剛)씨는 한국의 성씨이다. 일부 성은 중국에도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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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강()

중국[편집 | 원본 편집]

한국[편집 | 원본 편집]

강(姜)씨는 2000년 대한민국 통계청 인구조사에서 1,044,386명으로 조사되어, 한국 성씨 인구 순위 6위이다. 본관은 문헌상으로 114본이 전하나, 현존하는 본관은 진주, 전주, 강릉, 평양, 나주 등 32본이며, 이 중에서 시조가 기록되어 있는 본관은 진주(晋州)·금천(衿川)·안동·배천(白川)·해미(海美)·동복(同福)·광주(光州) 7본이다. 대본은 진주 강씨이다.

강(姜)씨의 시조는 임유관대첩의 고구려 병마도원수 강이식(姜以式) 장군이다. 597년(고구려 영양왕 8년)에 수 문제가 침략할 야욕으로 무례한 국서를 보내오자 영양왕은 군신을 모아 놓고 이에 회답할 것을 논의할 때 강이식은 이와 같은 무례한 글은 붓으로 답할 것이 아니라 칼로 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영양왕이 이에 수긍하고 싸울 것을 명하자 군사 정병 5만을 이끌고 임유관(臨楡關)에서 수나라 군사 30만을 단번에 격퇴하고, 603년에 수 양제가 군사 100만으로 다시 침략할 때 중신회의에서 요동성 일부를 떼어주고 강화할 것을 논의했으나 이에 반대하고 싸울 것을 주장하여 을지문덕과 함께 요동성 살수 등의 싸움에서 수군을 대파하는 등 많은 공을 세웠다. 현재 만주 심양현 원수림 역앞에 강이식 장군의 묘비가 있다.

강이식의 후손 중에 신라 헌강왕 때 판내이령 강진(姜縉)이 진양후에 봉해지며 본관을 진주(晋州)로 하였고, 강이식의 후손 중 강여청(姜餘淸)은 본관을 금천(衿川)으로 하였다. 강여청의 5대손인 강궁진(姜弓珍)은 왕건이 고려를 건국할 때 금천(衿川)의 호족으로서 고려 통일에 협력한 공으로 삼한벽상공신(三韓壁上功臣)에 올랐다. 그의 아들은 고려 강감찬(姜邯贊) 장군이다.

진주 강씨(晋州 姜氏) 파는 박사공파, 인헌공파, 은열공파, 관서공파, 소감공파가 있다.

강씨의 본관[편집 | 원본 편집]

참조: http://www.surname.info/gang/kang1.html

참고로 모든 본관이 진주 강씨/진양 강씨에서 파생된 것으로 추정된다.

  • 강릉 강씨(江陵)
  • 경주 강씨(慶州)
  • 곡성 강씨(谷城)
  • 광주 강씨(光州)
  • 금천 강씨(衿川)
  • 김해 강씨(金海)
  • 나주 강씨(羅州)
  • 남양 강씨(南陽)
  • 대전 강씨(大田)
  • 동래 강씨(東萊)
  • 밀양 강씨(密陽)
  • 배천 강씨(白川)
  • 보주 강씨(寶州)
  • 보천 강씨
  • 부산 강씨(釜山)
  • 불갑 강씨(佛甲)
  • 성주 강씨(星州)
  • 수산 강씨
  • 수원 강씨(水原)
  • 순흥 강씨(順興)
  • 시흥 강씨(始興)
  • 안동 강씨(安東)
  • 여천 강씨(麗川)
  • 연일 강씨(延日)
  • 원주 강씨(原州)
  • 인동 강씨(仁東)
  • 전주 강씨(全州)
  • 제주 강씨(濟州)
  • 진주 강씨(晋州)/진양 강씨(晉陽) - 사실상 많은 강씨들의 시조격 본관이자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본관.
  • 충주 강씨(忠州)
  • 평양 강씨(平壤)
  • 해미 강씨(海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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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할 강()

강(康)씨는 2000년 대한민국 통계청 인구조사에서 109,925명으로 조사되어, 한국 성씨 인구 순위 53위이다. 본관은 신천, 곡산, 재령, 충원, 제주, 진주등 10여 본이 있는 것으로 문헌에 전하나 현존하는 본관은 신천, 곡산, 재령 3본이 대종을 이룬다. 평안남도, 평안북도 일대에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 신천 강씨(信川 康氏)의 비조 강후(康候)는 중국 주나라 무왕의 아우 강숙(康叔)의 둘째 아들로서 기원전 198년에 고조선 평양에 들어와 왕실을 교화한 공으로 기자로부터 강씨 성을 받았다고 한다. 강후(康侯)의 67세손 성골장군(聖骨將軍) 강호경(康虎景)을 시조로 하고 있다. 중시조 강지연(康之淵)은 강호경의 14세손으로 고려 고종 때 호성공신에 오르고 신성부원군에 봉해졌다. 신천 강씨는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25명을 배출하였다. 2000년 인구는 13,909가구 44,259명이다.
    • 곡산 강씨(谷山 康氏)의 시조 강서(康庶)는 신천 강씨의 중시조인 강지연(康之淵)의 6세손으로 상산백(象山伯)에 봉해졌다. 2000년 인구는 4,877가구 15,626명이다.
    • 재령 강씨(載寧 康氏)의 시조 강득룡(康得龍)은 신천강씨의 중시조인 강지연(康之淵)의 8세손으로 조선 태조의 계비(繼妃) 신덕왕후(神德王后)는 그의 친누이동생이다. 강득룡은 고려 공민왕 때 삼사우사(三司右使)를 지내다가,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개국되자 불사이군(不事二君)을 결심, 관악산에 들어가 암자에 살면서 매일같이 산에 올라 개성을 향해 통곡하였는데, 이곳이 연주대(戀主臺)와 연주암으로 전해지고 있다. 태조는 그를 안릉부원군(安陵府院君)에 봉하여 안정공(安靖公)이란 시호를 내렸고 그의 후손들이 본관을 재령으로 하였다. 2000년 인구는 969가구, 3,053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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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할 강() 강(強)씨는 강씨(姜氏)에서 분성된 성씨로 천수(天水) 진()의 대부 강일(强釰)의 후손으로 전한다. 송나라 휘종(徽宗) 때 사람으로, 강일의 후손인 강준명(强浚明)에 연원을 두고 있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강(強)씨는 2000년 대한민국 통계청 인구조사에서 531가구, 1,620명으로 조사되어 한국 성씨 인구 순위 163위이다. 본관은 충주(忠州), 괴산(槐山) 2본이 있으나 유래는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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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셀 강()

중국[편집 | 원본 편집]

한국[편집 | 원본 편집]

강(剛)는 2000년 대한민국 통계청 인구조사에서 169가구, 546명으로 조사되었다. 본관은 곡산 강씨(谷山 剛氏) 단본이다. 1930년 국세조사에서 충청북도 괴산군 장연면 방곡리에 강응룡(剛應龍) 1가구가 처음 나타났다. 그에 따르면 1908년(융희 2) 민적부(民籍簿)에 기재할 때 강(强)을 강(剛)으로 잘못 기록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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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씨 성을 가진 인물[편집 | 원본 편집]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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