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엄 크래커

Caeruleum (토론 | 기여)님의 2022년 7월 18일 (월) 16:30 판 (→‎top)

개요

전립분(통밀가루의 일종)으로 이루어진 사각형의 크래커. 1829년 미국 뉴저지 주에서 만들어졌다. 실베스터 그레이엄(Sylvester Graham)이 발명했으며 그의 이름을 따 그레이엄 크래커라고 부른다. 그레이엄은 그레이엄 식이법이라 불리는 자신의 식이법을 주창하면서 그 일환으로 이걸 추천했다. 사람들이 검소한 식생활로 절제된 삶을 살게 하기 위해...였는데 어째 성욕 억제를 목적으로 만들어졌다는 말만 심심찮게 나온다. 물론 이게 또 맞는 말이라는게 함정.

현대의 그레이엄 크래커는 상업화를 거쳐 본래의 형태와는 큰 차이를 보인다. 주로 설탕, 시나몬이 첨가되는 경향이 있다. 미국에서 그레이엄 크래커는 작은 슈퍼마켓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대중적인 과자다.

만들어진 배경

그레이엄 크래커가 만들어진 시기는 미국에서 이른바 건강한 음식을 내세우는 보건운동이 시작되었던 시기와 일치한다. 운동가들은 사람의 건강을 의학에 의존하는게 아닌 자가치유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대중들이 자신의 몸과 식습관에 대해 별다른 지식이 없다는 점을 우려했다. 그래서 그들은 대대적인 계몽운동을 통해 사람들을 일깨우고자 했다. 이 운동의 중심에는 코네티컷 주의 장로교 목사, 실베스터 그레이엄이 있었다.

실베스터 그레이엄은 보건운동가였다. 또한 금욕주의자이기도 했다. 그는 인간이 스스로 불필요한 욕구를 억제하며 이를 생활화해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레이엄은 신앙에서 많은 답을 얻어 자신의 사상을 구축했다. 이건 그레이엄이 유별난 게 아니라 그 당시 사회운동가들, 이를테면 노예제 폐지론자들이나 보건운동가들은 종교에 그들이 찾는 길이 있다고 여겼다. 사람들의 동조를 얻는 것에 '예수의 가르침을 따르라'라는 말보다 효과적인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미국 보건운동의 역사는 독실한 신앙이 밑바탕이 되었다.[1] 목사까지 맡았던 그가 보건운동의 중심에 선 것이 이러한 풍조와 연관성이 있음은 자명했다.

실베스터 그레이엄은 채식, 금주, 금욕 등을 주장했다. 그 중 금욕은 그가 주창한 식이법의 기저가 되었다. 그레이엄은 금욕주의자답게 강한 충동과 자극은 몸에 해롭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즐거운 성생활에 사정없이 딴지를 걸었다. 이를테면 성관계는 한달에 단 한번만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던가. 더불어 그레이엄은 자위에 대해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행위라며 강하게 반대하는 사람이었다. 성행위는 쓸데없이 에너지 소비가 크고, 몸의 균형을 깨뜨리며, 스스로의 정신을 망가뜨린다는 것이다. 종교인인 그에게 그런 문란한 행위는 '악'이었다.[2]

그의 식이법에 자극적인 향신료같은 건 일체 존재하지 않았다. 또한 그레이엄은 , 흰 밀가루와 같은 정제된 곡물, 설탕, 고기, 커피, 등을 혐오했다. 참고로 그가 육식을 부정적으로 본다고 해서 동물 복지니 고통이니 하는 주장과 연관되어 있는 건 아니다. 그레이엄은 말그대로 '몸을 고양시키는' 어떠한 음식도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그런 '나쁜 식품'을 먹을수록 성욕을 포함한 몸의 욕구와 충동을 제어하기 힘들어 진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술이나 커피, 차를 마시는 걸 부정적으로 받아들인 것도 같은 맥락. 대량생산되는 정제 곡물이나 빵은 가공되는 과정에서 자연적인 영양분이 파괴된다고 여겼다. 더불어 공정 중 해로운 첨가물이 들어가서 싫어했다. 당시 표백을 위해 명반이나 회반죽, 백악 등을 추가하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3] 그는 이러한 이유로 이나 과자는 가정에서 직접 만들어 먹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레이엄은 검소한 식습관, 특히 섬유질을 다량 함유한 음식들을 통해 자신의 욕망을 절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모든 사람들이 자연 그대로 채소나 물, 통곡물같은 걸 먹으며 살길 희망했다. 그래야 몸을 혹사시키지 않고 편안하게, 자신에게 주어진 일생을 보내는 게 가능하다고 여겼다. 반면 '나쁜 식품'들은 몸의 균형을 어그러뜨리며 사람을 쇠약하게 만들 뿐이었다. 그는 자신의 식이법을 통해 사람들에게 (이후 전립분, 그레이엄 밀가루라 불리는)통밀가루로 만든 빵이나 크래커를 추천했다. 이게 바로 그레이엄 브레드, 그레이엄 크래커다.

상업화

그레이엄의 주장에 깊이 공감하는 이들은 그의 '숭고한 의도'에 따라 그레이엄 크래커를 대했다. 맛보다는 식단 조절과 건강을 우선시한 식품으로 여긴 것이다. 따라서 초기 그레이엄 크래커는 '건강식'으로 소개되었으며 또 그렇게 판매되었다. 다만 모든 사람들이 몸의 균형이나 자위 금지같은 생각을 하며 이걸 먹지는 않았다. 의도가 어떻든 그레이엄 크래커는 그저 '맛있는 크래커'로도 인기를 누렸다.

그레이엄 크래커의 산업화는 1850년대 러셀 대처 트랄(Russell Thacher Trall)이 처음 추진한 것으로 추정된다.[4] 그는 그레이엄의 추종자이자 보건운동가였다. 따라서 기본 재료 등이 크게 바뀌거나 하는 일은 없었으며, 이렇게 생산된 그레이엄 크래커는 그레이엄 식이법을 따르는 이들에 의해 주로 소비되었다. 19세기에는 전반적으로 그레이엄 크래커가 공산품으로 나오는 일이 드물었다. 상업활동은 일반 제과점을 중심으로 진행됐다.

1942년 나비스코 제품 광고

시장 구도가 공산품 중심으로 바뀌는 시기는 19세기 끝무렵이었다. 바로 미국의 거대 제과업체 내셔널 비스킷 컴퍼니(오늘날의 나비스코(Nabisco))가 1898년 상품 생산에 뛰어든 것이다. 나비스코의 제품은 시장에서 기폭제 역할을 톡톡히 수행했다. 그레이엄 크래커는 전국으로 확산됐고, 더불어 본격적인 상업화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다. 그리고 1925년, 허니 메이드에서 꿀을 첨가한 제품을 출시한다.[3] 본래의 시각으로 따지자면 그레이엄 크래커의 정체성을 '변질'시킨 흉악한 물건이나...... 일반 대중들이 맛있는 크래커를 마다할 리 없다. 허니 메이드의 제품은 큰 인기를 끌며 그레이엄 크래커를 변화시키는 데 일조했다.

아마 그레이엄 본인이 이런 시판 제품들을 본다면 저건 가짜라며 펄펄 뛰었을 것이다. 제품이 대량생산 공정을 거치면서(혹은 대중의 요구나 금전적인 문제에 맞물려), 발명한 당사자가 혐오했던 것들이 '그레이엄 크래커'에 첨가되기 시작했다. 상업화된 제품의 주재료는 당연하게도 통밀가루이나 때때로 정제·표백한 밀가루를 사용하기도 한다. 단맛을 위해서는 주로 정제당을 추가한다. 그 외에 쓰이는 감미료는 포도당이나 당밀, 꿀, 고과당 시럽이 있다. 제조 과정의 용이성을 위해 대두유에서 추출한 레시틴을 넣기도 하며 베이킹 소다같은 화학적 팽창제도 거의 필수요소가 되었다. 또한 주재료 중 하나로 유지류가 있다. 대두유나 면실유로 이루어진 쇼트닝이 주로 쓰이는데 이런 유지류가 가진 고유의 풍미는 공정 중 대부분 사라지게 된다. 이 외에도 버터나 부분경화유(PHO, 인공 트랜스 지방의 주원료)를 사용하기도 한다.[5] 다만 부분경화유는 2015년 미국 식품업계에서 완전 퇴출 결정이 내려진 상태라 앞으로는 첨가될 일이 없다.[6]

현대의 그레이엄 크래커

상업화의 흐름을 타고 현대의 그레이엄 크래커는 두 갈래로 나눠졌다. 하나는 달달한 과자, 다른 하나는 웰빙 식품.

시판 상품과 '과자는 맛있으면 그만'이라는 대범한 생각을 가진 이들로 인해, 일반적인 그레이엄 크래커는 설탕이 함유된 쿠키에 가깝다. 변화한 조리법에서 눈에 띄는 건 단연 설탕과 꿀. 당밀이 들어가는 경우도 많다. 더불어 시나몬, 바닐라 에센스 등의 향신료를 넣기도 하고 초콜릿을 반죽을 추가하거나 크래커 겉면에 덮어 씌우기도 한다. 심지어 그레이엄 크래커는 칼로리 폭탄이라는 스모어의 주재료 중 하나다. 비아그라가 따로없네 그레이엄이 봤으면 기함했을 형태로 냠냠 먹는 중.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레이엄의 뜻을 존중하는 사람들이 있다. 특히 현대의 '건강 중시' 트랜드를 따르는 사람들이 그렇다. '건강한 음식'을 강조하는 풍조는 19세기보다 더 강해졌고, 통곡물 식품은 변함없이 건강식으로 각광받고 있다. 그래서 이들은 위와 같은 변질된새로운 조리법은 아예 배제하고 '오리지널 그레이엄 크래커'의 조리법을 고수하곤 한다.



그레이엄 크래커는 과자집을 만드는 데 자주 쓰인다. 잘게 부숴서 파이지 재료로 삼을 때도 많다. 후자의 경우 미국에서 아예 시판 제품으로도 나왔다.[7] 파이지를 완성된 형태로 판매하는 상품이며 파이를 만들 때 들이는 시간이 단축된다는 걸 강조했다.

그레이엄 웨이퍼라는 말도 있는데 그레이엄 크래커의 동의어다. 대표적으로 영문 위키백과에서 그렇게 설명하고 있다. 다만 처음부터 동일했던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19세기의 요리책인 The Woman Suffrage Cook Book에서는 둘의 레시피를 구별하고 있다.[8] 조리법에 따르면 그레이엄 크래커는 담백하게, 그레이엄 웨이퍼는 달달하게 만든다. 그런데 현대의 그레이엄 크래커에 설탕 등이 필수요소가 되면서 구분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따라서 얄짤없이 동의어 취급.

미국에서는 보편화된 과자지만 한국에서는 아직 생소한 편이다. 2015년 기준으로 국내 제과업체가 상품화한 사례는 전무하다. 소비자들은 그레이엄 크래커를 주로 수입된 제품으로 접하며, 웰빙 식품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여담

  • 여러모로 영국다이제스티브와 대응하는 모양이다. 통밀가루로 만들고,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고, 대중적인 과자라는 점에서 그렇다.[9]
  • 그레이엄의 주장은 수많은 추종자를 낳았다. 이들을 일컫는 Grahamites라는 단어가 생길 정도였다. 건강 식이법의 선구자라 불리는 사람이니, 그의 사상이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영향을 미치게 된 건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인지 그레이엄 크래커처럼 '사실은 자위억제용이더라'하는 음식이 또 생겼다! 바로 켈로그의 콘플레이크가 그 주인공이다. 켈로그가 그레이엄의 사상에 푹 빠진 채로 이걸 만들었기 때문인데, 덕분에 콘플레이크를 즐기는 현대인들은 작은 이야깃거리를 그리고 찝찝함을 얻게 되었다.
  • 추종자가 있으면 안티도 있는 법. 위의 '배경'항목에서 드러난 것처럼 그레이엄은 급진적인 주장을 하는 사람이었다. 따라서 그의 주장은 자주 논란에 휘말렸으며 안티들에 의해 '미친놈' 취급도 받았다. 특히 그레이엄이 반대했던 것들, 고기나 상품화된 빵 등에 관한 업종 종사자들은 강한 적대감을 품었다. 돈줄이 끊어지게 생겼으니 싫어할 수밖에. 그레이엄은 보스턴에서 매출 감소로 화가 난 정육업자와 제빵사들의 공격을 받은 적이 있다.
  • 초콜릿으로 덮인 그레이엄 크래커는 1929년 나비스코에 의해 처음 만들어졌다. 그레이엄 입장에서는 주적일 듯.
  • 사실 그레이엄 밀가루와 그레이엄 브레드, 그레이엄 크래커(웨이퍼)만 있는게 아니다. 그레이엄 머핀도 있고 그레이엄 푸딩도 있으며 그레이엄 포리지도 있다! 무서운건 이것들 말고도 더 존재한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보건운동가가 아니라 브랜드 이름으로 인식할지도 모른다.

관련 문서

각주

  1. 2012.08.01 에세이 Purity Through Food: How Religious Ideas Sell Diets Religious Aspects of the Health Food Movement
  2. 18세기와 19세기 유럽에서 자위는 말그대로 '병'취급 받았다. 자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고대때부터 이어져 왔으나 18세기 사무엘 티쏘의 오나니즘같은 책을 통해 본격적으로 구체화된 것이다. 자위는 몸과 마음을 오염시키고, 질병을 일으키며, 끝내 죽음에까지 이를 수 있는 부정적인 행위였다. 그리고 유럽의 거부감은 미국에 그대로 전해진다. 청교도적인 사상이 팽배했던 미국인들은 자위행위에 대한 욕구를 '사탄의 유혹'으로 낙인찍었다.
  3. 3.0 3.1 The Strange and Sexual History of the Graham Cracker
  4. 출처 The Oxford Encyclopedia of Food and Drink in America, Andrew F. Smith [Oxford University Press:New York] 2013 volume 2 (p.572)
  5. The True Graham Cracker How products are made - Graham cracker
  6. 美 FDA, ‘트랜스지방 퇴출’ 결정…쿠메로 박사 “과학이 승리했다” 2015-06-17 동아일보
  7. 1966년 광고
  8. 출처
  9. The True Graham Crack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