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성씨)

(尹)씨는 한국의 성씨이다. 윤(尹)씨는 2000년 대한민국 통계청 인구조사에서 948,600명으로 조사되어, 한국 성씨 인구 순위 8위이다. 본관은 문헌에 182본이 전하지만, 현존하는 본관은 파평(坡平), 해남(海南), 칠원(漆原), 남원(南原), 해평(海平), 무송(茂松), 함안(咸安), 경주, 예천(醴泉) 등 44본이다. 인구는 파평 윤씨가 75.2%를 차지한다.

파평 윤씨[편집 | 원본 편집]

파평 윤씨(坡平尹氏)의 시조 윤신달(尹莘達)은 고려 태조를 도와 후삼국을 통일한 공으로 개국통합삼한벽상익찬공신(開國統合三韓壁上翊贊功臣) 2등에 책록되었고 관직은 삼중대광태사(三重大匡太師)에 이르렀으며 소양(昭襄)이라는 시호(諡號)를 받았다. 파평 윤씨는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346명을 배출하였으며, 전체 합격자의 2.28%를 차지하였다. 이는 전주 이씨, 안동 권씨에 이어 세 번째로 높은 합격자 수이다. 왕실 국혼(國婚) 가문으로 왕비 5명(성종비 폐비윤씨 포함)으로 조선조에 왕비를 가장 많이 배출한 가문이다. 2000년 인구는 713,947명이다. 역사 속 인물로는 윤관, 윤증, 윤동주, 윤봉길 등이 있다. 윤석열, 윤호중, 윤서인, 윤시윤, 윤홍근[1], 윤두준 등도 파평 윤씨이다.

칠원 윤씨[편집 | 원본 편집]

칠원 윤씨(漆原尹氏)의 시조 윤시영(尹始榮)은 신라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 때 태자태사(太子太師)를 지냈다고 한다. 그의 아들 윤황(尹璜)은 판태사국사(判太史局事)를 지냈는데, 이후의 수대는 세계(世系)가 실전(失傳)되어 알 수 없다. 따라서 고려에서 칠원현의 호장보윤(戶長甫尹)을 지낸 윤거부(尹鉅富)를 1세조로 하여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윤거부의 17세손 윤길보는 고려조에 삼중대광 첨의찬성사를 역임하였으며 귀성군에 봉해졌다. 인물로는 윤탁연, 윤지술등이 있다. 2000년 인구는 54,253명이다.

해남 윤씨[편집 | 원본 편집]

해남 윤씨의 시조 윤존부(尹存富)는 고려 문종(재위 1046~1083년) 때의 인물이다. 윤존부(尹存富)부터 6세손까지의 기록이 없어 고려 공민왕 때 사온서직장(司醞署直長) 지낸 8세손 영동정공부군(令同正公府君) 윤광전(尹光琠)을 중시조로 한다. 인물로는 윤휴, 윤의중, 윤선도, 윤두서 등이 있다. 2000년 인구는 55,627명이다.

해평 윤씨[편집 | 원본 편집]

해평 윤씨의 시조 윤군정(尹君正)은 고려 고종 때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를 지냈다. 윤군정의 손자인 윤석(尹碩)은 고려 충숙왕 때 해평부원군(海平府院君)에 봉해졌다. 인물로는 윤두수, 윤방, 윤치호, 윤덕영, 윤웅렬, 윤보선 등이 있다. 2000년 인구는 26,341명이다.

무송 윤씨[편집 | 원본 편집]

무송 윤씨의 시조 윤양비(尹良庇)는 고려 예종 때 보승랑장으로 무장현 호장을 지냈다. 그의 선조는 중국 당나라 사람 윤경(尹鏡)으로 중국 오계시대의 난을 피하여 무송(전라북도 고창군)에 정착했다고 한다.[2] 인물로는 윤소종, 윤회, 윤자운 등이 있다. 2000년 인구는 13,384명이다.

경주 윤씨[편집 | 원본 편집]

경주 윤씨 시조 윤통(尹統)은 조선 태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호조참판을 지냈다. 2000년 인구는 543가구, 1,684명이다.

예천 윤씨[편집 | 원본 편집]

예천 윤씨의 시조는 고려에서 추밀부사 윤충(尹忠)이다. 그 후 후손들이 경북 예천에 세거하여 예천을 본관을 삼았다. 2000년 인구는 1,362명이다.

  • 상계 : 시조 윤충(尹忠) - 2세 윤신단(尹臣端) - 3세 윤선(尹善) -4세 윤상(尹祥) (호 별동(別洞))

평산 윤씨[편집 | 원본 편집]

평산 윤씨의 시조 윤번(尹璠)은 고려 조에 판대부감사(判大府監事)를 지냈다. 2000년 인구는 421명이다.

영천 윤씨[편집 | 원본 편집]

영천 윤씨(永川尹氏)의 시조는 윤절생(尹切生)으로 고려조에 호장(戶長)을 지냈다. 그의 증손 승관이 고울(高鬱:영천의 옛 이름)백에 봉해진후 영천을 본관으로 삼았다. 2000년 인구는 841명이다.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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