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창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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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878년 11월 9일 남포 |
사망 |
1938년 3월 10일 (0세) 서울 종로 |
국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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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 구세학당 |
종교 | 기독교 |
신체 | 175cm |
배우자 | 이혜련 |
가족 | 장남 안필립, 장녀 안수산 |
안창호(安昌浩, 1878년 11월 9일~1938년 3월 10일)는 일제 강점기 한국의 독립운동가이다. 호는 도산(島山).
생애[편집 | 원본 편집]
한국 역사상 최고의 신사 중 한명이며 당대 최고의 교육인이다. 평안도 강서군 초리면 칠리 봉상도현 출신으로, 현재는 이 부분이 남포특별시로 들어가 남포특별시 천리마구역으로 바뀌었다.
신간회에서 계몽, 외교 위주 독립운동파를 이끌었다. 그러나 이 성향 때문에 무장투쟁파였던 신채호와 갈등을 겪기도 한다.
일화[편집 | 원본 편집]
꿈에서도 거질말을 하지 말며 한번 한 약속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지키라는 그의 성향 때문에 안타까운 일을 겪기도 했다.
동지 이유필의 딸에게 생일 때 선물을 주겠다고 약속한 적이 있는데 하필 이때가 이봉창과 윤봉길 의사의 의거가 있었던 때라(...) 일제가 풀발기해서 길거리의 조선인은 닥치고 오키 너 체포 하는 상황이었는데 동지들이 모두 가는 것을 반대했지만 한번 한 약속은 죽어도 지켜야 한다며 이유필의 집에 도착하던 중, 결국 감옥에 수감되고 만다.그리고 친일파들의 돈으로 보석으로 풀려난다. 안습.
어록[편집 | 원본 편집]
“ 농담으로라도 거짓을 말아라. 꿈에라도 성실(誠實)을 잃었거든 통회(痛悔)하라. “ — 안창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