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안중근(安重根, 1879년 9월 2일 ~ 1910년 3월 26일)은 일제 강점기 한국의 독립운동가다. 아명이자 응칠(應七)이며, 세례명은 토마스[1]다.

1 생애[편집]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났다.

원래는 교육 산업 등 민족의 계몽 사업을 중심으로 활동하였으나, 일본 제국의 침략이 사실상 국권을 뒤흔드는 수준으로 확대되자, 러시아블라디보스토크로 망명한 후 그곳에서 의군을 조직하였다. 곧이어 그는 무력단체의 참모중장으로서 활발히 활동하였으나 전과는 안습했다(...)

이후 단지회를 조직하여 죽음을 결심하고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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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안중근 의사는 자신이 쓸 총알 끝에 십자가를 그어서 일의 성사를 기원하였다.

2 여담[편집]

2.1 동학 농민 운동 탄압(?)[편집]

어린 시절 총을 들고 직접 동학 농민 운동 진압에 나선 적이 있어서 논란이 되고 있다.

2.2 안창호와의 인연[편집]

도산 안창호가 언젠가 광장에서 연단에 올라가 연설을 한 적이 있는데 내용이 대놓고 일제 헌병들을 도발하는 패기쩌는 연설이었고(...) 빡친 일제 헌병들은 허공에 총을 쏘고 개판 5분 전 상황이 되었다. 안창호는 무슨 패기인지 눈 하나 깜짝 안하고 연단에 부동자세로 서있었으나 안중근이 손을 잡아끌고 구해줬다고 한다.

2.3 먼치킨스러운 총솜씨[편집]

그는 사격의 명수였다. 놀랍게도, 그는 화승총을 쏘아 약 10미터나 되는 곳에 놓인 동전을 맞추었다고 한다. 안중근의 아버지 안태훈과 친분이 있었던 김구는 《백범일지》에서 안중근을 '안씨 집안의 총 잘쏘는 청년'으로 묘사하였다.

안중근 의사가 실제로 썼던 총

의거 당시 사용된 총번은 [262336]이다. 아크로모형과 토이스타에서 각각 비작동식 모델건과 에어코킹을 발매할 때 이를 재현하기 위해 의거 당시 사용한 총번을 적용하였다.

한 조선인의 집을 방문했다가 FN M1900을 보고 탐을 낸 적이 있는데 200보 밖에 있는 장작 패는 옹이에 꽃힌 도끼를 맞추라고 하자 한방에 정확하게 명중시켰고, 이 조선인은 안중근 의사에게 자신이 애지중지하던 FN M1900을 주기로 결심했다는 카더라가 있다.

안중근이 사용한 권총은 당시 일본에서 증거물로 압수했는데 이후에 이 권총은 행방불명 되었다. 관동 대지진 당시에 분실되었다는 얘기가 있지만 이건 일설 중의 하나인지라 정확히 어떻게 해서 이 권총이 사라지게 되었는지는 알길이 없다. 때문에 안중근 기념관엔 실물 M1900이 한 자루도 없으며 최근이 되어서야 모형이 제작되어 전시되었다. 실물 M1900을 구해서 한국의 박물관에 기증하려는 시도가 있었는데 자세한 내용은 《잃어버린 총을 찾아서》의 다큐멘터리 영상과 유튜버 건들건들 영상을 참조할 것.

2.4 트레이드 마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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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할 때 입었던 롱 코트, 카스케트, 콧수염과 FN M1900은 안중근 의사를 상징하는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다.

2.5 진정한 아시아주의자[편집]

말로만 범아시아주의를 외친 일제와는 다르게 진짜로 진정한 의미의 아시아주의를 제창한 인물이다. 실제로 중요한 아시아주의자로 기록된다.

2.6 독서광[편집]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는다.
— 안중근

무시무시한 책벌레로 뤼순 감옥에 수감되고 나서도 책만 읽었으며 사형 선고가 언도되고 나서 재판장이 마지막 유언을 묻자

5분만 시간을 주십시오. 다 읽지 못한 책이 있습니다.

라고 하고 진짜로 5분의 시간을 주자 묵묵히 책을 끝까지 읽고 사형장에 향했다고....

이러한 책벌레 성향 때문에 그가 수감되어 있던 형무소의 보초 헌병들조차 그를 스승으로 삼고 따랐다고 한다.

3 각주

  1. 도마라고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