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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의 형벌은 매우 엄격하고 혹독했다고전해진다. 살인자는 [[사형]]에 처하고 그가족은 모조리 [[노비]]로 삼았으며 도둑질을 한물건의 열두 배의 가치를 물어내는 일책십이 법을 시행하였으며 남녀가 부정한짓을 하거나 부인이 투기를 하면 모두죽였다 이는 [[일부다처제]]를 지켜 나가기 위한 것이였다. 부여의 형벌이 엄격했다는것은 부여의 경찰력등 국가 체제가 튼튼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하지만 [[고구려]]와의 패권 다툼에서 밀려 600년 만에 멸망했다.
부여의 형벌은 매우 엄격하고 혹독했다고전해진다. 살인자는 [[사형]]에 처하고 그가족은 모조리 [[노비]]로 삼았으며 도둑질을 한물건의 열두 배의 가치를 물어내는 일책십이 법을 시행하였으며 남녀가 부정한짓을 하거나 부인이 투기를 하면 모두죽였다 이는 [[일부다처제]]를 지켜 나가기 위한 것이였다. 부여의 형벌이 엄격했다는것은 부여의 경찰력등 국가 체제가 튼튼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하지만 [[고구려]]와의 패권 다툼에서 밀려 600년 만에 멸망했다.


[[분류:한국사]][[분류:멸망한 국가]]
== 역대 군주 ==
{{참조|부여의 역대 국왕}}
 
== 주석 ==
<references/>
 
[[분류:한국사]]
[[분류:멸망한 국가]]

2015년 5월 31일 (일) 16:48 판

한국사의 시대 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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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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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삼국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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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군정기
미군정 · 소련군정
분단시대
대한민국 · 북한

扶餘

개요

백두산에서 시작해 송화강 하류에 이르는 곳에 도이족의 한 갈래인 맥족의 나라 부여가 국가의 형태를 갖추첬을 서기전3세기 무렵에는 집들이 8만가구에 인구가 40만명쯤에 이르렀다고 전해진다.

부여의 문화

로 된 농기구 대신 로 된 농기구를 주로 썼던 것이나 이들의 농사 방법인 화경과 휴경을 보면 부여사람들의 생활은 그리 발달하지 못하였고 토지의 생산력을 자연의 이치에 맡겨 두었을 뿐 생산력을 높이려고 애쓸 줄은 몰랐을 것이라 추측된다.

부여의 정치체제

부여는 이 중심에 있어도 왕이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하지못하엿다 왕 대신 귀족들의 협의기구인 제가평의회가 절대적 권력을 갖고 모든 것을 결정했다. 이는 중앙 집권적인 지배 체제를 갖추지 못했음을 뜻한다. 제가평의회의 지도자인 제가는 모두 네 명 이었는데 마가, 우가, 저가, 구가가 있었다. 이들의 이름에 가축이름을 붙인까닭은 부여는 목축업이 발달했기때문에 돼지 등을 길렀는데 그중 말이 가장좋기로 전해진다. 부여의 지배 권력자들은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누렸다고한다.

부여의 법

부여의 형벌은 매우 엄격하고 혹독했다고전해진다. 살인자는 사형에 처하고 그가족은 모조리 노비로 삼았으며 도둑질을 한물건의 열두 배의 가치를 물어내는 일책십이 법을 시행하였으며 남녀가 부정한짓을 하거나 부인이 투기를 하면 모두죽였다 이는 일부다처제를 지켜 나가기 위한 것이였다. 부여의 형벌이 엄격했다는것은 부여의 경찰력등 국가 체제가 튼튼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하지만 고구려와의 패권 다툼에서 밀려 600년 만에 멸망했다.

역대 군주

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