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고구려(高句麗, 기원전 37년 ~ 668년)는 한반도 북부의 고대 국가로, 백제, 신라와 함께 삼국시대를 이루던 나라 중 하나이다. 지역적으로는 현재의 만주와 한반도 북부를 약 705여 년 동안 지배했던 국가이다. 장수왕 이후 정식 국호를 고려(高麗)로 변경했으나, 훗날 왕건이 건국한 고려와 구분하기 위해 고구려로 통칭되고 있다.

고구려는 전성기 때에 압록강을 중심으로 한반도 북부와 중부 전역, 중화인민공화국지린성 전역, 랴오닝성 대부분, 러시아연해주 일부까지 지배하였다.

1 역사[편집]

1.1 건국 이전[편집]

고조선한나라에게 멸망한 이우 한반도 및 남만주는 혼란기에 접어들었는데, 고조선 남쪽에 있던 진국삼한으로 분열되어 버리고, 고조선의 주를 이루었던 예족과 맥족이 각각 국가를 설립하게 된다. 이 중에서 예족은 부여, 옥저, 동예를 건국하게 되고, 맥족은 압록강 유역의 당시 한사군현도군에서 졸본 또는 고구려라는 공동체를 형성하게 된다. 이 고구려라는 공동체는 후에 주몽이 부여에서 내려오면서 건국한 고구려'국'의 전신이 되는 공동체였다.

1.2 건국 및 초기 발전[편집]

기원전 57년 주몽이 고구려를 건국한 후, 졸본을 자주 침략하던 말갈을 쫓아내고 북옥저를 복속시키는 등 초반부터 힘을 키워 나갔다. 첫번째 수도는 압록강 유역의 졸본성이었고, 두번째 수도 역시 압록강 근방의 국내성이었다. 당시 지역강국이었던 부여는 이를 경계하여 고구려를 침공하였으나, 되려 부여 대소왕이 살해당하는 등 참패를 당했다. 주변국들을 재미로 침공해 다니던 부여의 위세는 여기서 꺾이고 말았다.

한나라의 침공도 막아낸 고구려는 태조대왕 때는 고구려의 5부족을 행정 구역인 5부로 통합하는 등 나름 국가로써 성장을 계속하였고, 태조대왕 때 처음으로 왕권이 강화된 진정한 왕국으로 성장하고 왕가가 확실히 해씨에서 고씨로 바뀌는 등 고대 왕국의 요소들을 갖춰나가기 시작하였고, 옥저동예를 침공하며 한사군들과도 대립하는 등 확실히 강력한 국가로 힘을 키워나갔다.

1.3 고구려-위 전쟁[편집]

위나라 시대 때 공손연이라는 자가 요동군을 장악해 위의 말을 듣지 않고 있었는데, 요동이 거슬리던 고구려와 요동에서의 행정력을 회복하려던 위나라가 연합을 하여 238년 요동을 공격하고 멸망시켰다.

하지만 위나라와 고구려의 관계는 급격히 쇠퇴하였는데, 결국 고구려 동천왕은 242년 위나라 휘하 요동을 침략하게 된다. 244년 위나라는 오한, 선비 등 온갓 병력을 동원해 역공했는데, 고구려는 처음에는 잘 싸우다가 2만명 군인 중 1만 8천명이나 죽는 등 개발살이 나버린다. 245년 위나라의 2차 침입 때는 아예 고구려 수도 국내성까지 함락당해 불에 타버린다. 259년 위나라가 3차 침입을 했지만 이번에는 별 성과를 보지 못하고 철수했다.

한편 이때 고구려는 거의 멸망 직전으로 몰아가 질 정도로 큰 타격을 받았으나, 70년 이내에 회복을 하게 된다.

1.4 회복과 지속된 팽창[편집]

4세기 무렵 중국은 오호십육국시대라는 희대의 혼란기에 휘말리게 되는데, 이를 틈타 고구려는 또다시 팽창기를 맞게 된다. 311년 고구려는 요동의 동쪽 일부에 있던 서안평을 점령하고, 313년에는 낙랑군, 314년에는 대방군을 멸하면서 한반도 북부의 주권을 쥐게 된다. 고구려는 압록강 유역에서 벗어나 남쪽으로 내려오며 대동강 유역까지 확보하고, 백제와 국경을 맞이하게 되는 등 팽창을 멈추지 않는다.

1.5 백제와의 마찰[편집]

4세기 초반에는 고구려와 백제 사이의 마찰이 잦았는데, 이 시기에는 백제가 거의 항상 우위에 있었다. 369년 고국원왕은 백제를 침공했는데, 오히려 근초고왕의 뛰어난 지휘력으로 고구려는 패배하고, 371년에는 백제의 역공으로 아예 고국원왕이 살해당하는 사태가 일어나 고구려가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이런 혼란을 바로잡기 위해 소수림왕은 중국 북부를 일시로 통일한 전진과 화친을 맺고 불교를 국교로 받아들이며 내부적인 안정화 정책을 실시하고 외세 동맹까지 확보하는 등 나름 고구려의 회복을 위해 노력하였다.

1.6 광개토대왕의 정복[편집]

4세기 말과 5세기 초에 걸쳐 고구려는 거의 영토가 두배 정도로 뻥튀기가 되는데, 광개토대왕의 정복 덕분이었다. 392년 광개토대왕은 백제를 침공하여 약화시키고, 396년에는 백제의 수도 위례성 (현재의 서울)을 포위하였지만 함락시키지는 못했다. 결국 백제 아신왕은 스스로 복속하는 안습한 상황에 처이게 된다. 400년에 백제-가야-왜 연맹이 신라를 공격하자 광개토왕은 신라를 지원해 백제-가야-왜 연합을 쳐부수고, 신라 역시 고구려에 복속하게 되며 가야 연맹체의 주가 되었던 금관가야국은 몰락하며 대가야가 그 자리를 메꾸게 된다. 이때 광개토대왕은 실실적인 3국통일을 이루었다고 볼 수 있는데, 백제, 신라, 가야가 하도 무력화되어서 거의 고구려의 속국 신세가 되었었다. 물론 이는 신라의 성장과 고구려의 혼란기로 인해 6세기 무렵 깨지게 되지만.

이렇게 한반도 대부분을 점령한 광개토대왕은 5세기 초 들어서 북쪽과 서쪽 정벌에 몰두하였는데, 402년에는 고구려를 주기적으로 도발하던 후연을 역관광 시켰다. 요동을 점령해 버리고 후연을 뿌리채 흔들어 결국 멸망하게 만든다. 광개토대왕 드라마 등의 영향으로 따라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후연은 고구려의 먹잇감이자 광개토대왕에게 개털린 안습한 국가로 기억한다.

광개토대왕은 이후 부여, 숙신, 거란, 읍루 등을 복속시키고, 전에는 그냥 속국 상태로 있었던 동예를 완전히 병합하였다. 광개토대왕은 한국 왕 처음으로 영락이라는 연호를 사용해 중국에 대등함을 알렸는데, 마침 중국에는 통일왕조도 없었던 지라 고구려가 웬만한 중국 국가들보다 강하거나 힘이 비슷하기도 했다. 이때부터 광개토왕-장수왕-문자명왕-안장왕까지 이어지는 고구려의 154년 전성기가 시작된다. 이 154년 중 장수왕 혼자 절반 이상인 78년이나 해먹었다!

1.7 장수왕과 전성기[편집]

413년에 장수왕이 즉위해 중국에 들어선 남북 왕조와 각각 친화를 맺었는데, 그 중 특히 북위와 친하였다. 427년에는 수도를 평양으로 옮겨 고구려의 발전의 기반을 놓았는데, 이에 위협감을 느낀 백제와 신라는 6세기 중반까지 유지될 동맹을 맺게 된다.

475년 장수왕 (아직도 살아 있었다!)은 또다시 백제를 침공하였는데, 이번에는 아예 위례성을 함락시켰고, 백제 개로왕을 죽여서 고국원왕 때의 수모를 갚는 등 예전 고구려가 백제에게 당한 굴욕을 복수하는 데에 성공했다. 이래서 고구려는 요하강 (요동 정벌), 쑹화강 (부여 정벌), 압록강, 두만강, 대동강, 그리고 한강 유역까지 지배하게 된다.

또 정확한 연도는 전해지지 않지만 장수왕 집권 안에 고구려의 국호가 고려로 바뀌는데, 요즘에는 이걸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

1.8 혼란기와 쇠퇴기[편집]

4세기 말과 6세기 중반까지 지속되던 전성기는 점차 끝나가고, 양원왕 즉위 시절에는 왕위를 두고 다툼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런 혼란을 틈타 백제와 신라는 복수의 기회를 찾게 된다.

548년 고구려는 백제를 침공하지만, 그 사이 눈에 띄게 발전한 신라의 지원으로 실패하고, 550년에는 오희려 백제에게 영토를 상실한다. 고구려는 백제에게 반격을 가할려고 하지만, 고구려군이 백제에 가 있는 동안 신라군이 기습 공격을 해서 성을 더 함락당하고, 551년에는 백제-신라 연합이 한강을 빼았아 버린다. 이때 원래 백제와 신라는 한강 유역을 나눠 가지기로 약속했으나, 신라는 백제의 뒤통수를 치고 백제를 공격해 한강 유역 전체를 차지해 버린다. 이렇게 해서 신라는 엄청난 발전의 발판을 마련하고, 고구려는 쇠퇴기에 접어든다. 한편 백제는 완전히 개판이 되버린다.

신라의 배신에 분노한 백제는 다시 고구려와 접근을 하는데, 고구려와 백제 양국은 서로 전쟁을 하지 않을 정도의 중립적 관계지 서로에게 군사력을 지원해 줄 정도의 우호 관계는 아니었다. 하지만 둘이 가지고 있던 공통점이라는 것은 신라에게 엄청나게 적대적이었다는 것인데, 이에 따라 신라는 친한 세력을 위해 중국으로 눈을 돌리게 된다.

1.9 수나라와의 전쟁[편집]

수나라가 수세기만에 중국 대륙을 통일하고 고구려에게 복속을 요청하나, 고구려는 이를 거부한다. 598년에 수나라는 고구려에 1차 침입을 가하지만 고구려 군대에게 크게 패하고 퇴각한다.

612년 수나라는 한사군을 되찾기 위해서 고구려를 다시 공격하는데, 육군은 요동으로 보내고 해군은 평양으로 보냈다. 하지만 양쪽 모두 격파당하고, 멘붕한 수나라는 군사력을 할 수 있을만큼 총동원해 다시 공격하지만, 을지문덕 장군의 유명한 살수대첩으로 수나라 원정대는 거의 전멸해 버리고, 이 전쟁으로 군사력을 거의 다 손실해 버린 수나라는 망해버린다. 하지만 고구려 역시 피해는 엄청났고, 고구려는 점점 망국의 징조를 보이게 된다.

이렇게 중국 통일 왕조의 힘을 맛본 뒤 불안해진 고구려는 동맹을 찾으려고 노력해 보지만, 결국 외세에서의 도움은 찾지 못하게 된다. 위에 서술했듯이 백제와는 우호관계가 아니었고, 와도 적대적 관계였다. 신라는 수나라와 화친을 맺었고 백제는 왜와 전통적으로 친했는데, 고구려는 이에 따라 돌궐을 끌어드릴려고 했지만 돌궐은 중국을 두려워 하여 중국과 적대적인 고구려와 화친을 맺기를 꺼려했다. 631년에는 아예 돌궐이 당나라에게 망해버렸다. 사실 동맹이라고 하는 세력 중에 말갈은 있었으나, 말갈이 당시 그렇게 강했던 것도 아니라...

1.10 당나라와의 대립, 나당연합 및 멸망[편집]

고구려는 당나라와의 충돌을 우려하여 천리장성을 쌓았다. 642년에는 연개소문이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하고 다시 고구려를 강국으로 키우려고 시도하였으나, 이에 648년에는 당나라와 신라가 나당연합을 결성한다.

645년 당나라는 고구려에게 제1차 침입을 가하였다. 당나라는 요동 반도와 요하 유역을 일시적으로 정벌하였으나, 곧 고구려군에게 격퇴당하고 쫓겨나 별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하지만 당나라는 소모전으로 고구려를 압박해 왔고, 당나라에 비해 병력과 자원이 딸리는 고구려는 점점 벅차올 수밖에 없었다. 앞서 신라에게 한강을 잃은 것도 큰 요인이었는데, 대부분의 식량이 한강에서 생산되었던 것이었다.

이렇게 고구려는 힘들게 전쟁을 지속하고 있었는데, 마침 날씨 악화로 인해 당나라는 철수했다. 하지만 이 전쟁은 고구려에게 막강한 피해를 입혔고, 백성들의 생활은 악화되고 국력은 동강이 나는 등 고구려의 당시 상태는 말이 아니었다. 647, 648년에는 당나라가 고구려의 서쪽 국경 지대를 약탈하는 것을 일삼고, 이런 상황을 잘 알고 있던 당 태종은 곧 전쟁을 재개할려고 하였으나, 649년 그가 죽어버리자 일시적으로 계획이 보류되었다. 하지만 즉위한 당 고종은 고구려 침공을 또다시 꾀하였다.

650년 김춘추선덕여왕당 고종에게 접근하였고, 이로써 당과 신라의 연합은 확정되었다. 이를 견제한 백제는 653년 [[왜]와 확실한 군사 동맹을 맺었고, 654년에는 태종 무열왕이 신라에서 즉위하여 역사는 삼국통일전쟁을 향해 다가가게 되었다.

660년 나당연합이 백제를 침공하면서 삼국통일전쟁은 드디어 시작하였다. 백제의 수도 사비성이 함락당하고, 660년 7월 18일 의자왕이 웅진에서 항복하면서 백제는 멸망해 버렸다. 이때 당나라는 신라를 협박하여 백제 전체를 자국 땅으로 편입하였는데, 이는 후에 나당전쟁이 터지는 계기가 된다. 아무쪼록 전쟁 시작한지 반년도 안되어 힘없이 몰락해 버린 백제는 고구려에게는 충격이었고, 백제도, 돌궐도 없고 외교적으로 고립된 고구려는 이미 망할 운명이었다.

661년에 350,000명의 당군이 고구려를 침공하였는데, 이때 신라는 당에 의해 군사적인 지원은 하지 못하고 무기 및 식량만 공급하도록 되었는데, 이는 당연히 당나라가 고구려를 혼자서 먹으려는 계략이었다. 당나라는 약해져 버린 고구려의 방어선을 뚫고 평양에 도달해 포위하였는데, 이는 662년 2월까지 지속되었다. 역시 악화된 날씨로 당나라군은 일단 철수하였다.

이 후 고구려와 당은 별 결과 없이 계속 싸움을 진행하였는데, 666년 연개소문이 사망하자 그의 아들들은 정권 장악을 위해 세력다툼이나 하였고, 이는 고구려 정부까지 더 개판으로 만들어 고구려 생존의 마지막 희망까지 말아먹었다. 이를 놓치지 않은 당은 668년 평양의 포위 공격을 재개하였고, 신라군까지 합류하면서 평양은 결국 함락당하였다. 이때 평양 주민 200,000명이 장안으로 끌려갔다.

1.11 이후[편집]

당은 고구려의 옛 땅을 통치하기 위해 안동도호부를 설치하였는데, 처음에는 평양 부근에 있었으나 나당전쟁때 당나라군이 한반도에서 철수한 후 676년 요동으로 옮겼다. 이때 고구려의 마지막 왕 보장왕을 "조선왕"으로 책봉하여 안동도호부를 통치하게 하였는데, 보장왕은 계속 항쟁을 하다가 결국 681년 쫓겨났다. 이 안동도호부는 756년 또는 699년에 사라졌는데, 이 때 소고구려가 들어서면서 고구려 토착민들이 820년까지 요동을 통치했었다.

한편 고구려의 장군 걸걸중상과 그의 아들 대조영은 고구려 부흥 왕국을 꿈꾸며 당나라와 맞서 싸웠는데, 이때 말갈 지도자 걸사비우도 합류하였다. 결국 걸걸중상과 걸사비우는 당에게 죽고 대조영만 남았는데, 그는 고구려와 말갈 유민을 이끌고 동모산에서 발해를 건국하였다. 이 발해는 일본에게 자신을 고(구)려라고 소개하는 등 고구려 계승의식이 강했고, 850년 이전에 이미 고구려 영토 대부분과 연해주를 장악하게 되었다. 앞서 말한 소고구려는 820년 발해에게 흡수되었다.

그리고 901년에는 궁예후고구려를 건국하고 (후고구려의 국호도 원래는 고려였었다), 918년에 왕건이 후고구려를 고려로 바꾸고 936년에는 후백제를 멸망시켜 후삼국을 통일하면서 한반도에는 고구려를 계승한 통일왕조가 들어서게 된다.

2 역대 국왕[편집]

3 각주


한국사의 시대 구분
선사시대
구석기 · 신석기 · 청동기
상고시대
고조선(단군 · 위만) ·
원삼국시대
부여 · 옥저 · 동예
마한 · 변한 · 진한
삼국시대
고구려 · 백제 · 신라 · 가야
남북국시대
발해 · 신라
후삼국시대
태봉 · 후백제 · 신라
고려 조선 대한제국 일제강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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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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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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