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등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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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포구(永登浦區)는 서울특별시의 남서부에 위치한 구이다. 서울특별시의 한강 이남 지역 중 가장 먼저 서울로 편입된 곳으로, 서울 서남부 생활권의 중추지역이기도 하다.

역사[편집 | 원본 편집]

현재의 금천구, 구로구 동부, 관악구, 동작구 일부, 광명시 지역과 마찬가지로 삼국시대에 잉벌노현이었으며, 통일신라 시대에 곡양현으로 바뀌었으며, 고려시기에는 금주가 되었다. 조선 초기에는 금천현으로 이름이 고쳐졌으며 여의도 일대가 한성부로 편입되었다. 잠시 동안 인근의 양천현 및 과천현과 병합되었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원래대로 환원되었다. 1795년 정조 시기에는 시흥현으로 이름이 고쳐졌으며, 지금의 영등포구 지역은 시흥현 상북면(양평동, 당산동, 문래동, 도림동, 대림동), 하북면(영등포동, 신길동) 및 한성부 성저십리(여의도) 지역이었다. 1914년 일제의 부군면 통폐합으로 본토 지역은 시흥군 북면으로, 여의도는 고양군 용강면 여율리로 개편되었다. 단, 양화동은 1914년 이전에는 양천군의 일부였다.

산업 및 교통 발달로 1910년대 말엽부터 공업시설이 들어서기 시작했으며, 경성부 근교의 신생공업도시로서의 기반을 다지고 있었다. 시흥군 북면 중 당산리, 영등포리, 양평리 일대가 영등포면으로 분리되었고 영등포면은 영등포읍으로 승격되었다. 일본인 유지들이 경성부 편입에 반대했지만 총독부의 대경성계획의 일환으로 1936년에 경성부로 편입되었다. 1943년 경성부 구제 실시로 영등포구역소가 설치되었으며, 이는 영등포구의 전신이 되었다. 1949년에는 지금의 신도림동, 신대방동, 구로동, 대림동 지역이 서울특별시 영등포구로 편입되었다. 1963년 서울 대확장으로 서쪽으로는 강서구 방화동, 동쪽으로는 서초구 일대까지 영등포구로 편입되어 영등포구는 방대한 면적을 차지하게 되었지만 지금의 서초구 지역이 성동구에 편입되고, 기존의 영등포구 지역이 강서구(강서구에서 양천구 재분리), 관악구(관악구에서 동작구 재분리), 구로구(구로구에서 금천구 재분리)로 분리되면서 1980년에는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산하 행정구역[편집 | 원본 편집]

  • 영등포동
  • 당산동, 양화동
  • 양평동
  • 문래동
  • 신길동
  • 여의도동 (여의도)
  • 대림동

교통[편집 | 원본 편집]

서울 서남권 교통의 중심지로 인천광역시, 부천시 등 경인권은 물론이고, 고양시, 수원시 등 수도권 인구밀집지역과 교통 연계가 용이한 지역이다.

철도[편집 | 원본 편집]

이름 그대로 영등포 철도교통의 핵심이다. 수원 경유 KTX를 비롯, 모든 정규 여객열차는 영등포에 필수적으로 정차하기 때문에 지방으로 이동이 편리하다. 오히려 서울역은 경부선 방면 계통만, 용산역은 호남선, 전라선, 장항선 방면 계통만 취급하도록 이원화된 것에 비교하면 KTX 정차횟수가 적다는 것을 제외한다면 영등포역에서는 다양한 계통의 여객열차가 정차하므로 이용의 편의성이 우세하다.

버스[편집 | 원본 편집]

버스 교통의 중심지는 영등포역과 당산역 주변으로 볼 수 있다. 당산역은 지하철 2호선과 9호선 모두 강남권으로 이동할 수 있으므로 일산이나 김포, 양천구강서구 등 인구 밀집지역의 승객들이 타고 온 버스에서 대거 하차하여 지하철로 환승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김포 방면 일부 광역버스는 당산역 주변에서 회차하기도 한다.

영등포역 주변 역시 수많은 광역버스와 서울 시내버스가 뒤엉키는 헬게이트 수준이다. 다행스럽게도 버스전용차로가 적용되어 그나마 조금 덜한 편이지만, 영등포역 앞 삼거리에서 여의도, 일산, 인천, 부평 등 다양한 지역으로 유동인구가 몰리기 때문에 평일, 주말 구분없이 엄청난 교통대란을 겪는 곳이다. 또한 주변에 위치한 영등포로터리로 불리는 곳은 여의도로 진출입하려는 차량, 노들로에서 진출입하는 차량, 강남권으로 이동하려는 차량 등이 몰려들어 전국적으로도 손꼽히는 교통 혼잡지역이다. 결정적으로 영등포역 주변에 조성된 대규모 상권으로 인해 주말이면 수많은 승용차들까지 몰려들어 영등포역 일대는 거대한 주차장을 방불케한다.

참고항목[편집 | 원본 편집]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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