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 (성씨)

(池, 智)씨는 중국한국의 성씨이다.

못 지 池[편집 | 원본 편집]

지(池)씨는 중국 서하(西河)에서 나서 거주지의 이름으로 성(姓)을 삼았다. 지자화(池子華)는 진(秦)나라 승상(丞相)이었고, 지몽리(池夢鯉)는 송(宋)나라 함순(咸淳)년간에 특별과거에 장원급제(壯元及第)하였으며, 한()나라 지원(池瑗)은 중모령(中牟令)으로 현인(賢人)으로 이름이 낫고, 송(宋)나라 지광정(池光庭)은 진사(進士)로 문학(文學)으로써 이름을 떨쳤는 바 모두 장계(長溪) 사람이다.

(池)씨는 2000년 대한민국 통계청 인구조사에서 140,824명으로 조사되어, 한국 성씨 인구 49위이다. 지(池)씨는 조선씨족통보에는 본관을 89본까지 기록하고 있으나 현존하는 관향은 충주(忠州), 청주, 경주, 단양, 광주(光州), 울진(청송), 홍농 등 7본이다.

충주 지씨의 시조 지경(池鏡, 903년 ~ 1003년)은 영산 신씨 시조 신경(辛鏡), 현풍 곽씨 시조 곽경(郭鏡) 등과 함께 팔경(八鏡;8학사)의 한 사람으로 고려에 왔다고도 하는데, 동래(東來)하였다는 연대가 문헌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나타나 있다.

  • 충주 지씨(忠州池氏) 시조 지경(池鏡, 903년 ~ 1003년)은 중국 홍농 사람으로, 송(宋)나라 태학사(太學士)로서 봉사관(奉使官)이 되어 960년(고려 광종 11년) 고려에 사신으로 왔다가 정착하여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 태보평장사(太保平章事)에 이르렀다. 지경의 묘는 평안남도 중화군 당악산 화산정에 있다. 지경의 6세손인 지종해(池宗海)가 고려 때 문하시랑평장사로 충주백에 봉해졌다. 고려시대 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에 오른 지용기, 지용수, 재상을 지낸 지윤(池奫) 등 평장사 36명을 배출하면서 명문 거족이 되었다. 지윤의 사위는 조선 태조의 장남 진안대군이며, 지윤의 딸 성빈 지씨조선 정종(定宗)의 후궁으로 덕천군(德泉君)과 도평군(桃平君)의 어머니, 숙의 지씨의평군(義平君), 선성군(宣城君), 임성군(任城君)의 어머니다. 충원부원군(忠原府院君) 지용기의 아들 지유용(池有容)은 음서로 관직에 진출하여 판경성군사(判鏡城郡事), 판의주목사(判義州牧使)를 역임하였다. 지용수의 외손자는 세종 때 집현전 대제학을 지낸 최만리이다. 충의공 지용도(龍圖)의 후손 지정(池淨)은 우의정 정분(鄭苯)의 조카로서 충청도병마절도사에 올랐으나, 계유정난수양대군 일파에 의해 교살되고, 사후 이조판서에 증직되었다. 충주 지씨는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10명, 무과 급제자 83명, 생원·진사시 36명 등 과거 급제자 149명을 배출하였다.[1] 인물로는 판교(判校) 지달하, 강령현감 지성해(池成海), 영해부사(寧海府使) 지덕해, 증 병조참판 지여해, 서흥부사 지계최, 학자 지광한, 형조참의(刑曹參議)·대한의원의육부 학감·국문연구소 위원 지석영, 독립운동가 지청천 장군 등이 있다. 2000년 인구는 118,211명이다.
    • 경주 지씨(慶州池氏)는 고려 때의 문성공 지원부(池元夫)를 시조로 하고, 고려 말기의 무신 지용도(池龍圖)를 중시조로 한다. 지용도는 1364년(공민왕 12) 최유(崔濡)의 반란군이 의주(義州)를 포위하였을 때 동생 지용수(龍壽)와 함께 이를 물리쳐 경주부원군(慶州府院君)에 봉해졌다. 2000년 인구는 5,223명이다.
    • 청주 지씨(淸州池氏)는 고려 고종 때 시중을 지낸 지순을 시조로 하는 계통과, 대장군을 지낸 지윤심을 시조로 하는 계통, 평장사를 지낸 지도관을 시조로 하는 계통으로 나뉘어 세계를 잇고 있다.
    • 단양 지씨(丹陽池氏)는 지경의 후손으로 안찰사를 역임한 지득심(池得深)를 시조로 한다.
    • 울진 지씨(蔚珍池氏) 시조 지서룡(池瑞龍)은 조선 중종 때 호조참판(戶曹參判)을 지냈고, 지서룡의 후손 지정익(池廷翊)이 울진에 입향하였다. 지대원(池大元)과 지무원(池武元)을 각각 중시조로 하는 2계통으로 나뉜다. 2000년 인구는 714명이다.
  • 광주 지씨(光州池氏) 시조 지훤(池萱)은 후백제견훤의 사위로, 무주(武州)의 성주(城主)였다.[2] 중시조는 고려 명종신종 때 경상도 안찰사를 지낸 지자심(池資深)이다.[3][4] 후손 지윤보(池允輔)는 대장군으로서 왕을 호종하여 1282년(충렬왕 8년) 2등공신이 되고,[5]첨의부사(知僉議府事)에 올랐으며,[6] 무주부원군(武州府院君)에 봉해졌다. 2000년 인구는 939명이다.
  • 홍농 지씨(弘農池氏)는 중국 명나라 홍농에서 조선 인조 때 귀화한 지명천 장군의 셋째 아들 지시염을 중시조로 한다.

슬기 지 智[편집 | 원본 편집]

(智)씨는 2000년 대한민국 통계청 인구 조사에서 6,748명으로 조사되어, 한국 성씨 인구 118위이다. 본관은 봉주(鳳州) 단본이다.

  • 봉산 지씨(鳳山 智氏) 시조 지채문(智蔡文)은 고려 현종 때의 명장으로 1026년 상장군 우복야(右僕射)에 오르고, 1031년(덕종 즉위년) 1등공신으로 추록되었다.[7] 지채문의 아들 지맹(智猛, 988년 ~ ?)은 1055년(문종 9) 좌복야(左僕射)로서 수사공(守司空)을 겸임하였고, 1057년(문종 11) 중서성(中書省)에서 70세이므로 퇴임을 청하였으나 왕으로부터 계속 출사할 것을 부탁받았다. 지채문의 증손 지녹연(智祿延, ? ~ 1126년)은 고려 인종 때 추밀원동지사 등을 역임하였다. 조선조에서는 정묘호란(丁卯胡亂) 때의 의병장인 지득남(得男)이 첨절제사(僉節制使)를 지냈다.[8] 봉주 지씨(鳳州 智氏)라고도 한다.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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