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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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
Nationalsozialistische Deutsche Arbeiter Partei
NSDAP-Logo.svg
정당 정보
약칭 NSDAP
당수 마르틴 보어만
이념 나치즘
설립 안톤 드렉슬러
1920년 2월 24일
해산 1945년 10월 10일
표어 하나의 민족, 하나의 국가, 하나의 총통

나치당[편집 | 원본 편집]

민족 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의 멸칭.

그리고 네오나치를 제외한 구미권 최고의 욕설이다.

창당[편집 | 원본 편집]

1919년 뮌헨에서 베를린에서 철도 자물쇠공을 한 엔지니어 출신인 안톤 드렉슬러가 창당한 독일 노동자당이 전신이다. 돌격대 때문에 잉여잉여한 이미지와 달리, 꽤나 머리가 돌아가는 불만에 가득찬 뿌띠 부르주아지들(언론인, 의대생 출신의 극작가, 경제학자 등등)이 술집에 모여서 정치를 안주로 삼아 노가리 까는 친목모임 정도에 불과했다. 정게 아재/할배들의 조상들 되시겠다.

히틀러의 등장[편집 | 원본 편집]

이때 혜성처럼 나타난 인물이 있었으니 바로 아돌프 히틀러 상병이었다. 그는 뮌헨 군대에 전후에도 철십자 훈장을 받은덕에 남아 있을수 있었는데 1차 대전 때부터 정치 이야기를 좋아하는 병사였기 때문에 이 듣보잡 정당을 사찰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즉 나치당은 히틀러가 처음부터 함께 한 당도 만든 당도 아니었다.

히틀러는 이들이 떠드는 소리를 들어보곤 거 웃기는 놈들이구만 이라면서 처음엔 비웃었다고 한다. 하지만 듣다 보니 '햐~ 내가 해도 쟤들보단 말 더 잘하겠다.' 싶은 마음에 연설을 하면서 주목받아 열렬한 환대를 받으며 나치당에 가입한다.

맥주홀 폭동[편집 | 원본 편집]

Beer-Hall Putsch. Bürgerbräu-Putsch.
1923년 히틀러의 귀기어린 연설에 전후 불평불만 분자들이 구름떼처럼 모여들어 당세를 확장한 나치는 히틀러가 존경했다는 베니토 무솔리니를 따라 맥주홀 폭동을 일으켰으나 시원하게 망했고 당은 개박살 나고 히틀러는 붙잡혀 들어갔다. 하지만 히틀러의 명연설에 감동받은 판사가 형을 무지 깎아줘서 반년정도 살고 나왔다. 그 기간동안 쓴 책이 나의 투쟁. 어찌 됐든 히틀러 없는동안 나치당은 유명무실해졌고, 히틀러는 폭력혁명보다는 합법적인 선거로 집권하는 방향으로 노선을 수정한다.

대공황과 나치당의 약진[편집 | 원본 편집]

찌그러져 있던 나치당에도 봄날이 도래한다. 경제 대공황이 1929년부터 시작되어 독일까지 불어닥친것. 덕분에 실업자들은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이들은 사회 불만세력으로 화하여 나치의 몸집을 불리는데 이바지한다. 돌격대만 대원수가 40만이었으니.

가뜩이나 인기없던 사민주의자들의 바이마르 공화국은 삽시간에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고, 1930년대 선거는 공화국 부정세력인 나치당과 공산당이 대약진 하는 시기였다. 결국 총선에서 원내 1당까지 잡게 되는 나치당은 히틀러의 공갈과 협박, 협상과 야합을 통해서 총리를 잡게 되고, 때마침 웬 정신병자가 국회의사당에 불을 질러 공산당까지 해산시키며 수권법을 통과시킨다.

그리고 바이마르 공화국은 멸망했고 힌덴부르크 대통령이 서거하자 총리겸 대통령인 총통이 되어 제3 제국을 열게 되니 이것이 나치 독일이다.

몰락[편집 | 원본 편집]

하지만 히틀러가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고, 나치 독일이 패망하면서 몰락했다.

재건음모[편집 | 원본 편집]

전후 50년대 무렵 서독에서 재건음모가 한차례 있었지만 공산당과 함께 정당해산 심판으로 날아가버렸다.

현대의 후예들[편집 | 원본 편집]

네오나치 스킨헤드들과 그들의 독일 민족민주당이나 황금새벽당 등 유럽의 여러 군소 듣보잡 정당형태로 남아있다. 경제가 어려워지고 난민사태가 더해지자 고개를 서서히 치켜들고 있다.

서양의 욕설 나치[편집 | 원본 편집]

그냥 네오나치이거나 다른 방면에서 그에 못지 않는 꼴통짓을 일삼는 사람들을 까기위해 쓰이며 대표적으로 문법나치가 있다.

관련 문서[편집 | 원본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