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테러

지금까지 세계 사상 최악의 테러

2001년 9월 11일 미국에서 테러범들에 의해 하이재킹당한 여객기들이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과 펜타곤에 충돌한 사건.

이 테러로 사망자는 2996명, 부상자는 6291명 이상으로 집계되었었으며 테러의 배후는 오사마 빈 라덴이 지휘한 알카에다였다. 10년 후 빈 라덴은 결국 미군에게 사살당한다.

1 상세[편집]

당일 오전 총 4대의 여객기가 잠입한 테러범들에 의해 공중 납치되었다. 이 중 여객기 2대는 뉴욕의 세계무역센터로, 1대는 버지니아 주 앨링턴의 펜타곤으로 갔다.

오전 8시 46분, 세계무역센터 북쪽 빌딩(1번 타워)에 아메리칸 항공 11편이 돌격해 들이받았다. 93~99층 부분이 피격당했다. 첫번째 충돌 당시만 하더라도 사람들은 비행기 조종사의 실수가 아닐까 생각했었지만...

오전 9시 3분, 세계무역센터 남쪽 빌딩(2번 타워)에 유나이티드 항공 175편이 충돌하면서 사람들은 미국에 대한 테러라는 걸 알아차렸다. 2번 타워는 77~85층 부분이 피격당했다.

한편, 오전 9시 37분 46초에 아메리칸 항공 77편이 미국 국방부 중심이라 할 수 있는 펜타곤 건물을 들이받아 건물 일부가 무너졌다.

비행기가 세계무역센터 빌딩과 충돌해서 생긴 화재에 건물을 지탱하는 철근들이 녹아내려 오전 9시 59분에 세계무역센터 남쪽 빌딩이 무너지고 오전 10시 28분 세계무역센터 북쪽 빌딩도 붕괴되었다. 그 큰 건물들이 차례대로 무너지면서 상대적으로 작은 주변의 건물들인 세계금융센터, 버라이즌 빌딩에도 피해가 갔다.

마지막 여객기 유나이티드 항공 93편은 오전 10시 3분 펜실베이니아 주 인근에 추락했다. 이 여객기는 백악관이나 미국의 국회의사당이 목표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승객들이 자신들이 탄 비행기가 납치된 걸 알고 반란을 시도했으며 비행기를 조종하던 테러범은 자살 추락을 했다. 승객들이 맞서지 않았다면 미국은 더 피해를 입었을 게 분명하여 오늘날 이 승객들은 미국 내에서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다 . 영화 <플라이트 93>이 이 민항기의 테러 사건을 다루었다.

테러 직후 미국의 전체 영공이 폐쇄되었었다. 당시 미국 내의 국내선들은 모두 강제로 착륙을 해야했으며 미국으로 오는 국제선들은 전부 회항시켰다.

2 테러 배후[편집]

배후는 당시 알 카에다 수장인 오사마 빈 라덴으로 미국의 대 아랍 정책에 불만을 품고 있었다. 이 테러를 직접 기획한 사람은 알 카에다의 조직원인 칼리드 셰이크 모하메드이다.

2.1 테러범[편집]

2.1.1 아메리칸 항공 11편[1]의 납치범[편집]

  • Mohamed Atta(모하메드 아타) - 이 팀의 지휘자
  • Abdulaziz al-Omari(압둘아지즈 알 오마리)
  • Wail al-Shehri(와일 알 셰흐리) - 왈리드 알 셰리의 형.
  • Waleed al-Shehri(왈리드 알 셰리) - 와일 알 셰리의 동생.
  • Satam al-Suqami(사탐 알 수콰미)

2.1.2 유나이티드 항공 175편[2]의 납치범[편집]

  • Marwan al-Shehhi(마르완 알 셰히) - 이 팀의 지휘자. 모하메드 아타의 사촌.
  • Fayez Banihamed(파예즈 바니하메드)
  • Mohand al-Shehri(모한드 알 셰리)
  • Ahmed al-Ghamdi(아메드 알 감디) - 함자 알 감디의 형.
  • Hamza al- Ghamdi(함자 알 감디) - 아메드 알 감디의 동생.

2.1.3 아메리칸 항공 77편[3]의 납치범[편집]

  • Hani Hanjour(하니 한주르) - 이 팀의 지휘자
  • Khalid al-Mihdhar(칼리드 알 미드하르)
  • Majed Moqed(마제드 모퀘드)
  • Nawaf al-Hazmi(나와프 알 하즈미) - 살렘 알 하즈미의 형.
  • Salem al-Hazmi(살렘 알 하즈미)] - 나와프 알 하즈미의 동생.

2.1.4 테러에 실패한 유나이티드 항공 93편의 납치범[편집]

  • Ziad Samir Jarrah(지아드 자라) - 이 팀의 지휘자
  • Ahmed al-Nami(아메드 알 나미)
  • Saeed al Ghamdi(사이드 알 감디)
  • Ahmed al-Haznawi(아메드 알 하즈나위)

3 영향[편집]

미국 내 항공 보안 체계가 매우 엄격해졌다. 전 세계 민항기들의 조종실 문은 잠그는 게 원칙이 되었다. 하지만 이규정으로 인해 저먼윙스 9525편 추락사고라는 비극을 만드는 원인이 되었다. 외부의 침입은 차단되지만 조종사 한명이 불손한 마음을 품고 문을 잠가버릴 경우 대응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미국 입장에서 9·11 테러는, 진주만 공습 이래 최초로 본토가 피해를 입은 사례이다. 비록 미국은 전쟁을 체험한 나라이고 패전의 경험도 있기는 했지만,[4] 미국 독립전쟁 이래 본토가 피해를 입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진주만 공습을 제외하고) 이 테러는 미국인들에게 공포심을 주기 충분했으며, 반전 여론이 위축되면서 조지 부시 대통령이 대외 강경책을 펼칠 명분을 제공했다.

미국의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대외 정책을 전환했다.[5] 9·11테러가 있었던 해 10월에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해, 당시 아프가니스탄에 집권 중이던 탈레반 정권을 11월에 무너뜨렸다. 탈레반이 오사마 빈 라덴을 숨겨주고 있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2003년엔 이라크 전쟁을 일으키고 당시의 이라크 대통령 후세인을 체포했다. 그러나 (산악지대로 퇴각한)탈레반의 저항은 물론이고 미군 주둔에 반대하는 세력들의 게릴라식 공격이 이어지면서, 전쟁은 10년 이상 지속되었다. 미국은 계속하여 막대한 재정을 쏟아부어 군을 지원해야했다. 그리고 미국이 전쟁의 수렁에 빠져 국력을 손실하는 동안, 러시아와 중국이 득세하기 시작했다. 전투에서는 이겼으나 전쟁에서는 패배한 셈이다.

2011년 9월 11일, 테러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테러 10주년에 맞춰 세계무역센터가 무너진 자리에 9.11 메모리얼이 개장했다.

4 각주

  1. 세계무역센터 북쪽 빌딩 피격
  2. 세계무역센터 남쪽 빌딩 피격
  3. 펜타곤 피격
  4. 제 2차 세계대전은 물론이고 한국전쟁(6·25), 베트남 전쟁 등에도 참전한 나라이다. 미국은 베트남 전쟁에서 남베트남을 지원했으나, 국내의 여론이 악화되는 등 상황이 여의치 않아 군을 철수했다. 결과적으로 이 전쟁은 북베트남 군의 승리로 끝났다.
  5. Patriot act 법도 이 때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