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성씨)

(朱, 周)씨는 중국 및 한국의 성씨이다.

붉을 주 朱[편집 | 원본 편집]

중국[편집 | 원본 편집]

(朱, 병음 : Zhu, Chu)씨는 중국 성씨 인구 14위이고 백가성(百家姓) 17위이다. 주(朱)씨는 처음에 전욱 고양씨에서 계출된 성씨이다. 기록에 따르면 전욱 고양씨진나라 영성과 초나라 성의 공동 조상으로 되어 있는데, 초나라 미성은 후대에 갈려져 나간 것이기 때문에 실제 전욱 고양씨는 영성과 관련이 깊다. 은나라 후반기에 가장 강력한 제후였던 가문들은 거의 영성 계열이며 대부분 그의 후손으로 되어 있다. 처음에 주씨는 순임금이 희안안을 조나라에 분봉하여 (曹)씨가 되었으나 조협(曹俠)이 주나라 무왕(武王)에 의해 주(邾)에 분봉된 이래 주나라를 다스렸다. 이후 전국시대에 이르러 국운이 쇠하여 나라가 초나라에 합방되자 종실(宗室)들이 나뉘며 서로를 분별하기 위해 도읍에서 우부방을 버리고 성을 주씨(朱氏)로 하였다고 한다.

역사 인물로는 한나라 태위 대사농 주준, 삼국시대 오나라 오군태수 주치(朱治), 오나라 무장 주환(朱桓), 후량 태조 주황(朱晃), 송나라의 성리학자 주자(朱子), 명나라를 세운 태조 주원장(朱元璋) 등이 있다.

한국[편집 | 원본 편집]

주(朱)씨는 2000년 대한민국 통계청 인구 조사에서 176,232명으로 조사되어, 한국 성씨 인구 순위 43위이다. 본관은 문헌에 능성, 나주, 압해, 전주 등 107본까지 전한다. 실록지리지에는 전라도 나주, 압해, 능성 지역의 토성으로 기록되어 있다.

나주 주씨 / 압해 주씨[편집 | 원본 편집]

나주 주씨(羅州 朱氏)의 시조 주중소(朱仲紹)는 999년(고려 목종 2년) 이부시랑(吏部侍郞), 봉명(奉命)을 역임하였다. 주중소의 아들인 주덕명(朱德明, ? ~ 1031년[1])은 고려 현종 9년(1018년) 공부상서(工部尙書)를 지내고, 1021년(현종 12년) 상서 좌복야(尙書左僕射)에 올랐다.[2] 주덕명의 증손 주현진(朱玄進)이 압해(押海: 현 전라남도 신안군 압해읍)로 분봉되어 압해 주씨(押海 朱氏)로 분파되었다.

신안 주씨[편집 | 원본 편집]

신안 주씨(新安 朱氏) 또는 능성 주씨(綾城 朱氏)의 동국시조 남송 한림원태학사(翰林院太學士) 청계공(淸溪公) 주잠(朱潛)은 1224년(고려 고종 11년) 남송에서 고려로 망명하여 정착하였다. 능성 구씨(綾城 具氏) 시조 구존유(具存裕)는 사위이다.

대한제국 광무 6년(1902년) 능성 주씨와 그 분적종들의 합의를 보아 의정부찬정(議政府贊政) 주석면(朱錫冕)이 대표로 상소하여 능성파, 웅성파, 전주파를 비롯하여 45본 이상 분적되었던 분파 및 분적종들을 고종(高宗)의 윤허를 받아 시조 송나라 유학자 주자의 본관을 좇아 신안(新安)으로 바로잡았다.

인물[편집 | 원본 편집]

두루 주 周[편집 | 원본 편집]

(周, 병음 : Zhou)씨는 주공단 후손으로 주(周)나라 희성이라고 하지만, 주나라 무렵에는 없었고 실제로는 한나라 무렵에 등장하였다. 다른 계통으로는 당나라 현종 이융기(李隆基)의 후손들이 주(周)씨로 바뀌었다고 한다. 북위 효문제 원씨에서 개성한 주씨가 있다고 한다. 그리고 호족 성씨로 북주조 하노(贺鲁), 북위조 진노(晋乃) 가문이 주(周)씨로 변경하였다.

주(周, Zhou) 성은 중국 국가 통계국의 2010년 제6차 전국인구조사(第六次全國人口普查)에서 약 2,540만 명으로 조사되었다. 중국 성씨 인구 순위 9위이며, 중국 인구의 2.12%를 차지한다. 특히 양쯔 강 유역에 많다.

한국[편집 | 원본 편집]

(周)씨는 2000년 대한민국 통계청 인구조사에서 38,778명으로 조사되어, 한국 성씨 인구 71위이다. 본관은 상주(尙州)·초계(草溪)·철원(鐵原)·함안(咸安)·장흥(長興)·삼계(森溪)·안의(安義) 등 16본이 있다.

  • 상주 주씨(尙州 周氏)의 시조 주이(周頤)는 당(唐)나라 사람으로 786년에 신라에 왔다가 상주에 정착하였고 한다.
  • 초계 주씨(草溪 周氏)의 시조 주황(周璜)은 907년(신라 효공왕 11년) 오계의 난(五李之亂)을 피하여 신라에 들어와 초계(현재의 경상남도 합천군 초계면)에 정착하였다고 한다. 후손 흥인(興寅)이 신라 말기에 아한(阿干) 벼슬에 올랐다. 초계 주씨 측에서는 상주·함안·장흥·삼계·풍기(豊基)의 6파로 갈리게 되었다고 하나 이들 종친들의 주장은 다르다.

주(周)씨는 조선시대에 11명의 문과 급제자를 배출했다. 주세붕은 1522년(조선 중종 17년) 문과에 급제하여 명종 때 호조참판을 거쳐 중추부동지사에 이르렀으며, 백운동서원을 세워 서원의 시초를 이뤘다.

주시경(周時經) 선생은 한글을 개량하고 보급하여 현대 한국어 체계를 정립하였다.

현대 인물로는 제22대 국방부 장관, 제42대 내무부 장관을 지낸 주영복(周永福), 기획재정부 제1차관에 재직 중인 주형환이 있다.

인물[편집 | 원본 편집]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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