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빵

Japanese Hardtack Kanpan.jpg

개요[편집 | 원본 편집]

이 문서에서는 국내의 '작은 건빵' 뿐만이 아니라 타국의 건빵도 다루고 있다.

건빵은 수분을 최대한 줄여 보존성을 높인 비스킷이다. 군대 뿐만 아니라 보존식품이 필요한 경우라면 빈번하게 등장한다. 고대부터 먹어왔던 식품이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긴 시간동안 조리법의 변화가 거의 없었다. 건빵은 세계 각국에서 요긴하게 써먹곤 했는데 대표적인 예시로 쉽비스킷하드택이 있다.

용어[편집 | 원본 편집]

  •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 하드택 (hardtack, hard tack, hard-tack) ↔ 소프트택 (soft tack, 일반적인 빵)
    • 파일럿 브레드 (pilot bread)
    • 씨 비스킷 (sea(-)biscuit)
    • 쉽 비스킷 (ship('s) biscuit)
    • 하드 브레드 (hard bread)
    • 쉽 브레드 (ship bread)
    • 캐빈 브레드 (cabin bread)
    • 크래커 (또는 하드크래커. 미국에서의 명칭)
  • 한국에서 흔히 접하는 작은 건빵은 일본에서 개량한 형태라 japanese hardtack, 또는 kanpan이라 지칭한다.
  • 흔히 육군의 하드택, 해군의 쉽비스킷이라 하는데 이름만 다를 뿐 형태는 별 차이가 없다.
  • 한이 서린 별명도 있다.
    • 개 비스킷 (dog biscuit)
    • 치아 분쇄기 (tooth dullers)
    • 어금니 파괴자 (molar breakers)
    • 철판 (sheet iron)
    • 벌레의 성 (worm castles)

역사[편집 | 원본 편집]

초기 기록과 전파[편집 | 원본 편집]

비스킷은 제분과 제빵 기술이 발달하기 시작한 시기부터 등장한다. 허술한 조리 기구와 초보적인 기술은 부드러운 빵이 아니라 오히려 비스킷같은 식품을 만드는데 적합했다. 신석기 시대에 기원한 이 소박한 음식은 인류가 문명을 이룬 이후에도 줄곧 만들어지며 발전해 갔다.

고대인들은 긴 여행과 항해, 군대의 원정에 도움이 될 법한 식량을 원했다. 일반적인 은 너무나도 쉽게 상했고 운반성도 좋지 않았으며, 긴급한 상황에 빠르게 만들어 먹을 만한 음식이 아니었다. 그리하여 보존성과 편의성을 강화한 식품이 생겨나게 되었다. 오늘날 건빵이라 부르는 종류가 탄생한 것이다. 곡물로만 만드는 이 간단한 음식은 두번 굽고 말리는 과정으로 인해 매우 딱딱했고 건조했다. 그래서 맛은 기대할 수 없더라도 갖고 다니기는 편리했다. 또한 보존성이 무식하게 좋은 까닭에 대단히 실용적이었다. 더불어 건빵은 인간에게 적절한 영양분을 제공해 주었다. 곡물로 만들어진 식품을 걱정없이 편히 들고 다닐 수 있다는 건 좋은 장점이었다.

건빵의 원형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이집트에서 나왔다. 해양 민족과 한창 싸우던 람세스 2세의 시대였다.[1] 이집트 선원들은 dhourra cake라는걸 배에 싣고 다녔다. 이 식품은 딱딱하나 부서지기는 쉬운, 기장으로 만든 납작한 빵이었다. 그리고 비슷한 식품에 대한 기록은 천년 뒤 로마의 시대에 다시 나타난다. 로마에서는 건빵류 비스킷의 유용성에 대해 잘 알았던 모양이다. 대표적으로 로마의 군인이자 관료였던 대 플리니우스가 이런 식품에 대해 대단히 오래 갈 것이라 평한 바가 있다. 따라서 건빵은 로마군에 적극적으로 도입되었으며 빠르게 만들어 먹을 수 있다는 점으로 인해 행군 중 전투식량으로 쓰였다. 사실상 건빵의 활용법이 이 시기 확립된 셈이다. 이런류의 비스킷은 대략 panis militaris, panis biscoctus 정도로 불렸다. 후자의 명칭을 설명하면 '두번 굽는(bis coctus) 빵(panis)'이란 뜻인데, 왜 이런 이름이 붙었는지는 위에 언급한 조리법으로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여기서 나온 biscoctus가 바로 현대 영어 단어 biscuit의 어원이다.) 로마군에서 먹던 비스킷의 예로는 buccellum이 있으며 당시 작성된 요리책 아피키우스(Apicius)에서 조리법을 찾을 수 있다.[2]

곱게 간 밀가루로 만든 걸쭉한 페이스트를 끓이고, 접시에 펼친다. 페이스트가 마르고 딱딱해지면 이를 조각내어 바삭해질 때까지 튀긴다. 이후 꿀과 후추와 함께 제공한다.[3]
Apicius

로마 시대 이후 이런 비스킷이 역사적 기록에 다시 등장한 시기는 십자군 전쟁 때였다. 잉글랜드의 리처드 1세가 3차 십자군 원정(1189-1192) 이후 모슬린 비스킷과 함께 귀환한 것이다. 모슬린 비스킷은 보리, 호밀가루 혼합물로 만든 하드 비스킷이었다. 그렇게 중동의 조리법은 북부 유럽으로 유입되게 된다.

선상의 비스킷[편집 | 원본 편집]

유럽에서 건빵류 비스킷은 군이나 항해, 장기 여행의 필수품으로 요긴하게 쓰였다. 대표적인 예시로는 그 악명높은유명한 쉽비스킷이 있다. 쉽비스킷은 점차 항해 기간이 길어지던 15세기부터 조명받기 시작하여, 19세기 중반까지 선원들의 식단에서 큰 비중을 차지했고, 심지어 20세기까지도 계속 활용되었다. 이렇게 사랑받아온(...) 이유로는 일단 당시 배의 시설이 매우 열악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그러니까 좋아서 먹는 게 아니다 선박, 특히 조리실도 제대로 갖추기 힘든 작은 선박에서는 요리하는 것에 많은 제약이 뒤따랐다. 게다가 요리재료를 장기간 보관하는 것도 매우 힘들었다. 식품의 부패를 막기 위한 기술이 없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문제가 있다면사실 다 문제지만 본래 식단에서 큰 비중을 차지했던 '곡물', 즉 을 선원들에게 안정적으로 공급할 만한 방도가 없었다. 빵은 조리 시간이 길었고 여러 요건상 대량 생산을 하기 힘들었다.(시도라도 하려면 오븐이 다수 필요했다.) 게다가 만들었다 한들 며칠만에 쉽게 부패했다. 모든 배가 짧은 항해만 했다면 중간 중간 멈춰서 빵이든 재료든 잔뜩 사들이는 걸로 어떻게든 커버가 되겠으나, 이 시기 유럽은 대항해시대였다. 그러니까 '장기간 항해를 하는' '선박에서' 육지에서처럼 빵을 주식으로 삼는다는 건 너무나도 비효율적이었다. 이때 딱 적절한 대체제로 강렬하게 어필한 식품이 바로 쉽비스킷이었던 것이다.

이 비스킷은 위에서 누누이 언급됐듯 절륜한 보존성을 자랑했다. 그리고 쓰이는 재료는 단촐했으며 별다른 조리 기술도 필요없었다. 이게 얼마나 간단했냐면 재료는 달랑 물과 밀가루였고 소금은 종종 추가되는 정도였다. 밀가루와 물로 만든 반죽은 부드러워질 때까지 주무르고, 펼치고, 조각내고(아래 영상처럼 먼저 조각내기도 한다), 삐죽한 송곳이나 쇠꼬챙이를 써서 일정 간격으로 구멍을 뚫었다. 이 구멍은 비스킷 모양을 균일하게 유지시키며 건조시킬 때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한다. 그 다음에는 굽고 식히고 하면서 비스킷의 수분기를 최대한 빼는데, 상술했듯 바로 이 과정이 건빵의 수명을 늘리는 방법이었다. 그래서 두번 굽는다는 이름값을 초월해 최대 4번까지 구워내기도 했다. 어쨌든 이토록 단순한 조리법이다보니 빠른 시간 내에 만들 수 있었고 대량 생산에 적합했다. 빵에 비해 훨씬 효율적이었던 셈이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값이 쌌다.

  • 아래 영상은 18세기 방식대로 쉽비스킷을 굽는 과정이다. 시대가 흘러도 조리법에 큰 차이가 없었으니 그 이전에도 이런 방식으로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동영상 앞쪽에서 대략적인 배경 설명같은걸 하는데, 조리 부분만 보고 싶다면 4분 30초부터 재생하면 된다.


영국 해군에서는 쉽비스킷을 크게 두 가지 방법으로 조달했다. 민간업체에 발주하거나 뎃퍼드(Deptford), 포츠머스(Portsmouth), 플리머스(Plymouth)에 위치해있던 군수부 식량과(Victualling Commissioners)에서 생산을 담당하는 방식이었다. 군수부에서 주관하여 생산하는 건 매우 크고 아름다운 규모를 자랑했으며 가령 뎃퍼드의 기지창에서는 하루에 무려 25,000파운드(11,339.8kg)의 비스킷을 뿜어댔다. 나중에는 세 지역에서 생산하는 양으로도 부족했는지 해외에 위치한 기지창에서 비스킷을 들여오기도 했다.[4]

해군에서는 납품받는 쉽비스킷의 무게에 제한을 걸었는데 일단 각 비스킷은 적어도 91g은 나가야 했다. 더불어 비스킷들이 담긴 자루는 하나당 112파운드(hundredweight, 50.8kg)가 되야 한다고 정해졌다. 당시 비스킷 생산업자들이 상품을 해군이나 민간 선박에 전달할 때 자루나 통에 담아 보냈기 때문이다. 꼼수를 막기 위한 나름의 조치였으나...... 이 때 일부 제빵사들이 비스킷에 톱밥을 섞어서 중량을 맞췄다는 얘기가 도는 걸 보면 비양심업자를 완전히 막지는 못했던 모양이다.

한편 비스킷의 모양에는 딱히 제한이 없었다. 쉽비스킷은 위 동영상처럼 원형이거나 사각형, 육각형, 또는 팔각형이었다. 초기 형태는 보통 사각형이었으나 이후 원형 비스킷이 생산되었고, 후자의 경우 지름 12.7cm(5인치)에 두께 1.27cm(0.5인치)의 크기로 만들어졌다. 육각형의 형태는 이후 1829년, 토마스 그랜트(Thomas Grant)에 의해 쉽비스킷 생산 방식이 기계화되면서 보편화되었다.[5] 어떤 모양으로 만들어 졌든 쉽비스킷 한가운데에는 정부 소유물이라면 항상 찍어대는 굵은 화살촉 도장(broad arrow)과 어디서 만들어졌다는 글자 또는 표식이 떡하니 박혀 있었다.[4]

실상[편집 | 원본 편집]

만들어진 비스킷은 잘만 보관하면 몇 달, 심지어 몇 년은 끄떡없었다. 문제는 당시 배에 적절한 저장 시설이나 배수, 환기 시설같은 게 갖춰져 있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래서 선박에 보관해둔 비스킷은 들이 열심히 갉아먹거나 바구미에 감염되는 일이 매우 흔했다. 쥐가 파먹는 건 그렇다쳐도 비스킷 속 바글바글한 벌레들은 먹는 사람에겐 고역이었다. 때문에 선원들은 쉽비스킷을 먹기 전 벌레가 좀 빠지도록 식탁에 몇 번 두드리는게 습관처럼 굳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런 방식이 만능은 아니었다. 선원들은 미처 탈출을 못한 바구미들을 같이 씹어먹는 일이 빈번했다. 당시 기록에 의하면 바구미가 많은 비스킷은 쓴맛이 났다고 한다.[6] 가끔 비스킷 틈 사이 흰 몸체에 검은 머리를 가진 큼직한 애벌레들이 득시글하는 모습을 목격할 수도 있었다. 기온이 따뜻할수록 출몰 빈도는 높았다. 사람들은 비스킷 속 벌레의 생애주기를 통해 변질 정도를 가늠하곤 했는데, 유충들이 발견된다면 그 비스킷은 부패하기 시작했다는 의미였다. 통통한 애벌레들은 식감은 둘째치고 상당히 차가워서 먹을 때마다 목구멍이 시원해지는 느낌을 주었다. 벌레를 먹었다고 알아차리게 만드는 건 덤이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애벌레 자체가 쓴맛을 내지는 않았다는 점이다.[7] 물론 그대로 벌래째 씹어먹는 게 영양상 좋기야 하겠지만, 그들은 이미 벽돌같은 비스킷만으로도 충분한 희생을 치르고 있었다.

쉽비스킷은 매우 딱딱했다. 구운지 얼마 안 된 비스킷은 그나마 괜찮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화석처럼 굳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쉽비스킷을 먹을 때는 우선 식탁 모서리에 내려치거나, 음료나 스튜에 잠수시켜서 불어터지길 기원하거나, 이나 망치로 조각냈다.도구부터 비범하다 일단 씹는다는 행위는 음식에 이가 들어가야 가능한 일이라 그랬다. 비스킷을 부술 때는 우선 비스킷을 자루에 넣거나 옷에 둥글게 말아 감쌌고, 입구를 봉인한 뒤 그 다음에 망치든 뭐든 내려쳤다. 이는 비스킷 조각이 사방으로 흩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강하게 박살낸 쉽비스킷은 가루처럼 부서져 내렸는데 그래서 가끔 먼지라는 별칭으로 불렸다. 참고로 언급된 비스킷의 강도에는 이견이 있다. 매우 오래된 비스킷은 힘없이 부스러졌다는 설명이나 비스킷 안에 든 바구미들이 열심히 갉아먹어준 덕분에 강도가 약화되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존재한다. 좋은건가

당시 식단을 재현한 사진.
염장고기와 쉽비스킷, 보리, 콩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조각난 쉽비스킷은 음료에 적셔 그나마 먹기 쉽게 만든 뒤, 말린 콩같은 건야채, 염장고기와 함께 먹었다. 비스킷을 완전히 가루로 만들었다면 음료나 그레이비 소스, 수프, 또는 스튜에 그대로 말아먹거나 같이 넣고 끓여서 처럼 해먹었다. 이도 아니면 아예 염장고기+건야채+비스킷 부스러기 조합으로 럽스카우스(Lobscouse)라는 스튜를 만들기도 했다. 참고로 이 요리는 오늘날까지도 북부 유럽에서 먹어오고 있다. 스카우스(Scouse)라고 부르는데 원조와는 다르게 양고기소고기를 주재료로 삼는다.

벌레가 들끓는 비스킷으로 고통받는 건 범국가적인 일이었으나 17세기 네덜란드에서는 어떻게 하면 상황이 좀 나아질 수 있는지 알아챘다. 해결법은 바로 비스킷을 밀봉하여 보관하는 것이었다. 그 당시는 캔같은 보관용품이나 냉장시설이 발명되기 전이라, 식품을 보관하는 방식이 현대에 비해 대단히 허술했다. 그러니 쥐나 벌레들이 비스킷을 씹고 뜯고 맛보고 하는 일이 빈번하게 생긴 것이다. 더군다나 쉽비스킷의 긴 수명은 극도의 건조함 덕분인데, 식품보관실의 공기를 순환시키는 기존의 방법은 변화하는 외부 환경에 제대로 대처할 수 없었다. 따라서 비스킷이 자연히 습기를 머금는 일이 발생하곤 했다. 결국 이러한 이유로 변질된 비스킷이 본래의 맛을 빠르게 잃었고 불쌍한 선원들에게 미각테러를 선사해주었던 것이다.

네덜란드인들과 마찬가지로 미국 선원들은 이 문제의 원인을 일찍이 파악하고 있었다. 다만 희안한 건 미국도 알고 있던 사실이 영국 해군에는 무려 19세기 초까지 전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4] 알려주기 싫었나보다

조리법[편집 | 원본 편집]

  • 쉽비스킷을 생산할 당시 사용했던 밀가루는 제분 기술의 부족으로 인해 상당히 거칠었다. 그래서 현대식으로 정제된 밀가루로는 과거 쉽비스킷의 그 맛(?)을 재현해 내기 힘들다. 아래의 레시피에서 굳이 통밀가루로 만드는 건 이런 이유 때문이다.
  • 쉽비스킷 레시피[2]

재료
(덜 정제된) 통밀가루 1lb(453g), 소금 1/4oz(7.08g), 물


  1. 물과 통밀가루, 소금을 섞어 된반죽을 만든다.
  2. 삼십분간 휴지 과정을 거치고 반죽을 두껍게 펼친다.
  3. 반죽은 5개나 7개 정도로 조각낸다.[8]
  4. 420℉(215℃)의 오븐에 30분동안 굽는다.
  5. 굽고 꺼낸 비스킷은 따뜻하고 메마른 곳에 옮겨 딱딱해질 때까지 건조시킨다.

  • 디시인사이드 과자·빵 갤러리에 올라온 하드택 레시피
    • 하드택을 조리하는데 필요한 물품들 :
      • 소맥분 3컵
      • 소금 2 티스푼
      • 물 한컵
      • 믹싱 볼
      • 쿠키 시트
      • 식칼
      • 못이나 송곳, 젓가락(하드택에 구멍을 낼 뾰족한 도구)
    • 조리법:
      1. 오븐을 190도까지 예열시킨다.(섭씨 190도, 화씨 375도)
      2. 밀가루와 소금을 섞어준다.
      3. 물을 붓고 반죽이 손에 엉겨붙지 않을 때까지 천천히 저어준다.
      4. 롤링 핀으로 반죽을 납작한 정사각형의 모양으로 만든다. 두께는 1.3센티를 넘기지 말 것.
      5. 반죽을 9조각으로 자른다.
      6. 송곳 등을 이용해 구멍을 뚫어준다.(조각당 4X4 16개)
      7. 오븐에 넣어 30분간 굽는다.
      8. 오븐에서 꺼낸 뒤 뒤집어 30분간 더 굽는다.
      9. 오븐에서 꺼내 식힌다.

여담[편집 | 원본 편집]

  • 엄청나게 딱딱하다는 특징때문에 치아건강엔 엄청나게 안 좋다. 그래서 육포와 함께 죽으로 만들어 먹는 경우도 많았으며 차나 커피에 뿔려먹기도 했다.
  • 보관성이 굉장히 좋을것 같아 보이지만 우리가 아는 쌀벌레와 같은 벌레가 많이 생겼다고 한다. 물론 먹는다고 문제는 없으므로 대충 털어 먹었다고....

관련 문서[편집 | 원본 편집]

각주

  1. pilot bread
  2. 2.0 2.1 Ships biscuits
  3. 원문:a thick paste of fine wheat flour was boiled and spread out on a plate. When it had dried and hardened, it was cut up and then fried until crisp, then served with honey and pepper.
  4. 4.0 4.1 4.2 출처 Feeding Nelson's Navy: The True Story of Food at Sea in the Georgian Era, Janet MacDonald [Stackpole Books:Mechanicsburg PA] 2004 (p. 16-18)
  5. The Origin of Biscuits
  6. Health Instruction Yearbook 1952, Stanford University Press, p.6
  7. Nelson's Trafalgar: The Battle That Changed the World
  8. 구멍을 뚫어야 할 것 같으나 일단 원문에는 별다른 지시 사항이 없다.