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독일

(나치 독일에서 넘어옴)
독일국
Deutsches Reich
Flag of Germany (1935–1945).svg
국기(사실상)
Reichsadler Deutsches Reich (1935–1945).svg
국장
표어
Ein Volk, ein Reich, ein Führer
하나의 민족, 하나의 국가, 하나의 총통
개괄
수도 베를린
공용어 독일어
접경국 Flag of Sweden.svg 스웨덴(사실상), Flag of Finland.svg 핀란드(사실상), 소련 소비에트 연방, Flag of Spain.svg 스페인, 이탈리아왕국 이탈리아 왕국, Flag of Switzerland.svg 스위스, 헝가리 헝가리, Flag of France.svg 프랑스(명목상), 크로아티아 크로아티아(명목상), 루마니아 왕국 루마니아 왕국 (1942년 기준)
국교 없음
통화 라이히스마르크
정치 체제
국가수반 명칭 총통
아돌프 히틀러
(1934~1945)
역사
존속기간 1933년~1945년
주요 사건

1933년 3월 24일 : 수권법 통과

1934년 8월 2일 : 히틀러 총통 취임

1945년 5월 9일 : 무조건 항복
이전 국가 바이마르공화국 바이마르공화국
이후 국가 독일의 연합군 군정기 연합군 군정기, 오스트리아 오스트리아
오늘날의 Flag of Germany.svg 독일, 오스트리아 오스트리아

나치 독일(독일어: NS-Staat)은 1933년아돌프 히틀러가 수상에 취임한 시점부터, 1945년 2차 세계대전에 독일이 무조건 항복을 선언한 시점까지의 독일국(Deutsches Reich) 정부를 일컫는 말이다.

1 나치당[편집]

나치 독일의 여당이자 유일한 정당. 이하에는 나치당이 설립하고 나서 정권을 잡을 때까지의 내용만이 서술 되어 있다.

1.1 초기[편집]

나치당은 1918년에 창립한 정당으로서, 안톤 드렉슬러가 세웠다. 창립 당시에도 국가주의적 배경을 갖고 있었다. 원래는 총 멤버가 60명도 안 되는 매우 작은 스케일의 정당이라고 부르기도 부끄러운 사이즈의 당이었다. 그나마 멤버들도 대부분 보수 성향의 동네 아저씨들이 전부였고 당이라고 해봤자 틈만 나면 모여서 맥주소시지를 들이키며 노는 그냥 동네 아저씨 모임 정도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 때의 바이마르 공화국, 즉 독일이 하도 약한 상태인지라, 작다고 해도 어찌되었건 정당은 정당이고 극단적인 성향을 띠고 있었고, 이를 단속하기 위해 한 병사를 보내 감시하도록 하였다. 문제는 그 병사가 바로 아돌프 히틀러였다는 사실이다.

그나마 히틀러가 얌전히 감시 업무만 하고 왔다면 참 좋았겠지만, 한번은 나치당의 회의가 열린날에 참석한 바우만 교수라는 사람이 히틀러와 언쟁이 붙고, 결국 언쟁은 히틀러의 승리로 끝났다. 말싸움에서 승리해 뭔가 지적으로 보인(...) 그를 보고 감탄한 나치당은 그를 555번 멤버로 받아주었다. (참고로 상술했듯 겨우 60명 이하인 당에 가입한 히틀러의 번호가 555인 이유는 모든 참가 인원들의 번호에는 500을 추가하여서 멤버가 많은 척 허세를 부리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히틀러가 가입하고 나서는 모든 것이 변하였다. 히틀러는 평소에 갖고 있던 정부를 향한 불만을 나치당을 통해 정계로 진출해 쏟아부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여겼으며, 이런 히틀러의 생각을 따라 나치당은 노동자들을 타겟으로한 정당이 되었고, 땅 소유자의 땅을 빼았아 가난한 자들에게 돌려주고, 다른 나라를 침략하야 살 수 있는 땅을 더 만들어나가겠다라는 약속들을 한다. 물론 히틀러는 이들을 지킬 생각은 눈꼽만큼도 없었다.

1.2 뮌헨 맥주홀 폭동[편집]

Munich Putsch

1923년, 11월 9일, 히틀러의 본격적인 첫 번째 권력 투쟁이 일어났다. 방법은 쿠데타. 본디 히틀러는 베니토 무솔리니를 존경하고 있었고 이에 무솔리니처럼 쿠데타로 정부를 뒤집을 계획을 시행하게 되었다. 장소로 선정된 뮌헨은 베를린에 대한 악감정의 중심지와 다름 없었고, 이것이 엄청 심하여 지역군대장이었던 폰 로쏘우는 베를린 진격을 할 생각도 갖추고 있었다. 이 날, 뮌헨의 총리였던 구스타브 카르 총리, 폰 로쏘우와 경찰 총장이었던 사이서는 뮌헨의 맥주홀에서 우익의 지지자들을 모아서 연설을 할려던 참이었으나, 히틀러가 600명의 무장한 지지자들과 함께 들이닥친다. 여기서 히틀러는 무력으로 이 셋의 협력을 약속 받고 이들을 잠시 감금해 놨었으나, 카르가 주도하여 탈출, 히틀러의 쿠데타를 제지하는데 성공한다. 이 과정에서 나치 당원 14명이 죽고, 이 당원들의 죽음으로 과부가 된 여성들은 나치 움직임의 영웅으로 새겨졌다 이게 명예냐 불명예냐? 그리고 이 과정에서 히틀러의 어깨가 탈골된다.[1] 직후 히틀러는 체포되어 반역죄로 규정상으로는 사형을 받아도 아무런 할 말이 없지만, 재판을 자신의 선전 연설로 바꾸고, 이에 판사들이 넘어가서 형이 5년으로 줄어버렸다. 어이, 그게 너희들이 할 짓이냐? 히틀러가 변론의 시간에서 독일 정부의 잘못된 점들을 또박또박 지적하고, 그것을 해결할 방도들을 달달달 제시해대니 판사들이 넘어가 발언 시간을 막 퍼주어서 할 말 다 하게 만들어줬고 결국 히틀러가 할말을 다 하고 나니 마찬가지로 독일 정부에게 불만이 많던 청중자들이 호응하였으며 이 결과 사람들도 판사들도 그를 지지하게 돼서 형을 감면받은 것이다. 그리고 이 5년 동안 히틀러는 자서전인 《나의 투쟁》(독일어: Mein Kampf)의 큰 한 부분을 써내버렸다. 그리고 이 5년마저도 형감되어서 단 9개월 만에 나왔다. 사형-->5년-->9개월로 변하는 민주주의의 마술입니다 여러분!!! 얼씨구 잘하는 짓이다 무죄 판결 안 난 게 다행이네.

히틀러는 이 사건 이후 민주주의의 훌륭함을 깨달아서 수감 기간 동안 온 한 면회자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다.

"군사적인 반역을 통해 집권하는 것보다, 우리들의 코를 막고 (썩은 내 나는) 가톨릭과 마르크스주의자 인간들이 쌓여 있는 제국의회(Reichstag)에 들어가는 게 더 좋다. 그렇게 그들을 투표하여 이기는 것이 그들을 쏴 죽이는 것보다 더 오래 걸릴지라해도, 적어도 그 결과는 그 자들이 스스로 작성한 헌법에 의해 보호되는 것이다." 말은 참 좋은데 이 인간이 했던 것들은 실제로는 글쎄올시다

1.3 집권[편집]

나치당이 1925년 이후 1933년에 집권하기까지 과정은 꽤나 여러 가지 복합적인 요소가 있기에, 여러 종목으로 나누어 분류하고 서술한다.

1.3.1 히틀러[편집]

그렇지만 히틀러 없는 나치당은 이 9개월마저도 버티지 못해 해체될 만한 수준의 위기에 도달하였다. 그러나 히틀러가 풀려나온 뒤인 1925년 2월에는 다시 세워졌다. 히틀러의 당내의 존재감을 120% 확인 시켜주는 사건이었다. 실패한 뮌헨 폭동 사건 이후 히틀러의 당내 권위나 힘은 더욱 높아졌다. 하지만 히틀러가 당내의 완전한 독재자 같은 것은 또 아니었던지라, 히틀러는 이후 1926~1930년 동안 자신의 권력과 방침에 반발하는 사회주의 자들과 대립했어야 됐고, 1930년 10월에는 히틀러의 헌법 위주 방침에 넌더리가 난 당 내부의 사회주의자들이 크게 한 판 당내 혁명을 일으키려는 시도 또한 있었다.

또한 히틀러와 나치당 하면 히틀러의 연설은 절대 빠질 수 없는 요소다. 히틀러의 연설은 가히 천재적이고 독창적이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의 연설은 당시 듣는 자들을 홀렸으며, 히틀러가 사용한 테크닉의 일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히틀러는 우선 연설에 몇 시간씩 수시로 늦었었다. 이는 부분적으로 그의 매우 불규칙적인 생활에서 비롯된 거고, 또 한편으로는 그가 늦음으로써 관객에게서 흥분과 불안감을 이끌어내어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 히틀러는 매번 연설을 망설이는 듯 시작하였고, 초반은 매우 대화적인 스타일로 시작한다.
  • 시간이 지날 수록 히틀러는 점점 억양을 높이고 매우 열정적이고 잊힐 수 없는 크레센도 목소리로 연설하며 그의 말에는 그의 영혼이 담겨 있는 듯 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증인의 말에 의하면 그는 자신의 최면을 거는 듯한 눈을 통하여 관중 개개인과 소통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고 한다. (!)
  • 연설 중 매번 이러한 흥분을 드러냈기에 자기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의 연설은 아무리 열정적이나 즉흥적으로 보여도 전부 다 철저히 계산된 것이었다. 특히 연설 도중 여러 제스처들을 취하곤 했는데 이는 자신의 연설에 대한 청중들의 몰입도를 극도로 높이는 역할을 했고, 히틀러 또한 제스처의 효과를 잘 알아 자신에게 어떤 제스처가 어울리는지, 어떤 상황에서 어떤 제스처를 활용하는게 좋은지 철저히 연구해두고 적재적소에 이를 활용했다. (실제로 히틀러가 제스처를 연구할 목적으로 자기자신을 찍어두었던 사진들이 일부 남아있다)
  • 연설이 끝난 직후에는 자기가 한 연설을 분석하였으며,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했다.
  • 1926년부터 당원들의 인사는 꼭 "하일 히틀러(Heil Hitler)", 즉 히틀러 만세가 되었어야 됐다.

1.3.2 당의 구조[편집]

주로 행정구마다 나누어진 각 지역은 지역의 당담자가 있었고, 그 지역마저 극히 세분화 시켜서 아파트 단지의 관리자까지 임명하였고, 이 정책이 사회적 다윈주의식 성격을 띄는 매우 경쟁적인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히틀러는 무자비하고 역동적인 리더가 높은 위치에 있어야 된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이런 상황을 오히려 격려했다. 이러한 지역적인 구조 외에도 여러 작은 그룹들을 형성하였는데, HJ (Hitler's youth, 히틀러의 아이들), 여성을 위한 그룹인 Deutsche Frauenorden (DFO), NSDStB (NS Student's league)와 NSLB(NS Teacher's league) 등을 형성하였다.

1.3.3 불법 무장 단체[편집]

나치당은 돌격대(Sturmabteilung; SA)라고 불리는 불법 무장 단체를 1921년부터 소지하고 있었다. 이들은 여러 가지 수고스러운 일들을 맡아서 했는데 다음과 같은 예시를 들 수 있다.

  • 반대당의 집회에 들어가서 개판으로 만들어 놓았다.
  • 구석 구석 돌아다니면서 당을 선전하는, 혹은 당에서 지시된 포스터를 붙이고 돌아다녔으며,
  • 선전물을 거리에 떠돌아다니며 배포하였다. 잠깐 나 이거 어디에서 아주 많이 본거 같아.

이런 일들을 도맡아 가면서 했으니 이들은 당연히 1933년에 나치당이 집권한 뒤에는 큰 보상을 원했으나, 히틀러가 주는 보상은 이들의 환상과 달랐고, 결국 별로 좋지 않은 결과를 얻어내고 만다.

1.3.4 목표 관중 확장[편집]

나치당은 기존 목표이던 근로자들 말고도 가장 불만이 많던 농부들을 공략하기로 결정하였다. 이 와중 나치들은 자신들의 정책 중 가장 논란에 휩싸였던 17번째 조항을 재해석하고, 세금 삭감을 약속하며, 농부들이 가장 싫어하던 공무원들의 월급을 삭감하고 싼 수입 품들을 줄이기로 약속'만' 하였다.

1.3.5 대공황[편집]

나치당의 집권에는 시기적절한 대공황의 역할 또한 컸다. 1929~1932년 동안 들이닥친 대공황을 통해 독일의 경제는 산산조각이 나버렸고, 이를 1928년 수치와 1932년 수치를 비교하여 나타내면 다음과 같이 나온다.

  • 공장 생산력은 41% 떨어졌다.
  • 수출량은 54% 떨어졌다.
  • 실업자들은 140만명에서 4배 수치인 560만으로 늘었다. 그리고 이는 당시 정부의 공식 발표였기 때문에 아마도 이 수치보다 훨씬 많은 실업자들이 있었을 것이다.
  • 농업물의 가격은 41% 떨어졌고, 산업 제품들의 가격은 25% 하락했다.
  • 1931년에 큰 경제적인 위기가 들이닥쳐서 나라의 가장 큰 두 은행인 드레스덴 은행과 다름슈타트 은행이 파산해 버렸고, 국가가 자본을 투입하여 경제를 살리는 것마저도 힘들게 돼 버렸다.
  • 정부의 수입이 27% 떨어졌다.

이러한 일이 벌어지니 이런 경제적 난제를 해결하라는 여론의 요구는 높아졌고, 1923년에 이미 엄청난 인플레이션을 겪었던 바이마르 공화국 정부는 돈을 투입하기 꺼려했다. 그렇다고 정부가 돈을 빌릴 곳은 더더욱 없었다. 국민들의 대부분은 자산을 거의 다 잃은 상태였고, 이런 상황에 독일에 투자하려 하는 미친 투자자는 전혀 없었다. (어쩌면 당시 브뤼닝 총리는 어떻게든 전쟁에서 얻은 국채를 줄이기 위해서 동정심을 얻었어야 했기에 이런 상황을 벌여지는 것을 방조했을지도 모른다는 주장도 있다)

1.3.6 투표 결과[편집]

이러한 개판 속에서 당시 정당들의 대부분이 망하거나 크게 바뀌어서 행정부가 수시로 바뀌는 등(즉, 의회 멤버들을 원래 3~4년에 한 번 바꾸는 것을 거의 1~2년마다 바꿨다) 정부는 불안정한 모습을 보였고, 이러한 미친 시기야 말로 미친 소리를 하는 자들에게 훨씬 유리하기 때문에 극단적인 정당으로 표들이 엄청 쏠렸다. 그리고 이 시대의 가장 극단적이고 미친당이 나치당이었다. 나치당이 연도별 얻은 의회 석과 그에 상당하는 득표율은 다음과 같았다.

  • 1928년: 12석 (2.6% 득표)
  • 1930년: 107석 (18.3% 득표)
  • 1932년 7월: 230석 (37.4% 득표)
  • 1932년 11월: 196석 (33.1% 득표)
  • 1933년: 288석 (43.9% 득표, 다른 정당들은 20%도 미치지 않은 득표율이 되어서 사실상 의회를 장악했다고 보면 된다.)

2 관련 인물[편집]

3 각주

  1. 여기서 히틀러는 카르의 배신 행위를 잊지 않았고, 11년 뒤 장검의 밤(The Night of Long Knives)에서 반대파들을 숙청할 때 같이 숙청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