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슈피겔만

2014년 9월 30일의 아트 슈피겔만

아트 슈피겔만(Art Spiegelman, 1948년 2월 15일~ )은 미국유대인 전위예술 만화가다. 전위예술, 그래픽 잡지인 RAW의 공동창립자이며 잡지 뉴요커편집인을 역임했다.

생애[편집 | 원본 편집]

폴란드계 유대인이자 아우슈비츠 생존자인 블라덱, 아냐 슈피겔만 부부 사이에서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위로는 형 리슈가 있지만 아트가 태어나기 전인 어린 나이에 수용소에 끌려가기 직전 절망한 이모 손에 독살당해 사망했다. 그렇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슈피겔만 부부의 고명아들이나 다름없다.

1948년 폴란드를 떠나 스톡홀름에서 미국 이민을 위해 대기하던 시절에 태어나서 자랐다. 산도가 좁아서 팔을 부러뜨려서 태어났다. 들어올릴 때마다 한쪽 팔이 치켜 올려져서 하일 히틀러라고 불렀다고.

부모님이 겪은 홀로코스트의 피해를 간접적으로 물려받은, 어떻게 보면 홀로코스트의 희생자이다. 이를테면 성인이 될 때까지 모든 부모님들은 잠잘 때 비명을 지르는 줄 알았다고 한다. 또한 욕실에 들어가면 샤워기에서 물 대신 가스가 나오는 상상을 하는가 하면, 미친 생각인줄 알지만 유치원생 때는 유치원에 게슈타포가 들이닥쳐서 부모님 두 분 중 한 분을 끌고 가겠다고 하면 누구를 고를까 진지하게 고민했다고 한다.(...)

파벨: 그렇다고 해도 사내아이들은 다 아버지를 존경하기 마련이죠.
슈피겔만: 옳은 말씀인데요, 전 그런 기억이 별로 없군요. 주로 기억나는 거라곤 아버지와 말다툼하고... 또 난 어떤것에도 아버지보다 못하단 소릴 들었죠.
2권 중

(참고로 파벨은 슈피겔만의 정신과 주치의로 체코유대인이며 그 또한 홀로코스트의 생존자이다.)

결국 아트 슈피겔만은 사춘기를 지나면서 강압적인 아버지 때문에 엇나가기 시작한다. 훗날 회고하길 아버지는 자기가 태어날 때 이미 40대였고 반평생을 폴란드유대인으로 살았다. 반면 슈피겔만은 미국인이었다. 그는 이것을 '세대차'가 아니라 '세대간의 괴리'라고 표현하였다. 이유는 위와 같은 가치관의 확고한 차이와 완고한 아버지. 거기다가 그 아버지는 살아남았다는 것 자체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렸고 이것을 만회하기 위해 항상 자신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것, 즉 '옳았다'는 것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안전해지자 이것을 아들인 아트에게 떠넘기려 한 것이며, 이는 그의 다른 단편에서도 드러난다. 참고로 이 단편에선 아트 슈피겔만이 아버지로서 아들에게 물려주는 히틀러 얼굴을 달고 있는, 점점 커지는 괴물로 묘사했다.

고로 여태까지 아버지 블라덱 슈피겔만은 자신이 살아남은 것은 운도 개입했지만, 확고하게 현실을 직시하며 자신의 수완과 방법만으로 확실하게 생존했다는 것을 근거로 자신은 무조건 옳다고 여기며 살아온 것이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아들은 너무 나약하다고 생각한 것. 즉 아들은 아우슈비츠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일로 징징거리는 걸로 보였다는 거다. 아들아 노오력 만으로 생지옥도 뚫고나올수 있다! 노오오오력해라. 노오오오오력이 부족하다 이기야! 그런데 그일이 실제로 일어났었다는게 흠좀무 거기다가 당시 다른 미국인들처럼 흑인을 깜둥이라며 차별하고 유대인의 가치관(이를테면 선민의식)이 맞지 않아 정면으로 충돌하게 되었다.

결국 아트 슈피겔만은 아버지와 극한 대립각과 어머니의 과보호를 못견뎌하며 정신병원을 드나들다가 히피의 본진인 샌프란시스코로 훌쩍 떠났다. 결국 슈피겔만은 다니던 대학마저 그만두고 히피가 될 정도로 엇나간다. 더불어 부모님이 마음에 들어하지 않던 여자와 교재하는 것 또한 덤. 부모님은 유대인 양가집 규수와 사귈 것을 바랐는데, 아트의 증언으로는 유대인 여자들은 (죽은 자신의) 친척들이 생각나서 거부감이 들었다고 한다.(...)

부모님은 아트가 변호사나 의사같은 전문직의 안정적인 직업을 가질 것을 바랐지만 아트는 어렸을 때부터 만화가가 되고 싶어했다. 그래서 부모님이 내놓은 타협점이란것이 치과의사가 되란 것이었다. 낮엔 진료하고 밤에 그림을 그리라고 했다고(...) 근데 뱀발로 이토 준지치기공사 출신의 만화가다. 음?

제가 바라는 건...무죄방면입니다.아니...아니에요... 제가 원하는 건 제 어머니 라구요. 으앙!
— 쥐 2권중

그러다가 아트가 20살 무렵인 1968년에 어머니인 아냐 슈피겔만이 유서 한 장, 유언 한 마디 남기지 않고 자살한다. 이 당시 정황은 쥐 1권에 실린 지옥혹성의 죄수라는 단편에 자세하게 나온다. 친척 어른의 친구분이 그렇게 어머니 속 썩이더니 이제서 우는거냐며 혼내기도 한 것을 보면 어머니의 죽음에 아트도 일정부분 책임이 있다. 어머니와의 마지막은 '아티 날 아직 사랑하니?'라는 어머니의 질문에 어머니의 사랑이 싫게 느껴져서 '당연하죠 엄마'라고 '돌아누운 채로' 냉담하게 대답한 것이었다.

이후 프랑스인 여성 프랑소와즈와 결혼한다. 슬하에 딸 나디아를 1987년에 보았다. 다쉬엘까지 포함해서 2명의 자녀가 있으며 뉴욕에 쭈욱 거주했다.

1982년 노년에 심장이 나빠지고 당뇨치매까지 앓던 아버지 블라덱이 결국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1986년 쥐 1권이 출판되고 평단의 거센 호응을 받았다. 1991년 후속작인 쥐 2권이 출판되었다. 그의 작품은 뉴욕타임즈, 플레이보이, 빌리지 보이즈 등 많은 정기 간행물에 실려 발표됐고, 그의 그림들은 미국과 해외의 박물관화랑에 전시회에서 선을 보였다.

아트 슈피겔만은 대표작 쥐로 구겐하임상, 전국도서비형가 협회상, 퓰리처상(만화로는 최초)을 수상했다.

작품 목록[편집 | 원본 편집]

여담[편집 | 원본 편집]

》를 보면 아내 프랑소와즈와 함께 흑인을 향해 차마 입에 못담을 인종차별 드립을 치는 아버지 블라덱에게 "나치히틀러(!) 같은 양반이구려"라며 신랄하게 깐다. 근데 이거로 옛날부터 종종 싸웠다니 어머니 아냐의 심장이 타 들어간 것도 이해가 된다(...) 참고로 아트 부부의 아버지이자 시아버지인 블라덱 슈피겔만은 상술했듯 친가와 처가가 그 나치히틀러에게 몽땅 몰살당한 분이다(...)

아버지의 후처이자 아트 슈피겔만의 새어머니인 말라는 블라덱이 진짜로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왔다가 역시나 다시 블라덱에게 시달리게 됐다. "아냐는 성인이었나봐 저러니까 자살할만하지..."라며 아트 앞에서 당당하게 고인드립을 날린다.(...) 그리고 아트도 저 말 듣고 별 말 안한다.(...)

그의 트레이드 마크는 조끼오너캐도 반드시 입고 나온다. 연필을 잘 잃어버리는 습관 때문에 주머니가 많다는 이유로 고집한다고 한다. 노년에도 종종 입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뉴요커 편집장을 역임했을 때 뉴요커지 표지를 맡기도 했다. 또한 미국 역대 최고의 잡지 표지로 그의 작품이 뽑히기도 했다. 가장 유명한 것이 9·11 테러 직후 뉴요커 표지. 이후 9·11 을 뉴욕시민으로서 회고하는 만화의 표지로 다시 사용되었다.

2007년잭 블랙, 엘런 무어와 함께 심슨가족에 특별 출현했다.

오너캐는 당연히 다. 하지만 인간으로 그려질 때도 있다.

히피 생활도 한 적이 있었으니만큼 정치성향은 진보적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의 대외정책이나 동족인 이스라엘의 행태를 비판하기도 한다. 당장 《》에서도 유대인선민의식인종차별적인 모습을 아버지의 모습을 빌어 비판하기도 했다. 그래서 여느 다른 입바른 소리하는 유대인들 처럼 이스라엘 극우들의 미움을 받고 있다.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