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학

찾아 바꾸기 봇 (토론 | 기여)님의 2018년 9월 18일 (화) 02:17 판 (봇) (위키방:196439)

지정학(地政學, Geopolitics)은 지리(인문·자연)가 국제정치국제관계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학문이다.[출처 1] 지정학은 국제정치행위를 지리적 변인을 통해 이해, 설명하고 예측하는 데 목적이 있는, 외교정책 연구 방법론이다. 여기서 말하는 지리적 변인은 연구 대상이 되는 지역의 지역 연구, 기후, 지형, 인구 구조, 천연자원, 응용과학 등을 포함한다.

지정학에서는 지리적 공간에 있어서 정치권력이 어떻게 작동하는가에 초점을 맞춘다. 구체적으로는 외교사와 영해, 영토 사이의 상호관계가 있다. 학문적으로 지정학은 지리와 정치의 관계에 주목하면서 역사 및 사회과학적 분석을 주로 한다. 학문외적으로는 비영리단체(정부 부처나 싱크탱크 등)[출처 2]와 영리단체(중개업체, 컨설팅업체 등)[1]를 비롯한 다양한 단체가 지정학적 예측을 내놓는다. 지정학적 연구 주제는 지역, 공간, 지리적 요소[2]에 따른 국제정치 주체들 이익 사이의 관계 등이 포함된다.[출처 3] 비판적 지정학은 제국주의 시기 및 그 이후의 전통적 지정학이 정치적, 이념적으로 강대국에 편향적임을 보임으로써 전통적 지정학을 해체한다.[출처 4]

어렵게 써놨지만, 사실 간단히 말하자면 《시드 마이어의 문명 시리즈》나 《유로파 유니버셜리스 4》, 《슈퍼파워 2》처럼 지도 위에서 땅 따먹는 비디오 게임을 할 때 플레이어가 사용하는 전략에 대한 이론이 곧 지정학이라고 봐도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의 지정학

알프레드 머핸과 해양세력

알프레드 머핸(Alfred Thayer Mahan)은 세계 해군 전략 및 외교 문제 해설가로서 활발히 활동했던 인물로, 국가가 강성해지는 것은 바다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믿었다. 특히 평시에는 바다의 상업적 활용이, 전시에는 제해권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머핸의 이론적 틀은 앙투안느-앙리 조미니(Antoine-Henri Jomini)에게서 차용한 것이다. 그의 이론은 함대 양적 전력과은 물론이고 전략적 요충지[3]이 제해권을 확보하는 데 이바지한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그는 다음의 여섯 가지를 국가가 해양 권력을 갖기 위한 조건으로 제시했다.

  1. 지리적으로 유리한 위치
  2. 활용 가능한(serviceable) 해안지대, 풍부한 천연자원, 적절한 기후
  3. 영토 범위(extent of territory)
  4. 영토를 방어하기에 충분한 인구
  5. 바다와 상업을 하기에 적절한 사회
  6. 제해권을 확보할 의향과 영향력이 있는 정부[출처 5]

에밀 라이히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역사학자였던 에밀 라이히(Emil Reich, 1854-191)는 1902년, 그리고 이후 1904년 『근대 유럽의 토대』(Foundations of Modern Europe)라는 저서[출처 6]를 통해 영어에 처음으로 "지정학"(geopolitics)이라는 단어를 도입한 학자로 인정받는다.[출처 7]

매킨더와 심장부 이론

핼퍼드 매킨더가 중심부 이론을 처음 체계화한 것은 영국에서 1904년 출간된 『역사의 지리적 중심축』 란 책에서였다. 매킨더는 해군을 콜럼버스 시대(대략 1492년부터 19세기까지)의 기반으로 보았고, 20세기는 육상 전력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심장부 이론에서는 심장부에 거대 제국이 건설될 것을 가정하는데, 이 거대 제국은 해운 없이도 유지될 수 있을 것으로 예측되었다. 매킨더 이론의 기본 개념은 기본적으로 지구를 두 부분으로 구분한다. 먼저 아프리카유라시아를 묶은 세계섬(World Island)이 있는데, 이는 핵심부(Core)라고도 불린다. 다른 하나는 주변 "도서"(Peripheral islands)로, 아메리카, 오스트레일리아, 일본, 영국, 오세아니아를 포함한다. 주변부는 세계섬에 비해 훨씬 작을 뿐만아니라, 세계섬 수준의 기술력을 유지, 활용하기 위해서는 상당량의 해운에 의존해야 한다. 반면 세계섬은 높은 수준의 경제에 충분한 천연 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매킨더의 지정학 이론은 그의 다음과 같은 발언으로 요약할 수 있다.

중유럽과 동유럽을 지배하는 자가 심장부를 지배한다. 심장부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섬을 지배한다. 세계섬을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
(Who rules Central and Eastern Europe commands the Heartland. Who rules the Heartland commands the World-Island. Who rules the World-Island commands the World.)

니콜라스 스파이크만(Nicholas J. Spykman)은 머핸과 매킨더의 추종자인 동시에 비판자였다. 그의 이론은 매킨더의 이론과 비슷한 전제 위에 세워졌다.[출처 8] 이는 세계정치의 통일성(unity of world politics)과 세계해(world sea)에 대한 전제를 포함한다. 스파이크만은 이 이론을 하늘(air)까지 확장시킨다. 그는 매킨더의 세계 구분을 차용하였으나, 일부 개념은 재명명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1. 심장부(the Heartland)
  2. 주변지역(the Rimland) - 매킨더의 '내부 초승달 지대'. 심장부와, 주변 해양 세력의 사이에 존재하는 중간 지역.
  3. 연안 도서 및 대륙 - 매킨더의 '외부 초승달 지대'.[출처 9]

스파이크만의 이론에서 주변지역은 심장부와 부동항을 떨어뜨려놓는 역할을 담당한다. 스파이크만은 이러한 상황이 곧 주변부에 대한 심장부(특히 러시아)의 야욕으로 직결될 것이라고 보았다. 즉, 스파이크만은 맥킨더 이론의 약점을 언급하면서 심장지역과 주변지역의 결합을 저지할 필요성을 주장하는 것이다.[출처 10] 다시 말하자면, 맥킨더는 심장부를 강조했던 반면 스파이크만은 주변지역(초승달 지대)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출처 10]

키신저, 브레진스키, 거대한 체스판(Kissinger, Brzezinski and the Grand Chessboard)

냉전기의 두 유명한 안보 전문가 헨리 키신저(Henry Kissinger)와 즈비그뉴 브레진스키(Zbigniew Brzezinski)는 냉전과 함께 이념대립이 종식된 이후에도 미국이 유라시아, 무엇보다도 러시아에 대한 관심을 버리지 않도록 애썼다. 냉전기 이념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던 두 사람 모두 냉전 이후 지정학자로 탈바꿈했는데,[출처 11] 둘의 저작이 모두 1990년대 지정학계의 주요 서적이 되었다. 키신저의 1994년작 『디플로머시』(Diplomacy)[4] 와 브레진스키(1997)의 『유라시아 체스판』(The Eurasian Chessboard)이 그 책이다. 이로써 영미권의 고전적 지정학 이론이 되살아났다.

키신저가 『디플로머시』에서 적기를, 이제는 (외교에서) 적대적 의도가 사라졌으며 전통적 외교 정책 이론은 더 이상 설명력이 없다는 현실에 지정학 및 역사학 연구자들은 불편해한다고 했다. "그들(연구자들)은 이렇게 주장할 것이다 [...] 통치자에 관계 없이, 러시아핼퍼드 매킨더가 '지정학적 심장부'라고 부른 지역을 차지하고 있을 것이며, 가장 강력한 제국적 전통들 중 하나의 계승자이다."[5] 미국은 반드시 "확장주의의 오랜 역사를 지닌 국가에 대한 세계적 힘의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출처 12]:814

러시아 다음으로 지정학적인 위협이 되는 국가는 독일이며, 특히 위협적인 것은 90년 전 매킨더가 우려한 것처럼 독일과 러시아의 연합이다. 키신저에 따르면 냉전기 대서양 양안, 곧 미국과 유럽이 모두 인지했던 것은 "미국이 유럽에 조직적으로 개입하지 않는 한, 이후 훨씬 열악한 조건 하에서 개입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는 오늘날 더더욱 그러하다. 독일은 현재 유럽에 존재하는 제도만으로는 균형을 맞출 수 없을만큼 강해져버렸다. 또한 유럽이, 설령 독일이 가세하더라도, 상대할 수 없는 것이 [...] 러시아이다[...]" 독일과 러시아의 연합은 어떤 국가에게도 이익이 되지 않는다. 이 연합은 이들에 의한 공동 지배에 대한 공포를 불러일으킬 것이다. 미국 없이 영국프랑스만으로는 독일과 러시아를 상대할 수 없다. 그리고 "유럽 없이 미국은 [...] 유라시아 연안에서 떨어져나온 섬으로 변할 것이다."[출처 12]:821-822

스파이크만의 유라시아관은 확실하게 입증되었다. "지정학적으로, 미국은 유라시아라는 거대한 땅덩어리에서 떨어져 있는 섬 하나이다. 유라시아의 자원과 인구는 미국의 그것을 크게 상회한다. 유럽이나 아시아 중 한 세력에 의한 [유라시아의] 지배는 곧 아메리카(미국)에 전략적 위협이다. 냉전이거나, 냉전이 아니거나. 그러한 세력은 경제적으로 아메리카를 추월할 수 있을 것이며, 결국에는 군사적으로도 앞지를 것이다. 이런 위험에 대해 [미국은] 설령 그 세력이 대외적으로 유순한 자세를 취하더라도 저항할 필요가 있는데, 이는 만에 하나 그 세력이 태도를 바꿀 경우 아메리카가 행사할 수 있는 영향력은 매우 제한적일 것이기 때문이다.[6][출처 12]:813

사상가에서 지정학자로 탈바꿈한 뒤 키신저는 냉전을 (냉전기 동안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던) 지정학적 관점에서 되돌아보았다. 키신저는 냉전의 시작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공산주의에 대한 이념적 반대의 목표는 소련의 확장 저지라는 지정학적 목표와 결부되어 있었다."[7][출처 12]:804 또한 그는 닉슨이 이념보다는 지정학적 이익을 따르는 사람이었다고 덧붙였다.[출처 12]:703-732

키신저의 『디플로머시』가 출판되고 3년 뒤, 브레진스키 또한 『거대한 체스판』(The Grand Chessboard)[8]을 내며 뒤를 따랐다.[9] 『거대한 체스판』에서 그는 미국의 냉전 승리를 유라시아 지배라는 키워드로 풀어낸다. 사상 처음으로 "비(非) 유라시아" 세력이 유라시아 세력 관계의 핵심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출처 13]:31 이 책은 책의 목적이 "그러므로 이 책의 목적은 포괄적이고 통합적인 유라시아 지전략 구축이다."[10][출처 13]:XIV 비록 세력 구성이 혁명적 변화를 거치긴 했지만, 3년 뒤 브레진스키는 유라시아가 여전히 초대륙(megacontinent)이라고 확증했다.[출처 13]:55 스파이크만처럼, 브레진스키도 "점증적으로, 유라시아의 힘은 아메리카의 힘이 빛을 잃게 만든다"고 인정했다.[출처 13]:31

고전적 스파이크만의 관점에서 브레진스키는 유라시아에 대한 그의 지전략적 "체스보드" 독트린을 구축했다. 이는 유라시아 초대륙의 통일 방지를 목표로 한다.

유럽과 아시아는 정치와 경제 양면에서 저력이 대단하다 [....] 따라서 [...] 미국의 대 유럽 및 대 아시아 외교 정책은 반드시 [...] 미국이 유럽과 아시아에서 정치적 중재자 역할을 맡을 수 있는 안정적인 균형 상태가 되도록 하는 데 주안점을 두어야 한다 [....] 그러므로 유라시아는 세계 주도권을 얻기 위한 경쟁이 벌어지는 체스판이며, 이 경쟁은 지전략적인, 즉 지정학적 이익을 전략적으로 관리하는 것에 중점이 있는 경쟁이다 [....] 하지만 그러면서도 유라시아를 지배하고 나아가 미국을 위협하는 유라시아 국가의 탄생을 저지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 미국에게 최고의 지정학적 선물은 유라시아이며 [...] 미국의 세계 주도권은 미국이 유라시아에서 우월성을 얼마나, 어떻게 유지하느냐에 달려 있다.[11][출처 14]

독일의 지정학

독일 지정학(Geopolitik, 게오폴리틱)의 특징은 국가(State)의 삶이 마치 사람이나 동물처럼 과학적 결정론사회진화론에 의해 정해진다고 믿는다는 것이다. 독일 지정학에서는 생활권(Lebensraum)이라는 개념을 고안했는데, 이는 동물에게 우호적인 환경이 필요한 것처럼 민족(nation)[12] 역시 우호적인 환경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 우호적인 환경이란 것은 깨끗한 자연 같은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충분한 공간'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즉, "나 좀 살게 너 꺼져"로 연결되었다는 것. 자세한 것은 후술.

프리드리히 라첼

프리드리히 라첼(Friedrich Ratzel, 1844-1904)은 찰스 다윈 등의 사상가와 에른스트 하인리히 해켈(Ernst Heinrich Haeckel) 등의 동물학자에게 영향받아 독일 지정학에 기여했다. 그의 이론은 지리에 생물학적 개념을 도입했는데, 이는 (국가간의) 경계가 고정된 것이라는 관념에서 탈피한 것이다. 국가를 성장하는 유기체로 상정하고, 국경은 유기체의 움직임이 일시적으로 멈춘 것을 나타낼 뿐이라고 간주하면서 라첼은 영토의 범위가 곧 민족(nation) 건강의 척도라고 주장한다. 즉, (국경이) 정적인 국가는 쇠퇴중이라는 것이다. 라첼은 여러 논문을 냈는데, 그 중에는 "생활권"(Lebensraum, 레벤스라움 - '생활공간'이라고도 한다)이라는 생물지리학(biogeography) 논문이 포함되어 있다. 라첼은 독일 지정학 '게오폴리틱'(geopolitik)의 기반을 마련했다. 미국의 지전략가 알프레드 머핸(Alfred Thayer Mahan)의 영향으로 라첼은 독일 해군력에 대한 열망을 드러냈다. 라첼은 대륙세력과 달리 해양세력은 상선대(merchant marine) 비용을 무역 이익을 통해 충당할 수 있으므로 자급자족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라첼의 지정학 이론은 너무 광범위하며 인간 역사와 지리를 너무 기계론적으로 단순히 해석한다고 비판받았다. 기동성의 중요성 및 해운에서 철도 운송으로의 변화에 관한 분석에서 라첼은 공군력의 영향력을 예측하지 못했다. 또한 힘의 발전 과정에서 사회 조직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하는 우를 범했다.[출처 15]

독일 지정학과 나치의 연관성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루돌프 셸렌(Rudolf Kjellén)과 라첼의 사상은 카를 하우스호퍼(Karl Haushofer), 에리히 오프스트(Erich Obst), 헤르만 라우텐자흐(Hermann Lautensach), 오토 마울(Otto Maull) 등의 많은 독일인 저술가들에 의해 계승, 확장되었다. 1923년 하우스호퍼는 『지정학』(Zeitschrift für Geopolitik)이라는 저널을 창간했고, 이 저널은 이후 나치 독일프로파간다에 이용됐다. 하우스호퍼의 지정학 이론에서 핵심적인 개념은 생활권(Lebensraum), 자급자족(autarky), 범지역(pan-region)[13], 유기체적 국경(organic borders) 등이다. 하우스호퍼의 주장에 따르면 국가는 자급자족 달성을 위한 자연 국경추구에 대한 부인할 수 없는 권리를 지닌다.

나치 제3제국에 관한 보편적인 관점에 따르면, 나치의 사상적 지향에 지정학자들이 중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베이신(Bassin)에 따르면 이 관점에는 중요한 오류가 있다. 예컨대 최근에는 하우스호퍼가 나치당에 그다지 영향을 주지 못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데,[출처 16] 이는 하우스호퍼가 나치 인종주의를 자신의 연구에 포함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서로 유사한 부분이 많기는 해도, 나치 사상가들은 항상 지정학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이는 어찌보면 당연한 것인데, 지정학의 기저에 있는 철학적 지향이 나치 사상과 궤를 달리했기 때문이다. 지정학은 라첼의 과학적 유물론과 지리적 결정론을 그대로 물려받았고, 인간 사회는 (그 사회 내의 개인, 집단의 특징이 아니라) 외부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는 관점을 고수했다. 반면 나치즘은 유물론과 결정론 모두를 거부했으며, 또 '인종적 특징'이라는 내적 요인을 가정하여 이것이 사회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다고 보았다. 이러한 차이점들 때문에 결국 1933년 이후 나치와 지정학은 마찰을 겪었으며, 끝내 나치가 지정학을 공개적으로 비난하기에 이르렀다.[출처 17] 그럼에도 독일의 지정학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확장주의 정책에 오용되면서 그 신용도가 곤두박질치고 말았고, 이렇게 한 번 땅에 떨어진 신용도는 다시 회복되지 못했다.

일본의 지정학

일본의 지정학은 주로 1910년대 초부터 제2차 세계 대전까지 관심을 받았으며, 특히 독일 지정학(게오폴리틱)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출처 18]:30 '지정학'(地政学)이라고 하는 용어부터가 독일어 게오폴리틱(Geopolitik)을 번역한 것이다.[출처 19]:170

일본은 섬나라라는 지리적 조건 때문에 해양세력화를 추구하는 것이 자연스러웠을 텐데, 생활권(Lebensraum)을 핵심으로 하는 독일 지정학을 받아들인 것은 1930년대 일본이 아시아 침략을 자행하고 나치 독일과 제휴를 맺으면서 "(요즘 잘 나가는) 독일에서는 말입니다"라며 '선진문물', 즉 당시 "저널리즘의 총아"였던 독일 지정학을 받아들이고자 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출처 19]:182

한편 독일 지정학이 일본에 소개된 것은 1920년대였지만,[출처 20]:111 (지정학적 사고가 국가정책에 반영되었던 것은 훨씬 이전부터였다.[출처 21] 예를 들면 1890년, 야마가타 아리토모(山県有朋)는 일본의 대외정책에 주권선과 이익선 개념을 도입하고 주권선을 지키기 위해 이익선의 통제를 확보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을 주장했는데,[14] 이러한 "동심원적 확대"를 내포한 주장은 하우스호퍼의 생활권 이론과 매우 닮아 있다.[출처 21]:416 실제로 하우스호퍼 또한 일본주재무관으로 활동한 경험이 있어 일본에 관한 지정학 저술을 많이 했는데, 그의 저작활동 또한 일본이 독일 지정학을 수용하는 통로가 되었다.[출처 21] 즉, "짱짱나라 독일의 지정학자가 우리 일본에 관해 논문을 써주셨스무니다!"하면서 보다 적극적으로 독일 지정학을 받아들이게 됐다는 것.

이렇듯 내용적인 측면에서 독일 지정학을 많이 받아들인 일본 지정학이었지만, 그 배경에 있는 사상적, 정신적 측면에서는 일본 황도(皇道)사상이 뒷받침되었는데, 그 중심이 된 것이 고마키 사네시게(小牧實繁)를 필두로 한 교토학파[출처 21]:419-420 내지는 '일본지정학파'(「日本地政学」派)[출처 19]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로는 과거 일본 제국주의와 지정학의 영합으로 인해 지정학이 금기시되었고, 연구의 필요성마저 UN 거버넌스 아래 국경선 불변의 원칙이 주를 이루게 되면서 상당히 저하되었다.[출처 22]:24 일본 내에서는 이 시기의 인상이 매우 강하게 남았기 때문에 '지정학'이라고 하면 '2차대전 당시의 체제영합적 운동'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출처 22]:21

학문 분야에 따른 지정학에 관한 인식

지리학의 제분야, 특히 인문지리학의 분과학문인 정치지리학에서는 "지정학"이라는 용어에 매우 부정적인 인식을 보인다. 하지만 역사학이나 정치학 등 다른 분야에서는 (그 분야도 똑같이 지정학적 개념을 차용함에도) 이러한 부정적 인식이 존재하지 않거나 있더라도 그 정도가 미약한 편이다. 실제로 고전적 지정학(Classical Geopolitics)은 군사사, 국제정치학, 안보연구 등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지리학 이외의 분야에서 지정학은 제국주의나 나치즘의 도구로 파악되기보다는, 군사 분야를 비롯한 다양한 분야의 국제 지정적 환경과 사건(international geopolitical circumstances and events)을 분석하는 데 쓰일 수 있는 적절한 이론적 틀로 받아들여진다.

메타지정학

"메타"지정학은 나이에프 알-로드한(Nayef Al-rodhan)[15]이 주창한 분석틀로, 지정학의 전통적 관점과 새로운 관점을 조합해 권력(power)과 권력관계에 대한 다차원적 관점을 도입한다.[출처 23] 이 분석틀에서는, 국가가 힘(power)을 유지하고 증대하는 과정에서 지리(georaphy)가 차지하던 지위가 하드파워소프트파워에 의해 대체된다. 즉, 외부적으로 주어지는 요소인 지리보다, 국가가 정책을 통해 능동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하드파워와 소프트파워를 중시하는 것이다. 메타지정학은 국력을 사회 및 건강(social and health), 국내 정치, 경제, 환경, 과학 및 인적 잠재력, 군사 및 안보, 국제 외교의 총 일곱 가지 차원에서 분석한다.[출처 24] 메타지정학 분석틀을 이용하면 미래의 추세는 물론이고, 국력의 상대적 크기도 보다 상세히 분석할 수 있다. 더욱이, 메타지정학은 기본적으로는 국가를 분석 대상으로 삼고 있지만, 민간 영역과 초국가적 영역을 분석하는 데도 적용할 수 있다.[출처 25] 비국가 행위자가 날로 중요해지는 현 세계화 시대에 이는 큰 장점이라고 볼 수 있다.

읽어볼 만한 책

아쉽게도 한국어로 된 지정학 이론서는 많지 않다. 아무래도 지정학 자체가 2차대전 이후로 많이 사장된 분야라 그런 것으로 보인다. 다만 90년대 이후로 해외에서 지정학이 다시 조명받으면서 한국에서도 출간된 책이 몇 권 있다. 예컨대 2007년에는 한국지정학연구회가 출범하며 콜린 플린트(Colin Flint)의 『지정학이란 무엇인가』를 번역 출간했다. 문제는 이 연구회란 것이 이 책 이후로 2015년 12월 말까지도 어떠한 책도 내지 않았으며[16] 학회 웹사이트 하나 없는 상태라는 것(...). 연구회를 주도하던 이성형 이화여대 교수가 2012년 대장암으로 별세하고 몇몇 교수들은 정년퇴임등으로 학계에서 은퇴하는 등 사정이 좋지않은 것도 있다. 역시 공부는 영어로 해야... 지리학이나 정치학, 국제관계학 등 비슷한 학문 분야에 비하면 비중이 참으로 작다. 아무튼 한국어로 된 서적들 중 지정학을 대학 교양 강의 수준 이상으로 깊이 다뤘거나 그런 부분이 있는 책을 일부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 콜린 플린트. (2007). 『지정학이란 무엇인가』 도서출판 길. 한국지정학연구회 옮김. ISBN 978-89-87671-77-2
    가장 구하기 쉬우면서 무난하고 정석적인 지정학 입문서로 보인다. 타 이론서들에 비해 비교적 최근에 출간된 책[17]이라는 점도 장점이다.
  • 任德淳(임덕순). (1999). 『地政學: 理論과 實際』(지정학: 이론과 실제) 도서출판 法文社(법문사). ISBN 89-18-03126-2
    제목부터 한자가 가득하지만 한자를 못 해도 괜찮다. 정작 본문에는 한자가 거의 없기 때문. 지정학의 역사부터 이론, 각종 개념, 실제 사례 연구까지 사실상 지정학 전 분야를 체계적으로 다루고 있는 책이다. 저자가 한국인인 만큼 한국에 관한 내용도 비교적 충실하다는 점 또한 장점이다.
  • 金種斗(김종두). (2000). 『韓半島 海洋地政學』(한반도 해양지정학) 도서출판 文永社(문영사). ISBN 89-87822-02-8
    역시 제목부터 한자가 가득한 책이다. 보통 내용에는 한자를 거의 사용하지 않았지만, 일본 및 중국 고유명사(책 제목 포함)는 한자만 표기했기 때문에 한자에 약하면 아시아 관련 내용이 나올 때마다 심히 난감해질 수 있다. 하여튼 저자가 집필 당시 경향신문 편집위원으로 있었던 만큼 이론보다는 저술 당시 세계의 지정(학)적 상황에 대한 분석이 주를 이룬다. 또 제목처럼 특히 해양전략에 대한 강조가 돋보인다.
  • 아서 제이 클링호퍼(Arthur Jay Klinghoffer). (2007). 『세계지도에서 권력을 읽다』 알마. 이용주 옮김. ISBN 978-89-94963-45-7
    원래는 제목에서도 드러나듯 지도와 지도에서 드러나는 권력관계, 즉 정치를 다루는 책이다. 하지만 제9장 "지정학" 챕터에서 지정학의 형성, 발전과 이후 파시즘과의 결부(파시즘에 의한 선전도구로서의 이용)를 다룬다.
  • 미즈우치 도시오. (2010). 『공간의 정치지리』 푸른길. 심정보 옮김. ISBN 978-89-6291-127-5
    다카키 아키히코가 집필한 1장 "지정학과 언설"에서 '지정학'이라는 용어의 정의 및 지정학의 역사, 비판지정학(critical geopolitics) 등을 다루고 있다. 또 언설(discourse)에 관한 내용인 만큼 미국대통령의 연설, 신문기사 등에 대한 미디어 분석도 다뤄진다. 영어권에서 2000년에 간행된 두 지정학 입문서에 대한 비교분석도 짧지만(2쪽) 흥미롭다.
  •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2000). 『거대한 체스판』 심인. 김명섭 옮김. ISBN 978-89-8751-935-7
    위 본문에도 소개된 브레진스키의 체스보드 독트린을 담은 원서의 번역서. 책도 얇고, 흥미로우며, 점점 참담해지는 기분으로 읽을 수 있다. 무엇보다 출간된지 꽤 되었는데 아직도 절판되지 않았다(!).

바깥고리

참고문헌

인용

  1. Devetak et al (eds), An Introduction to International Relations, 2012, p. 492.
  2. 예: South Asia Analysis Group의 2015년 1월 보고서(Tembarai Krishnamachari, Rajesh. "Economic and geo-political prognosis for 2015")
  3. Vladimir Toncea, 2006, "Geopolitical evolution of borders in Danube Basin"
  4. Mehmet Akif Okur, “Classical Texts Of the Geopolitics and the “Heart Of Eurasia”, Journal of Turkish World Studies, XIV/2, pp.76-90 https://www.academia.edu/10035574/CLASSICAL_TEXTS_OF_THE_GEOPOLITICS_AND_THE_HEART_OF_EURASIA_Jeopoliti%C4%9Fin_Klasik_Metinleri_ve_Avrasya_n%C4%B1n_Kalbi_ http://tdid.ege.edu.tr/files/dergi_14_2/mehmet_akif_okur.pdf
  5. Sea Power
  6. Foundations of Modern Europe, London, George Bell, 1904, 284 pages
  7. W. B. Owen, revised by H. C. G. Matthew, 'Reich, Emil (1854–1910)', in Oxford Dictionary of National Biography (Oxford University Press, 2004) 온라인 버전 (가입 필요), 2013년 9월 26일 확인
  8. Mehmet Akif Okur, “Classical Texts Of the Geopolitics and the “Heart Of Eurasia”, Journal of Turkish World Studies, XIV/2, pp.81-83 https://www.academia.edu/10035574/CLASSICAL_TEXTS_OF_THE_GEOPOLITICS_AND_THE_HEART_OF_EURASIA_Jeopoliti%C4%9Fin_Klasik_Metinleri_ve_Avrasya_n%C4%B1n_Kalbi_ http://tdid.ege.edu.tr/files/dergi_14_2/mehmet_akif_okur.pdf
  9. Polelle, Raising Cartographic Consciousness, p. 118의 지도를 보라.
  10. 10.0 10.1 http://www.lec.co.kr/news/articleView.html?idxno=35452
  11. Mehmet Akif Okur, “Classical Texts Of the Geopolitics and the “Heart Of Eurasia”, Journal of Turkish World Studies, XIV/2, pp.83-85 https://www.academia.edu/10035574/CLASSICAL_TEXTS_OF_THE_GEOPOLITICS_AND_THE_HEART_OF_EURASIA_Jeopoliti%C4%9Fin_Klasik_Metinleri_ve_Avrasya_n%C4%B1n_Kalbi_ http://tdid.ege.edu.tr/files/dergi_14_2/mehmet_akif_okur.pdf
  12. 12.0 12.1 12.2 12.3 12.4 Kissinger, Henry, (1994). Diplomacy, New York: Simon & Schuster
  13. 13.0 13.1 13.2 13.3 Zbignew Brzezinski, (1997). The Grand Chessboard: American Primacy and Its Geostrategic Imperatives, Perseus Books, New York.
  14. Zbignew Brzezinski, (1997). The Grand Chessboard: American Primacy and Its Geostrategic Imperatives, Perseus Books, New York, pp. XIII-XIV, 30-31
  15. Ó Tuathail (2006) p.20
  16. O'Tuathail, 1996
  17. Mark Bassin, "Race Contra Space: The Conflict Between German 'Geopolitik' and National Socialism," Political Geography Quarterly 1987 6(2): 115-134,
  18. 金種斗. (2000). 『韓半島 海洋地政學』 서울: 文永社.
  19. 19.0 19.1 19.2 竹内啓一. (1974). 日本におけるゲオポリティクと地理学. 『一橋論叢』 72(2), 169-191.
  20. 健佐藤. (2005). 日本における地政学思想の展開:戦前地政学に見る萌芽と危険性. 『北大法学研究科ジュニア・リサーチ・ジャーナル = Junior Research Journal』, 11, 109-139
  21. 21.0 21.1 21.2 21.3 채수도. (2013). 대동아공영권 구상과 지정학적 사고. 일본문화연구, 48, 413-432.
  22. 22.0 22.1 아키히코 다카키. (2010). 지정학과 언설., 도시오 미즈우치, 『공간의 정치지리』 (pp. 19-47). 서울: 푸른길.
  23. LIT
  24. GCSP
  25. The Northern Times

그 외

각주

  1. 중개업체의 분석 예시("2015 Stock Market Outlook"), 컨설팅회사의 분석 예시("Insights & Publications")
  2. 이것들이 모여 지정학적 구조를 이룬다.
  3. 관문, 운하, 석탄공급소(항구) 등
  4. '외교'라는 뜻의 단어이지만, 한국어 번역본의 제목은 이를 음차한 '디플로머시'이다.
  5. 원문:"They would argue … that Russia, regardless of who govern it, sits astride the territory Halford Mackinder called the geopolitical heartland, and is the heir to one of the most potent imperial traditions."
  6. 원문: “Geopolitically, America is an island off the shores of the large landmass of Euraisa, whose resources and population far exceed those of the United States. The domination by a single power of either of Eurasia’s two principal spheres—Europe and Asia—remains a good definition of strategic danger for America. Cold War or no Cold War. For such a grouping would have the capacity to outstrip America economically and, in the end, militarily. That danger would have to be resisted even were the dominant power apparently benevolent, for if the intentions ever changed, America would find itself with a grossly diminished capacity for effective resistance and a growing inability to shape events.”
  7. 원문:“The objective of moral opposition to Communism had merged with the geopolitical task of containing the Soviet expansion.”
  8. 한국어 번역서가 나와 있다. 『거대한 체스판: 21세기 미국의 세계전략과 유라시아』 (ISBN 9788987519357)
  9. 한편 다시 3년 뒤 브레진스키는 『지정학적 삼인조: 중국, 유럽, 러시아와 함께 살기』(The Geostrategic Triad: Living with China, Europe, and Russia)도 집필했다. 한국어 번역은 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10. 원문: “The formulation of a comprehensive and integrated Eurasian geostrategy is therefore the purpose of this book.”
  11. 원문: "Europe and Asia are politically and economically powerful…. It follows that… American foreign policy must…employ its influence in Eurasia in a manner that creates a stable continental equilibrium, with the United States as the political arbiter.… Eurasia is thus the chessboard on which the struggle for global primacy continues to be played, and that struggle involves geo- strategy – the strategic management of geopolitical interests…. But in the meantime it is imperative that no Eurasian challenger emerges, capable of dominating Eurasia and thus also of challenging America… For America the chief geopolitical prize is Eurasia…and America’s global primacy is directly dependent on how long and how effectively its preponderance on the Eurasian continent is sustained."
  12. 여기서는 민족이라고 적지만, 한국어 "민족"이 담고 있는 의미와 영단어 "nation"의 의미는 조금 다르다. nation의 번역에 관해서는 민족주의의 해당 문단을 참고.
  13. 번역은 네트워크 세계정치 사이트 자료의 번역을 따랐다. '팬 리전', '판 리젼' 등으로 음차하는 경우도 있다. "범지역은 국경을 넘어 뻗어있는, 경제, 정치, 문화적 국가 영역 혹은 지역을 의미한다."(A pan-region is a geographic region or state’s sphere of economic, political and cultural influence extending beyond that states borders. 출처 영문 위키백과)
  14. 이 주장에 따라 이익선을 확보하면 자동적으로 주권선이 확장되고, 그러면 밖으로 밀려난 주권선에 의해 이익선까지 밀려나고, ... 이하 무한반복이다. 일본의 팽창주의, 제국주의의 배경이 된 셈.
  15. 영문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직업이 철학자이자 신경과학자이자 지전략가이자 작가라고 한다. ㅎㄷㄷ.
  16. 여기서는 인터넷교보문고 검색결과를 링크하긴 했지만, 국회도서관 검색 결과 역시 동일하다.
  17. 원서는 2006년에 출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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