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사도등대

당사도등대
당사도등대.jpg
당사도등대의 전경
등대 정보
번호 2596 / M4282
위치 전라남도 완도군 소안면 당사리
34°05′52.5″N 126°36′07.3″E
등고 109m
높이 21m
관할기관 목포지방해양수산청
점등일자 1909년 1월
광파표지 20초 1섬백광 / 23해리 / 명호: 173~109º
음파표지 Horn (No.4370) 48초 1회(취명 8초, 정명 40초)
전파표지 DGPS국

개요[편집 | 원본 편집]

당사도 인근 해역은 남쪽은 서해에서 남해로 진입하는 선박들의 항로가 되며, 동쪽 해역은 제주도와 완도, 고흥 등지를 연결하는 연안여객선들의 주요 항로로 이용되고 있으며, 서쪽 해역은 제주도와 목포, 진도등을 연결하는 항로로 사용되고 있는 지점이다. 이 섬의 북쪽부터 수많은 섬들과 암초들이 펼쳐지고 남해안 다도해 특유의 협수로들이 시작되는 지점이기 때문에 해당 해역을 지나는 선박들 입장에서는 이 등대를 지나는 순간부터 긴장하라는 의미가 되는 항로표지로 이 등대가 이용되고 있다.

이 등대의 불빛은 20초마다 23해리 거리까지 비춰지기 때문에 추자도쪽에서도 이 등대의 불빛을 볼 수 있을 정도이다. 만일 제주항에서 완도항으로 가는 여객선을 타고 가는데 이 등대가 배의 좌현방향에서 육안으로 보인다면 해당 위치는 전체 항로의 3분의 2쯤에 해당하는 지점이므로 한시간 내외 거리로 도착할 수 있음을 예상할 수 있게 된다.

이 등대는 남해상 항로에서 상당히 중요한 지점에 위치하고 있어서 해방 이전인 1920년대에 이미 한반도의 등대들 중에서 최초로 전파표지인 무선방향탐지기가 설치되었다. 또한 당시 섬과 목포간의 무선전신을 설치하여 주변을 항해하는 선박들에게 무선전신의 형태로 기상상황 통보를 하기도 하였던 등대이다. 현재는 남해안의 DGPS국이 설치되어서 남해상을 지나는 선박들의 GPS표지를 하는 역할도 겸하고 있다.

등대 연혁[편집 | 원본 편집]

  • 1909년 1월 : 대한제국 세관공사부 등대국 자지도등대 최초점등
  • 1945년12월 : 미군정청 운수부 해사국
  • 1955년12월 : 목포지방해무청
  • 1962. 8. 6. 기계고장으로 무신호 운휴[1]
  • 1962. 10. 25. 무신호 원상복구[2]
  • 1977년12월 : 목포지방해운항만청 자지도등대
  • 1988년 8월 : 목포지방해운항만청(항로표지관리소로 명칭변경)
  • 1997년 5월 : 목포지방해양수산청 자지도항로표지관리소
  • 1999년 1월 : 목포지방해양수산청 당사도항로표지관리소
  • 2008년 3월 : 목포지방해양항만청 당사도항로표지관리소

여담[편집 | 원본 편집]

  • 이 등대의 등탑 정상부에서는 날씨가 맑으면 제주도까지 조망이 가능하다. 수평선 바로 위쪽으로 어렴풋하게나마 한라산 형상이 보인다.
  • 구 등탑은 옆에 별도로 보존하고 있으며 등대문화재 제21호로 지정되어있다.

자지도등대 습격사건[편집 | 원본 편집]

이 등대가 서 있는 당사도 동편에 있는 섬은 소안도라고 하는 작은 섬으로 일제시대 당시 이 섬의 주민 6000명 중 불령선인으로 낙인찍힌 사람만 800명이었고, 이 작은 섬에서 89명의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항일의 섬이다.[3] 아무튼 등대가 불을 밝힌지 2개월도 채 안된 1909년 2월 24일 동학의병에 참여했던 옆의 섬 소안도 주민 7명이 등대를 습격하여 등대 기기를 파괴하고 일본인 등대수를 처단했었다. 일명 "자지도 등대 습격사건"이라고 불리는 사건. 이 사건이 일어나자 일본은 헌병 1개소대 30명을 소안도에 파견하기도 하였었다.

  • 일본측에서는 자지도 등대 습격사건으로 4명의 일본인이 살해되자 이 당시 죽은 사람들을 기념하기 위해 1910년에 조난기념비(遭難記念碑)를 세웠다. 이 비석은 해방 직후 파손[4]되었는데 남아있는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등대간수가 1909년 적의 흉탄에 쓰러졌기에 이를 후세에 알리고자 1910년 이 비를 세운다.[5]
  • 1997년에 자지도 등대 습격사건을 기념하기 위해 소안도 항일운동 기념사업회에서 항일전적비를 일본이 세운 조난기념비 옆에다가 세우게 된다. 그리고 파손되어 방치되어있던 일본의 비석을 항일운동의 중요증거자료로 보존하기 위하여 다시 해당 비석을 항일전적비 옆에다가 세워놓게 된다. 일본측에서 세운 비석의 내용으로 해당 사건이 있었다는 것을 교차검증하고, 아픈 역사의 흔적이라 하더라도 잊지 말자는 의도.
  • 소안도에 있는 소안항일운동기념관에서는 이 등대 습격사건을 "왜인등대습격사건"으로 기록하고 있다. 원래 이름을 그대로 적기가 참.... 물론 공지사항에 있는 재현행사 시나리오의 공식 제목은 "자지도등대 습격 동학의병 의거 재현 행사 시나리오"이다.[6]

각주

  1. 교통부 공고 제362호
  2. 교통부 공고 제414호
  3. 이 중 20명은 독립유공자로 선정되어있다
  4. 오른쪽 귀퉁이 일부가 떨어져 나갔다. 나머지 부분은 그대로 다시 세워둠
  5. 일본측의 입장에서 쓴 내용임을 고려해야 한다.
  6. 소안항일운동기념관 홈페이지 공지사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